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3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36화(236/350)
“라페즈. 지나친 궁금증은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바르간은 살기를 띤 채 마나를 움직이는 라페즈에게 경고했다.
그가 어째서 지금과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낄낄낄.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야. 의문을 품지 않고 생각을 멈춘다면 그것은 한낱 짐승과 다를 바 없지.”
“그래서…. 나를 다시 한번 죽여 경과를 비교하고 싶다… 이 말인가?”
“네가 우리에게 보였던 게 정말로 부활이었는지 아닌지. 그렇다면 제한은 없는지, 후유증은 없는 건지. 혹은… ‘제한’은 없는 건지 알고 싶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알아보려면 실험을 하는 수밖엔 없지.”
라페즈의 발언에 바르간은 눈쌀을 찌푸리는 대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것을 허락할 거라고 보는 건가?”
“되도록 협력해 줬으면 하지만…. 그럴 마음은 없어 보이는군.”
“원한다면 해도 된다. 다만, 내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하는군.”
“흠…. 역시 그렇게 나오는 건가.”
“내 부활을 확인하는 게 빠를지, 네 몸이 타오르는 게 빠를지 실험해 보자꾸나.”
“…낄낄. 그건 곤란하지.”
바르간의 경고에 라페즈는 마력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는 현시점에서 목숨을 걸어서까지 부활의 실험을 하고 싶지는 않고, 이미 확인하고 싶었던 것 하나는 봤으니 우선 이 정도로 만족하겠다고 했다.
이에 바르간 역시 마력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
“네 마력은 마법사님과 닮아 있다. 그 투명하고 압중한 압력이 말이다.”
“그게 어떻다는 거냐.”
“마법을 개화한 자들만 쓸 수 있는 특별한 마나라는 건가? 알 수 없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투성이야. 큭. 그래서 재미있지만.”
라페즈는 초월에 오른 바르간의 마나 총량을 언급했다.
상정은 했던 일이지만 최초의 마법사의 마나 총량은 이미 초월에 들어서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라페즈… 아니, 이 시기는 초월에 오른 마나 총량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것 같군.’
바르간은 가만히 라페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열흘 정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연이지만 세상 만물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라페즈의 탐구심이 독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만드는 마도구들도 그렇고 배경지식도 그렇고 이 시대의 것으로는 여기기 힘들 정도로 깊고 다채로웠다.
그런 라페즈조차 마법사와 닮아 있다고 할 뿐 정확한 개념을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졸지에 내가 최초의 마법사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가 되었군. 뭐, 나로선 잘된 일이지.’
멋대로 오해하는 거야 환영할 일이다.
정체를 제대로 밝히는 게 더 설명하기 난해하니까.
“부활… 알 수 없는 마력…. 그 힘의 원천은 우리와 다른 건가? 어째서? 최초의 발생지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라페즈. 쓸데 없는 혼잣말만을 이어 가겠다면 나는 이만 물러나겠다.”
라페즈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것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여러 가설을 세우고 스스로 근거와 논리를 넣어 파기하고 또다시 새로운 가설을 세우기를 반복했다.
바르간은 대화가 끝났다고 보았고 이만 물러나러 몸을 틀었다.
그러자, 라페즈는 덥썩 바르간을 붙잡더니 퀭한 눈으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자 바르간은 인상을 구기며 불쾌함을 표했다. 라페즈의 손을 뿌리친 뒤 물러나려고 했다.
그런데.
“‘신’의 존재를 믿나?”
라페즈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뱉었다.
바르간은 자신을 잡고 있는 손만을 뿌리친 채 눈매를 가늘게 했다. 겨우 그의 발언에서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요소를 찾았다.
중얼거림을 멈춘 라페즈는 똑바로 바르간을 바라본 채 말했다. 바르간이 관심을 보이는 것 같자 혼잣말은 대화가 되었다.
“마법사님… 우리에게 마력을 나눠 주신 스승님. 그분을 ‘신’으로 여기는 자들이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신….”
“그래, 나 역시도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어. ‘그녀’의 제자가 되려고 생각했던 것도 마법이라는 신비를 독점하고 있던 그녀가 정말로 신일 수 있겠다고 여겼기 때문이지.”
별다른 기술이랄 것도 없는 세상에 마왕이 십이신수를 몰고 나타났다.
인류가 빠른 속도로 멸망의 길을 걷는 건 피할 수 없었고, 국가와 도시들은 무참하게 부서졌으며 사람들은 벌레가 밟히듯 죽어 나갔다.
그런 세상에 최초이자 유일한 구원자로서 나타난 여인.
세상은 그녀를 마법사라고 불렀고, 나아가 신이라고 여겼다.
라페즈는 그 배경을 이야기하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제자가 된 나는 그녀가 신이 아니라고 판단 내렸다.”
“이유가 있나?”
“그녀가……. 전지전능해야 하실 마법사님께서… ‘필사적’으로 마물들과 싸우고 계셨기 때문이지.”
“…….”
“신의 개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치를 벗어난 존재, ‘신’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 마물도, 십이신수도, 마왕도. 그 어떤 피조물도 그녀가 애를 쓰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그렇지 않은가? 피조물과 전력으로 싸우는 게 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라페즈는 애초에 마법사가 제자를 거두고 수를 늘리는 이유 또한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바르간은 반론을 제기했다.
“그 마왕이라는 자 역시 신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법사가 애를 먹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아니, 그래서는 안 돼. 그건 신이 아니야. 창조주는 세상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어야 해. 만약 여럿이 존재한다면 그건 신이 아니라 신을 닮은 또 다른 피조물일 뿐이지.”
