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6화(26/350)
“정말 죄송했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알리시아가 고개를 완전히 굽힌다.
주변에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당황하던 리암은 급하게 그녀의 행동을 만류했다.
“괘,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일단 고개 드세요!”
“하지만….”
“이러실수록 제가 오히려 죄송해서 그래요.”
알리시아는 부족하다는 기색을 내비쳤으나 리암은 그런 그녀의 태도를 부담스러워했다.
그의 제지에 알리시아는 다시 허리를 폈다. 시선은 그를 직접 보지 않고 살짝 아래를 향하고 있다.
전에 보여 줬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리암은 어쩐지 약간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제가 억지로 일을 진행하려다 생긴 불상사였어요. 알리시아 씨가 이렇게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목에 검을 들이미는 폭력을 행했어요. 이건… 간단히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아뇨, 다친 것도 아니고 위협에서 그쳤잖아요. 그리고 알리시아 씨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어요.”
“네…?”
자신감 없이 바닥만을 내려보던 알리시아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며 아리송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리암은 겨우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슈겐하르츠에서 일하게 되셨다면서요. 그럼, 당연히 싫든 좋든 그 가문의 사람을 보호해야 했겠죠.”
“아… 네….”
“제가 너무 성급하게 그를 대했으니 바르간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불쾌할 만했다고 생각해요. 서로 일면식을 나눈 적도 없는 사이였으니까요.”
“…….”
“알리시아 씨?”
어째서인지 알리시아의 기분이 살짝 상한 것으로 여긴 리암은 그녀를 불렀다.
알리시아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바로 잔잔한 웃음을 머금었지만, 순간적으로 보인 얼굴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리암의 사고가 길어지는 것을 막듯 사과를 이어 나간다.
“에밀리 씨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제 행동으로 분명 상처를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알리시아는 리암과 거리를 벌리며 멋쩍어하고 있던 에밀리에게 다가섰다.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이 이어지자 에밀리도 더 이상 모른 척하기는 힘들었다.
“아, 진짜 부끄럽게. 저도 괜찮아요. 그야 물론… 리암을 해하려 한 건 화가 났지만, 저도 욕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알리시아 씨를 위협했으니까요.”
“에밀리 씨의 소중한 사람을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아, 아아! 이제 끝! 우리 그냥 없던 일로 해요. 같은 조라 앞으로 얼굴도 자주 마주칠 텐데 그때마다 어색한 건 질색이에요.”
알리시아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을 두 손으로 막는 에밀리. 다소 붉어진 얼굴로 알리시아를 바라보고 있다.
알리시아가 말을 이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에밀리는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 원위치로 돌리다 멈췄다.
그대로 내미는 한 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걸로 다 잊자. 나도 미안했어. 그리고….”
그녀는 쑥스러워했다.
“그… 뭐야, 그, 그거. 이런 상황에서 좀 웃기긴 한데. 크흠! 왜 그거 있잖아 그거….”
알리시아는 멍하니 그녀가 내민 손을 바라봤다. 처음 놓이는 상황에 어찌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 그거… 그게 뭘까요.”
“…아 진짜 쪽팔리게.”
에밀리가 알리시아의 손을 덥석 잡는다. 고개는 옆으로 돌린 채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다.
“이제 무슨 뜻인 줄 알겠지…?”
“아아…!”
알리시아는 에밀리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했다.
토끼같이 놀란 눈을 하고는 에밀리의 손을 맞잡고 흔든다.
알리시아의 순진무구한 반응에 에밀리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우리 서로 반말하자. 나이도 같은데.”
“반말이요? 반말… 그렇죠, 반말을 써야 하겠죠…?”
“존댓말이 편하면 써도 되고. 그냥 편하게 불러.”
“…으음.”
알리시아는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곤 말했다.
“…반말을 써 본 적이 없어서. 노력은 해 보겠지만, 우선은 존댓말을 쓸게요.”
“전에도 말했지만… 정말 여러 가지로 대단하네….”
에밀리가 알리시아의 놀라운 성격에 혀를 내두르고 있자 파티장의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어?”
