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6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68화(268/350)
평생을 전장 속에서 살아왔던 용사 켈로.
그는 용감무쌍하게 대주교 사브나크와 싸웠고.
자신의 팀원들과 다른 병사들을 구하는 대신 반으로 갈라져 죽는 최후를 맞이했다.
“……!”
알리시아는 그 현장을 보았다.
주변에 커다란 뱀 형태의 붉은 오러가 일렁였다.
그 오러는 주인인 켈로가 아닌, 오랜 팀원들과 숭고한 뜻 아래 모인 병사들의 주위에 남아 있었다.
붉은 뱀의 형상이 무너져 갔다.
바람에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듯. 더 이상 마나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뱀 역시 사라졌다.
『키히히히—!』
대주교 사브나크가 그 웃음을 조롱하듯 웃었다.
만곡하게 휘어진 녀석의 입꼬리. 괴이함마저 느껴지는 녀석의 눈이 브람을 바라봤다.
『다음은, 너야.』
사브나크는 일격 밖으로 밀려난 켈로의 팀원이나 다른 병사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이 보고, 그의 입이 말하는 건 오로지 강자.
상대할 맛이 나는 강자들뿐이다.
카각—! 카가가각—!
브람의 창이 쇄도한다.
부르템베르크의 무신이라고 불리는 브람.
그의 창은 최정상급 주교 한의 심판무구를 담아 날카롭고 빨랐다.
『키히히! 키히! 키히히!』
순식간에 몇십 합이 이루어졌다.
브람의 창이 부딪힐 때마다 스파크와 불똥을 튀겼다.
권능해방을 한 사브나크의 전신은 그 자체로 무기였는데.
때로는 창으로, 때로는 검으로, 때로는 철퇴로 몸의 일부를 변화시키며.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동작과 방식으로 브람에게 몰아쳤다.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다!’
둘의 전투를 바라보던 대부분의 병사들이 생각했다.
브람과 격이 맞는… 가령 켈로와 같은 검사라면 모를까.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그의 도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발목만 붙잡을 게 뻔했다.
솨사사사삭—!
브람의 창은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올라갔다.
마치 지금까지는 예열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그는 창이라는 무기를 속공으로 찔러 댔고.
더욱 노련하게.
더욱 공격적이게 바꿔 갔다.
쉬우웅!
브람이 내찌르고 있던 창을 양손으로 붙잡은 채 몸과 함께 돌렸다.
뾰족한 창날을 이용한 찌르기가 아닌 옆 날을 이용한 타격.
창대가 한순간에 원을 그리며 사브나크가 미처 방어하지 못한 곳을 때렸다.
하지만.
『키히—.』
사브나크의 옆구리에 박힌 창.
녀석은 오히려 미소를 지은 채 그 창을 빨아들이려 했다.
창이 늪처럼 빠져들려 하자 브람은 당황하지 않고 창대를 비틀어 더욱 마나를 높였다.
그러자, 붉은 오러가 빛의 세기와 함께 저항성을 상승시켰고.
서걱—!
브람은 녀석의 몸을 위아래로 양분해 버렸다.
“오오!”
이를 보던 몇몇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환호했다.
핵을 베었나?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런 마나의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붉은 오러로 베었으니 아무리 재생 속도가 빠른 대주교라고 해도 애를 먹을 터.
그사이에 핵을 파괴시키면 대주교를 죽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키히히히.』
사제급, 또는 주교와 싸우며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병사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려 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눠진 사브나크.
녀석의 두 몸이 슬라임처럼 움직이며 솟아올랐다.
반고체 형태의 그 뭉텅이들은 곧바로 형체를 완성시켰으며.
사브나크가 둘.
대주교가 둘이 되었다.
“이, 이럴 수가… 녀, 녀석에게 이런 힘이 있었단 말이야…?”
“이런 건 지금까지의 보고에 없었잖아!”
겁에 질린 병사들이 외쳤다.
한 마리로도 벅찬데 두 마리?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늘어날지 모른다고?
과연 승산이 있기는 하단 말인가…?
『키히히히히—!』
섬뜩하게 들리는 녀석의 웃음소리.
두 마리의 사브나크는 동시에 브람에게 달려들었고.
눈으로 보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브람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창을 휘둘렀다.
“브람 님—!!”
또 한 마리의 알티프를 벤 알리시아가 외쳤다.
브람이 위기를 직면하자 몸이 절로 나서려 발이 내뻗어졌다.
그런 알리시아를 라인카르벤이 막아섰다.
“어딜 가려는 거지?”
“브람 님께서 위험하세요! 얼른 가세를 해야…!”
“가세를? …네가 말인가?”
라인카르벤은 담담하게 현실을 내밀었다.
