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2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27화(227/350)
마도공학자 비블리오가 요구한 기간은 3개월이었다.
수정구를 통한 영상 마법으로 나는 비블리오와 통신할 수 있었고.
그는 내가 꺼내 놓은 재료들을 보더니 눈을 밝히며 구시렁거렸다.
어떤 형태로 어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혼자서 뇌까리던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다른 예약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다소 과하게 많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특별히 불평을 토로할 부분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무기에 대한 고집을 갖고 있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대략 고유술식이 완성되고 난 이후 정도가 되겠군. 잘하면 가미긴의 토벌대에 합류할 때 소지할 수 있겠어.’
뭐… 겹치면 가장 좋고.
아니어도 크게 상관없고.
“지팡이가 완성되면 바르간 님이 계신 쪽으로 물건이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얼트레만은 필요한 비용이 담긴 금화 보따리를 받고 난 후, 더없이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세계 곳곳에 귀를 열어 두고 있는 얼트레만은 이미 중앙교회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도 태평스럽게 물건을 배달해 주겠다는 걸 보면 테라리움과 녀석이 모시는 추기경 벨레드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계산이 끝난 게 틀림없다.
“내 위치는 어떻게 파악할 생각이지?”
“아카데미아나 중앙교회의 내부 정도가 아니라면 저희 테라리움은 고객님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이 바닥에서 경쟁자랄 게 없는 독보적 1위이니까요.”
싱긋 웃는 얼트레만.
저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
테라리움의 계약서와 증명서를 받아 낸 나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얼트레만은 다음번 나의 방문을 기다리겠다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라버니? 이제야 통신이 잡히는 모양이네요.
밖으로 나오니 일회용 통신용 수정구에서 주파수가 잡혔다.
테라리움의 내부에는 통신 마법이 가능하지 않게 채비가 갖춰져 있는 듯했다.
—바로 저택으로 돌아오실 거죠?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인 식사 자리이니까 결석은 절대로 안 된다고 아버님께서 신신당부하셨어요.
아직 어린 목소리의 주인은 슈겐하르츠 가문의 오녀 리나였다.
천방지축인 사녀 리엘과 쌍둥이임에도 성격은 아예 달라 차분함과 상냥함을 연기하는 소녀다.
나는 리나에게 잊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고 보면 빙의를 하고 나서 다 같이 밥 한 번 먹은 적이 없군.’
워낙 바쁜 사람들이기도 하고, 망나니를 연기했던 바르간을 생각하면 화목한 가정인 게 더 어색하기는 하다만….
나는 통신을 끊고 나서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근처 여관방으로 마차를 불렀다. 내 용무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에리카를 데리고 저택으로 향했다.
“긴장되느냐?”
마차의 안에서, 에리카의 방울 같은 두 손이 치맛주름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에리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지금의 에리카는 알리시아에 견줄 정도로 연기가 서툴다.
그녀는 불안 증세 때문에 나와 함께 다녀야 하지만.
슈겐하르츠 가문의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워낙 가지각색이며 까다로운 상대들이기도 하고.
‘내가 미리 말해 둔 말도 있었으니 더욱 그렇겠지.’
빼먹으려면 충분히 빼먹을 수 있는 식사 자리였지만, 내가 이번에 몸소 몸을 옮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에리카에게는 미리 그것을 전해 두었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꽤 중요한 사안이다 보니 이처럼 초조하게 굴었다.
“슈겐하르츠…. 정말 괜찮아?”
그녀가 나를 걱정했다.
막상 당사자인 나보다 훨씬 깊은 수심에 빠진 에리카. 그런 그녀가 나를 위해서 묻는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입꼬리를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예정된 수순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화가 난 건가?”
“……솔직히 조금은. 내가 분노를 표할 입장은 전혀 못 되지만… 그래도.”
에리카는 말을 아꼈다.
내가 다시금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다.
‘슈겐하르츠 가주에 대한 그녀의 분노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빙의되기 전부터 결정되어 있던 일.
또한 나에게 있어서도 앞으로의 귀찮은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다.
“나를 가엾게 여길 것 없다. 하지만… 에리카. 너에게는 미안할 뿐이구나.”
“…나한테? 왜?”
“이번 일로 인해 슈겐하르츠와 포트레트의 약혼 역시 파기되겠지.”
에리카가 망가지기 전, 나와 그녀를 엮고 있던 마지막 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지금으로서는 구색만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엄연히 계약상으로는 존재했다.
에리카는 그 사실을 알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응. 하지만 괜찮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풀어서 설명해 주지 않았다.
어떤 게 괜찮은 건지, 어째서 어색한 미소를 보이는 건지.
그렇게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차는 바퀴를 굴렸고.
