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4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43화(243/350)
『네가 바르간인가?』
비프론스가 물었다.
바르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주변을 살폈다. 죽어 버린 용사는 두 명. 한 명은 미라처럼 비쩍 말라 있고 다른 한 명은 전신이 타 버렸다.
둘 다 사용하는 무기가 근접인 것으로 보아 트리센나와 함께 비프론스를 상대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바르간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학생이 바르간임을 확신한 비프론스는 입꼬리를 내리지 못한 채 말했다.
『마나 총량이 초월에 이른 인간. 자간의 목을 내려친 인간. 살레오스에게 혼란을 선사한 인간. 블뤼란스와 호각의 전투를 벌인 인간.』
비프론스는 바르간의 행적을 읊으며 ‘바르간’의 이름이 여신교 사이에서 빈번히 오르내리고 있다고 했다.
자신 역시 만나 볼 의향은 있었으나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고.
“…….”
바르간은 주변의 탐사가 끝났는지 드디어 비프론스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대주교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두려움이나 망설임을 담고 있지 않았다.
비프론스는 그 당당하고 오만한 모습에 흥미가 돋았다.
저렇게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녀석일수록 부수는 맛이 있다.
한 마리의 백조처럼 굴던 인간이 꼼짝없이 붙잡히게 되어.
비명을 지르고.
살려 달라 애원하고.
눈물과 콧물, 오줌을 질질 싸는 걸 보는 건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라는 존재는 신인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기꺼이 몸을 내어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옳게 된 일이고 바꿀 수 없는 진리다.
바르간의 표정이 공포심에 일그러지는 것을 상상한 비프론스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예사롭지 않은 보랏빛의 마나가 일렁였다.
‘위, 위험해…! 저 학생이 죽고 말 거야!’
트리센나는 그 변화를 알아차렸고 황급히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었다.
한 단어를 뱉을 때마다 폐를 꽉 짓누르는 듯한 괴로움이 있었으나 무고한 학생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도망쳐! 비프론스는 너를……!”
직접 마나를 움직여 고속으로 전달한 음성.
비프론스는 차마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전광석화와도 같이 몸을 날렸고 물을 조종하는 ‘두 번째 손’으로 바르간을 꿰뚫었다.
광기에 저린 미소를 짓던 비프론스.
그러나 곧 손에 닿은 감각이 사람의 가죽과 뼈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검은 연기…?’
응축되어 있던 매연이 퍼지듯 터져 나간 바르간.
검은색의 연기는 그대로 비프론스를 지나 트리센나의 앞으로 모이더니 바르간의 모습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환각인가? 아니. 조금 달라. 환각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런 마나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어.’
마법 술식과 마나의 반응이 있었더라면 자신이 모를 리 없다고 여긴 트리센나. 방금 바르간이 보인 현상에 기이함을 느꼈다.
바르간은 다소 굳어 있는 트리센나에게 말했다.
“트리센나 님. 곧 이곳으로 네 마리의 주교가 더 올 겁니다.”
“뭐…?”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원군인 것인지. 복병인 것인지.
거대한 마나 총량에 이끌린 주교들이 꿀에 환장한 벌처럼 달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바르간은 간결하고 정확하게 ‘지시’내렸다.
“가서 그 주교들이나 잡으십시오.”
“…어?”
“당신이 용사랭킹 7위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제2 고유술식을 제외하고는 공격 면에서 약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신 겁니까?”
바르간은 한심하다는 듯 푹 한숨을 쉬었다.
10위 안에 드는 용사에게 당당하게 무례를 저지른 그. 차라리 욕설을 퍼붓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말을 연이어 내뱉었다.
“여기 있으면 괜히 방해만 되니까 꺼지라고 한 겁니다.”
“…….”
“어서 움직이시지요.”
트리센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마나 총량이 초월에 이르렀다고는 해도 그는 아직 학생.
자신은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현역, 그것도 7위의 성적을 이뤄 낸 용사다.
대주교를 상대할 수 있는 소수의 인간. 바르간은 그것을 알면서도 가볍게 무시하고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컥!”
얼토당토않는 말을 듣자 트리센나는 저도 모르게 마나의 공급을 줄인 채 말을 뱉어 버렸다.
그러자, 산소가 부족한 폐는 더욱 꽉 조이는 듯 고통을 선사했다.
트리센나는 호흡을 진정시킨 뒤 괴로움에 잔뜩 찌푸려진 인상으로 바르간을 올려다봤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단순히 강한 척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주교의 힘을 연기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풍부한 마나가 끊임없이 산소를 주입하는 건가?’
그렇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방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는 데서 지나지 않고 그 공급을 진행하는 게 능숙하다는 말이니까.
마치 ‘숨을 쉬지 못하는 환경’에서 오랜 기간을 지내 온 것처럼 말이다.
“…….”
너무나 자연스럽고 담담한 표정의 바르간.
