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4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47화(247/350)
미치광이 과학자 추기경 제파르.
그가 라페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린 것은 특유의 웃음소리와 독특한 사고의 탓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에.
이 소설 속에서 그렇게 호기심이 방대하고 별난 상상을 하는 녀석은 그 녀석이 유일했다.
원작에서도 추기경으로 나와 이런저런 혼잣말을 궁시렁거리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쓸데없는 소리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꽤 중요한 정보들도 있었지.’
아무튼, 제파르는 거나하게 판을 벌이는 것에 비교해서 자신의 정체는 꽁꽁 숨기기로 유명한데.
실제로 지금 시점에서도 제파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여신교의 신도들을 포함해도 말이다.
따라서 만약 내가 시련 속에서 보았던 라페즈의 모습 그대로라면.
혹은 내 뇌 속에 존재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외관을 짜깁기한 가상이 아니라면.
나는 유일하게 제파르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다.
물론… 그 괴짜 녀석이 이런저런 짓거리를 했으리라 예상되지만….
‘제파르. 훗날 낯짝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 나를 귀찮게 한 대가는 제대로 치르게 해 주겠다.’
제파르 때문에 계획을 수정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이번만 해도 이야기할 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의깊게 보아야 할 건 붉은 오러로 만든 ‘장막’.
갑자기 전장에 나타나 선을 그어 버린 그 현상 때문에 용사들의 발이 묶였다.
아직 정확히 어떤 구조이며 어떻게 유지 중인지 따위는 밝혀진 게 없는데.
확실한 건 붉은 오러를 활용한 장막이며 알티프만이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인공정령 부대는 용사들의 주위를 분산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결국 막을 통과하지는 못한 채 과반 이상이 죽음을 맞이했고, 일부는 포획되었다.
정령술사인 페랑기스의 주도하에 인공정령들이 조사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가시적인 결과를 보이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현시점에 필요한 건 시간.’
붉은 장막은 가미긴의 둥지 위치를 더욱 정확하게 짚어 주었지만 절대 방어를 자랑했다.
같은 붉은 오러며 헤일리온의 고유술식까지 사용했음에도 깨부수는 데 실패.
교회도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기에 필요한 용사들을 전장에 배치한 채, 학생들과 각종 국가와 가문들의 지원병들은 우선 돌려보내게 되었다.
군대를 오랫동안 주둔시키기 위해서는 돈과 물자, 식량이 막대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략적 냉전.
조약이건 뭐건 하는 것도 없이 일방적인 냉전이긴 하지만 대략적인 형태는 비슷했다.
‘알리시아는 그 뒤로 물리적 치료와, 정신적 치료를 동시에 받고 있고…. 살레오스와의 관계를 조사받고 있다고 했지.’
살레오스의 정체는 아직 세간에 밝혀진 게 없다시피 한데 알리시아와 외관이 닮은 점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알리시아가 ‘언니’라고 발언한 장면을 목격한 인물이 제법 있었다.
따라서 알리시아는 교회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지금쯤 이런 저런 불기 싫은 기억들을 강제로 떠올리고 있을 터.
알리시아의 잠재적 가치를 아는 교회이니 함부로 대하지는 않겠지만… 혹여나 망가트려 놓으면 녀석들 역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리시아를 현 상태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는데…!
지금까지의 투자가 무로 돌아가는 꼴만은 차마 볼 수 없다.
“바르간 남작.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실에 전체적으로 나직이 깔리는 헤일리온의 목소리.
상냥하고 따듯해 보이지만 분명 위엄이 존재해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현재 높으신 교회의 관계자들과 수많은 용사의 눈길을 정중앙에서 받고 있다.
“예, 저 역시 진실만을 밝히고 교회의 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슈겐하르츠 가문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는 명실상부 교회로부터 남작위를 받은 귀족.
예를 차리며 빙그레 웃어 주었다.
이 정도 겉치레는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갖갖의 시선만이 향하는 지금 이 자리.
전장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교회의 회의실에 주요 대상으로서 앉아 있다.
“바르간 남작은 지금껏 여러 공로들과 놀라운 성취를 보여 왔습니다. 뒤르테문드….”
헤일리온은 본론으로 들어간다면서 잡설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를 흘리면서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채 이렇게 답했다.
