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6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67화(267/350)
아카데미아의 상태가 이상하다.
분명, 예정대로라면 붉은 장막을 거둔 아카데미아는 곧바로 재소환될 것이었다.
‘그런데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퍼붓더니 가미긴이 들어간 지금은 방어막을 재가동시켜 완전히 출입을 봉해 버렸어….’
서군(西軍)의 총책임자.
용사랭킹 2위의 정령술사 페랑기스.
약 7천의 병사를 데리고 장막이 깨져 버리기만을 기다리던 그녀는 중앙 상공에 떠 있는 아카데미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은 피부에 어울리지 않는 주름이 생겼고.
그런 그녀의 수심을 더욱 깊게 하는 건 바람의 정령이 전해 온 소식이다.
—페랑기스. 가미긴의 전력 확인이 끝났어요.
—확인된 주요 전력은 추기경 가미긴, 대주교 사브나크, 대주교 살레오스, 대주교 글라샬라볼라스.
—주교는 736마리이며 특이체는 3만 4천.
—일반 사제는… 대략 82만이에요.
무려 85만에 육박하는 전력.
이에 대항하는 병사가 정예들이 아닌 일반 병사 4만이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어지는 끔찍한 학살이 자행될 게 분명한 판.
가미긴의 행적이 뜸했던 기간과 그동안의 피해를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했던 범위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승리를 장담함 수 있는 세력은 결코 아니었다.
정령의 대화를 홀로 듣게 된 페랑기스는 간부진에게만 이 사실을 전하고 일반 병사들에게는 전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가미긴의 출현으로 대폭 깎여 버린 사기다.
더 이상 깎이게 되면 있었던 승산도 무로 돌아가 버릴 수 있다.
‘그렇겐 안 되지. 이번 전쟁에서 패배란 존재할 수 없어.’
전쟁에 들어간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생각하면 패배 후 복원이 어려움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은 냉혹하고 정확하다.
승자만이 모든 영광과 수혜를 독식하고.
패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뿐이다.
그렇기에 페랑기스는 그녀와 계약을 맺고 있는 수십의 정령들 중 가장 상징이 되는 정령 그중에서도 빛의 왕을 소환했다.
비록 정령에게 육신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고귀한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는 사실만 보여 주어도.
큰 힘이 되어 기세를 드높였다.
구구구궁—!
최선두에서 군을 지휘하는 페랑기스와 거대한 빛의 정령.
그 뒤를 힘차게 달려드는 병사들.
그들의 목적지는 숲의 중심부로 ‘가미긴의 둥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가미긴의 둥지는 상당히 ‘골치 아픈 것’으로 악평이 나 있는데.
예상외로, 최우선 목표였던 가미긴이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버린 이상 그녀의 군대가 노리는 건 둥지의 핵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알티프와의 충돌이 발생했고.
병사들은 검과 지팡이를 휘두르며 맞서 싸웠다.
서걱—!
—크르에엑!
“알티프 따위의 저항에 두려워하지 말고 진격하라!”
“우리의 무기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
두 주인공인 리암과 아르텔리온은 페랑기스의 군부대 중 하나의 분대에 속했다.
리암은 푸른 전류를 일으키며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고 지성이 없는 알티프들의 목을 떨구었다.
‘…정말 끝도 없이 몰려드는군.’
검에 오러를 두르지 못했다면 이미 날이 다 나가 버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은 수의 적들을 베었고.
달려 나갔음에도 아직 중심부에는 이르지 못했다.
‘서군이 가장 속도가 빠르고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중심부에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알티프가 이렇게 많아서야 막막해.’
대부분의 알티프들은 정령왕과 페랑기스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지만.
그렇게 썰려 나가면서도 몸집을 유지할 정도로 적의 머릿수가 대단했다.
이래서야 시간 안에 도착해서 이미 중심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비공정 부대를 지원하기 어려울 것만 같다.
츠즈즉—!
알티프를 반으로 가르며 전진하고 있던 리암은 공중에 떠 있는 비공정들을 바라봤다.
저곳에서 느껴지던 바르간의 거대한 기운이 사라졌다.
바르간은 아마 계획에 따라, 다른 용사의 도움으로 아카데미아가 본래 있던 위치에 에리카와 워프했을 터.
그러나, 정작 아카데미아가 협조를 하지 않고 가미긴이 들어서 있는 상태여서야 워프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올 터였다.
‘그런데… 묘해. 벌써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안 돌아 온 건가?’
시간을 절대적으로 아끼는 바르간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
설마… 오늘이 4월 28일이라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소설 속 바르간의 약점인 불치병. 그 증세가 도드라지는 오늘.
그런데도 그는 에리카에게 막대한 양의 마나를 공급했으며, 고유술식을 사용하여 이 땅에 2만의 검은 알티프를 출현시켰다.
틀림없이 영혼과 신체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을 터.
이번엔 또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리암. 검의 흔들림이 커졌다.”
