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4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48화(248/350)
“호호호. 다들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아카데미아에 마련된 넓은 정원.
다소 일찍 봄을 맞이하고 있는 이곳은 알록달록한 꽃들의 봉우리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총장 굴레마시아는 그 아름다운 꽃들에게 말을 걸며 직접 물뿌리개로 물을 주었다.
햇살도 나른한 이른 오후.
곁에서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고양이 한 마리.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지저귀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피부를 간질인다.
오랜만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던 굴레마시아는 확성 마법에 의해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대강당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신입생들과 전장에서 복귀한 학생들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겠군요. 새로운 만남이란 어떤 일을 할… 쿨럭, 쿨럭!”
속 깊은 곳부터 솟아 올라온 기침. 비쩍 마른 몸이 기침 한 번마다 들썩였다.
굴레마시아는 물 뿌리던 것을 멈추곤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런데도 한동안 무거운 기침은 지속되었고. 소리에 깜짝 놀란 새들이 저 멀리 날아가고 나서야 겨우 멈추게 되었다.
“크흐으음….”
들끓는 가래와 숨을 가라앉히는 굴레마시아.
가리고 있던 손을 펴자 붉은색의 피가 묻어나 있음을 보았다.
“…….”
굴레마시아는 흰 눈썹 속에 묻힌 늙은 눈동자로 가만히 그것을 내려보다가 누군가 옴을 느끼곤 황급히 마법으로 씻어 버렸다.
갑작스러운 방문객은 그의 수많은 제자 중 하나인 교수 파울라였다.
굴레마시아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언제나의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파울라 교수.”
“할아버지! 내가 멋대로 일을 진행시키지 말라고 했지?”
총장을 ‘할아버지’라고 부른 파울라.
아카데미아의 내에서는 좀처럼 부르지 않는 호칭이었으나.
이따금 감정이 격해질 때면 그녀는 어렸을 때와 같이 굴레마시아를 불렀다.
파울라는 잔뜩 화가 나 있음을 강조하듯 붉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눈을 부라렸다.
다른 교수들이 보고 있다면 버릇이 없다며 크게 나무랄 만한 일이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내가 싫다고 했잖아!”
“…….”
굴레마시아의 입가는 주름과 함께 서서히 처져 갔다.
하지만, 파울라는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본인 역시도 눈가에 글썽이는 눈물을 훔치기 바빴기 때문이다.
“싫다고! 난 ‘그 술식’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아버지는 당사자가 싫다는 데 왜 자꾸 멋대로 진행시키려고 해?”
“호호호….”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파울라를 피해 고개를 돌리는 굴레마시아.
그는 깊은 고심이 담긴 눈동자로 화단을 바라보다가 입을 움직였다.
“이젠, 정말로 나에게 남은 시간이….”
“그런 말도 쫌 하지 말고! 할아버지는 툭하면 나한테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말하더라? 할아버지가 죽기는 왜 죽어? 이렇게 건강한데! 그리고 아카데미아에 있는 이상 할아버지는 항상 건강할 거라고 했었잖아!”
파울라의 눈에는 툭 치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물방울들이 맺혔다.
그러나, 어지간해서는 손녀의 바람을 들어주는 굴레마시아라고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완고했다.
“파울라야…. 너도 알다시피 ‘적합성’을 띠는 인물이 네가 유일하지 않지 않더냐.”
“몰라! 적합성이고 뭐고 난 몰라! 난 분명히 싫다고 했어? 또다시 나 몰래 이런 일을 진행시키려고 하면 나 이번에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할아버지가 나를 또 근신 처리한다고 해도 가만히 안 있을 거라고!”
파울라는 실컷 성과 함께 말을 뱉고 나서는, 멋대로 왔던 것처럼 멋대로 떠나 버렸다.
홀로 남은 굴레마시아.
그의 곁에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던 고양이도.
나뭇가지 위에서 조잘거리던 새들도 떠나고 없다.
“호호….”
굴레마시아는 쿨럭임에 가까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의 눈동자는 잔뜩 화가 난 걸음을 옮기는 파울라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나뿐인 여린 마음의 손녀는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아 대며 나아가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문뜩 며칠 전에 총장실을 찾아왔던 한 학생을 떠올린 굴레마시아.
“어쩌면…. 정말로 그의 안을 따르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군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화단에 물을 주었다.
물뿌리개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꽃들을 머리부터 천천히 어루만졌다.
***
대강당에 신입생들이 가득하다.
그중 가장 앞 좌석.
이번 신입생들 중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10명의 학생들이 앉은 자리.
