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2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26화(226/350)
리암은 바르간과의 대화를 원했다.
소설의 인물인 리암이 아닌, 본래의 자신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게 되고 나서 몇 번이나 바르간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바르간은 바쁘다는 것을 이유로 매번 자리를 피했다.
분명 바르간과도 관련이 있을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바르간은 따로 시간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빙의, 바깥 세계의 자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주제였기에 크게 떠들 수도 없었던 리암.
결국 끝까지 묻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버렸다.
리암은 혼자서 바깥 세계의 기억에 ‘이름’ 이상의 망각은 없는지 되새겼고.
불안감을 느끼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암은 문뜩 자신이 전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중간고사 때도 그랬지. 동료들의 이후, 나는 아무런 발전이 없이 정체되어만 있었어.’
대주교 자간에 의해 처참함 죽음을 맞이했던 리암의 조원들.
그리고 아카데미아를 떠나가야 했던 정령술사 니켈라.
리암은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잠시 주저앉았었다.
도저히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지.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 더 빨리 일어서서 검을 잡았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더욱 강해졌을 것이고.
앞으로 행동 범위를 넓히는 데 보다 수월했을 것인데.
‘그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름 말고 다른 기억들은 멀쩡하다는 거잖아.’
어쩌면 이미 잊어버리고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리암은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아르하와의 시합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다시금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또다시 공포와 절망에 빠져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그래서는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한다.
어차피 혼자서 골머리 싸고 전전긍긍하고만 있을 바에야 조금이라도 몸을 단련하고, 만약의 때를 대비하는 게 낫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빙의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까.’
걱정을 최소화하고 몸을 움직이자.
이는 단 한 차례도 멈춰 서지 않고 자신의 앞을 달려 나가는 바르간을 보고 리암이 배운 점이었다.
‘성격이 좀 안 맞긴 해도 여러모로 대단한 건 맞으니까. 보고 배울 건 배워야지.’
그래서 리암은 검을 잡았다.
여기까지 걸린 일수는 고작 4일.
몇 달이나 걸려야 했던 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여기 있었네.”
“형씨. 할 거면 같이 좀 하지 뭐 얼마나 대단한 수련을 하기에 혼자 그러는 거요?”
수련을 하던 리암을 찾아 다가온 에밀리와 카이만.
카이만은 대뜸 검을 꺼내 들어 지금이라도 대련을 벌이고 싶다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에밀리는 리암을 방해하지 말라며 일침을 날렸고 카이만은 댁이야말로 방해하지 말라며 일갈했다.
이렇듯 서로 아웅다웅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이 셋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서로 대련도 하고, 문제점을 짚으며 검술을 단련하는 동료이기도 했다.
리암은 에밀리가 건넨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직 약속 시간도 아닌데.”
둘과 수련하기로 약속한 시각이 되려면 아직 1시간 정도가 남았다.
이렇듯 같이 온 걸 보면 용무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리암이 그런 의문을 품고 있자 카이만이 철검을 집어넣고는, 턱을 까딱하며 연무장 출구 방향을 가리켰다.
“켈로 양반이 집합하라고 했소. 수색 부대를 세부적으로 나눈다고 하더군. 어째 방송까지 했는데 정말로 못 들은 것 같소?”
용사랭킹 8위의 외눈 검사 켈로.
현재 이들이 타고 있는 비공정의 대대장을 맡은 용사다.
리암과 에밀리, 그리고 카이만은 켈로의 부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비공정을 탄 채 중앙교회로 집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전의 상황을 되짚던 리암은 전혀 기억에 없자 머쓱하게 웃었다.
“…전혀 몰랐었네. 미안.”
“괜찮소. 여기까지 오는 게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단련에 집중하다가 못 들은 건 아주 바람직하구려. 리암 형씨가 최근 바짝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마음에 드오.”
“고마…워?”
“그 뭐야. 며칠 전에… 나흘 정도였나? 구석에 핀 곰팡이마냥 짜져 있길래 발로 까 버리려고 했는데 알아서 정신을 차리니 그 수고를 덜었소. 이 정도는 와 줄 수 있지.”
“야! 무슨 리암이 곰팡이마냥 짜져 있었냐! 말을 해도 참!”
카이만의 험한 언행에 에밀리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카이만은 이상한 걸 다 보겠다는 시선으로 되레 에밀리를 바라봤다.
“가장 걱정했던 여편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그럼 죽상이 되어서는 끼니도 자주 걸렀었는데 아니라고 할 심산인 거요?”
“그건 그런데…. 잠깐, 여편네? 그거 아내라는 뜻 아닌가?”
