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3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35화(235/350)
“이 정도까지 했으면 할 만큼 했다. 아니면… 설마 나를 마물로 몰고 갈 셈인가?”
부활한 나는 아직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슈겐하르츠는 몹시 당황한 것인지 사레에 들렸고 조금 시간이 지나 쿨럭임이 멈추자 손을 저으며 답했다.
“아니. 충분하네. 자네를 마물로 몰고 갈 염치가 어디에 있겠나. 정말로 실례했네.”
그는 만약 내가 마물이라면 진작에 자신과 라페즈를 살해했을 것이라며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라페즈 역시 한발 빼는 눈치였다.
아니… 그보다 저렇게 확장된 동공을 보면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의심이 많았던 만큼 그 여파 또한 더하리라.
“제, 제자…! 아니, 오르가논 님! 그건 무슨 마법인가요?!”
멀찍이서부터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아미와 자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필요한 만큼의 물과 음식을 섭취해서인지 처음 봤을 때보다 기운이 넘쳐 보였다.
“시끄러우니 가만히 있어라.”
“앗, 넵!”
나는 그 꼬맹이 둘의 입을 막아 버렸고. 슈겐하르츠는 라페즈에게 검을 돌려받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오르가논…. 자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군. 마법사님과 같은 존재라면 우리에게는 극진히….”
“모실 필요 없다. 존대도 쓸 필요 없다.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지 않는가.”
나는 턱짓으로 굳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선 저것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먼저 아닌가.”
“그건 그렇지…. 프릭칸리스크의 군세가 지속적으로 기습을 시도할 테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다. 다른 부가적인 건 그 과정 속에서 이루어져도 늦지 않아. 안 그런가?”
“자네 말이 맞네. …잠깐, 그 말은 자네가 우리를 돕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맞는가?”
아직 슈겐하르츠와 라페즈가 마법사의 제자임을 밝히지도 못한 상황.
그런데도 이야기가 술술 진행되려 하자 슈겐하르츠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고, 나는 선한 미소로 화답했다.
“궁지에 처한 사람들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선의가 아니라 이번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다.
***
그 이후.
우리는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슈겐하르츠는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펴서 보여 주었다.
‘예상은 했다만 역시 이곳은 훗날 뒤르테문드가 세워질 곳의 근방이군.’
좀처럼 거주지를 바꾸지 않는 십이신수인 프릭칸리스크의 성이나 주변의 기후를 가지고 추측은 했었다.
광활한 대륙의 북반구에 위치한 척박한 토지.
내가 알고 있던 시점과 비교했을 때 근처 도시나 마을의 개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하기야 마법이 퍼져 있지도 않고 기술력도 턱없이 부족할 테니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 더욱 힘든 환경일 터.
게다가 마물들의 취락과 성 따위가 다수 존재해 사실상 이 얼음의 토지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수호지’가 이곳이네. 직선으로 걸어도 족히 1달은 걸리는 곳이지.”
슈겐하르츠는 마법사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도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수호지란 마법사와 제자들이 마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구역으로 인간의 땅과 마물의 땅을 구분 짓는 단어였다.
가장 가까운 수호지라고 해도 현재 우리가 있는 동굴과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다.
“우리는 이 길을 그대로 갈 수 없어. 언제 마물들을 마주칠지도 고려해야 하고, 중간중간 식량의 보급도 필요하네. 무엇보다 수가 많아. 노인이나 어린이들도 있으니 그 속도를 생각하면 2달은 더 걸릴 걸세.”
다시 말해 3달이라는 시간이 예상되는 거리.
긴 여행길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번 스테이지는 다른 스테이지들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게 되겠군…. 시간이야 밖과는 다르니 상관없지만 체력은 주의해야 한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체력. 잠을 잔다고 해도 현저하게 늦다.
게다가 내 존재를 증명한답시고 한 번 죽어 또다시 체력이 잘려 나간 상황.
그 덕분에 이렇듯 수월하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었다만 분명히 리스크를 더 얹은 것은 맞다.
“여기까지가 현 상황이네. 그중에서도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추격하러 올 프릭칸리스크의 군세가 되겠군.”
먹잇감을 놓친 프릭칸리스크가 절대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분명 해당 사실을 알게 되면 맹추격을 시작할 것.
슈겐하르츠의 대략적인 상황 설명이 끝나자 나는 의문이었던 점을 물었다.
“‘수호지’에 도착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건가?”
“마법사님이 차원 이동하실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으니까. 그분께서 오신다면 설령 프릭칸리스크가 온다고 하더라도 물리칠 수 있네.”
“워프 마법인가….”
마법사라는 존재가 정말로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에리카와 같이 소수의 적합자들만이 할 수 있다는 마법 역시 쓸 수 있다니.
하기야, 그러니 제자들을 몰고 마물들을 지하에다 가둬 버릴 수 있었겠지.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 봤으면 한다.
