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5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51화(251/350)
인류와 알티프는 끝없는 전쟁의 역사를 반복해 왔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알티프는 승리해 왔지만, 인류는 끈질겼고.
이따금씩 상식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영웅’들이 나타나 전선을 복구시켰다.
굴레마시아는 이번 세대.
아니, 저번 세대에서 영웅이라고 불리는 인물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몇십 년 전, 그의 존재에 알티프들은 뼈에 사무치는 공포심을 느꼈고.
무작정식으로 침략하는 대신 힘을 키우고 있었다.
현재 영웅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굴레마시아와 용사랭킹 1위의 실베스테르.
그리고 준영웅의 반열에 오른 헤일리온.
그중에서도 알티프가 가장 주의하고 있는 인물은 당연 굴레마시아였다.
즉, 그들은 굴레마시아가 죽을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쿨럭쿨럭.
사실 꽤 오래전부터, 굴레마시아는 자신의 죽음을 걱정했다.
그는 자신이 죽고 나서 벌어질 일들을 우려하여 오랜 친우인 성제 리오베르고나 주변인들에게 경고해 왔다.
-이 늙은 몸뚱어리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고 시간을 유수와도 같이 흘러가니, 저는 이만 총장직에서 물러나려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남아 있는 동안은 후생을 도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교회는 마법사의 상징이자 이 세상을 유지하는 데 커다란 축 중 하나인 굴레마시아를 놓아줄 수 없었다.
굴레마시아의 약화를 공론화하는 것.
즉,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알티프를 견재해 온 존재가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세간에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고.
숨죽이고 있던 추기경들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될 터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굴레마시아라는 존재는 상징적이었고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굴레마시아는 아카데미아를 지탱하는 거대한 마석과 마나를 공유하면서 생명을 연장해 나갔지.’
쉽게 비유하면 산소 호흡기를 단 셈이었다.
덕분에 굴레마시아는 장수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아카데미아와 한 몸이 되어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중앙교회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영웅이라고 불릴 인재의 양성에 박차를 가하지만.
결국, 굴레마시아의 명은 끊어지게 되고.
백 년 동안 유지되었던 안정기는 끝이 나게 된다.
“……네?”
상당히 놀란 프리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두컴컴한 폐건물에서 프리다와 마주하고 있던 바르간이 말했다.
“굴레마시아가 죽으면 대시계탑에 경보가 가든 말든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소리다.”
“아, 아뇨, 제가 놀란 건 그런 게 아니라….”
황당한지 입을 벌린 채 눈을 깜빡이는 프리다.
그러나 바르간의 눈동자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것을 보더니 입을 닫은 채 침을 삼켰다.
바르간이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도 궁금했지만, 머리는 우선적으로 모의실험을 이어 갔다.
“그 노인이 죽는다니…….”
살아 있는 전설.
마법사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아카데미아의 총장인 그.
비쩍 마르기도 했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알고 있었지만, 굴레마시아의 건재함을 전 세계에 공표하기라도 하듯.
아카데미아의 방어 시스템은 상시 기동 중이었다.
그 철벽같은 방어 체계에 굴레마시아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모르는 이는 이 세상에 없다.
‘굴레마시아가 사망하면 방어 시스템을 건드려도 방해할 인물이 없을 거고, 결정적인 흠이 발생할 때 복구하는 것도 어려울 거야.’
축제 때의 기억을 상기시킨 프리다는 그렇게 판단했다.
당시 굴레마시아는 불안정해진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 힘썼고, 혼자서 그게 가능한 인물은 그가 유일했다.
그런데 굴레마시아가 없다?
그럼 방어 체계를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분명 ‘틈새’는 무척이나 클 것이다.
대주교…… 어쩌면 그 이상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생각만 해도 아찔한지 몸을 부르르 떠는 프리다.
그녀의 표정은 전 재산을 도박에 건 사람처럼 공포를 머금은 흥분을 띠고 있다.
프리다가 말했다.
“바르간 님은…… 정말로 무섭고 나쁜 사람이네요.”
비하의 의도는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의 감탄사였다.
프리다는 굴레마시아가 죽음에 대한 증거를 보여 달라 말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과 바르간은 한배를 탄 몸.