광활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한 라페즈는 잠시 눈을 감은 채 낄낄거리며 웃었고 바르간을 가리켰다.
“네 존재가 한 번 더 그녀를 절대자에서 끌어내린 셈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내게 꺼낸 저의가 뭐냐.”
“이유…? 이유… 이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관자놀이를 누르던 라페즈.
혼자서 뭔가를 떠올렸는지 또다시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시기가 지나치게 적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나?”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말해라.”
“최초로 마력을 가진 존재들…. 마왕과 그 세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종에게도 마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나 상대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이 세계가… 마치 ‘다음 장’으로 넘어간 것 같이.”
라페즈는 지금보다 먼 과거를 언급했다.
마왕도, 마법사도 없던 시절. 지금은 구전이나 기록으로서만 접할 수 있는 때.
“알고 있나? 당시 인간들은 지금보다 다양한 국가로, 부족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기 바빴다지. 피부색으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원수 보듯이 하며 전쟁이 지금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빈번했다고 하더군.”
“적대해야 할 대상. 마물이 없었으니 당연히 그랬겠지.”
“낄낄. 이해가 빠르군. 맞아. 아이러니하게도 외부 세력인 마왕이 나타나고, 인간은 하나로 뭉쳤지. 비록 여전히 여러 국가나 집단으로 나눠져 있기는 하지만 칼 끝이 서로를 향하는 일은 극단적으로 줄었어.”
라페즈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많은 별이 원 없이 빛나고 있는 밤하늘.
그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세계를 살피며 말했다.
“마치 다음 장으로 넘어간 것 같지 않은가.”
그는 읊조렸다.
인간들만의 싸움이 판치던 세상에서.
마법이라는 개념이 추가되고 전쟁은 인간과 마물들의 판세로 바뀐 이 세상이.
“과거의 역사는 잊고. 더 자극적이고, 더 화려하게. 더 방대한 전투를 치르라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
“나는 세상의 모든 작용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어떻게 구름이 존재하고, 강물이 흘러가며, 우리가 숨을 쉬고 이 땅에 살아 있는지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된 작용에 의해서라고.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인과관계, 존재 의의가 있겠지. 신이 우리를 만든 원천적인 이유가….”
“…….”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마법사님이나 마왕, 그리고 너는 아니다. 그렇다면 신은 어디에 있나?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며, 뭘 하고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라페즈가 몸을 돌려 바르간을 바라봤다.
그의 입에는 초승달보다 얇고 긴 호가 걸려 있었고.
진리를 추구하는 눈은 피부를 뚫을 것처럼 날카로우나 확장되어 있었다.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
“오르가논. 나는 그 답이 ‘재미’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재미…?”
“유흥거리. 오락거리라고 말해도 좋겠군. 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아. 적들을 멸하지 않아. 그에게 있어 인간과 마물은 동등하지. 그야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않으니까. 단지 우리가 싸우는 걸 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
“또한 싸움의 규모가 커질수록, 화려해질수록 보는 맛이 있겠지.”
“인간만의 전쟁에 지겨워진 신이 새롭게 판을 짠 게 마법의 출현이라는 거냐.”
“오오, 정말로 내 뜻을 이해하는 모양이군. 다들 이런 말을 하면 무시하거나 가벼이 여겼는데 말이야.”
라페즈는 처음으로 이해자를 만났다며 낄낄거렸다.
“마법의 출현…. 그것으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장으로 바뀌고 있다. 신의 유희를 위해서 말이야.”
그는 말했다.
그저, 수없이 많은 갈래로 나눠지는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 대화 역시. 신의 유희를 위한 몇 줄의 대사일지도 모르겠군.”
“…흥미로운 생각이긴 하군.”
바르간은 어깨를 으쓱했다. 라페즈는 바르간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고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를 입에 담았다.
“마법사님은 이런 얘기를 하면 버럭 화를 내곤 하셨지. 한데, 너는 다르군. 네 존재를 신이 아닌 유희를 위한 피조물로 여기는데 기분 나쁘지 않은 건가?”
“왜 화를 내겠나.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고, 공감되는 부분도 있는데 말이다.”
“…….”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바르간. 라페즈는 가늘게 하던 눈을 도로 돌린 채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 바르간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너는 마법사님과는 다른 의미로 알 수 없는 자로군. 정말로 마물이 아닌 건가?”
“아직도 그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지겨운 녀석이군.”
“너무 미워하지 마.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낄낄낄.”
실컷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 댄 라페즈는 이만 시간이 되었으니 불침번을 맡으러 가겠다고 했다.
바르간 역시 그와의 대화에서 많은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여기고 그를 막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아도 괜찮겠나?”
바르간이 천막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려 하자 라페즈가 한 말이었다.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수련인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군.”
요 10일이라는 기간 동안 바르간의 수련을 지켜봤던 라페즈의 솔직한 감상이다.
바르간은 별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대꾸한 채 걸음을 옮겼다.
라페즈 역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슈겐하르츠의 휴식을 위해 멀어졌다.
***
막사와 조금 떨어진 곳.
달빛이 잘 받는 바위 위에 가부좌를 튼 채 앉은 바르간.
시련의 세계에서 이렇듯 수련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슈겐하르츠와 함께하는 동안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발전된 이론을 감당하려면 이를 체화해야 한다.’
심호흡을 쉬며 정신을 가다듬은 그.
맥박 수와 호흡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집중의 자세가 갖춰지자 마력을 움직였다.
고오오—.
아지랑이 같은 마나가 겉으로 드러나며 그의 주변을 배회했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리본과도 같이, 유려한 곡선을 띠는 초월에 이른 마나.
그것은 안정적이면서도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