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2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28화(228/350)
바르간의 출가.
정확히는 바르간이 슈겐하르츠의 족보에서 파인 순간.
원작에서는 현시점보다 조금 늦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바르간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딱 지금 시점에서 진행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슈겐하르츠의 이름을 내려놓다니요?”
“말 그대로다. 나는 가문에서 독립하여 더 이상 슈겐하르츠가 아닌, 바르간으로 살고자 한다.”
“아니… 왜……?”
리나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살폈다.
반응을 보아하니 자신 이외에 어머니, 장남, 차남이 해당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말은 가주인 아버지와 바르간의 약혼녀인 에리카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르간은 리나의 반응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녀는 바르간이 변하게 된 진상을 몰랐다.
‘신의 저주’라 불리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바르간이 벌였던 망나니짓이 묵과되었음에 의문은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알아보려 하지는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장남을 차기 가주로 밀고 있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삼남인 바르간의 짓거리가 적당선만 지킨다면 오히려 반가운 소식이었으니까.
그러니, 모른다.
어떻게 바르간의 악행들이 그 깐깐한 가주의 비호 아래에서 행해질 수 있었는지를.
둘 사이에 오고 갔을 과거의 거래를.
‘슈겐하르츠가의 가주는 가문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두려워해 바르간의 불치병을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바르간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는 대신 입막음과 성인이 될 때 가문에서 떠나 줄 것을 부탁했지.’
가문의 이름을 달고 있는 채로 혹시나 불치병에 걸린 게 들통났을 경우를 우려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아버지이지.
원작에서 리암은 가주가 바르간의 ‘짧은 인생을 위해서’ 해당 사실을 비밀에 부쳤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바르간이 볼 땐 온전하게 제 가문만을 위해서였다.
‘뭐, 그 덕에 나는 일개 삼남이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재산을 움직일 수 있었다.’
거대 헌터 길드 마데레로를 설립한 것.
루비드 마을에 자금을 대서 사역마들을 몰래 육성하고 있는 것.
모두 비밀리에 움직이기 위해 중간에 세탁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이는 아무리 돈이 많은 집안이라고 하더라도 삼남이 부리기에는 지나치게 과한 액수의 돈이었다.
물론, 마데레로가 대형화된 지금은 전부 갚아 주었지만 말이다.
바르간이 거액의 돈을 일시적으로나마 움직였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오로지 가주뿐이다.
“어째서인가요 오라버니.”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계산에 리나가 물었다.
말에 내포된 뜻은 ‘슈겐하르츠’의 이름을 버려서 대체 어떤 이익을 창출할 수 있냐는 것이다.
불치병과 가주 사이의 거래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으니 바르간은 적당한 이유를 꺼냈다.
그러나 딱히 거짓은 아니기에 눈치 빠른 리나에게 표정이 읽힐 일도 없었다.
“내가 슈겐하르츠의 비호 아래에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손에 넣었다. 이제 나에게 가문이란 갑갑한 울타리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보장하지만 대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울타리.
게다가,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아카데미아를 붕괴시켜야 한다.
이때 어쩔 수 없이 연관될 슈겐하르츠가 빠져나갈 구멍은 필요하다.
나로 인해 슈겐하르츠가 망하면 훗날 대전쟁(大戰爭)에서 사용될 전력에 차질이 생기니까.
결국 서로 이득인 셈.
아, 당연히 전쟁에 관해서는 나 말고 아무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또한 독립하면서 재산의 일부와 변경에 위치한 영토를 받기로 했다.”
“재산과 영토요?”
“그래, 혹여나 불상사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풍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리나가 정확한 재산의 수치와 영토를 알고 싶다는 눈치이기에 나는 군말할 것 없이 밝혀 주었다.
이후 그녀의 반응은.
“고작 그 정도로 오라버니가 가문을 떠날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아요.”
“욕심이 많구나. 나는 충분하다고 봤다만 적다고 이야기하는 건가.”
“…….”
바르간이 더 이상 정황을 밝히지 않을 것 같다 여긴 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가만히 그와 가주의 표정을 살피며 둘 사이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오고 갔음을 짐작했다.
차남인 벨로는 명백히 당황한 기색으로 왜 그러는지, 불만이 있으면 도와주겠다는 등의 무른 말 따위를 뱉었고.
장남인 라인카르벤은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방학 동안 머물 곳은 정해 두었나.”
“아카데미아에 있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그곳에서 거주할 예정이죠.”
“그렇군.”
“아쉬우십니까?”
