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6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62화(262/350)
“아카데미아 일원분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카데미아의 협력에 위그드라실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용사랭킹 7위의 여성.
마법사 트리센나.
나에게는 대주교 비프론스와 전투에 임했을 때 안면을 튼 사이인 용사와, 그녀의 팀원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서 있었다.
비공정이 무사히 착륙을 마치고 문밖으로 빠져나오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굳이 한 자릿수의 용사를 안내 역으로 붙인 걸 보면 중앙교회가 아카데미아의 전력을 중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갑습니다. 트리센나. 저는 아카데미아의 교수인 페르기오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시지 않은 굴레마시아 님의 대리인으로서 인사드립니다.”
학생회의 담당 교수이기도 한 그는 손을 뻗어 트리센나와 악수했다.
“아카데미아의 비공정이 상당히 빨리 도착해 놀랐습니다.”
“저희의 우수한 학생들 덕분이지요. 도중에 알티프의 습격이 있었습니다만, 모두 힘을 모아 격퇴하여 비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변고가 될 뻔한 일을 무탈하게 넘기셨다니 다행입니다.”
트리센나는 페르기오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다가 말했다.
“교수님들께서는 미리 얘기가 되신 분들만 저를 따라오시고 다른 분들께서는 제 팀원의 안내를 받아 학생분들과 함께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회의는 벌써 시작되었습니까?”
“아뇨. 아직 리케이온의 비공정이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연락받은 바로는 앞으로 15분 정도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그럼 빠르게 이동합시다.”
페르기오와 대화를 마친 트리센나는 학생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 중에서도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 인원들이 있다고 전했다.
“디피엘리아 학생과 바르간 학생, 그리고 알리시아 학생과 에리카 학생은 이쪽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변에 있던 인원들을 데리고 트리센나의 앞으로 이동했다.
디피엘리아는 현 학생회장이니까 데려가는 것이었으나, 나와 둘은 다른 목적이었다.
그녀와는 구면인지라 가볍게 인사하자 트리센나 역시 슬쩍 미소 지으며 받아 주었다.
이것저것 내게 묻고 싶은 게 많은 눈치였지만, 공식적인 입장으로 나왔기에 곧장 길을 앞장섰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커다란 막사였다.
분명 임시 거처 역할로서 지었을 막사. 하지만 그 크기나 완성도가 결코 허접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온갖 마법 술식으로 떡칠이 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성보다도 단단하며 보완이 뛰어날 게 분명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대부분의 자리가 차 있었다.
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빙 둘러 있는 빈 의자는 아마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의 것인 듯했다.
아카데미아의 입장에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로 모였고.
나는 살며시 그들을 살폈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 관심이 가겠지만, 나 역시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귀인들에게 눈길이 갔다.
‘헤일리온, 페랑기스, 켈로… 저 남자는 한쪽 눈에 이어 팔까지 하나가 잘려 나갔군. 중앙교회 사람들도 대거 보이고… 음? 저 우락부락한 자는 설마 그레이든인가?’
용사랭킹 3위의 무투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머리통만 한 철덩이의 목걸이.
걸걸함이 묻어 나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발부터 머리까지 쭉 훑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레이든.
곧 그가 내게 첫인사를 걸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실비실하게 생겼군! 저래 가지고 칼은커녕 포크와 나이프도 제대로 들 수 있겠나! 정말로 저런 애송이에게 중책을 맡긴다고?”
“…바르간 학생의 필요성과 고유술식의 효력은 이미 충분히 설명했을 텐데요?”
“X신 같은! 트리센나. 같은 마법사라고 보듬어 주는 건가 아니면 그새 눈이 맞은 건가!”
“지금 뭣…! 하아… 됐어요. 이런 자리에서 다투고 싶지도 않고 당신과 대화가 가능할 리 없죠. 어차피 다 모이면 다시 설명하려 했으니까 그때는 귀 파고 좀 들어요.”
“큼!”
“…….”