한 사람이라도 배신했다가는 함께 침몰하고 말 위험한 관계이다.
“그래서 바르간 님이 좋아요.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갈수록 더 감정이 진해지는 거 같아요.”
바르간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 위에 양팔을 올리는 프리다.
그녀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광기에 가까운 탐욕을 담고 있다.
긴장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마저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바르간 님이 하시려는 일은 적극적으로 도울 거예요. 대신…… 아시죠?”
얼굴을 가까이 한 그녀는 고혹적인 목소리로, 귓가를 간질이듯 속삭였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그날’에. 저를 데려가 주셔야 해요. 그게 대가잖아요?”
바르간은 프리다와 약속했다.
그 어떤 마법도 걸려 있지 않고, 계약서도 쓰지 않은 약속이었지만.
“버리고 가신다면 죽을 때까지 원망할 거예요. 여자의 원한은 때론 그 어떤 저주보다도 무섭답니다.”
너무나도 독한 한마디를 말이다.
***
늦은 밤.
방에서 홀로 수련을 하던 알리시아.
자꾸만 드는 잡생각에 수련을 접곤 대신 창문을 열어 먼지떨이를 잡았다.
탈-. 탈-.
그러곤 묵묵하게 손이 잘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털기 시작했다.
알리시아는 고민이 많아지면 집안일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독특한 습관은 어려서부터 꾸지람을 들으며 지독하게 노동해 온 부산물이기도 했다.
“알리시아.”
“…….”
“알리시아?”
“…….”
한편 알리시아와 완전히 대조되게 대자로 침대에 누워 있던 나이아스.
마치 제 방인 것처럼 편안하던 정령은 알리시아가 대답이 없자 벌떡 상체를 일으켜 크게 외쳤다.
“알리시아-! 안 들려?”
“예, 옛? 아, 아! 죄송해요, 나이아스 님.”
“이제야 겨우 반응을 보이네.”
화들짝 놀란 알리시아를 샌 눈으로 바라보는 나이아스.
최근 알리시아의 사정은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이면 혼자 두게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아무리 알리시아가 복잡한 일을 겪었다지만 이 늙은 정령은 더 이상 무료함을 견딜 수 없었다.
“더 이상 청소할 곳도 없어. 네가 요즘 하도 그렇게 쓸고 닦고 해 대니까 먼지 한 톨 쌓일 틈도 없었다고. 알아?”
“아…….”
알리시아는 힘 빠진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이미 방 안은 번쩍거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치?”
“네……. 나이아스 님의 말이 맞아요.”
“참, 언제쯤이면 그 우중충함이 사라질는지……. 언니 때문에 그런 거잖아? 대주교 살레오스가 네 언니인 거 같다고?”
“…….”
어색한 웃음을 짓는 알리시아.
보는 이를 마음 아프게 하는 여린 미소였지만, 정령인 나이아스는 공감 대신 현실을 직시했다.
“근데 알티프로 변한 사람을 되돌리는 방법이 없다며.”
신충에게 먹히거나, 지성이 없는 알티프에게 당해 모체가 된 인물들.
그들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실험해 왔건만 전부 실패했다.
여태까지의 성과 중 그나마 주목할 만한 것이 아카데미아에서 형상파를 이끌었던 루센 교수의 억제제.
신충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마비시켜 알티프화의 진행을 늦춘 그것이 전부였다.
“그럼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낫지 않아?”
“…….”
알리시아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자, 나이아스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뭐…… 설령 뭔가 나와서 원래대로 돌릴 수 있게 된다고 하자. 근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아? 100년? 500년? 정령인 나라면 몰라도, 인간인 네가 그 약이 만들어지는 걸 볼 수나 있을까?”
“…….”
“안 그래도 우울한 애를 괴롭히는 거 같아 미안하긴 한데…… 현실이 그렇잖아. 나는 정령인 데다 언니 같은 것도 없어서 잘 모르지만, 나였으면 그냥 포기하지, 너처럼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는 않을 거 같아. 생각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맞아요.”
“어?”
“전적으로 나이아스 님의 말이 옳아요.”
씁쓸한 현실은 인정하는 알리시아.