“네, 해당 사실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마치 직접 눈으로 보고 수기한 것처럼.
중앙교회는 내가 벌여 온 업적들을 샅샅이 불었고.
나는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그렇게 몇 번인가를 끄덕이자 꼬리가 길던 이야기는 현시점까지 올라왔다.
“바르간 남작의 고유술식은 시련을 필요로 했고, 시련의 기간은 지금껏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장기간. 6개월이었습니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건 짐작했지만 최장기간인 줄은 몰랐군요. 하여간 맞습니다.”
“또한 바르간 남작은 고유술식을 완성시킨 뒤, 곧바로 전장에 합류해 제2 위험군. 비프론스를 토벌하였습니다.”
“맞습니다.”
“또한 이를 증명할 인물로는 리케이온의 총장 하이겔, 그리고 랭킹 7위 트리센나가 있습니다.”
헤일리온은 그들이 어떻게 증인이 되었는지를 간략히 언급하였고.
그들에게 사실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하이겔의 모습을 한 홀로그램이 대답을 했으며, 실제로 한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트리센나 역시 그렇다고 말했다.
다시금 모두의 눈동자가 내 앞으로 집결하자 헤일리온이 입을 열었다.
“따라서 중앙교회는 바르간 남작의 공로를 인정하여 제2 위험군 비프론스의 심판무구의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모쪼록 위그드라실을 위해,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방향으로 이 힘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반듯하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내가 죽인 건데 당연히 내꺼지 그걸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라니 어쩌겠는가.
나중에 소유권에 대해서 논쟁이 있는 것보다야 확실한 게 낫다.
나는 조금의 불만도 없는 밝은 청년의 미소를 걸었다.
헤일리온은 그런 내 표정을 간파한듯 다소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중앙교회는 바르간 남작의 고유술식과 능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분에 맞지 않는 기대를 사고 있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까지 할 따름입니다.”
“바르간 남작은 남작의 작위와 등외품 생명의 향수, 또한 심판무구 두 점의 소유권을 인정받아 위그드라실을 위한 일정의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중앙교회가 나를 공짜로 부려 먹으려는 기색이 보여서 은근히 돌아가려 했더니만, 이거야 원. 내 양다리를 꽉 붙잡았다.
지금까지 교회로부터 받은 것 전부. 내가 성과를 보인 보상으로 받은 건데 거기에 은근슬쩍 덤을 쳐서 받으려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반박했다가는 귀찮아질 것이고.
어차피 받아야 이 회의가 기나긴 끝나기 때문에 일정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본래라면 이런 반응도 낡은 관념을 가진 장로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내가 그 정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러자 헤일리온은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르간 남작은 학생의 신분이 아닌, ‘특별 전력’으로서 교회의 부름에 마땅히 응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요컨대 학생이라고 구석에 박아 두기에는 아까우니 위험한 전장에서도 쓰고 싶을 때 자주, 사실상 ‘무료’로 쓰겠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업적을 이루면 높이 평가해 후한 보상을 해 주었는데 앞으로는 일반 용사들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뜻.
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불공정하기 짝이 없다.
나도 어엿한 학생 신분인데 정도가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수긍하던 모습을 보이던 나는 잠시 멈칫하고는, 어딘가 마땅치 않다는 기색을 일부러 드러냈다.
“아카데미아의 고등교육을 받는 것과 그간의 수혜에 대해서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제게 지나치게 많은 의무를 요구하는 느낌을 지울 순 없군요.”
내가 불경한 말을 뱉어 대자 주변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나를 경계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교회의 고위 관리자들을 눈으로 살피며 방긋 웃은 채 첨언했다.
“세상의 안정성은 동등한 거래로 인해 유지됩니다. 물론 온전히 동등한 거래라는 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적어도 한쪽이 지나치게 손해를 보고 있다면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기 마련이지요.”
나는 교회의 불공정성을 언급했고.
당연히 이 자리에 있는 일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심판무구를 두 개 받는 걸 마땅치 않게 여긴 세력인 모양이다.
—저, 저런 무례한 녀석 같으니라고…!
—이거 보게나. 내가 말했지 않은가. 아직 용사도 되지 못한 핏덩이이에게 심판무구 두 개를 허한 것은 과하다고!
