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5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55화(255/350)
“다음 지원자 들어오세요.”
알리시아의 주도하에 면접이 진행됐다.
최대한 엄중한 태도를 지켜 보려고 하는 알리시아. 사근사근한 말투를 지녔음에도 나름의 절도 같은 게 느껴졌다.
눈썹에도 각을 세우고 있는 게 제법 익숙해 보인다. 혼자 있을 때 방 안에서 거울을 보고 연습했음이 틀림없다.
‘살레오스에 관한 건 조금 무뎌진 모양이군. 하기야 그렇게 바빴으니 우울해질 겨를도 없었겠지.’
연구회실의 구석에 앉아 있던 나는 알리시아를 보며 그렇게 결론 지었다.
알리시아가 전체적으로 진행을 하는지, 어떤 인재들이 새롭게 지원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할 수 있다.
“…….”
그렇게 한동안 알리시아를 보고 있으니 잡생각이 들었다.
—저는…. 바르간 님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들리지라도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직도 그때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망설이면서도 포기를 한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뱉었던 대사.
원작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알리시아와 대조가 되어 더욱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알리시아가 누구를 보고 좋아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리암이 주인공으로 진행되었던 소설에서도.
아르텔리온이 주인공으로 진행되었던 소설에서도.
알리시아는 항상 수동적인 자세만 취할 뿐 직접적으로 연모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다른 히로인들이 적극적으로 밀고 갈 때, 항상 몇 걸음 떨어져 있었으며.
그 전장에 끼어들기보다는 관망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게 알리시아였다.
원작에서 나왔던 리암의 대사에 따르면, 오리지널 소설 속에서 아르텔리온이 알리시아에게 잘해 주어도 그녀는 부끄러워하거나 수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단 한 차례도 그에게 마음이 있다고 표현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나 알리시아의 심리 묘사가 많이 서술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알리시아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
알리시아가 1학기의 과제로 냈던 주제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에서 ‘가족’을 답으로 내밀었다.
이는 어릴 적 모든 가족을 잃었던 그녀가 잃어버렸던 것으로 결핍과 불완전성을 의미했다.
결국, 알리시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평온한 가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봤다.
‘그래…. 분명히 그랬다.’
대상 자체보다는 그 대상이 이끌어 낼 집단에 집중했던 것이니까.
알리시아는 상대만을 순수하게 사랑할 줄 모른다.
그녀에게 상대란 가족이라는 결론에 귀결하기 위한 단계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순 없었다.
그렇게 판단했었는데….
“…….”
나는 가만히 알라시아를 바라봤다.
어깨선을 타고 내려와 윤기를 빛내는 하얀 머리칼.
화장을 하지도 않고 별다른 제품 따위는 당연히 바르지 않는데도 잡티 하나 없이 뽀얀 피부.
오밀조밀한 눈코입 사이에서도 유난히 커다랗고 맑은 눈.
말 그대로 작위성마저 느껴지는 외모.
그리고 더 말이 안 되는 건, 성녀 이상으로 고운 마음씨… 아니.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잠을 너무 줄였나. 피로감이 남아 있는 모양이로군.’
나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짚으며 상념을 떨쳐 냈다.
컨디션 관리 또한 철저하게 하고 있었을 텐데 이상스러운 일이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는데.
“……?”
눈이 마주친 알리시아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내가 저를 보고 눈가를 짚은 걸 겉시야로나마 본 모양이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스레 시선을 거둬 내 옆에 앉아 있는 에리카를 흘겨보게 됐다.
에리카는 가만히 알리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여린 미소 또한 그어져 있었는데, 마치 어린 동생의 성장한 모습을 대견하게 보는 언니와도 같은 표정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에리카가 고개를 돌렸다.
“벌써 가게?”
“그래. 이미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음을 파악했으니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그렇구나….”
“같이 갈 테냐?”
“어… 나는….”
어쩐 일인지 에리카가 단번에 자신도 가겠다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문 채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는 좀 더 있을래.”
“그래?”
“…조금 더 보고 있고 싶어.”
에리카의 푸른 두 눈동자가 다시 알리시아에게 향했다.
그녀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먼저 가 있으면 나중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주도적인 에리카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고, 알겠다고 답했다.
“그럼 먼저 가 있으마.”
“응, 방에서 보자.”
나는 그대로 연구회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곳을 들를 이유가 없어 곧바로 기숙사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선 나는 하얀 손수건을 활짝 펴 그 안에서 사람 얼굴만 한 크기의 수정구를 꺼냈다.