알아보기 쉽게 등수대로 앉힌 의자들의 두 번째 자리에 한 남학생이 앉아 있다.
‘젠장…. 내가 차석이라니.’
로베드 트로아 마케니아.
귀족 출신인 그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환한 미소를 유지하는 데 열중했다.
언제나 주위의 눈을 신경 쓰며 비교하는데 바쁜 그는 슬쩍 옆자리를 흘기며 못마땅한 듯 조용히 혀를 찼다.
‘아달하이드…. 넌 여기에 와서까지 나를 방해하는구나.’
진한 고동색 머리의 여성.
귓가에 활짝 피어 있는 연분홍의 꽃 한 송이가 아인종임을 나타냈다.
수려한 외모의 그녀는 이번 입학생들 중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단단한 철로 만든 것 같은 이목구비의 아달하이드.
그녀는 정말 어지간해선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거의 반평생을 함께해 온 마케니아조차 단 한 번도 표정의 변화를 목격한 적이 없었다.
‘너만 없었으면 그 자리는 내 자리였어…. 네가 했었던 신입생 연설도 내 차지였다고! 크흑! 왜 아버지께서는 너 같은 걸 우리 가문에 데려와 가지고는!’
마케니아의 가문인 로베드가는 트로아 제국에서 꽤 알아주는 명문가였다.
비록 슈겐하르츠, 포트레트의 급은 아니더라도.
모든 백작가의 수장 같은 느낌으로 건실히 존재했다.
마케니아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동갑내기 아인종 소녀인 아달하이드를 데려왔다.
교회의 수녀 수업을 받던 평범한 소녀였는데, 마케니아의 아버지가 재능을 알아보고 입양아로서 들인 것이다.
‘넌 언제나 나와 비교 대상이었지. 언어를 배워도, 마법을 배워도, 신학을 공부해도! 너는 항상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존재였어!’
전체적으로 우수하며 똑 부러졌던 아달하이드.
그런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느낀 마케니아는 게으름의 늪에 빠져 있던 삶을 청산하고 뼈 빠지게 노력하지만.
좀처럼 그녀에게는 닿을 수 없었다.
달라진 아들의 모습에 이를 처음부터 노렸던 아버지는 만족해하는 듯했지만.
마케니아는 항상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두고 봐라. 비록 지금은 차석이지만, 2학년에 올라갈 때에는 수석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는 박탈감을 느끼면 그만큼 위축되는 게 아닌,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때문에 언제나 아달하이드를 의식하고 주위를 의식했다.
그는 귀족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한 마리의 백조처럼 품위 있게 행동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바쁘게 발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2학년 대표인 바르간 학생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르간 학생은 단상의 중앙으로 와서 신입생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오오…!”
“저분이 소문의 그….”
“대주교를 단독으로 토벌했다는 그 선배지?”
“눈 되게 무섭게 생겼다.”
귓속말이 얼마나 오고 가면 작은 음성이 합쳐져 대강당이 울렸다.
조금 전, 학생회장인 디피엘리아가 연설을 하기 위해 나왔을 때보다도 더욱 반응이 거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인가. 바르간…. 그의 업적을 모르는 곳은 더 이상 없으니까.’
곁눈질로 주변을 살피던 마케니아는 단상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전장에서 무사히 복귀한 2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선배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남자.
장신에 조그마한 얼굴.
거기에 달려 있는 날카로운 눈매는 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같은 제국의 귀족인 마케니아는 어릴 적 몇 번인가 그를 직접 본 적이 있었으나. 당시 느꼈던 것보다 더한 압박감을 받았다.
‘지금은 슈겐하르츠의 이름을 버렸다고 했었나? 아까운 짓을 했군.’
자신의 위대한 가문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마케니아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며 바르간에게 집중했다.
학생들의 앞에 선 바르간은 떨기는커녕, 싸늘하게 식은 눈매로 쭉 신입생들을 훑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 소개는 생략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통성명을 밝히는 것이 관례이거늘.
그는 당당하게 그렇게 말했다.
—플럼. 불을 끄고 영상 마법을 보여라.
그러고는 곧바로 대강당을 불을 모조리 끄고 영상 마법을 띄우게 시킨 그.
바르간의 말대로 분주히 움직이는 학생, 플럼 덕분에 신입생들은 그가 보이려는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
‘저건… 입학 성적표…?’
마케니아는 영상 마법에 집중했다.
자세히 보니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평균 입학 성적이 비교하기 쉽게 나열된 표였다.
바르간 학생들이 알기 쉽게 대략 30년간의 평균 성적을 연도 별로 전부 읊었다.
그렇게 알게 된 건, 작년 입학 평균이 유난히 높다는 점과.