그건 정신을 차리라는 뜻이었다.
리암에게 말을 건 목소리는 이렇게나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급하지 않았다.
유난히 냉철하고 또렷하다.
‘아르텔리온?’
자신에게 말을 건 의외의 인물.
오셀 왕국의 왕자.
아카데미아에 입학하고 나서 원작의 주인공인 그와 접점이라고는 전혀 없어, 놀랍게도 단 한 차례조차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나마 안면식이 있다면 바르간이 에리카와 함께 아카데미아를 나가 있던 선거 시즌 정도일까.
‘아르텔리온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걸다니.’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사안에 연연해할 때가 아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표정을 숨겼다.
사사사삭—!
아르텔리온을 따라다니는 붉은 단풍들.
알티프들을 감싸 갉아먹어 버리는 검이 되기도, 공격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되기도 하는 그 오러의 무리.
화려하면서도 결코 위세를 잃지 않는 아르텔리온이 말을 이었다.
“지금껏 그대의 검술을 봐 왔었다. 검술명가라고 불리는 하이오드도 놀랄 정도의 쾌검. 푸른 전류를 동반한 위력. …그대의 검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
“…….”
아르텔리온은 예전부터 리암을 인지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어느 정도의 인정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사실에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해도 그러기 어려웠다.
리암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자 눈가에 힘을 모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제대로 정신 차릴게.”
“앞에 다가오는 사제급 다섯을 노려라. 나는 그 양옆에 있는 특이체 둘을 베겠다.”
함께 달려 나가던 아르텔리온은 눈앞에 돌격하고 있는 알티프들을 보며 지시를 내렸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힘을 합치자고 말한 셈이었다.
파지직—!
마치 전선을 따라 급히 흘러가는 전류처럼.
리암은 다섯 마리의 사제급 알티프를 금세 베어 버렸다.
아르텔리온은 붉은 단풍과 둘로 나뉘어 각각 한 마리씩 미노타우르스를 형상화한 특이체를 잘라 냈다.
처음이었음에도 둘의 협동은 꽤 자연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거면 된다.”
아르텔리온이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리암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박차를 가했다.
페랑기스의 서군은 적 세력을 관통하며 중심부로 맹돌진했다.
***
한편, 남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본대.
이곳의 상황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헤일리온과 함께 아카데미아에 치고 들어가기 위한 특별 편성 부대는 준비되었으나, 아군의 침입조차 거부하는 아카데미아의 방어막 때문에 결국 본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계획대로 물러나지 않고 가미긴을 초대한 굴레마시아.
파울라의 몸에 발현된 특이한 문양과 힘의 이양.
결국 용사들은 위대한 마법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게 되었고. 그 뜻을 가슴에 품은 채 용맹하게 맞서 싸웠다.
설령 굴레마시아가 가미긴을 사지에 끌고 가지 못하더라도.
방어막이 사라지고 나올 녀석을 충분히 사냥할 수 있게끔, 판을 꾸려야 했으며.
동시에 지금의 상황은 용사들에게 있어서도 알티프를 섬멸할 기회였다.
추기경 가미긴의 자리가 빈 지금. 주교들과 대주교들을 보호할 강대한 적이 사라진 것과 같았으니까.
“적들의 포위에 당황하지 마라! 어차피 대부분이 지성도 없는 개체들이다!”
“수가 부족한 것은 이미 상정했던 일이 아닌가! 둘러싸이면 뚫고 가면 그만이다!”
“성스러운 검으로 녀석들의 심장을 꿰뚫어라!”
본대의 전력은 막강했다.
용사랭킹 3위 그레이든.
용사랭킹 6위 헤일리온.
그리고, 비록 한쪽 팔과 한쪽 눈을 잃었지만 용사랭킹 8위의 켈로까지.
한 자릿수의 용사가 셋이나 있으며.
더군다나 현재 동군. 용사랭킹 7위 트리센나 부대가 알티프를 소탕하고 이곳으로 합류하러 오는 중이었다.
비록 대주교가 한 마리도 없는 동쪽의 알티프 세력이 가장 취약하여 이뤄질 수 있었던 합류였지만.
이 승리는 전군에게 크게 다가왔다.
“죽여라! 저놈들을 죽여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우와아아아아!””
케르르륵—!
크리릭—!!
용사들이 본대로 쳐들어온 것을 막듯.
가미긴의 세력 역시 다른 곳들보다 많은 알티프들을 배치했다.
대주교 사브나크.
대주교 글라샬라볼라스.
대주교 살레오스.
세 마리의 대주교가 이곳에 있었으며.
글라샬라볼라스를 제외하면 모두 권능해방을 마친 상태였다.
『크륵—.』
키메라를 연상시키는 글라샬라볼라스.
녀석이 맹견과 같이 병사들의 무리를 달려들면 지나간 곳은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살짝만 닿아도 썩어 버리는 힘에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고.