그녀는 우수에 찬 눈으로 잠잠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언니가 어떻게 해서 알티프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언니를 어떻게 해야 돌릴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죠.”
“안타깝지만, 그렇지.”
“그리고 제가 이쪽에, 언니가 그쪽에 있는다면. 다시 언젠가…… 적으로서 만나게 될 거예요.”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재회일 것이다.
“언니를 돌릴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죠. 제 욕심 가득한 바람이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고민하고 있던 건 그런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에요.”
“음? 그럼? 그럼 뭐 때문에 그렇게 꿍해져 있던 건데?”
알리시아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만약, 미래에 다시 살레오스를 만나게 되는 그날에.
“제가 어떻게 해야 언니를 벨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알리시아는 자신의 나약함을 알았다.
가족에 약하고, 소중한 사람에 대한 정에 약하다.
그렇기에 궁리해야 했다.
자신의 하나뿐인 언니를…… 어떻게 해야 상대할 수 있을지.
그녀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어엿한 예비 용사였다.
“…….”
이야기가 무거워지자 둘을 감싸고 있는 공기 역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이아스는 ‘이런 대화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하며 구시렁거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덥석 알리시아의 손을 잡고 끌었다.
“도련님 방으로 가자.”
“예, 예? 지, 지금요?”
“뭐 어때? 전에는 자주 밤에 찾아갔잖아. 내연녀라고 소문도 났었으면서 새삼스럽게.”
“그거야 도련님에게 마법을 한참 배울 때……. 저, 정말로 가시게요?”
“응, 기분도 울적하니까. 풀러 가야지.”
마리 바르간을 애완동물 대하듯 말하는 나이아스의 어이없는 발언.
알리시아는 울적함도 단번에 날아갈 정도로 당황했다.
“자, 잠시만요! 별다른 목적도 없이 찾아뵙는 건 안 돼요! 도련님께서 싫어하실 거예요!”
“목적이야 말했잖아? 기분 울적하니까 풀러 간다고.”
“그거야 나이아스 님의 억지……!”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너무 쉽게 끌려오는 거 같은데….”
“…….”
히죽거리며 끌고 가는 것을 멈춘 나이아스.
빤히 알리시아의 얼굴을 살피려고 하니, 알리시아가 그에 맞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는 반응이었다.
나이아스는 바르간을 이야기하니 비로소 알리시아의 반응이 재미있어졌다며 깔깔깔 웃다가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명분이 필요하다는 거지? 음…… 아, 하나 있네.”
“…….”
“아르볼 프루탈 회장직을 역임하게 되었잖아. 도련님도 남을 참고하는 건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 조언을 구하러 왔다, 그런 식이면 되지?”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그럼 됐네. 자, 가자.”
“으으으…….”
결국 나이아스와의 설전에서 져 버린 알리시아.
함께 바르간의 기숙사 방문 앞까지 와 노크만을 남겨 두게 되었다.
“안 들어가게?”
“나이아스 님, 역시 지금 찾아뵙는 건….”
똑똑.
나이아스가 멋대로 노크를 했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고압적인 말투 대신, 불안함을 담은 눈동자의 여인이 나왔다.
끼익.
에리카가 살며시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알리시아?”
“……에리카 님.”
에리카가 바르간의 방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던 바.
알리시아가 머뭇거린 건 그런 이유 탓이 아니었다.
“도련님께서 외출 중이신 모양이군요?”
“아… 응,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어째서인지 살짝 어두워진 듯한 에리카의 표정.
알리시아는 그녀의 반응에 의문이 들었지만, 나이아스는 그러든 말든 끼어들어 물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아?”
“아, 아니, 나도 모르는데….”
“곤란하네. 찾으러 가야 하나.”
“…아.”
적극적인 행동에 살짝 움츠러든 에리카.
나이아스가 흥이 빠진다며 물러나려 했고.
알리시아 역시 늦은 밤 죄송했다며 고개를 숙이려 하자, 에리카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기… 알리시아.”
“네?”
“시간 괜찮으면 안에서 기다릴래?”
에리카는 문을 활짝 열은 채 말을 이었다.
“너와는 하고 싶은 대화가 많아. 그… 잠시 차라도 마시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