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5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52화(252/350)
알리시아와 대화를 나누는 에리카.
정령인 나이아스는 자리에는 앉아 있지만 대화에는 끼지 않은 채 팔짱을 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에리카와 알리시아는 가벼운 안부 인사부터 해서 점차 깊은 대화를 이어 갔다.
타인에 대한 거부감의 얼룩이 아직 상당히 남은 에리카였지만, 알리시아는 가장 소통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전부 비울 때가 되자.
어느덧 알리시아는 자신과 언니의 과거를 이야기하게 되었고.
알리시아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 것처럼, 에리카 역시 바르간과의 오해를 꺼내 보였다.
본래 바르간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도록 한 약속이었지만.
그 대상이 알리시아라면 바르간도 이해하고 넘어가 줄 게 분명했다.
“흐윽….”
알리시아의 마음이 아파 왔다.
그녀는 에리카와 바르간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의 전말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러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서 쏟아져 내렸고.
에리카는 손수건을 건네며 그녀가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얼마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
바르간과의 오해도.
그로 인해 힘들었던 지난 시간도.
그리고, 죄책감으로 점철된 지금 이 순간마저도.
에리카가 짊어지고 있던 감정의 무게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한 알리시아는 눈물을 멈추기 힘들었다.
“괜찮아, 알리시아.”
한동안의 울음이 끝날 무렵.
에리카는 입가를 살짝 올린 채 밝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그녀와 긴 대화를 하면서 마음의 문이 크게 열리게 된 에리카는 걱정도, 더듬거림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많이 좋아졌잖아.”
에리카는 이어서 바르간을 언급했다.
그의 보살핌 덕분에 자신의 우울증도, 대인기피증도, 다른 공포증도….
상당히 호전되어 이렇듯 알리시아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추악하고 연약하다는 생각은 떨쳐 낼 수 없어.”
“에리카 님, 아니에요. 에리카 님은 아름답고 강하신 분이세요.”
“난 아름답지 않아. 강한 건 더더욱 아니야…. 지금까지 강한 척해 왔던 거지.”
“에리카 님….”
“틱틱거리던 태도도. 사납게 날을 세우던 눈매도. 사실은 얕보이고 싶지 않아서, 약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서 그랬던 거야.”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했던 건 바르간이 라일라를 죽였다고 오해하여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뻔뻔스럽게 다시 얼굴을 비추는 바르간으로부터,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은 멀쩡하고 오히려 당당히 일어났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
에리카는 거짓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근데, 그것도 이제 생각해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도 같아. 결국에는 주위만을 신경 쓴 허세였고 막상 속은 여전히 약해 빠졌으니까.”
“…….”
“그거 알아? 난 속으로 너를 되게 부러워했다는 거.”
“저를요?”
“응, 언제나 가식 없이 사람을 대하고. 진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상냥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네가 부러웠어. 봐…. 나는 이런 사람이야. 겁 많고, 약하고, 심지어는 남을 시샘하기만 하는 추악한 인간이지.”
“아니에요. 아니에요, 에리카 님.”
알리시아의 목소리와 함께 눈동자가 떨렸다.
눈을 마주하고 있는 두 여인.
에리카는 투명한 알리시아의 눈에 비친 자신을 보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빈 잔에 새롭게 차를 따랐다.
“너랑…. 조금 더 빨리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도 좋았을 텐데.”
그동안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에리카는 알리시아의 순백 같음을 꺼렸다.
정확히는 알리시아와 대조된 자신이 못나 보이는 게 싫어 가까이 다가가기를 미루고 미뤘다.
그녀의 마음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알기에 더욱이….
“…….”
잠시 정적이 흐르고.
에리카는 새롭게 따른 차를 마셨다.
그러곤 입안을 따뜻하게 감싸 주는 향기가 목구멍을 지나며 축축하게 했을 때.
선분홍 색의 작은 입술을 열었다.
“알리시아는 바르간을 좋아하지?”
아무렇지 않게 뱉은 한마디.
그러나 그 한마디가 보인 여파는 엄청났다.
졸고 있던 나이아스는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양 다리를 모았고.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만연한 알리시아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입을 뻐끔거렸다.
“저, 저, 에리카 님….”
“괜찮아. 괜찮아, 알리시아.”
에리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표정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이 온화했다.
***
프리다와의 대화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바르간.
앞으로의 계획을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재확인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4월 28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전부 끝마쳐야 해.’
바르간은 판이 다시금 바뀌는 때를 그날로 잡았고.
그날을 위해서 평소보다도 면밀하게 준비했다.
그의 머릿속은 항시 바쁘게 움직여 쉬는 때가 거의 없다시피했다.
턱-.
기숙사 방문 앞에 도착한 바르간.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이 마나는…. 알리시아와 나이아스?’
자신이 없는 사이에 방에 들어온 둘.
아무래도 에리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했는데, 이는 시련에서 벗어난 바르간이 초월에 이른 마나 총량의 위압과 인기척을 감추는 훈련을 하고 있는 탓이었다.
반면 시련의 결과로 감각이 발달된 바르간은 방음 장치가 되어 있음에도 어렴풋이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
-에리카 님, 그, 그게 무슨….