슈겐하르츠 본가의 저택까지 도착했다.
***
저택에 내린 우리는 이번 식사의 드레스 코드를 맞춰야 했다.
번거롭게 뭘 그런 거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하지만, 워낙 가주가 격식 따위에 목을 메는 인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몸을 단장하고 다시금 복도에서 마주친 에리카.
조금 전에 입고 있던 활동하기 편한 복장이 아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닿을 듯한 긴 드레스를 입고 있다.
“갈까?”
그런데도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또각거리는 구둣발을 옮겼다.
포트레트가의 차녀인 그녀에게 있어서 이 정도 걸리적거림은 별게 아닌 모양이다.
나와 에리카는 저택의 긴 복도를 걸었다.
오랜만에 걷는 잘 관리된 복도는 얼마나 시종들이 온종일 닦아 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알리시아도 복도를 광내는 데 일조했었지.’
그녀를 사들여 온 초반의 이야기이다.
주종 관계라는 틀을 명확히 세워 주기 위해서 일부러 더 굴렸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지금의 알리시아가 있는 게 아니던가.
역시 당시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 잡생각이 들 때쯤.
복도에서 화려한 복식을 입은 쌍둥이를 볼 수 있었다.
나를 닮은 검은 눈과 향유를 발라 반짝거리는 머리칼이 누가 봐도 귀족이라는 인상이다.
“켁.”
그것은 나를 본 사녀 리엘의 첫마디였다.
거의 반사적으로 맛없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는 리엘.
저 위계질서 따위 모르는 것에게 딱밤이라도 때려 줄까 하다가 귀찮아질 것 같아 무시했다.
“오셨군요 오라버니. 에리카 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녀인 리나는 방긋 미소 지으며 반가운 체를 했다.
이 녀석도 반사적으로 얼굴의 근육을 움직였는데 진심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보다는 습관 같은 거라고 보는 편이 맞다.
“안…녕….”
에리카는 침을 삼키더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 옆에 달라붙었다.
간신히 인사를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까지 바라는 건 힘들어 보인다.
약 2년 전에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에리카의 모습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건 사녀인 리엘이었다.
“듣긴 했었는데 진짜 뭔 일이 있긴 있었나 보네? 사람이 이렇게까지 한 번에 변할 수 있구나…?”
“리엘. 떨어져라.”
“뭐래 눈도 안 보이는 게. 너한테는 관심 없으니까 신경 꺼.”
그녀들은 나의 눈에 관련해서 이미 장남인 라인카르벤이 알려 주어 알고 있었다.
고유술식에 의한 시련이며 한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이 점은 나 역시 재차 설명하기 번거로웠으니 잘된 일이었다.
근데… 그 전에 이 녀석.
분명 떨어지라고 직접 입으로 내뱉기까지 했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다소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리엘. 마지막 경고다.”
“아, 뭘? 내가 대체 뭘 했다고 그러는 거야?”
“에리카에게서 떨어져라. 지금 그녀의 상태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지 않다고? 알아. 나도 눈이 있어. 그러니까 신기해서 좀 보겠다는 거 아니야. 얘가 이러는 게 좀처럼 있는 일이여야지.”
에리카의 앞으로 바짝 다가온 리엘. 그대로 손을 뻗어 에리카를 만지려 들었다.
그녀가 갖고 있는 것은 순수한 호기심.
너무나 달라진 에리카를 이해하고자 한 악의 없는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리엘의 ‘호기심’이 불쾌했던 나는 덥썩 손목을 잡아 행동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움직임이 통제된 리엘은 말했다.
“아프다 그만해라.”
“…….”
“안 들려? 아프니까 놓으라고.”
꽤 힘을 주어 잡았음에도 기세를 죽이지 않는 리엘.
오히려 눈에 독기를 담으며 대드는 꼬락서니가 그녀의 성격을 잘도 대변했다.
“슈, 슈겐하르츠…!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 않으니까…!”
“오라버니! 너무 세게 잡으셨어요! 언니, 언니도 빨리 사과해요. 그래야 오라버니께서 놔주실 거 아니에요!”
당황한 에리카와 리나.
그러든 말든 이 당돌한 계집은 눈 안의 불씨를 꺼트릴 줄 몰랐다.
나는 손아귀의 힘을 더욱 강하게 했다.
“아! 아프다고 이 새끼야—!”
통증이 강해지자 인상이 찌푸려진 리엘. 결국 신경질적으로 손을 풀어 헤치며 몇 걸음 물러났다.
씨익씨익 성난 숨을 내쉬는 그녀.
검은 눈망울에는 눈물 몇 방울이 올라와 있다.
따가운지 부여잡고 있는 손목. 짧은 시간이었지만 압력이 적지 않았음을 알려 주듯 피부가 시뻘게져 있다.