그는 몸을 돌려 등을 보인 채 말했다.
“제게 버프 마법을 거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1,000명이 넘는 용사들의 힘을 증폭시키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교 넷을 상대하시려면 조금이라도 마나를 아껴야겠죠.”
트리센나는 바르간이 장난 따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대주교와 홀로 싸우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버프 마법도 걸지 말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
그녀의 용사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케이스다.
그때.
우응, 우응—.
우연히도 트리센나의 눈에 들어온 지팡이. 바르간의 곁을 날아다니는 푸른 보석의 무기를 보게 되자 트리센나의 동공이 절로 확대되었다.
‘제정신이 아니야…. 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이 저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거야…!’
마치 지팡이가 바르간에게 기생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벌써 모든 마력이 빨려 죽어 버리고 말았을 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상당히 고될 텐데도, 이 학생은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바르간은 작게 읊조렸다.
“이젠 떠들 시간이 없을 것 같군요.”
정말 그의 말대로였다.
『무시당했어. 무시…. 무시…. 한낱 인간 따위가 신인 나를…. 한낱 인간 따위가. 벌을 줘야 해. 벌을… 벌을….』
비프론스의 입이 괴이하게 달싹거리며 중얼거렸다.
안면의 자잘한 근육 하나하나 살아 있는 벌레와 같이 꿈틀거렸다.
녀석의 네 개의 팔은 잔뜩 달아오른 근육으로 한껏 부풀어졌고.
장신의 체구를 지탱하고 있는 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의 다리같이 커다란 근육은 단순히 크기뿐만 아니라 그 안에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근력을 드러냈다.
『벌을 줘야 해… 벌… 벌….』
같은 말을 반복하던 비프론스는 문뜩 말을 멈추다가 고개를 올리며 쭉 찢어진 미소를 지었다.
『신벌(神罰)을…!』
쿠구구궁—!
돌연, 비프론스와 바르간이 발을 딛고 있던 지면이 하늘로 솟구쳤다.
불과 몇 걸음 차이로 인해 트리센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같은 타이밍에 주교들이 들이닥치는 걸 봤으니 재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감히 신을 무시하다니. 너는 벌을 받을 필요가 있다.』
비프론스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작은 산 하나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아래에 있던 용사들을 비롯한 알티프 역시 피해를 입었음에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바르간이 조금 전까지 있던 산의 높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개체가 이끌어 낸 힘이라고 보기에는 상식선에서 벗어났다.
“뭐… 이것으로 대주교의 축에 낀다는 건 증명한 셈이구나.”
공기, 물, 불, 흙.
4대 원소를 관장하는 대주교 비프론스.
신체 능력도 상당히 발달되어 있으며, 눈은 우주를 담고 있어 현상이나 상대의 정보 따위를 수학식으로서 볼 수 있다.
원소를 다루는 그 몸은 신의 것에 가까우며.
진리를 담은 그 눈은 허상을 꿰뚫는다.
바르간은 그런 존재를 향해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래서야 고작 화려할 뿐이 아닌가.”
그러자, 왜곡된 흥분의 미소를 짓던 비프론스는.
『걱정하지 마라.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쿠우웅—!
거대한 압력으로 대기를 누른다.
마치 중력이 100배 이상이 된 것처럼.
비프론스를 제외한 해당 공간의 모든 것들을 압중한 공기의 질량으로 짓눌렸다.
날카롭게 솟아 있던 산의 정상이 깎여진 나무 밑동처럼 평평해질 정도.
정상 위에 있던 모든 나무나 생물들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전부 터져 나가 얇은 천과 같이 되고 있었다.
『카하하하—!』
비프론스는 산을 짓누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변의 모든 수분을 빨아들였다.
푸르렀던 나뭇잎들은 바싹 말라 타 버린 것처럼 변하고, 생물들도 말린 고기가 되어 버리며, 흙 역시 머금고 있던 모든 물기를 빼앗겨 죽어 버린다.
권능해방을 한 대주교의 힘.
그것은 지형 하나를 간단히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전능한 것이었다.
비프론스가 작업을 끝마치자 드디어 요동치던 세상이 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전투를 위해 직접 마련한 무대.
마치 윗부분을 절삭한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이곳. 죽어 버린 단단한 흙무더기 위에서 비프론스는 자신의 상대를 찾아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초월에 이른 마나 총량. 녀석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 짓눌려서 죽어 버린 건가? 아니면 모든 수분을 빨려서?’
그러나,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뭉게뭉게 모이는 검은 연기.
그것은 다시금 바르간을 만들었고.
비프론스는 길게 미소 지으며 성큼 달려들었다.
『그래, 그래야지…!』
철조차 가볍게 벨 수압의 물.
그 무시무시한 힘을 손에 감싼 채 바르간의 심장을 향해 꽂았다.
퍼엉—!