-어차피 나는 바르간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야. 바르간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비난하거나 헐뜯어서는 안 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
-음… 사실 그렇게 티가 났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해. 하지만, 나는 알리시아의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뭔가 중요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놔두어야 하나?’
자신이 없음에도 에리카가 타인과 밀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 현상 자체를 곧 호전되고 있다는 방증이자, 치료로 판단한 바르간.
손잡이를 잡기 위해 내뻗었던 손을 되돌렸다.
‘잠시 후에 와야겠군.’
단련이야 굳이 방 안에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밖에 마련된 적당한 바위 위에 앉아서 해도 되고, 개별 연무장에서 해도 되는 일.
일정을 조금 변경한 바르간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돌연 바르간의 귓바퀴를 강하게 울린 문장이 바르간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바르간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거지?
알리시아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에리카는 ‘약혼’이라는 자신과 바르간의 관계 때문에 마음을 억눌러 왔을 알리시아를 위로했다.
자신 같았으면 그 약혼녀라는 존재를 미워하며 질투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끝까지 그러지 않은 알리시아를 대단하다고 여겼다.
-나는 꾸밈없는 알리시아의 모습이 좋아.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네가, 유일하게 감추고 있는 그 마음을… 나에게 들려줄 수 없을까?
알리시아가 고민하고 있자.
바르간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 여인의 대화는 멀어지는 거리만큼 흐려져 갔고.
중간중간 들리지 않는 단어들이 늘어 갔다.
그러나 죄송하다는 알리시아의 말이.
-죄송합니다. 에리카 님….
울먹이면서도 진심을 쏟아 내는 그녀의 말이.
-…불경스럽게도, 또 죄스럽게도.
나릿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는… 바르간 님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
“으하아아아…! 드디어!”
양팔을 좌우로 활짝 뻗은 신입생 차석. 마케니아.
2주 동안의 모든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리는 성취감을 맛봤다.
“드디어 성공했다!”
마케니아의 방.
그중 넓은 책상 위에 꼿꼿하게 서 있는 지름 5cm의 마력구 5층탑.
조금의 압축도 가하지 않은 순수 마력이라는 점에서 그 성취를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성공했다고!”
마케니아는 과거 바르간이 그랬던 것처럼 2주 동안 폐관 수련에 임했다.
잠이 미친 듯이 쏠려 오니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체내를 돌아다니는 마력을 정제하고 또 정제해서 활력을 억지로 부어 넣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르간이 숙제 기간으로 준 2주 만에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아니야. 우쭐해하면 안 돼. 나도 성공했으니 분명 아달하이드…. 그년도 성공했을 거야.”
마케니아보다 먼저 결석을 입에 담은 건 아달하이드였다.
그녀는 담당 교수에게 폐관 수련을 위해 2주 동안 수업에 들어갈 수 없다고 전했고.
그 소식을 들은 마케니아가 질 수 없었기에 마찬가지로 결석을 마음먹게 되었다.
담당 교수는 골치 아프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지만, 마케니아의 의지는 굳건했다.
결국 바르간이라는 선례로 인해, 사상 초유로 두 명의 신입생의 2주 동안 수업을 째겠다는 선언이 공식적으로 통과되었다.
“진짜 미치는 줄 알았네. 다시 하면 아마 정신병에 걸리고 말 거야.”
살면서 이 정도로 열정을 다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마케니아는 최선을 다해서 마력탑을 쌓았고 성공시켰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마나의 세심한 조절 능력.
그리고.
고오오-.
피곤에 찌들어 곧이라도 침대에 누워 버리고 싶었으나.
마케니아는 마나를 움직여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만끽했다.
푸른 마나가 유난히 생기 있고 짙은 밀도로 그의 몸을 돌아다녔다.
‘마나 총량의 경지가 한층 성장했다. 불과 2주 만에 이룩한 결과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마케니아는 길게 웃음 지었다.
역시 바르간에게 붙어 있는 게 정답이다.
비록 그 과정에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수반된다고 할지라도.
이렇듯 경이로운 발전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저번 강당에서 했던 발언 때문에 멈칫했지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였어. …두고 봐라, 아달하이드.”
마케니아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오늘은 예정되었던 2차 면접이 있는 날.
1차 서류는 당연하게 둘 다 통과했으니 아달하이드와 함께 그 괴상한 생김새의 사역마를 상대해야 한다.
‘반드시 너보다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일 거야.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들의 면접은 특별히 다른 학생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경기장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즉, 자신의 마법과 능력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자리이도 한 셈.
게다가 아달하이드보다 뛰어난 면모를 보여야 바르간의 제자가 되어도 차별화가 있을 게 아닌가.
적어도 마케니아가 볼 때 바르간은 철저한 실력우선주의니까 말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야지. 우선 그러기 위해….’
마케니아는 비틀거리며 다리를 옮겼다.
지금은 아직 해가 뜨기에도 먼 이른 새벽.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다.
오늘 수업까지 빼먹기로 했었고, 면접은 오후에 있으니 아직 시간은 있다.
그대로 침대에 엎어진 마케니아.
마취총에 쏘인 듯 눈꺼풀을 닫으면서 중얼거렸다.
“이길 거야…. 이길 거야.”
그렇게 삽시간에 마케니아는 잠에 들었고 시간은 흘러.
그에게 있어 결전의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