그 괴물이 신나게 놀아 재끼는 꼴을 볼 수 없었던 무투가 그레이든이 적토마처럼 달려들어 양손으로 글라샬라볼라스를 멈췄다.
“하하하! 개X끼 한 마리가 신나서 지랄 발광을 하는구나!”
막상 그렇게 말을 하는 그레이든이 훨씬 신이 나 보였다.
오랜만에 대주교를 상대하게 된 그레이든은 그동안의 한을 원 없이 풀고자 그 어떤 때보다 견고하고 두꺼운 프로텍터를 전신에 두른 채 글라샬라볼라스를 상대했다.
그의 오러는 부패의 힘도 뚫지 못했고.
글라샬라볼라스는 몸의 형태를 바꾸어 ‘물리력’으로 상대했다.
“근육을 잔뜩 키운 건가! 나도 한 근육 하는데 어디 한번 붙어 보자꾸나!”
쿠왕—!
콰앙, 콰아앙—!
한 사람과 알티프 한 마리.
아니, 어쩌면 괴물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장.
그레이든은 그 덩치에 나올 수 없는 속도를 보이며 주먹을 휘둘렀고.
글라샬라볼라스는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반격하거나, 다섯 개로 나눠진 근육질의 촉수를 사용해 밀리지 않는 가격을 연이었다.
다른 병사와 간부들이 그들의 전투에 개입하여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레이든은 되레 성을 내며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는 말을 내뱉었다.
즈콰아앙—!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주교 살레오스의 거대한 일격이 세상을 한순간 밝혔다.
살레오스와 싸우고 있는 인물은 헤일리온과 그의 팀원들.
알리시아는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이 갔지만 자신이 맡은 구역도 아닐뿐더러 별도로 움직일 수도 없었기에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키에엑!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나이아스를 휘두르며 적들을 베어 갔다.
겉에서 보면 전혀 학생이라고는 밑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날렵한 솜씨였다.
알리시아는 전처럼 궁사이자 친구인 세레나와 같은 분대에 속했는데.
아카데미아와 실전에서 여러 번 연계를 한 경험이 있어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가 어디를 어떻게 노릴지 예상이 됐다.
『내, 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어! 난 모두가 우러러보는 여신교의 주교 카—!』
수걱—!
나이아스의 검신에 둘러싸인 붉은 오러가 주교의 심장을 뚫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주교는 더 없이 커진 동공으로 알리시아를 바라봤고.
알리사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붉은 오러의 범위를 넓혀 녀석의 핵과 함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
아주 잠시지만 숨 고를 시간을 얻은 알리시아와 분대원들.
알리시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 내려 했으나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따끔거렸다.
그녀의 얼굴에 긴 자상이 생겨 피가 흐르는 것이었는데 곧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말끔하게 회복되었다.
—뀨욱!
투명하게 몸을 숨긴 채.
알리시아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작은 사역마.
족제비를 닮은 하얀 털뭉치는 알리시아에게 소량의 마나를 꾸준히 제공하며 치유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사역마는 대개 계약자의 마나를 뺏어 가는 대가로 무언가를 주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 아이는 마나가 아닌 먹이가 그 대가였다.
치유 마법이 성녀의 기적처럼 대단한 건 아니었어도 지속적인 전투를 하고 있을 때나 깊지 않은 상처에는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바르간이 괜히 너를 데려온 건 아니었구나.”
그녀의 주인과 어딘가 닮은 목소리.
슈겐하르츠가의 장남 라인카르벤은 알리시아의 무력을 높이 평가했다.
아카데미아에서부터 눈여겨봐 오긴 했지만, 이렇듯 다시금 보게 되니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아.”
“대답은 됐다. 대화를 나눌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니까.”
라인카르벤은 알리시아의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곧바로 거대한 충격파가 일면서 주변의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카자자자작—!
알리시아는 황급히 나이아스를 땅에 박은 뒤 강풍을 버텨 냈다.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자색 마나가 터져 나온 곳에서 반경 100m 정도의 숲이 마치 채를 썬 듯 옆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죽여… 죽여…. 모조리 죽여. 끼히힉!』
그 중심부에는 대주교 사브나크가 있었다.
녀석의 몸은 전신이 무기였는데. 칼처럼 날카로운 양팔로 두 남자를 상대하며 치열한 불꽃을 튀기고 있다.
대주교를 상대하고 있는 두 명의 남자는 한 자릿수 용사 켈로와 마데레로의 리더이자 바르간의 전투 노예였던 브람이다.
사브나크는 다른 대주교들보다도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말들이나 웃음소리를 뱉었는데.
녀석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지며 말했다.
『한 놈 처치. 끼히히힉!』
쩌억—.
몸이 좌우로 나눠진 남자.
하나였던 몸은 끔찍한 단면을 보이며 양옆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 인물은
교회의 중요 역할을 맡는 한 자릿수.
용사랭킹 8위의 검사 켈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