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3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34화(234/350)
저주 마법을 건 검은 머리의 누군가.
바르간은 자신에게 걸린 술식의 구성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쓰는 것과 같은 기본 골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마법이든 해당 분야의 기본 골격은 같을 수밖에 없다. 본래 존재하는 마법의 틀에 자신만의 특이성을 일정 이상 부여하여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는 게 고유술식이니까.’
하지만, 이건 고유술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 틀이 되는 기본 식에 관한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같은 골격, 즉 같은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은 각자의 식을 더하여 다른 이들이 풀 수 없도록 잠금장치를 해 놓아야 하는데, 이자의 것은 아예 날것.
아무런 잠금장치가 걸려 있지 않아 저주 마법의 원리를 익히기만 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풀 수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저주 마법이라는 식이 완성되어 다른 이들의 때를 전혀 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바르간은 술식을 읽어 낸 즉시 해제가 가능했다.
술식에 속박되는 일 없이 제대로 현상을 바라보는 바르간. 곧바로 미리 준비해 둔 10개의 마력구를 합사하여 발사했다.
목표물인 남성은 아직 바르간의 저주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거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낄낄.”
당황하고 있는 남성의 앞을 막아서며 대신 마력포를 받는 또 다른 이.
조금 전까지 살짝 뒤처지고 있던 일행이 어느새 도착하여 바르간의 마력포를 막아 내고 있었다.
“큭. 마나의 밀도가 미쳤군. 출력 또한 장난이 아니야. 아주 흥미로워.”
재밌다는 듯 웃음 짓고 있지만, 예상보다 마력포의 힘이 강력한지 살짝 주춤거리는 갈색 장발의 남자.
그러나 곧 그의 앞에 생긴 작은 웜홀에 힘차게 뻗어 가던 마력포가 전부 빨려 들어갔고 바르간의 공격은 무효화되었다.
그사이를 틈타, 검은 머리의 남성은 바르간의 저주 마법을 간신히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
“…흠.”
2 대 1.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
바르간은 눈을 가늘게 하여 그들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검은 머리칼의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그가 보인 마법은 틀림없이 저주 마법. 게다가 서툴기는 했어도 내 저주의 식을 풀었다.’
상대의 신원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기에 적당한 수준의 저주 마법을 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장난 수준은 아니었다.
유능한 검사는 다른 검사의 자세만 보더라도 실력을 파악할 수 있다고.
그가 건 저주 마법의 성취를 가늠하자면 알리시아가 막 저주 마법을 배우고 아카데미아에 들어왔을 때보다 아래 정도이다.
그런데도 성취에 맞지 않게 빨리 답을 적어낸 것은 수상쩍기 그지없다.
‘그런 게 가능한 건 아르하 정도의 천재.’
즉, 적어도 저주 분야만큼은 굴레마시아나 알리시아와 견줄 마법적 재능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뭐, 근본적으로 저주 마법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신경 쓰이지만.’
설마 이 시대에서 저주 마법을 사용하는 이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저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와 검은 머리칼이 상당히 신경 쓰였다.
“…이건.”
바르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는 남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듯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앞을 당당히 지키고 있는 청년.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서로의 상황에 오해가 있음을 인지했다.
“라페즈. 마력을 거둬. 저 청년은 프릭칸리스크의 수하가 아닌 것 같아.”
“낄낄. 재밌는 말을 하는군. 그럼 저 녀석이 우리와 같이 제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마법사님께서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이셨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네.”
“저 마나의 막 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봐. 그를 향해서 겁먹고 있는 걸로 보여?”
“어리석은 민중일 뿐이야. 흑과 백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의 눈을 어찌 믿겠나.”
“…그래. 어쩌면 네 말대로 저 청년이 마물이고 대중들이 현혹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전투를 이어 가는 건 무의미해. 우선 대화를 시도해 보자. 싸우는 건 그 이후에도 늦지 않아.”
“…자넨 너무 물러서 탈이네.”
라페즈라고 불린 장발의 남성은 최소한의 마력만을 남겨 둔 채 보이려던 술식들을 취소했다.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자신의 뜻을 이해해 준 동료에게 감사를 표하며 천천히 바르간의 앞으로 걸어왔다.
대화를 원하는 그는 양손을 양옆으로 뻗으며 전투 의사가 없음을 표현했다.
“갑자기 공격한 것에 대해선 사과하겠네. 설마 ‘우리’를 제외하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거든.”