“그렇소만? 둘이 사귀는 사이 아니요? 그럼 나중에 결혼하겠다는 뜻이니 그리 불렀소.”
보수적인 카이만의 발언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에밀리.
반박할까 하다가 멈칫하고 왠지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약간의 기대(?)에 찬 눈으로 리암의 표정을 담는데.
“그런 거 아니야. 결혼을 약속한 적도 없고, 사귀는 사이도 아닌걸.”
“그런 거요? 나는 항상 붙어 다니기에 틀림없이 그런 줄 알았소.”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좋은 분위기를 보이던 리암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하게’ 냉담한 웃음을 지었다.
“…….”
어쩐지 에밀리는 가슴에 바위를 얹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틀린 말은 하나 없지만, 그 반응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리암이 나아가려던 방향을 바꾼 것 같았고, 그것은 자신과 멀어지는 길로 여겨졌다.
“리암…. 그….”
“아무튼, 후딱 갑시다. 더 늦으면 우리가 몰매를 당할 수도 있겠소.”
어쩌다 보니 에밀리의 말을 끊게 된 카이만.
리암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 나가려 들었다.
‘미안, 에밀리.’
리암은 속으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상처받았을 에밀리의 표정을 볼 수 없어 일부러 한 걸음 더 빠르게 나아갔다.
‘미안해.’
그녀를 향한 이 마음이 ‘누구’의 것인지를 모르겠는 지금.
리암은 오래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했던 에밀리에게 특별한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
트로아 제국의 수도, 부르템베르크.
그곳의 그늘진 곳에도 역시 모든 것을 교환하는 거래장 테라리움이 있었다.
“VVIP이신 바르간 고객님…. 어쩌다 눈이 그렇게 되신 겁니까?”
능청스러운 목소리의 주인은 주교급 알티프이다.
걱정스럽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저 눈알 가운데 박혀 있는 감정은 흥미다.
저 같잖은 연극에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나는 무시한 채 바로 목적을 밝혔다.
“전에 말했던 대로 무기를 제작하고자 한다.”
“무기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준비하신 재료를 보여 주시면 잠시 감정에 들어간 뒤, 예상되는 등급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시를 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주교 얼트레만.
사기꾼 냄새가 풀풀 나는 저 녀석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받았다.
“여깄다.”
나는 하얀이의 안에 고이 모셔 둔 모든 재료들을 꺼냈다.
얼트레만은 쓰고 있는 탑햇을 바로 잡으며 약간의 흥분감을 보였다.
그는 좀처럼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저 반응은 진짜인 것 같다.
“오오…. 정말로 말씀하셨던 모든 재료를 가져와 주셨군요.”
“그럼 거짓으로 뱉을 줄 알았단 말인가?”
“아뇨, VVIP이신 바르간 고객님을 의심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그저 바르간 님의 수완에 다시금 감탄한 것입니다.”
“혀가 아주 잘 굴러가는구나.”
“장사꾼에게 더 없는 칭찬, 감사드립니다. 그럼, 잠시 살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하얀 장갑을 낀 얼트레만은 조심스레 재료들을 살폈다.
먼저, 과거 에리카에게 받았던 광휘의 마석.
당연 상태는 가벼운 스크래치 하나 그어져 있지 않은 최상급이었고, 그 크기나 내포하고 있는 마나의 밀집도가 아주 뛰어난 마석이었다.
마력에 대한 반응도도 굉장히 뛰어나 아마 어떤 무기로 만들든 저거 하나로 2품 이상은 거뜬히 나올 것이다.
게다가.
“이 마석…. 공작위 어둠의 정령, 아르카네의 매개체가 되어 있는 상태이군요?”
쉽게 말하면 현재 저 마석은 아르카네의 집이 되어 있는 상태다.
성능이 보다 뛰어나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
무기가 완성되면 아르카네는 에고웨폰의 ‘에고’로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마석의 감정을 마친 얼트레만은 영롱하다는 듯 다음 물건들을 잡은 채 살폈다.
“위그드라실의 재료들은 언제 봐도 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대륙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나무 위그드라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대통합한 유일교이자, 강대국들을 누르고 패권을 꽉 잡고 있는 위그드라실교의 신성한 나무의 일부이다.
활용도가 광범위한 위그드라실의 수액.
훌륭하게 무기의 몸체가 되어 줄 위그드라실의 가지.