“근데 그냥 싸우면 안 되는 거예요?”
돌연, 우리를 빤히 보고 있던 아미가 끼어들었다.
아미는 내가 프릭칸리스크의 성에서 보여 주었던 마법들을 무용담처럼 자랑스레 내뱉었다.
“그 정도로 강하신데 두려울 게 있나요? 나쁜 드래곤을 무찔러 버리죠!”
“오빠…. 얘기하시는데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
“자간. 오빠가 말하는데 끼어드는 거 아니… 악!”
“너나 끼어들지 말아라.”
나는 분수를 모르는 꼬마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반면 슈겐하르츠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아이의 기가 죽지 않도록 설명해 주었다.
“하하.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왜요…? 여기에 계신 분들은 모두 강하신 게 아닌가요?”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는 고민하던 것치고는 아주 쉽게 설명을 이어 갔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는데.
십이신수 중에서 이름의 뒤에 ‘리스크’라는 게 붙은 개체들은 다른 십이신수보다 성가시고 강력하다.
즉, 리스크가 붙어 있는 프릭칸리스크는 내가 최정상급 주교 한과 에리카와 합심해서 쓰러트린 세이만보다 더한 놈이라는 거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기피하는 걸 보면 던전에서 보았던 세이만은 강화된 게 아니었던 것 같군.’
아직 마법이 정돈되지 못하고 투박하다고는 해도 슈겐하르츠와 라페즈는 둘 다 최정상급 주교에 비견되는 강자들.
프릭칸리스크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맥락이다.
…근데 잘 생각해 보면 선조들에 비해 십이신수들이 얼마나 약화했는지 체감이 된다.
만약 그들이 힘이 온전하게 이어졌더라면 이야기는 원작과 상당히 달랐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회의가 쭉 이어지고.
어느덧 끝나 갈 무렵이 되자.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험난한 길이 예상되는군.”
“슈겐하르츠.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다.”
나는 슈겐하르츠, 바르간의 오랜 선조에게 먼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내밀었다.
그는 궁금하다는 듯 눈썹을 아치형으로 올렸고 나는 이어서 말했다.
“우리 마법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는 게 어떤가?”
확언하지. 그가 이 제안을 거절할 리 없다고.
***
초대 슈겐하르츠는 천재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흔히들 ‘그렇다더라’라는 식의 낭설에 불과한 말이었다.
그리고 현재… 아니, 과거인가?
아무튼, 나는 그를 직접 보았고 부족한 성취임에도 내 저주 마법을 푼 것 역시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다.
그는 천재가 맞다.
굴레마시아 정도의 재능, 다르게 말하면 저주 마법을 주로 쓰는 굴레마시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지 않고서야 배기겠는가.
나와 한 차례 격돌한 그 역시 내가 저주 마법의 사용자이며 발전된 형태를 쓰고 있음을 알았다.
때문에 지식을 공유하자는 내 제안은 그에게 있어서도 환영할 만한 것이었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번 스테이지는 나와 그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
환상 속에서라도 선조의 도움을 받아 고유술식을 완성하라고 말이다.
“이럴 수가. 식을 이런 식으로 응용하다니…! 오르가논 자넨 정말 천재로구만!”
슈겐하르츠가 나를 칭찬했다.
내가 형성하는 저주 마법의 식을 보여 주자 놀람을 금치 못하며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천재인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의 연구가 빚어낸 결과물이지만. 멋대로 오해하게 두어야지.’
시대가 지날수록 기술은 발전한다.
마법도 마찬가지다.
슈겐하르츠가 학문으로서 정립한 저주 마법과 사역술 역시.
여러 세대를 통해 다져졌고, 획기적인 변화를 겪었다.
아무리 슈겐하르츠의 재능이 뛰어났어도 내가 그의 저주 마법을 손쉽게 풀어 버린 것처럼. 우리에게는 ‘세월’이라는 차이가 존재했다.
그가 나를 천재로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그의 시선으로 보자면 처음 조선에서 미국으로 파견된 보빙사가 된 기분일 것.
생전 보지 못했던 정보를 자극으로써 뇌에 담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자네와 같은 천재를 지금이라도 만나서 천만다행이네. 덕분에 막혀 있던 게 확 뚫린 기분일세!”
“…그건 잘됐군.”
나는 기세에 밀린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감정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너보다 더 놀란 건 나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사고란 말인가.’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 역시 슈겐하르츠 못지않게 감탄했다.
그는 애초에 술식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나 역시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혁신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었다고 자부하지만, 그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3차원으로 사물을 보고 있다면 4차원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
그동안 쌓아 온 내 학문에 대한 깊이가 그로 인해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직 저주 마법만 개념이 존재한다는 게 아쉽군. 사역술도 연구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시기적으로 사역술은 아직 개념조차 나오지 못했다.