“…….”
바르간 역시 신경 쓰이는 게 있었던 만큼 살기와 함께 마나를 가라앉혔다.
“말이 통하는 상대인 거 같아 다행이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네가 탈출시킨 건가? …보아하니 프릭칸리스크의 성을 성대하게 부순 것도 자네인 것 같은데.”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뒤쪽에 폭삭 가라앉아 있는 성체를 슬쩍 바라봤다.
프릭칸리스크의 거점이 다수 존재한다고는 해도 거창하게 저질렀으니 그 분노가 분명 세상에 여파를 미칠 것이다.
바르간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했다. 어차피 포로들을 해방시키는 순간 프릭칸리스크가 추적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아예 박살을 내 버렸지.”
“화끈한 성격이군.”
“그런 것보다 내가 마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만 그 같잖은 확인을 끝내는 게 어떤가.”
바르간의 지적에 검은 머리의 남자는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로 앞에 있더라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수준의 옅은 마나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딱 걸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저주 마법이 걸려 있지 않음을 확인한 남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를 의심하는 건 아니네. 하지만 의심 많은 내 동료를 설득하기 위해선 증거가 필요했거든. 어찌 되었건 기분이 상했다면 다시 한번 사과하겠네.”
검은 머리의 남자는 봤냐면서 자신의 동료에게 바르간의 무고를 알린 뒤 제안했다.
“우린 서로 긴 대화가 필요할 것 같지만, 우선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일 듯하군. 사람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그의 말에 바르간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이들과 함께하는 게 이번 스테이지의 클리어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일 터였다.
그렇게 이동을 하기 전, 바르간은 먼저 검은 머리의 남성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우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군. 이거 실례했네.”
검은 머리의 남자는 날카로운 눈매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바르간에겐 아무리 봐도 익숙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인격이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
“나는 ‘슈겐하르츠’라고 하네. 마법사님의 13번째 제자이지.”
***
자신을 슈겐하르츠라고 소개한 남자에게 성(姓)은 없었다.
다시 말해, 가문이 슈겐하르츠가 아니고 이름이 슈겐하르츠라는 뜻.
아무래도 영광스러운 슈겐하르츠 가문의 뿌리인 모양이다.
외딴 동굴에 들어온 우리는 잠시 동안 이곳에 머물며 정비를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감옥에 오랜 시간 갇혀 있으며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한 인원이 많아 최소한의 물과 식량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굴의 입구에는 슈겐하르츠의 동료이자 마법사의 16번째 제자 라페즈가 결계를 쳤다.
작은 흔적이라도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솜씨가 제법 뛰어났다.
“넌 누군가?”
결계를 친 직후, 라페즈가 내게 한 말이었다.
바르간이라고 솔직하게 답할까 순간 고민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명을 댔다.
“오르가논이다.”
“마법은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지?”
“꽤 강압적이군. 내가 그것을 밝혀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건가?”
“당연하지. 나는 너를 신뢰할 수 없다. 마법사님이 새로운 제자를 들이셨다는 말 역시 듣지 못했어.”
“그야 당연하지. 나는 마법사라는 인물의 제자도 뭣도 아니니까.”
“낄낄. 그럼 사람의 형상을 한 마물이라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마법사님과 같이 스스로 마법을 개화했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건가?”
라페즈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의 퀭한 눈과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손질되지 않은 머리칼은 그의 인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나는 어깨만을 으쓱하며 대답을 보류했다. 그러고는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희가 마법사의 제자인지 뭔지 내가 그것을 어떻게 믿나. 이름이야 얼마든지 가명을 둘러댈 수 있는 것. 애초에 사람들을 구출한 나를 먼저 공격했던 것도 너희였지. 오히려 현 상황에서 추궁을 해야 할 인물은 나로 보인다만.”
나는 이들에게 이미 증거를 선보였다.
높은 확률로, 이들은 마법사인지 뭔지의 명을 따라 성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을 것.
하지만 그것을 이룬 것은 나이고, 성체마저 확실하게 부숴 버린 상황.
텃세를 부린다면 그들이 아닌 내가 부리는 게 올바르다.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날 선 대화를 주고받자 라페즈는 낮게 깔린 시선을 죽이지 않은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프릭칸리스크를 적대할 확률이 높지만, 그 정체는 알 수 없다라… 흥미롭군. 아주 흥미로워. 정말 마법사님 이외에도 스스로 마법을 개화한 자가 존재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미안하네. 이 친구가 원래 생각할 거리가 생기면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거든.”