—헤일리온! 자네가 뭐라고 말해 보게! 저 버르장머리 없는 것에게 심판무구를 허하자고 피력한 게 자네 아닌가!
헤일리온이 피력한 건가… 그건 조금 의외지만.
나는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떳떳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애초에 이번 전쟁이 최소한의 피해로 끝날 수 있었던 건 제 공로가 막대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틀렸습니까?”
—거만하다! 거만해! 자고로 용사란 무와 함께 덕을 쌓을 줄 알아야 하는 법!
—역시 심판 무구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건 없는 것으로 하세! 저런 자에게 맡겼다간 분명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야!
“…….”
헤일리온은 잠시 묵묵부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주변은 소란스러웠지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헤일리온은 겉을 그다지 꾸미지 않는 내 모습에 약간의 의아함을 담고 있는 듯, 곧 입을 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는… 바르간 남작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 한마디로 회장의 모든 시선을 독점한 이가 있었다.
직접 자리에 찾아오진 못해 홀로그램이긴 하지만, 나에게 영 낯선 인물도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뒤르테문드가 과거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여 편을 드는 것입니까?
뒤르테문드의 성왕.
나에게 명패를 건네주어 중앙교회에서 원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그는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바르간 남작은 분명 학생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의 성과를 지금껏 보여 왔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실 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으시겠지요.
—크흠….
—그거야 그렇지만… 본디 용사라는 게….
성왕은 느긋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주장을 나타냈다.
그의 눈은 마법을 투과하여 나를 보고 있음에도 직접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은 신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말했다.
—그야 너무 성과 위주인 것도 좋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싹을 밟아서야 되겠습니까? 시들지 않도록 물도 주고, 햇빛도 쐬여 주고, 사랑으로 가꿔 줘야지요.
성왕은 내 입장을 대신 변호하며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권한들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 안에 당연한 듯이 심판무구가 있었고.
용사가 아닌, 학생으로서 취급받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담겨 있었다.
즉, 그는 내가 앞으로도 이룬 만큼 받아 갈 것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나라고 해서 도움을 받았을 때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 슬쩍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고 성왕은 부드럽게 웃었다.
뒤르테문드의 성왕이 웬일로 강력하게 주장하자 회장의 분위기는 술렁이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윽고 이번 회의의 진행을 맡은 헤일리온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바르간 남작. 이야기가 정리되기 전에 묻고 싶군요.”
“무엇을 말이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는 물었다.
“만약 이번 ‘가마긴 토벌’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걸 받고 싶은지. 생각해 둔 건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렇군요… 가미긴 토벌 정도 되면….”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고심하는 체를 했다.
그 모습을 장사꾼이냐며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사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머리에 팍 하고 떠오른 게 있었기 때문이다.
***
다소 시끄러운 논공행상….
이걸 논공행상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회의가 끝나고 문을 나서자 에리카가 보였다.
“끝났어? 꽤 오래 걸렸네.”
총총총 걸어오는 에리카.
자연스럽게 바르간의 옆에 다가와 팔짱을 꼈다.
혼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서서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에리카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이제는 바르간 없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슬슬 시도해 봐도 좋을지 몰랐다.
에리카는 바르간과 함께 걸음을 옮기면서 그의 기분이 어딘가 좋아 보인다고 느껴 물었다.
“결과가 괜찮게 났나 보네?”
“그래, 그것도 그렇구나.”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궁금하다.”
말해 달라는 듯 슬쩍슬쩍 올려다보는 에리카.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이런 간단한 부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그녀가 바뀌고 있다.
바르간은 그런 에리카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고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바르간은 웃음만 지을 뿐 대답을 해 주지 않았고 에리카는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네가 괜찮다면 다 된 거겠지.”
사실 바르간이 기분이 좋으면 그것 자체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에리카의 순수한 발언에 바르간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씁쓸함을 머금은 미소. 그러나 그림자는 에리카의 반대편에 져 있어 보이지 않았다.
바르간은 작게 읊조렸다.
“이제 곧 4월 28일이구나.”
“응? 아, 그렇네. 벌써 그렇게 됐구나. 그때는 나랑 꼭 붙어 있자.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최대한으로 도와줄게.”
“그래….”
바르간은 침과 함께 뒷말을 삼켰다.
꼭 붙어 있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