“글쎄.”
“하기야, 저를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떠들썩한 집안이죠. 그리고… 어차피 형님께서는 중앙교회에 들어가게 되셨으니 저와 마주칠 일은 꽤 있을 겁니다. 이번 토벌만 해도 그렇죠.”
바르간은 그러니 서운해하지 말라는 식으로 장난스레 말했다.
이에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는 라인카르벤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와인을 마셨다.
“사실상 차기 가주로 확정되셨으니 기쁘실 만하죠.”
“그것보단 너를 가늠하기를 포기해야겠다는 웃음이었다.”
“넷뿐인 동생의 앞길을 축복해 주시죠.”
“넷이라… 많기는 하군.”
라인카르벤의 입가에는 아직 미소의 잔재가 남아 있다.
담긴 와인을 살살 돌리며 잔을 내려놓는 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르간에게 건투의 한마디를 보였다.
“무운을 비네. 바르간 남작.”
그것은 중앙교회로부터 하사받은 바르간의 작위.
슈겐하르츠가 아닌 바르간의 이름이었다.
***
“짜증 나, 짜증 나!”
싹둑, 싹둑.
식사에 참여하지 못한 채 정원의 꽃들을 가위질하고 있던 리엘.
아무 생각 없이 무차별적으로 잘라 댈 것만 같은 리엘이지만 그녀가 지나간 곳은 훌륭하게 가지치기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천방지축인 성격과는 달리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원을 가꾸는 습관이 있었다.
“그 X새끼! 다신 안 돌아오면 좋겠네!”
리엘의 붉은 눈가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다.
더 눈물이 나올 일은 없었지만 아직 원상태로 돌아오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좀! 제 발로! 안 나가 주려나! 라인카르벤 오빠가 가주가 되면 호적에서 파 버려 달라고 해야지!”
리드미컬하게 가위질을 하는 리엘.
분노가 섞인 손놀림은 정원을 말끔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뭐야, 벌써 끝났어? 아님 아버지께서 직접 부르기라도 하신 거야?”
살며시 다가온 쌍둥이 동생을 발견한 그녀는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리엘은 다소 걱정이 되었다.
‘아…. 일찍 끝난 거면 그나마 괜찮은데 식사 도중 부르신 거면 진짜 크게 혼날 텐데….’
리엘은 속으로 바르간을 욕하며 리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딘가 어두운 안색의 리나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리엘은 이상을 느꼈다.
“왜 그래? 뭔 일 있었어?”
“언니….”
“리나야. 왜? 진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갑자기 자신에게 안겨 든 쌍둥이 동생.
울적한 리나의 반응을 보자 리엘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리엘의 품에 얼굴을 비빈 리나는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입 밖으로 꺼냈고.
“어…?”
리엘은 인상을 구겼다.
***
식사를 마친 바르간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는 떠날 준비를 했다.
필요한 물품들은 전부 하얀이의 안에다 넣어 두니 마차를 여러 대 대동할 필요는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리스트를 살피며 물건을 전부 확인한 바르간은 저택의 중문을 빠져나왔다.
중문부터 외부를 알리는 대문까지 길게 뻗은 길. 미용실에서 막 나온 것 같이 반듯하게 가지쳐져 있는 나무들이 슈겐하르츠가의 위용을 자랑하는 듯했다.
‘이제 이곳에 오는 일도 없겠군.’
어쩌다가 올 수도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진 재방문 예정이 없다.
이 소설 세계에서 죽을 때까지 못 보는 광경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니 괜히 눈에 풍경을 새기게 되었다. 비록 바르간의 감회일지라도 제법 적적한 무언가가 있었다.
‘시간을 낭비할 순 없으니 슬슬 가야겠군.’
에리카는 먼저 대문에 준비해 둔 마차에 태웠다.
괜히 심술을 부리는 누군가가 또 뭔 짓을 할지 몰라 대피시켜 둔 것이다.
그렇게 대문까지 길게 뻗은 길을 걸어가는 그때.
“야!!”
‘양반은 못 되겠군.’
바르간은 뒷통수를 강타한 신경질적인 소음에 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봤다.
고가의 드레스가 바닥에 질질 끌린 채 머리도 만신창이가 된 리엘이다.
세차게 뛰어온 것인지 숨이 불규칙적이다.
바르간은 그녀를 차분히 훑더니 툭 말을 뱉었다.
“명문가의 여식이 품위 하나는 더럽게 없구나.”
“시끄러워! 지금 그게 문제야?”