주변의 조명이 어두워진다.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들은 한 곳을 향해 모여들며 기대감이 깃든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딱 보니까. 그거네. 시간도 마침 된 거 같고.”
알리시아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자 에밀리가 대답했다.
“그거요?”
“응. 무도회 말이야. 이번 개막은 입학 성적 1위부터 10위까지가 짝을 지어서 춘다고 했으니까 그 바르간… 님? 아무튼, 그 사람도 있을 텐데 몰랐어?”
“네, 저는 들은 바가 전혀….”
1층 중앙 스테이지에 조명이 쏠린다. 원형의 발판을 중심으로 신입생들이 무리 지어 서 있다.
“우리 위치가 좋았네. 마침 무대가 잘 보이는 2층에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리암.”
알리시아는 발을 내디디며 모든 인파가 주목하고 있는 무대를 가까이했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하는 열 명의 주인공들.
남자 다섯. 여자 다섯.
정확히 성비도 같아 짝이 없는 인원이 없었다.
무대에서 바르간과 그의 짝이 함께 인사를 한다.
관객들은 약혼자끼리 짝을 이루었다며 더욱 열기를 올린다. 운명으로 이어져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로 만든 것 같은 고풍스러운 느낌의 미남미녀. 두 사람을 엮는 약혼이라는 관계.
바르간이 입학식에서 했던 발언도 까먹을 정도로. 고고한 두 사람은 보는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풍기고 있었다.
“저 사람은 저기에 있어도 눈에 띄네. 아, 나쁜 의미는 아니었어. 오해하지 말아 줘.”
에밀리의 해명하는 듯한 말이 알리시아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알리시아의 시선은 오로지 바르간을 향하고 있었다. 완전히 박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무거운 소리를 내는 현악기가 무도회의 시작을 알렸고.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던 회장이 감탄사로 뒤덮인다.
“오, 오오!”
“다들 기품 있는데?”
주인공들이 무대를 종횡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인 것처럼 자유롭게.
한 번의 스텝이 밟힐 때마다 움직임이 크다. 옆 사람과 부딪힐 듯 부딪히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
남성은 파트너를 리드하고, 여성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화사함을 자랑한다.
곳곳에서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처럼. 화려하다.
바르간과 그의 파트너는 특히 호흡이 잘 맞았다.
강압적이고 제멋대로가 아니다.
확고하지만 부드럽게. 상대가 헤매지 않으면서도 불쾌하지 않게 움직인다.
신장 차이가 꽤 났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랫동안 합을 맞춰 본 사람처럼 둘은 서로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닮았다.
고혹적인 눈매. 자신감 있는 분위기.
그러다가 종종 서로 귓속말을 나누기도 한다. 시끄러운 회장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서.
바르간은 살짝 미소 짓는다.
평소에 남을 비웃기 위해 지을 때와는 또 다른 웃음이다.
“…….”
무대가 끝날 때까지. 알리시아는 가슴 한구석에서 왠지 모를 저릿함이 찌르는 감각을 느꼈다.
***
“정신 차려라, 알리시아.”
“앗!”
청명한 소리가 울린다.
오늘도 알리시아의 이마에 붉은 점이 생겼다.
지금의 상황을 처음 목격한 에밀리는 놀라 알리시아를 감싸 안았다. 나를 노려보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며 나무란다.
나는 어이가 없어 답했다.
“내가 내 시종에게 벌을 주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이냐. 그리 아프지도 않으니 괜히 시비 걸지 말거라.”
“도대체 이게 어딜 봐서…!! 소리 못 들었어? 난 무슨 두개골 부서진 줄 알았어!”
“호들갑스럽군.”
“이…!”
에밀리는 더욱 발끈하여 대항하려다 알리시아가 막자 기세를 죽였다.
그나저나, 저 녀석 어제부터 알리시아한테 말 놓더니 오늘은 나한테도 그런다. 어차피 겪을 일이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다만 한낱 평민한테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잠시 딴생각에 잠겨 도련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못했습니다.”