나는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 채 자리로 이동했다.
저 힘과 근육 지상주의인 녀석에게는 무슨 말을 하든지 별 의미가 없다.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할 그의 눈에는 마법사인 내가 마땅치….
“길게 설명할 거 있나! 아주 간단한 증명법이 있는데!”
“그레이든!”
이 자식.
생각했던 것만큼의 또라이였군!
돌연 대주교에 버금가는 살기가 느껴지자 나는 본능적으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상대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레이든.
그는 ‘일부러’ 살기를 잔뜩 띤 채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앉아 있던 테이블과 의자는 반쪽이 나 버렸고. 폭풍이 일듯 거센 풍압이 일었다.
찰나의 순간.
녀석의 주먹을 눈에 담은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걸’ 맞으면 곱게는 못 죽는다.
아무리 어둑이를 뒤집어쓰고 프로텍터로 감싸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박과 같이 터져 나갈 게 분명하다.
그레이든,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때.
쿠우웅—!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빛의 마나가 방패가 되어 그레이든의 일격을 막았다.
그 방패를 들고 있는 남성은 헤일리온.
평소의 온화함을 조금 덜어낸 그가 물었다.
“…그레이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죠?”
“하하! 헤일리온! 네가 나선 건가? 일이 재밌게 됐군!”
“어서 물은 바에 대답해요.”
“말한 그대로다! 녀석이 정말로 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내가 직접 나선 것이지! 이 정도에 죽어 버린다면 전장에서 활약은커녕 바로 뒤져버릴 테니까!”
콰지지지직—!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두 사람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레이든의 주먹은 헤일리온의 방패를 깨트리기 위해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헤일리온 역시 밀리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도를 넘었어요.”
“켁! 정도를 넘어? 알티프 그 괴물 새끼들은 봐줘 가면서 살살 하나?”
“…….”
“그래도 뭐… 하! 패기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구나…!”
씨익 웃음 짓는 그레이든. 그의 부리부리한 눈깔이 우리에게 향했다.
좌측에는 이미 나이아스를 꺼내 들고 베기 직전인 알리시아.
우측에는 워프 마법과 빙결 마법을 동시에 시전하기 위해 기본 구성식을 끝낸 에리카.
아마 헤일리온이 막지 않았더라면 그녀들은 정면으로 그레이든과 충돌했으리라.
“두 학생도 마나를 거둬요.”
“…….”
“…….”
헤일리온의 지시에도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는 두 여인.
내가 괜찮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겨우 한껏 달아오른 마나를 진정시켰다.
“쯧. 일이 싱겁게 흘러가는군.”
그레이든은 재미없다는 식으로 혀를 차며 살기를 거뒀다.
그 어떤 폭탄보다도 위험한 그의 주먹 역시 제 위치를 찾아 돌아갔다.
그를 마주하고 있던 헤일리온 역시 방패를 대기로 흩뿌리며 말했다.
“바르간 학생도 마찬가지예요. 이 자리에 걸어 둔 술식을 파기하도록 해요.”
“술식이라… 어떤 술식 말입니까?”
“모른 척하지 말아요. 막사로 들어오는 순간 바로 고유술식으로 이 공간을 채웠잖아요.”
“…그걸 알아내셨다니. 역시 제 하나뿐인 스승님이시로군요.”
내가 술식을 이미 건 상태라는 말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아니, 어떻게 보지 않더라도 이건 상당히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고위 관료들과 한 자릿수 용사들이 대거 모여 있는 공간에 저주 마법을 걸었다니!
이건 명백한 반역 행위이다—라는 식으로 몰고 가도 크게 이상할 게 없다는 소리다.
“스승님께서는 제자의 일에 관해서 모르시는 게 없으신 모양입니다.”
나는 헤일리온을 가볍게 칭찬하듯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 다시금 그의 능력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내가 완성시킨 고유술식은 공간 자체에 거는 것으로 술자인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 특징.