책상 위에 수정구를 올린 뒤 자리에 앉아 마력을 불어넣으니, 곧 텔레비전 화면이 떠오르듯 영상이 비춰졌다.
—치지지직….
—아이고 바르간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연결된 영상에서는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나왔다.
루비드 마을의 총장 바트다.
처음에는 통신이 익숙지 않아 곧잘 화면이 비뚤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저만의 각도를 찾았는지 상체가 오롯이 다 보였다.
“넌 여전히 잘 지내는 것 같구나.”
거짓 한 톨 없는 진심이었다.
얼굴에 남은 주름이야 어쩔 수 없다만, 그의 몸은 전성기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다부졌다.
저렇게나 내 후원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전부 바르간 님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이 루비드 마을의 평안도, 제 건강도 오로지 바르간 님의 은혜를 받아 가능한 일입니다.
바트는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피할 수 없는 나이 탓에, 웃을 때마다 숨이 쉰 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마저도 많이 좋아진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바르간 님. 보내 드린 ‘그 물건’은 잘 받으셨습니까?
“그래.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시기를 잘 잡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아카데미아로는 보내기 상당히 껄끄러운 물건이니까 말이죠.
“말하지 않았느냐. 아카데미아로 그걸 보내는 건 미친 짓이라고. 내가 수령받지도 못하고 확인 단계에서 불려 갔을 것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여신교 세력이 물러나고 며칠 후.
테라리움의 전속 배달부인 니키가 다시 찾아왔다.
촌장에게 발송을 부탁하긴 했지만, 지팡이를 수령받은 것과 시기가 비슷하여 다른 인물이 올 줄 알았는데 같은 배달부였다.
발이 상당히 빠른 녀석임이 틀림없었다.
—프란체스카 님과 프릭칸리스크 님은 최근 여신교 신도들과 주교들을 찾아내는 게 날이 가면 갈수록 빨라지십니다. 덕분에 물건도 수월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죠.
“그녀들도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군.”
—그야 물론이죠. 거의 탐정과도 같이… 엇? 자, 잠시만요 프란체스카 님! 아직 바르간 님과 긴밀한 대화를 끝마치지 못했…!
—오랜만이네.
어이쿠.
이건 정말로 반가운 얼굴이다.
원래였다면 3학년으로 진급했어야 할 선배님이 아니신가.
“그래. 잘 지내고 있었느냐.”
—이젠 선배라고도 부르지 않는구나.
“실제로 선배도 아니니까. 그보다 이왕 얼굴을 비친 거 최근 연구 성과나 좀 말해 보거라.”
—바로 일 얘기야?
“우리가 언제 길게 안부를 묻는 사이였나?”
—그것도 그러네. 나도 사실 그것 때문에 얼굴을 비친 거고.
프란체스카는 작게 조소하며 말을 이었다.
—지성이 없는 알티프는 거의 온전히 부활시키는 게 가능해졌어. 특이체라고 해도 몇몇 개체를 제외하곤 생전 그대로의 출력을 낼 수 있지. 여기까지는 들어서 알고 있지?
“그래. 이미 보고받아 알고 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용케도 그만한 성과를 냈구나.”
—내 목숨을 걸고 하고 있으니까. 아무튼, 중요한 건 이건데.
“뭐냐?”
—최정상급 주교, 한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어.
와, 이건 진짜 놀라운 일이다.
녀석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고? 가능성은 거의 접어 두고 있었는데?
—많이 놀랐나 보네?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누구든 그러지 않겠는가.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 영역이거늘.”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일러.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손가락을 까딱하거나 고개를 양옆으로 젓는 정도야.
“내가 설마 뛰어다니는 걸 생각했겠나? 말하지 않았나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다고.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한데… 완벽히 제어는 가능한 것이냐?”
—물론이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어.
프란체스카는 축제 시즌에 고대 드래곤에게 역으로 이용당했던 게 생각났는지 씁쓸하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털어 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보내 준 ‘그 물건’의 연구 있잖아. 그거… 정말로 가능한 거야?
물음에서 프란체스카의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마치 성과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하기야… 그런가. 숙부인 루센이 마지막에 그런 꼴이 되었으니 남 일처럼 받아들여지지는 않겠군.
“최선의 결과를 내 볼 생각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기대하지는 말거라. 어디까지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걸로 충분해…. 그거면….
프란체스카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미 떠난 인물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목소리였다.