“그건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알리시아.”
“…맞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두 번 말하는 건 싫어하는데.
가장 중요한 녀석이 놓쳤으니 다시 말해 줘야 한다. 대체 이 중요한 순간에 뭔 딴생각을 한 건지 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해 줄 테니 잘 듣거라.”
나를 보고 있는 조원들에게 말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지금부터 말할 것을 위한 필요 인원이다.
“나는 ‘연구회’를 만들 것이다. 당연히 너희는 전부 들어와야 하고.”
“연구회라고 하시면….”
아카데미아의 동아리라고 보면 된다.
다만, 현실 세계의 동아리보다 더욱 체계적이며 전문적이라는 게 차이점이지만.
“연구회의 주제는 ‘개인 역량 발전’이다. 쉽게 말해, 너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라는 뜻이지.”
“아까도 말했지만, 왜 우리가 강제로 그 연구회에 들어가야 하는 건데…?”
“핀과 함께 가장 조에 도움이 안 되는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딴 망발을 뱉는 것이냐.”
“그, 그건…!”
에밀리가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일으킨 몸을 다시 가라앉힌다.
그래도 기본적인 개념은 탑재되어 있는 것이라 다행이다.
알리시아는 손을 들며 발언권의 기회를 잡으려 든다.
최근 그녀가 아카데미아의 수업을 받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관습이다.
“말하거라.”
“도련님께서는 학생회에 들어가시는 거 아니셨습니까? 입학 성적 1위부터 5위까지는 학생회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아… 아무래도 제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벌레 씹은 표정을 하자, 알리시아가 사과로 말의 마무리를 지었다.
학생회에서 제안은 왔지.
하지만.
“그런 백해무익한 곳은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그 집단의 현 우두머리가 ‘그 녀석’인 상황에서는 더욱이.
지금은 조원들의 수준을 머리채 잡고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이며, 훗날에 완성될 그림의 밑 작업이기도 하니 이렇게 나가는 것이 맞다.
“저는 좋습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할 지경입니다!! 바르간 님께서 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으엑, 얘 또 이러네. 어? 세레나, 너도 설마 들어갈 거야?”
“…….”
핀의 과한 반응에 에밀리는 기겁했고, 조용히 있기만 하는 세레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세레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을 작게 끄덕였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은 바르간 님의 발목을 잡는 처참한 실력이지만 기필코 언젠가는!”
“핀, 네 열의는 알았으니 그만 다물거라.”
토이렌 트로아 핀.
귀족이긴 하지만 변변치 않아 별다른 지원을 못 받은 녀석. 열정만은 항상 최대치로 차 있는데 별다른 성과는 없는 슬픈 조연이다.
핀은 원작에서도 바르간과 같은 조였는데 이번에는 순위에 다소 변동이 생겼음에도 또다시 같은 조가 되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원작과 동일하게 입학 성적 꼴찌.
이것은 녀석에게 있어 처음으로 받은 성적이었으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가 꼴찌로 입학한 것이 두 번째였다.
그럼 이렇게 지지부진하다가 마지막에 재능을 개화해서 빛을 보느냐고?
아니. 전혀.
쏟아붓는 노력은 막대하지만, 전혀 보답받지 못한다. 재능이 정말 지독할 정도로 없는 놈이다.
“연구회… 그래 좋다 이거야. 수석님께서 직접 우리를 위해 애써 주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근데 하나만 물어보자.”
에밀리가 말을 잇는다. 어쩔 수 없이 받아 주겠지만, 의문점을 지울 수 없다는 듯.
“뭣 때문에 이러는 거야? 단순히 앞으로 함께할 조원들의 수준을 올리기 위한 것 같지는 않은데.”
“주제도 모르는 것이 말은 더럽게도 많구나.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란 판국에.”
“…주제도 몰라서 미안하지만. 일단 질문에 답변을 주면 안 될까? 응?”
여전히 싸가지가 없는 녀석이지만.
그래 좋다. 말해 주마.
“이걸 안 하면 너랑 핀은 1년 뒤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