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3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30화(230/350)
리케이온과의 합동 기말고사가 끝나고.
아카데미아가 방학을 맞이한 지도 벌써 2달가량이 되었다.
형상파의 끄트머리, 바르간의 저주를 받고 있는 오셀 랑피트 보르그.
그는 방학 동안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아카데미아에 머물러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저주를 푸는 데 집중할 때다. 한가롭게 저택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야.’
보르그는 자신에게 걸린 저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기숙사에 박힌 채 날마다 저주가 반응할 만한 행동만 골라 했다.
일부러 바르간에 대한 악의를 더욱 끌어올리고, 에리카에 대한 불순한 생각을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전신의 통증이 일며 보르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보르그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지는 게 아니라 환호를 피워 냈다.
통증이 즐겁다.
목을 막힐 듯이 조여 오는 숨이 반갑다.
언뜻 고통받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유가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알 수 있어. 앞으로 조금만 더 이 짓을 반복하면….’
의자에 앉아 몸을 배배 꼰 채 꿈틀거리는 그.
헤벌레 웃으며 저릿한 잔류를 느끼던 보르그는 심장이 더는 힘들다는 듯 빠르게 박동하고 있음을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이 이상 하면 잘못하다 죽을 수도 있겠어.’
그에게도 나름의 기준 같은 게 있었고.
그 이상의 무리를 하지 않았다.
저주를 풀려다 죽어 버리면 본말전도다.
바르간에게 복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목숨이 다하면 되겠는가.
보르그는 숨을 고르며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겨울의 밤공기가 폐로 밀고 들어오며 오한이 들게 만들었다.
담비를 잡아 만든 값비싼 털목도리를 했음에도 완전히 추위를 몰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의 아카데미아를 적당히 어슬렁거리는 보르그.
그러다 대시계탑 근처를 지나게 되었고 그 웅장한 크기의 건물을 아래서부터 쭉 훑으며 올려다봤다.
‘생각해 보면 축제 때 난리를 피웠던 고대 드래곤이 이곳에 오려고 발악을 했었지. 성공했더라면 아카데미아를 추락시킬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보르그는 대시계탑 내부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면 내부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축제 이후에는 입구에 경비원들까지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전에는 복잡한 다중 마법 술식들로만 보호받던 대시계탑의 경계가 더욱 삼엄해진 것이다.
‘조절 장치…. 그것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끝나는 건데 말이야.’
아무리 밑바닥이라도 보르그는 아카데미아를 전복시키기 위해 심어진 형상파의 신도였기에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공중도시의 원천인 거대 마석.
그 마석의 ‘조절 장치’가 대시계탑 안에 존재하며 그것은 곧 거대한 마석의 정수였다.
‘뭐… 총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과거, 아카데미아에서 형상파를 이끌었던 교수 루센이 대시계탑의 내부 구조 설계도를 구했었다고 했다.
어떤 식이 걸려 있는지, 그 해답식이 무엇인지가 상세하게 적혀 있는 말 그대로 해설지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대시계탑 내부에 들어가 몰래 작업하던 형상파는 조절 장치를 무력화시키지 못했다.
정확히는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시계탑의 조절 장치를 건드는 순간.
총장인 굴레마시아에게 곧바로 신호가 가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영감은 대주교님들조차 기피하는 존재다. 잘못 건들면 형상파의 뿌리까지 뽑혀 버릴 테니 어찌할 방도가 있나.’
결국 그림의 떡.
방법을 알아도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으으. 추워.”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린 보르그.
적당히 산책도 했겠다. 이만 따뜻한 방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틀려 했는데….
“음? 뭐야.”
보르그는 몸을 숨겼다.
눈쌀을 찌푸리며 대시계탑의 입구에 다가가는 그림자를 관찰했다.
‘여자…? 꼬리? 잠깐, 그 좀도둑 년이잖아?’
프리다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경비원들에게 무언가를 보여 줬다.
그러자, 입구를 지켜야 할 경비원들이 옆으로 비켜섰고 프리다는 익숙하다는 듯 내부로 들어갔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대시계탑은 아카데미아 내부에서도 최중요 시설이다.
그런 곳을 저렇게 간단히 들어가?
그것도 저렇게 천한 년이?
‘그럴 리가 있나. 분명 바르간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거다.’
보르그는 추위에 다리를 떨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쭉 지켜봤다.
‘최근에 형상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어. 상당히 분주하게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지. 그것과 관련 있는 건가?’
사실상 잘린 꼬리 신세가 된 보르그는 현재 바르간과 프리다가 이끄는 형상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알짜배기만 빼고 별 중요하지 않는 내용만 전달받고 있었다.
이윽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프리다가 다시 빠져나왔다.
다시 아무렇지 않은듯 경비원들에게 무언가를 보이고 사라지는 그녀.
경비원들은 마치 돈이라도 찔러 받은 것처럼 아예 보지 못한 체를 했다.
‘수상하다. 수상하기 그지없어.’
보르그는 여신교의 기본적인 임무조차 잊어버린 듯, 바르간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아카데미아의 붕괴가 아닌, 어쩌면 바르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 단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를 굴렸다.
***
바르간과 함께 방학 동안 아카데미아에 거주하는 에리카.
방 안에서 마법의 연구에 힘쓰던 그녀는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깨끗이 씻고 나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에리카는 이제 혼자서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사람 많은 곳은 꺼려지고 낯선 이를 보면 손에 땀부터 송글송글 맺히지만.
처음에 비하면 꽤 호전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바르간의 지극정성과 에리카 본인의 노력 덕분이었다.
‘사람이 진짜 없긴 없네.’
휑한 아카데미아의 모습을 보던 에리카는 생각했다.