—그렇게라도 숙부의 연구가 빛을 볼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해.
***
“아, 잠들면 안 되는데….”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던 디피엘리아는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잠을 몰아내려 했다.
새롭게 학생회장이 되어 해야 할 일 처리가 산과 같은데, 거기에다 특별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으니 잠이 항상 모자랐다.
오죽하면 성녀인 그녀가 위그드라실에게 기도 올리는 걸 거르는 날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커피… 커피….”
그녀는 엄마를 쫓는 어린아이와도 같이 커피를 찾았고, 주변의 식물을 제 손처럼 움직여 커피를 추출해 잔에 따랐다.
본인의 눈은 보이지 않더라도 사역마가 총총 뛰어다니며 움직여 주니 불편함은 없었다.
—후릅.
“하아….”
따듯한 커피가 몸 안으로 들어오자 한숨을 내쉰 디피엘리아.
요즘은 카페인이 흡수되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정리를 안 했나?”
그녀는 어지러진 책상 위를 바라봤다.
온갖 서적들이 펴져 있는 채였고, 중요한 문장 위에는 찍찍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드는 나무의 희생을 알면 이래서는 안 됐지만, 워낙 기억해야 할 것도 많고 참고해야 하는 자료도 많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한 표시들이었다.
개중에는 루센 교수가 남긴 연구 자료들도 있었다.
각종 논문과 서적, 그리고 공책에 낙서처럼 적어 두었던 실험의 과정들까지.
사락—.
커피를 마시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나무줄기를 통해 책의 페이지를 넘긴 그녀.
식물과 소통하며 그 누구보다 빠삭한 디피엘리아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이 연구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디피엘리아는 고개를 돌려 새롭게 전달받은 작은 병들을 보았다.
그 병마다 하나의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바르간은 대체 어디서 계속 ‘신충’을 가져오는 걸까?’
사람을 알티프로 변모시키는 벌레, 신충.
처음 바르간에게 신충을 받았던 게 벌써 거진 1년이 되어 간다.
신충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도 1년이 다 되어 간다는 소리였다.
바르간은 항상 외출을 하고 오면 이렇듯 실험 재료가 될 신충을 한 마리씩 쥐여 줬다.
디피엘리아는 그 출처가 너무나 알고 싶었으나.
강경하게 나간다고 해서 알려 줄 바르간이 아니라 반포기한 상태였다.
‘이 실험이 중요한 건 맞아. 만약 성공한다면 인류에 크나큰 도움이 될 거니까.’
디피엘리아는 바르간에게 부탁을 받아 실험을 이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율적으로 조사와 실험만 하는 단계였는데 바르간의 지속적인 지원과, 루센 교수의 연구 성과를 받고 난 이후부터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연구에 임하고 있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한쪽에 무더기로 심어 둔 보라색 꽃들의 봉우리가 활짝 피어오르자 디피엘리아가 말했다.
그녀는 꽃들 앞으로 다가가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꽃잎을 전부 뗐다.
그러곤 수확한 꽃잎들을 잘게 빻은 뒤 한 송이마다 각기 다른 병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나자 꽃잎의 물이 우러나온 보라색 액체가 되었고.
스포이드를 사용해 각 병마다 특수한 용액을 떨어뜨렸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디피엘리아가 만들고자 하는 독이 완성되었다.
“이번에는 변화가 있을까…? 없을 거 같긴 한데….”
이미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디피엘리아는 기대감을 죽이려 들며 만들어진 용액을 신충들에게 주입시켰다.
현재까지 이룬 성과는 신충의 움직임을 둔화하고 일시적으로 경직시키는 데까지였다.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이기 위해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어?!”
디피엘리아는 깜짝 놀라 특정 신충 앞에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보는 눈은 사역마의 것이었지만, 워낙 놀랐기에 저절로 몸이 움직여졌다.
—꿈틀꿈틀꿈틀.
마치 괴롭다는 듯 격한 반응을 보이는 한 녀석.
다른 신충은 해 봤자 경직이 되는 정도인데 이 한 마리는 상태가 유별나다.
“기록… 기록해야 해…!”
잔뜩 흥분한 디피엘리아는 손을 떨면서 빠르게 기록을 이어 갔다.
사역마의 눈과 마나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특정 반응을 세밀하고도 철저하게 적어 나갔다.
어쩌면 정말로, 이 연구가 인류의 역사에 큰 변혁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알티프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릴 치료제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