자신을 슈겐하르츠라고 밝힌 남자가 다가왔다.
사람들에게 식량 배분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재미있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나도 함께해도 되겠나.”
“안 될 것은 없다만,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건가.”
“이제 막 식량을 제공한 참이니 숨 돌릴 정도의 여유는 있네. 프릭칸리스크 군세의 추격도 아직인 거 같고 말일세.”
슈겐하르츠.
영광스러운 가문의 시조이자. 저주 마법과 사역술을 처음으로 학문으로서 체계화시킨 인물.
그의 재능은 핏줄을 타고 쭉 내려와 바르간에까지 닿았다.
어떻게 되어 먹은 유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성도 극성 우성일 터이다.
그가 나를 보며 상냥하게 웃음 지었다.
슈겐하르츠가의 사람이… 아니, 슈겐하르츠가 저런 순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알고 있는 일가친척을 다 돌이켜 봐도 음흉한 자들이 짓는 겉치레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오르가논이라고 했나? 우리가 마법사님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자네 역시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음을 짐작할 수 있네.”
“…….”
나는 입을 다물고, 귀로 들으며, 머리를 굴렸다.
마법사의 제자를 사칭할까도 고민해 봤는데 몇 번째인지 하는 번호가 있으면 더욱 내 입장이 수상쩍어질 수 있다.
몇 명이나 제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규칙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안을 고려해야만 했고 이미 그 전철을 밟고 있는 중이다.
남은 건 이들에게 보여 줄 퍼포먼스의 충격을 높이기 위한 준비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니 너무 기분 나빠 하지 않았으면 하네.”
슈겐하르츠가 좋게 좋게 마무리하려는 낌새가 보이자, 나는 타이밍이 도래했음을 직감하고 넌지시 말했다.
“그렇게 내 존재가 의문인가?”
“의문이라기보단….”
“의문이지.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슈겐하르츠의 말을 끊어버린 라페즈는 가는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나는 관객인 이들을 위해서 한숨을 길게 쉬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리액션을 연기했다.
“그러니까 결국. 스스로 마법을 개화한 마법사와 같이 내가 무언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면 믿을 수 있겠군.”
내가 이번에 밀고 갈 역은 이들이 모시는 마법사와 같은 입장이다.
훗날 거의 신격화된 최초의 마법사.
그 정도가 할 수 있을 법한 ‘신비’를 보여 주면 되는 일이다.
나는 귀찮다는 듯 슈겐하르츠가 차고 있는 검 한 자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검으로 날 베어라.”
“뭐라고?”
“몇 번을 나눠도 좋다.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베고 또 베어서 아주 간 고기로 만들어도 이번만큼은 용서해 주겠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왜 그러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증명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나는 멋대로 슈겐하르츠가 차고 있는 칼을 꺼내 라페즈의 손에 쥐여 주었다. 라페즈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다.
라페즈가 정말로 검을 내려치려고 하는 것 같자 슈겐하르츠가 막아섰다.
“제정신이야? 청년이 죽고 말 거다!”
“낄낄.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것 같으니 응해 주자고. 슈겐하르츠. 자넨 우리에게 마법이 걸려 있지 않은지나 다시 확인해 주게.”
슈겐하르츠는 나와 라페즈의 눈치를 살피며 고민을 하는 듯했다. 그러곤 역시 안 되겠는지 고개를 저으며 검을 빼앗으려 하는데.
“라페즈—!”
—서걱!
검을 휘두른 라페즈.
아무런 마법을 걸치지 않은 나의 몸은 어깨부터 해서 대각선으로 잘려 나갔다.
라페즈는 이어서 화염 마법을 뿜어 내 몸을 소화시키려 했다.
“확인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이, 이게 무슨… 라페즈. 지금 자네가 무슨 짓을… 아, 아니 이게…!”
“……!”
눈이 회동그래진 두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장을 보고 있던 동굴 안의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얼어붙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분명히 반으로 자르고 불까지 지른 청년이 멀쩡한 육신으로 살아 있으니까.
“이제 증명이 되었나?”
되살아난 나는 뻐근해진 어깨를 움직이며 빙그레 웃음 지었다.
“아, 어쩌면 그 마법사라는 작자도 이런 건 못 할지도 모르겠군.”
이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이용한다.
설령 그것이 시련이 준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