고귀하신 슈겐하르츠가의 사녀님께서 겪으시기에는 지나치게 아프셨나 보다.
리엘은 빠드득 이를 씹다가 말을 뱉었다.
“너 그거 병이야. 과보호라고 알아?!”
“…….”
“나한테 이런 짓거리를 해?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서도 가만히 계실 거 같아? 이 망나니 새끼야—!”
“언니, 그 정도로…! 오라버니…?”
짜악—!
가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녀님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손목보다 붉게 물든 볼.
내 손자국이 그대로 남은 뺨에 손을 대는 리엘은 본인이 지금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눈치다.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리는 뺨.
여전히 무신경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나.
이를 본 리엘의 눈동자는 몇 방울씩 차오르던 눈물을 흘려보냈다.
“너… 너… 제정신….”
“제정신인가? 그렇게 묻고 싶은 건 오히려 나다, 리엘. 아무래도 이번에 들어온 새로운 예절 교사 역시 네 악벽을 고칠 순 없었던 모양이구나.”
“…어떻게. 어떻게 이런….”
“계속 그렇게 울먹일 것이라면 방구석이라도 가서 틀어박혀 있어라. 안 그래도 추잡한 너에게서 악취가 나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이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리엘은 긴 드레스 자락을 잡으며 달려 나갔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정원 쪽.
서럽고 펑펑 울고 싶으니 어딘가로는 뛰쳐나가고 싶은데, 그렇다고 내가 말한 방으로 가긴 싫고 하니 정원으로 가는 모양이다.
“어, 언니…!”
리나는 쌍둥이 언니가 있는 곳으로 갈까 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조금 있으면 약속한 시간이다.
식사 자리에 공석이 두 개인 것보다는 한 개인 편이 낫다.
그렇게 판단했는지 리나는 근처의 시종을 불러 리엘을 잘 다독이고 데려올 것을 부탁했다.
“…오라버니. 분명 언니도 무례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오라버니께서 과하셨어요.”
“과하다? 리나. 이 1년 동안 내가 고분고분 지내니까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구나. 나는 원래부터 이랬다.”
“…….”
“따라가고 싶다면 너도 가도 좋다. 아버님에게는 내가 잘 말해 두도록 할 터이니 말이다.”
“…오라버니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전보다 더 알 수 없는 거 같아요.”
“좋을 대로 해석해라. 자, 이만 가자꾸나 에리카.”
나는 얼어붙어 있는 에리카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리나는 고민하는지 망설이더니 결국 나를 따라 함께 걸어갔다. 분명 머릿속으로 손익을 계산하여 나에게 맡길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겠지.
식당으로 이동한 우리.
이미 의자에는 모든 인원이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다.
가주인 아버지.
어머니.
장남인 라인카르벤.
차남인 벨로.
“리엘은 어디 있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리나가 더 빨리 입을 움직였다. 옷을 입는 과정에서 봉제선이 뜯어져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자연스레 거짓말을 뱉었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먼저 포크를 들도록 하자꾸나.”
“네? 아, 네 아버님.”
노기 어린 말을 들을 줄 알았던 리나는 예상외의 대답에 다소 어리둥절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가주인 아버지께서 와인이 담긴 잔을 들어 올리곤 위그드라실과 슈겐하르츠 가문의 역사에 대해 짧게 읊으셨다.
언제 들어도 변하지 않는, 뻔하고 고리타분한 절차이다.
식사는 아버지께서 와인을 입에 머금으시자 시작되었다.
테이블 위에 올라온 주제는 다양했다. 최근 중앙교회에서부터의 전갈과 추기경 가미긴의 토벌을 위한 모집병의 이야기.
장남인 라인카르벤의 아카데미아 졸업 축하와 앞으로의 계획, 내 고유술식에 관한 것 등….
마치 대본이라도 맞춘 것처럼 대화가 흘러갔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들은 하나둘씩 살점을 떼어먹히고 있었다.
“…….”
나는 대화를 가만히 듣다가 잔을 들어 담긴 와인의 맛을 봤다.
혀에 닿는 순간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적절하게 섞여 고급이라는 티가 났다.
하기야, 지금 이 테이블 위, 그리고 이 공간에 있는 그 어떤 물건 중에 싸구려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는 슈겐하르츠.
영광스러운 트로아 제국의 명문가 중 명문가의 저택이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울 수 있지만 오랜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해 주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자 나는 타이밍이 되었다 여기곤 입을 열었다.
입안에는 아직 고급 와인의 향이 머금어져 있다.
나는 모두의 시선을 안주 삼아 그 잔향을 즐겼고.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저는 오늘부로 슈겐하르츠의 이름을 내려놓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