방학이라는 점도 있었고, 현재 꽤 많은 학생들이 토벌대에 지원하여 가미긴의 흔적을 좇고 있는 중이다.
알리시아나 디피엘리아도 그랬다.
자신은 바르간의 시련을 돕기 위해 남아 있지만 아카데미아에서 알아주는 인재들은 대부분이 입대했다.
사실, 바르간이 에리카의 불안 증세를 호전시키기 위해 애썼던 만큼.
에리카 역시 바르간의 수족이 되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바빴다.
시각이 돌아오고 난 바르간이 다음으로 느끼지 못하게 된 감각은 촉각.
‘그때는 바르간이 되게 힘들어했는데…….’
촉각을 잃게된 바르간의 상태는 정말로 ‘심각했다’.
이대로 시련을 중단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는 데까지만 해도 5일이 걸렸다.
걷는 데까지는 추가로 6일이 더 걸렸다.
마치 신경이 고장 난 사람과 같이.
바르간은 여러 마법의 도움을 받으면서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당연히 그를 보필할 인원이 필요했고 에리카는 낮과 밤 할 거 없이 그의 옆에 붙어 있었다.
에리카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바르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고유술식 완성을 그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알아 눈물을 숨기며 그가 벌여 놓은 일의 뒤처리를 했다.
또각—.
에리카의 걸음은 자연스레 남자 기숙사로 향했다.
바르간의 방에 도달한 에리카는 키를 꽂아 넣으며 문의 잠금을 풀었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의 불은 켜지 않는 에리카.
그대로 쭉 걸어가니 쪽방 하나가 있다.
—크릉.
그 안에서 크라이가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낯선이가 보면 화들짝 놀랄 수 있는 외모.
하지만, 몇 달간 얼굴을 보고 지낸 에리카는 크라이의 매력을 알고 있었다.
“심심했구나?”
에리카는 크라이의 털을 양손으로 매만지며 예뻐했다.
크라이 역시 그녀의 손길을 만끽하면서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한동안 골골골거리던 크라이는 이제 충분했는지 도로 쪽방으로 들어갔다.
에리카 역시 크라이를 따랐고.
그 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커다랗고 검은 ‘알’이었다.
성인 남자 하나는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
그 알을 보자 에리카의 눈동자에 수심이 깊어져 갔다.
—에리카. 이번 한 달 동안 정말로 고생 많았다.
그것은 길고 고됐던 촉각의 시련이 끝나기 몇 분 전의 기억.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제 의지대로 움직이는 데까지 성공한 바르간이 그녀를 마주 보면서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미안하구나. 여태까지의 네 노력을 보상해 줄 틈도 없이 너와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바르간이 말한 ‘떨어짐’이란 극장에서 에리카가 말했던 ‘어디 가냐’는 것과 의미가 달랐다.
잠깐의 이별.
정확히는, 마지막 시련을 받는 1달간의 분리였다.
에리카는 자신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불안 증세도 꽤 호전되었고 까막이나 크라이 같은 사역마들이 자신의 곁에 함께 있으니 괜찮다고.
그러니 자신이 아닌 마지막 남은 시련에만 집중하라고 말했다.
바르간과 에리카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함께 있는 게 아니었으며.
같은 시간을 보내도 다른 무게를 지녔다.
스륵.
하얀 에리카의 손이 검은 알의 표면에 닿아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렸다.
조금의 거칠거림도 없이 매끄러운 껍데기는 설령 아카데미아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끄떡없을 정도로 견고해 보였다.
고작 벽 하나, 아니 얇은 층 하나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에리카는 그 안이 어떤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촉각의 시련만 하더라도 여지껏 없는 수난을 겪었던 그.
에리카는 별다른 수 없이 바르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무런 문제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오랜만에 위그드라실에게 손을 모아 기도하고 그를 떠올렸다.
“바르간….”
에리카가 검은 알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가 몇 달 전 자신에게 말했던 ‘당연히 시련의 대비책을 준비했다’는 말만을 간절하게 믿으며.
오늘 밤도 바르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자리를 지켰다.
***
“하, 하하… 전혀 쉴 틈을 안 주는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알에 들어오고 나서 시간 감각이라는 개념이 아예 사라진 듯 체감할 수 없었다.
이것도 오감을 마음대로 농락당하는 탓일까?
뭐가 됐든 유쾌한 기분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남을 가지고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건 좋아해도 내가 그 꼭두각시가 되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이니까.
이게 고유술식의 시련만 아니었다면, 혹은 내 발전에 기여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당장 때려치고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지만.’
밖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완전히 차단된 별개의 세계인 것처럼 알의 내부는 기존 상식을 완전히 벗어났다.
나는 그저 시련이 나에게 보이는 현상을 극복해 나갈 뿐이다.
대체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았는지, 그리고 몇 퍼센트 정도 진행한 것인지 파악할 수 없지만.
해야 한다.
그 어떤 것을 마주할 지라도.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아 살아남아야 한다.
그게 이번 마지막 1달의 시련이다.
“아, 그런가. 이번에는 대군세의 습격이다. 이 말이구나.”
나는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에 다소 과격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이것은 비유 따위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드넓은 대지.
지진이 난 듯 땅을 울리면서 다가오는 거대한 군세.
알티프와는 형상이 조금 다르지만 뭐가 됐든 나를 패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괴물들이라는 건 변함 없다.
5만? 6만?
모른다.
이 빌어먹을 시련이 이번엔 마법사인 나에게 마법을 금지시켰다.
대신 사용하라는 듯 꽂혀 있는 칼 한 자루.
아무래도 저걸 사용해서 썰어버리라는 말인 듯하다.
“오냐. 어디 끝까지 한번 해보자꾸나.”
미안하지만 나는 이 정도에 쓰러질 정도로 곱게 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