보기만 해도 즐거움을 유발하는 저 최고급 재료들은 없어서 못 구하는, 아니, 그보다도 아카데미아나 리케이온에 소속되지 않으면 구할 수조차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내가 아카데미아에 들어갔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확인을 마쳤습니다. 전부 의심할 여지 없는 진품이로군요. 이 재료들이면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분명 최고등급인 등외품의 지팡이가 완성될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이제, 이 안에 바르간 님의 마나를 소량만 넣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귀한 물건을 봐서 다소 들떴던 얼트레만은 다시 평온함을 되찾고 상인의 모드에 들어갔다.
그가 내민 것은 작은 플라스크에 담긴 투명한 액체.
언뜻 물처럼 보이는 액체는 마력이 담기지 않은 순수 마력수이다.
그 어떤 때도 묻지 않아 더없이 맑고 투명한 마력수.
저 안에 내 마력을 담아 재료로 쓰면, 무기가 내 마력에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거리낌 없이 그것을 집어 소량의 마나를 담았다.
곧 그것은 수은과 같은 색이 되며 내 성질을 띠었고.
얼트레만은 그것을 받아 갔다.
그러더니 곧 단면의 종이를 몇 장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펼쳐 두었다.
“저희 테라리움과 계약되어 있는 정예 마도공학자들입니다. VVIP이신 바르간 님의 지팡이를 아주 정성스럽고 더 뛰어나게 만들 인재들이죠.”
얼트레만은 이들 중 마음에 드는 한 명을 골라 달라고 했다.
각 프로필에는 그들의 경력이나 자격증 따위가 써 있었는데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나는 프로필을 든 채 천천히 살폈다.
개중에는 트로아 제국 황자의 지팡이를 만든 자.
용사랭킹 2위인 페랑기스의 액세서리를 제작한 자들 또한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바르간 님이 무기를 만든다고 하셔도 해당 공학자의 기록에는 남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래 공개되지 않는 정보들이나 특별히 VVIP이신 바르간 님을 위해서 명시해 둔 것이니까요.”
그런 바르간 님의 기록이 남게 되다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얼트레만은 그렇게 말하며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에 적힌 경력은 모두 확인이 끝난바 있으며, 대부분이 테라리움이 아닌 외부에서 진행된 계약들이라고.
즉, 황자나 페랑기스는 테라리움을 통해 공학자들을 접한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뭐… 사실 테라리움을 통해 했다고 하더라도 테라리움이 여신교의 것임을 아는 이는 없다시피 하니 문제가 되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든 프로필을 살핀 나는 가만히 종이들을 테이블 위에 두었다.
내 반응을 이상스레 여긴 얼트레만은 물었다.
“마음에 드는 공학자가 없으십니까?”
“찾고 있는 인물이 있어서 말이다.”
“그러셨군요? 말씀만 해 주십시오. 다소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다른 그 어떤 거래장보다도 빠르게 해당 공학자를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비블리오라는 이름이다.”
“비블리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익숙하지는 않은 이름인지 얼테르만은 곱씹으며 생각했다.
그러더니 곧, 자연스럽게 그의 뒤쪽에서 새로운 얼트레만이 프로필 한 장을 들고 나와 건네주었다.
프로필을 받은 얼트레만은 제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고 나에게 살며시 보여 주었다.
해당 이름의 란에는 확실히 ‘비블리오’라고 적혀 있다.
내가 그것을 들고 훑고 있자 얼트레만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분명 저희와 계약을 맺고 있는 실력 있는 공학자이기는 합니다만…. 아직 마땅히 경력이랄 게 없는 자입니다. 조금 전에 보여 드린 이들에 비할 바는 못 되는데 지인이라도 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전혀 모르는 생판 남이다.”
“그렇다면… 이런 귀한 재료들을 다른 공학자에게….”
“됐다. 이 녀석으로 하겠다.”
나는 깔끔하게 얼트레만의 말을 잘라 냈다.
거주지나 특징 따위가 내가 알고 있던 비블리오의 정보와 완벽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굳이 다른 공학자들을 두고 고민할 필요 없지.
아직 경력이 없긴 하지만… 원작에서 비블리오가 만들어 낸 ‘희대의 괴작’을 생각하면 이자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알겠습니다. 바르간 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비블리오에게 맡기도록 하죠.”
내 의지가 확고하자 얼트레만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기야,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요리조차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로 천차만별의 맛을 내는데 무기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심지어 이런 최고급 재료를 경력이 없는 신입 요리사에게 맡기는 꼴이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비블리오가 만든 ‘괴작’을.
그 위력과 위험성을.
이를 활용해서 전선을 평정했던 무기의 주인, 용사 헤일리온의 이야기를.
비블리오가 만드는 무기들은 전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거는 게 큰 만큼, 돌아오는 게 어마무시하다.
그리고, 그런 비블리오의 철칙은 나와도 아주 딱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