대주교인 비프로스조차 죽을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알게 된 것을 헤일리온은 간파했다.
역시 그가 사용하는 신성술은 내 천적과도 같은 마법임이 확실하다.
—즈즈즉.
나는 그의 말대로 고유술식을 해제했다.
술식의 해제만큼은 이곳에 있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저, 정말로 술식이…!”
“이게 보고로 들었던 저자의 고유술식인가!”
“지, 지금 그딴 게 문제인가? 불경을 저질러 놓고도 저리도 뻔뻔한 낯짝 좀 보게! 하마터면 저자가 우리를 죽였을 수도 있었던 일이네! 역시 저자는 위험인물이야! 신뢰할 수 없어!”
교회의 고위 관료들이 소란스럽다.
잘 보면 저번에 내가 심판무구를 받기 위해 나갔던 자리에 있었던 인원들이 몇몇 보인다.
일관되게 나를 싫어하는 것만큼은 칭찬해도 좋을 듯하다.
나는 그들을 둘러보다가 연기를 시작했다.
거짓을 잔뜩 담은 연기를 말이다.
“제 무례를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는 것을 잘 알지만. 부디 바다와도 같이 넓으신 아량으로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용맹하신 용사님에게 제 같잖은 목숨이 금방 꺼질 게 두려워 술식을 활성화한 것이었으니까요.”
“…바르간 학생. 그 말은, 그레이든이 바르간 학생에게 달려들 거라고 예상했다는 말인가요?”
“헤일리온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마법 실력은 변변치 않지만, 눈치 하나는 하늘이 놀랄 정도로 빠르거든요.”
나는 그레이든에게 시선을 옮기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어야 한다.
덕분에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말이다.
“막사에 들어선 순간. 그레이든 님께서 저를 시험하실 거라는 직감이 들어 방어기제로서 술식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헤일리온 님께서 막아 주실 거라는 것까지는 이 무지한 사고가 미치지 못하였군요. 알았다면 술식을 펼치지 않았을 텐데요.”
“…….”
그러자, 중앙교회의 한 늙은이가 외쳤다.
“그딴 말을 어떻게 믿나!”
당연히 믿기 힘든 말이다.
나 역시 어느 정도 갖다 붙인 말이니까, 말이 되지 않는 걸 알고 있다.
그레이든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으나.
애초에 이 막사 안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사실 나는 이 안에서 내 고유술식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자가 있는지, 만약 아무도 모른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야 여기에 있는 자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했다.
강자들이 득실거리는 막사 안.
내 술식을 실험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자리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의도로만 보면 중앙교회 고위 관료들의 의심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나의 무고를 증명한다.
무투가 그레이든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의 또라이였고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내 고유술식은 정말로 방비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나는 그들에게 위협을 준 동시에 그만큼의 ‘능력’을 증명해 냈다.
마법이나 검술, 그 어떤 분야든지 한 축을 차지한다는 자들이 감쪽같이 모르지 않았는가.
지금의 경험은 그들에게 오싹함으로 다가왔을 터.
쉽게 말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잘만 사용하면 전쟁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어 준 것이다.
이어서 나는 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미꾸라지처럼 그들의 의심과 헐뜯음을 피해 내 죄를 최소화했다.
그들에게 나의 필요성에 대해서 은근슬쩍 설파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물론 잡설과 비난이야 돌겠다만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할 테면 실컷 하라지.
“그레이든 님. 어떻습니까?”
나는 그레이든의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가 태평하게 물었다.
“이 정도면 저도, 제 고유술식도 나름 쓸 만하지 않겠습니까?”
내 존재가 아무리 의심스럽고 못 미덥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긍무진하다.
하다못해 적진 한가운데로 워프만 시켜도 궤멸적인 손해를 적들에게 안겨 줄 텐데 나를 활용하지 않을 리가.
그런 내 호기가 전해졌는지 그레이든은 새하얀 이빨이 보일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지으며.
“이거, 상상 이상의 또라이였군.”
그만의 인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