하지만, 이번에도 바르간은 검은 안개로 터져 나가기만 할 뿐 손에 육체를 꿰뚫었다는 감각은 없다.
비프론스는 재빠르게 눈의 힘을 사용해 나타난 수식을 읽으려 했다.
세상 만물은 수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것만 파악하면 미리 알고 차단하는 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수식이 떠오르지 않아.’
바르간의 검은 연기는 식이 떠오르지 않았다.
식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은 실체가 없는 것.
즉, 허상이라는 뜻.
‘이상하군. 분명 저주 마법은 발동한 적이 없었는데….’
실체가 없는 마법은 식으로 표출되지 않으나, 비프론스는 대주교인 만큼 뛰어난 감각 역시 가지고 있었다.
마법이 발동했다면 진즉에 알아차렸을 것이고 깨트렸을 터이다.
하지만… 녀석은….
퍼엉—!
퍼엉—!
비프론스의 공격을 흘려 낸 검은 연기는 빠르게 위치를 이동해 가며 새로운 바르간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두 번째 손으로 박살 내면, 그 옆으로.
세 번째 주먹으로 파괴시키면, 또 그 뒤로 뭉쳐지는 검은 연기.
그때마다 비프론스는 맹렬하게 쫓으며 네 손에 담긴 원소의 힘을 최대치로 두른 채 공격을 이었다.
하나하나가 제대로 맞게 되면 바로 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 팔이 스쳐 지나가는 곳은 대기가 얼얼하게 진동한다.
이와 함께 공기와 지면의 흙도 함께 다루면서 검은 안개만 보이면 찢어 놓기를 반복한다.
‘이상하군…. 이상해. 검은 연기로 인해 만들어지는 건 분명 허상이 아닌 실체다.’
비프론스는 공격을 이으며 생각했다.
허상이 아닌 몸은 분명한 수식을 갖추고 있으며 실제 인간임을 드러냈다.
즉, 그가 연이어 때려 부수고 있는 건 바르간이 맞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바르간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퍼엉—!
퍼엉—!
비프론스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저주 마법을 걸었던 이들을 빠르게 회상했다.
그들의 특징.
그들이 가장 겁냈던 것이 뭔가.
어쩔 수 없이, 저주를 사용하는 이라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
그리고, 오랫동안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데이터를 갖추고 있던 비프론스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덥썩—.
아무런 원소도 두르지 않은 손으로 바르간을 팔목을 잡아챘다.
『드디어 잡았다.』
저주 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바로, 신체를 직접 맞대는 것.
피부가 맞다면 그가 거는 저주 마법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저항할 수 있고, 이어서 파괴할 수 있다.
어떤 저주를, 어떻게 걸었는지는 몰라도 이렇듯 잡아채면 끝장이다.
비프론스는 바르간을 잡은 채, 반대편에 위치한 양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아무런 원소도 두르지 않은 양 손날.
이미 피부를 맞댔기에 원소를 두르든 두르지 않든 상관없지만, 성가시게 한 만큼 비프론스는 고기를 때려 부수는 그 감각을 직접 느끼고 싶었다.
쿠확—!
비프론스에게 있어 기분 좋은 하모니를 선사하는 피육이 터져 나가는 소리.
진득한 피를 묻힌 채 딱딱한 뼈를 아스러트릴 때의 쾌감, 그리고 말랑한 장기를 그대로 터트릴 때의 감각이 특히나 환상적이다.
『역시 맨손으로 부술 때가 제일 감미로워.』
비프론스는 눈앞의 현상에 주목했다.
바르간의 상반신이 터져 나갔다.
대주교의 괴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박살 난 인간의 연약한 육체.
홀로 남은 하반신은 그대로 철푸덕 하고 쓰러져 피를 토해 냈다.
비프론스는 혹시 몰라 특별한 자신의 눈으로 수식을 살폈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껏 무대까지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즐기지 못했다.
『기대 이하였군. 하긴, 미물이 어찌 신의 힘을 견디겠냐만.』
몸을 돌린 비프론스.
몇 걸음 걸어가며 다음 먹잇감을 내려다볼 심산이었다.
『아까 전의 용사는 제법 버텼었지…. 주교 정도로 죽을 것 같지는 않으니 지금쯤 가면 아직 팔팔할 때….』
—꾸드득, 딱다닥.
비프론스의 귀에 잡음이 들렸다.
마치 뼈의 연골이 돌아갈 때 나는 소리.
비프론스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도저히 인간의 몸이라고는 믿기 힘든 현상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쓰러져 있던 하반신은 언제부터인지 일어서 있다.
피가 들러붙어 있는 척추가 길게 내뻗어진 채 꼿꼿이 세워져 있다.
달그락, 따다닥.
마치 나무의 잔 줄기가 뻗어나듯 뼈가 자라난다.
그 사이사이로 붉은 살점이 달라붙기 시작하더니 터져 나간 바르간의 육신을 복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