리엘은 바르간의 말을 냅다 집어 던지고는 본인의 화두를 내보였다.
“너, 연기하지 마. 이러고 나서 다시 돌아올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무슨 뜻이지?”
“네가 가문을 떠날 리 없잖아! 빼먹으려면 더 빼먹었지. 뭐? 가문의 이름을 버려? 누가 그딴 말을 믿기라도 한대?”
“…시끄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바르간은 손을 내저으며 이미 그에 관해서는 모두에게 말했으니, 정 의심스러우면 아버지를 찾아가 여쭈어보라고 했다.
이에 리엘은 길길이 성을 내며 반박하였고 말이 통할 거 같지 않자 바르간은 대문을 향해 몸을 돌려 지팡이를 짚었다.
“그럼 뭐! 정말 슈겐하르츠를 떠나기라도 할 생각이라는 거야?”
악바리가 담긴 리엘의 외침.
바르간은 뚜벅뚜벅 걸음을 이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그래. 몇 번이나 말하느냐. 이제 나는 더 이상 슈겐하르츠의 사람이 아니다. 네가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제 발로 떠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거늘. 거위도 아니고 요란스럽게 꽥꽥대기는.”
“개소리… 개소리…!”
“리엘. 속이 뻥 뚫리지 않느냐. 이제 보기 싫은 내 얼굴을 볼 일도 없다. 끔찍히 여기던 내 목소리를 들을 일도 없겠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아라.”
어느새 바르간과 리엘의 거리가 제법 멀어졌다.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리엘의 몸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새하얀 치아가 나올 정도로 꽉 이를 깨문 그녀.
“그래… 좋네…. 끔찍하게 싫어하던 네 얼굴을 봐도 되지 않아도 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리엘.
날카로움을 머금은 눈으로 바르간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잘난 체하는 꼬라지도 보기 싫었고, 그 거들먹거리는 말투도 토 쏠렸어! 표정? 나를 아주 우습게 보는 그 눈을 찍어 버리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그동안 바르간에게 품었던 모든 불만을 내뱉었다.
격한 감정을 쏟아 내며 다신 보지 못할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말들을 꽂아 댔다.
“좀 마법에 대한 재능이 있으면 뭐 해? 몇 년 동안을 망나니마냥 놀아 재꼈는데! 가문에 내려온 선물? 다시 없을 희대의 천재? 웃기지도 않아! 너는 그냥 네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 X새끼야! 주위 사람들이 어떤 심정일지는 생각도 안 하는 이기적인 놈이라고!”
과거에서부터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바르간이 불치병에 대해 인지하게 되고 망나니를 연기하게 된 순간부터.
그때부터, 바르간에게 많은 기대감을 걸었던 리엘은.
오빠인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소녀는 그를 믿었던 만큼 증오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게 오해와 거짓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들, 리엘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이제야 좀 정신을 차리나 했는데… 다시 예전 같은 모습을 보이나 했는데…!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너무 부끄럽다. 창피하다고!”
빙의가 된 바르간의 변화는 리엘 역시 알고 있었다.
거들먹거리는 말투와 남을 얕잡아 보는 태도는 더욱 심해졌어도 그가 어릴 적과 같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망나니 시절에 보였던 모습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닫혀 있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너 같은 건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너 따위가 왜 내 오빠인 거야? 그렇게 끝까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다 죽을 거면 뭐 하러 태어난 거냐고…! 왜…!”
그녀의 몸에 감돌던 떨림이 목소리로 옮겨져 밖으로 나왔다.
간신히 말랐던 그녀의 새빨간 눈가에도 다시금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느덧 둘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져, 크게 소리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까지 되었다.
“나쁜 새끼…. 진짜 나쁜 새끼….”
대문 앞에 다다른 바르간.
그에게 리엘의 울먹임은 닿지 않았다.
바르간은 마지막까지 한 번을 뒤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끼이익— 쾅.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대기를 타고 잔잔하게 울렸다.
리엘의 음성은 그 작은 소리에도 묻혀 버릴 정도로 여리고 여렸다.
“잘됐다…. 아주 잘됐어…. 꺼져 버려…… 이 나쁜 놈아….”
이윽고.
바르간이 탄 마차가 떠나가는 것까지 보이자 바닥에 주저앉은 리엘.
몇 년 만에 잡힌 식사 일정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최고급 드레스. 그 귀한 옷에 흙이 묻어 더럽혀졌다.
홀로 남은 그녀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드레스의 너른 소매로 닦기에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