학문의 기틀이 잡혀 있는 저주 마법이면 몰라도 0에서부터는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
그렇게, 나와 슈겐하르츠는 무리를 이끌고 이동하면서 틈틈이 학문의 교류를 이어 갔다.
하루… 이틀… 여드레….
걸음을 옮김에 따라 밤낮도 연이어 바뀌었다.
추위와 험난한 여정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들도 발생했다.
주로 병에 걸려 있던 이들이나 나이 먹은 노인과 같은 약자들이었다.
아직까지 마물 떼를 목격하지는 못했다.
간간이 떠돌이 마물들을 조우하기는 했으나 우리의 수를 보고는 도망치는 겁쟁이들이거나, 무리에서 버려진 낙오자들이라 문제 될 게 없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야겠군. 바람을 피할 천막을 치도록 하지.”
밤의 어둠이 세상을 감싸기 전에는 반드시 이동을 멈추고 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천막이나 식량 등은 한번 발견하면 라페즈가 발명한 마도구 안에 보관이 가능했다.
이런 고대에 4차원 주머니 역할을 하는 도구를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라페즈 역시 다른 분야로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는 방증이었다.
지지대를 바닥에 꽂고 그 위에 마물이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을 펼쳐 덮었다.
제법 그럴싸한 외관. 색까지 주변에 맞게 칠해 두어 멀리서 봤을 때 티도 잘 안 났다.
‘어둑이와 카멜레만 있었다면 보다 편안한 숙소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에리카와 던전으로 향했을 때 사용했던 이중융합.
사역마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며 원시적인 방법으로 밤을 보내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르가논 님…!”
나와 같은 천막을 쓰게 된 아미와 자간.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여동생인 자간이 내 곁에서 난리다.
“뭐냐.”
“그…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저와 제 오빠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필요 없다.”
“아, 네에….”
말을 쳐내 버리자 시무룩해진 자간.
이왕 풀이 죽었으면 저기 구석에나 박혀 있으면 좋겠는데 왜 내 옆에서 벗어나질 않는지 모르겠다.
전부터… 정확히는 알리시아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루비드 마을에서부터 느낀 건데 이상하게 주변에 애들이 꼬이는 것 같다.
살갑게 대하지도 않건만 대체 왜지?
“오르가논 님! 혹시 자간 못 보셨… 아! 자간! 여기에 있었구나! 혼자 치사하게!”
천막의 밖에서부터 빼꼼 얼굴을 내민 아미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자간을 보더니 툴툴거리며 다가와 앉았다.
그러더니 아예 둘이서 투닥거리길 시작했는데, 내가 깊게 한숨을 쉬자 쥐 숨듯 멎었다.
“어? 어디 가시나요?”
내가 인상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미가 물었다.
대꾸를 해 주지 말까 고민하다가 그러면 귀찮게 따라올 것 같아 친히 해 주었다.
“다물고 잠이나 자라. 따라오면 발로 걷어차 버릴 것이다.”
“네? 하지만….”
후—.
나는 천막 안의 촛불을 꺼 버렸다.
그제야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아미와 자간은 모포를 덮으며 자리에 누웠다.
“오르가논 님. 저희… 마법사님을 뵙게 되면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하려고 해요.”
그 말이 들린 건 내가 천막을 빠져나가기 위해 입구의 천을 거둔 순간이었다.
아미는 아쉽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원래는 오르가논 님의 제자가 되고 싶었지만 절대로 제자는 안 받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마음대로 해라.”
“안 서운하세요? 이유는 안 궁금하시고요?”
“내가? 왜?”
“…그러실 거 같긴 했는데.”
아미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마법사님의 제자가 되면 저희도 오르가논 님이나 다른 분들처럼 나쁜 마물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죠?”
“지금은 너무 약하고 어리지만요….”
아미의 물음에 자간이 덧붙였다.
“…….”
“오르가논 님?”
“잠이나 자라. 혹시라도 기다리지 말고.”
나는 두 꼬마의 말을 무시한 채 밖으로 나와 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여기가 정말 과거를 그대로 본떠서 만든 환상인지 아닌지 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저 꼬마들은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닌, 학살을 장난거리로 치부하는 여신교의 대주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아직도 대주교 자간의 목을 벴던 순간의 감촉과, 대주교 아미를 봤을 때의 감각이 생생하다.
지금 저 꼬마들이 품고 있는 게 진의라고 하더라도.
현재와 너무나도 상이한 미래의 모습.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몇 걸음을 옮기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부터 내가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낄낄. 역시 대단하군. 들키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심스레 마나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개소리도 그 정도 하니 그럴싸하게 들리는구나. 용건이 뭐냐. 라페즈.”
라페즈.
슈겐하르츠의 동료이자 마법사의 16번째 제자.
“용건…? 큭. 글쎄…. 뭘 거 같나.”
입가에 불길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명백히 적의를 가지고 마나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