—알겠나? 너흰 아카데미아 근 30년간 중 최약(最弱)의 세대다.
이번 신입생들의 평균 성적이 가장 낮다는 점이었다.
바르간은 눈살을 구부렸다.
무언가 상당히 불만이 있는 것처럼, 아니 저건…. 사람이 아닌 오염물을 보는 것처럼 경멸의 시선으로 신입생들을 내려다봤다.
그가 말했다.
진심을 담은 걸 잘 알기에 듣는 이들은 더욱 아팠다.
—하루빨리 그 우매한 정신머리를 깨트리고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이상이다.
바르간은 정말 그것을 끝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대강당의 모든 이들은 말을 잃었다.
—어, 어어… 그게…. 하, 하하하. 신입생 여러분들. 바르간 선배님께서 쓴 말씀을 해 주셨네요. 자, 자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이제부터….
진행을 맡은 교수 역시 적지 않게 당황했는지 어리벙벙한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려고 하는데 이미 모두가 그가 채찍 따위가 아닌, 진심을 담은 모멸의 심정으로 말했음을 알았다.
‘또라이다.’
마케니아는 허탈한 웃음을 뱉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박혀 있으면 뱉을 수 없는 말들이지 않은가?
얼추 소문으로 들은 바가 있기는 하지만 상상했던 거 이상으로….
마케니아는 하도 어이가 없어 주변 반응이 어떤지를 살피다가 우연히 옆을 보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에 들었던 연설보다도 더 크게 놀라 입을 벌렸다.
“멋있어….”
조곤조곤하게 내뱉어진 말은 마케니아의 대사가 아니었다.
아달하이드.
지금껏 일체의 표정 변화 없던 여인이 감명을 받은 듯 읊조린 말이었다.
‘멋있어…? 정말로? 저게? 그리고 아달하이드, 너…. 지금 대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마치 신을 접하기라도 한듯.
확장된 동공과 발그레진 두 뺨.
꾹 참으려고 해도 꿈틀거리고 마는 입술.
난생처음 보는 아달하이드의 모습에 마케니아는 완전히 얼이 나가,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
원작을 떠올려 보자.
2학년 에피소드에서 가장 컸던, 아카데미아의 비극.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게 몇 학년이었나?
‘이번 신입생들…. 거의 절반 이상이 죽어 버렸지.’
전부는 아닐 수 있어도, 약한 놈들이 가장 먼저 죽기 마련.
아니나 다를까.
직접 조사해 보니 근 30년 동안 이번 1학년들이 가장 덜떨어졌다.
물론, 상위권의 몇몇은 괜찮기는 하다만 그것도 작년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만. 전체적으로 멱살을 잡고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아르볼 프루탈의 힘이 필요하다.
팔락—.
오랜만에 연구회의 모두를 부른 나는 최신화된 회원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들이 연구회에 들어왔을 때와 비교하면 몰라보게 성장했다.
가장 떨어지는 성장을 보인 녀석조차 아카데미아의 평균 성장치를 가볍게 웃도니까 말을 다 한 셈이다.
나는 리스트의 모든 페이지를 확인한 뒤 고개를 들었다.
모두는 내가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를 주시하고 있다.
“다들 나쁘지 않게 발돋움했구나. 수고했다.”
“후…!”
“다행이다!”
어째서인지 곳곳에서 안심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는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는데….
참나. 내가 뭐… 성장이 느리다고 해서 욕을 퍼붓는 것도 아니고 폭행을 가하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넘어가도록 하겠다.
“내가 전원을 부른 것은 이번 신입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번 신입생들은 처참하다. 박살이 났다고 평가해도 좋겠지.”
나는 그들의 한심함을 다시 언급한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버릴 수도 없는 일. 우리는 학생회와 협업하여 신입생들의 성장에 불을 붙이려고 한다.”
학생회와는 어느 정도 미리 얘기를 해 두었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어떻게 이끌고 가냐인 것인데….
나는 옆자리에 침울하게 앉아 있는 여성을 보았다.
하얀 머리칼의 여인은 평소의 생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나와 눈이 마주쳐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지만 그마저도 안쓰럽게 여겨질 정도다.
“알리시아.”
“네, 도련님….”
“아니, 너를 부른 게 아니라. 내 다음으로 아르볼 프루탈을 이끌 회장이 알리시아, 너라는 소리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최선을 다해… 예?”
미리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은 나는 당황하는 기색의 알리시아를 뒤로한 채 모두에게 재선언했다.
“오늘부터 아르볼 프루탈의 전권은 2대 회장인 알리시아에게 일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