거기에 알리시아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되레 그녀의 재능과 무력을 제법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 싸움에 끼어도 될 정도로 성취가 대단하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냉혹할지라도 이게 현실이다.
“축제 때 대주교 베리스와 전투를 벌였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군.”
“…예?”
“넌 대주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네가 축제 당시 베리스에게 검을 휘두르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천운(天運). 결정적으로 녀석이 권능해방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리시아는 대주교와 마주쳤던 일들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조우했던 대주교 자간.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던 그녀는 권능해방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두 번째로 조우한 게 대주교 베리스. 그녀 역시 아카데미아의 틈새를 들어오기 위해 힘의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브람 님께서….”
“브람…. 그래, 저자의 이름은 브람이었지.”
라인카르벤은 사브나크와 맹렬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브람을 바라봤다.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라인카르벤의 무뚝뚝한 눈은 순간 과거로 향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혼잣말했다.
“바르간. 그 녀석은 신기한 인재들을 잘도 사 오는구나.”
“네?”
“너도, 브람도…. 다른 이들은 너희의 힘을 알아보지 못했을 텐데.”
라인카르벤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슈겐하르츠가에서 일했던 알리시아는 장남인 그가 웃는 걸 처음으로 보았는데.
피는 속일 수 없는지, 바르간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인 리엘을 대하듯 알리시아의 머리를 가볍게 밀며 돌아섰다.
“알리시아. 이번에 ‘너희’에게 내려진 임무를 상기시켜라.”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의 학생들에게 내려진 임무.
그것은 주교와 사제급을 처치하는 것.
그나마도 주교를 상대할 때는 반드시 최소 네 명의 팀원이 함께하라는 당부가 있었다.
라인카르벤은 이제 막 다른 주교와 사제급을 흙으로 돌려보낸 가문의 차기 가주들과 함께했다.
각 유망한 가문을 대표하는 자제들로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수재들의 분대였다.
“너희는 아직 저들을 상대하기 이르다.”
아우우우—!
—크르릉!
라인카르벤과 그 분대가 브람을 가세하기 위해 달려 나가자.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역마가 뒤를 쫓았다.
슈겐하르츠의 명성을 강제로 각인시키듯. 그 사역마들은 하나 같이 중급 이상의 개체였으며.
잘 훈련되어 두려움이 없는 듯 보였다.
『키히히히! 먹이… 먹이가 늘었네!』
한 걸음에 사브나크에게 다가가자.
이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녀석.
사브나크는 라인카르벤을 강자로 인정하며 상대했다.
나름 전장에서 오래 굴렀던 병사들도 좀처럼 끼어들지 못했던 브람과 사브나크의 결투.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적극적으로 대주교를 위협하는 라인카르벤의 분대.
알리시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끼는 동시에.
분하다고 생각했다.
서걱—!
아직도 멀었다.
한참을 더 가야 한다.
검술도 마법도 더욱더 갈고닦아야 한다.
—끄르에엑!
—케게겍!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곱씹고 또 곱씹어 알티프를 베었다.
힘을 키워야 한다.
언니도… 브람 님도….
그 자리에 끼지 못하는 건 자신의 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걱—!
알리시아는 다시금, 억지로 다른 곳에 가는 관심을 죽이고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했다.
일반 사제.
특이체.
주교.
그들의 목을 베고 심장을 꿰뚫고, 팔다리를 잘라 버리면서.
언젠가 더 강한 괴물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날을 기약하며.
바르간의 검이 되기 위해 날을 갈았다.
…….
그리고 이때.
이들과 다소 떨어진 숲의 중앙.
바르간과 에리카가 타고 있던 비공정에 비상이 걸렸다.
“아직도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나?”
“아, 아직 확인 중입니다!”
“이런 젠장! 톰! 그 정신머리 없는 녀석! 사역마를 멋대로 이동시킨 것도 모자라. 이 중요한 순간에 대체 그 학생들을 어디로 데려간 거야!”
리더 격인 한 용사가 분노를 토했고.
이곳저곳에 연락을 취하며 알아보고 있는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전장의 흐름은 이어졌다.
쿠구구구궁—!
그렇게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
땅이 진동을 하다 못해 솟아올랐다.
마치 대주교 비프론스가 바르간과 싸우기 위해 권능을 발휘했을 때처럼 돌연 머리를 내민 산.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나.”
비공정 아래를 내려다보던 용사랭킹 5위의 궁사 타우롬이 중얼거렸다.
생명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고.
단순히 물체라고 말하기에는 이질적인 그것.
“어마어마한 크기로군.”
‘녀석’은 비공정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계속해서 몸을 내뻗었다.
길게 늘어진 지면에 숲의 나무들은 토류와 함께 쓸려 내리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병사들은 온갖 술식과 활을 떡 벌어진 녀석의 입안에 발사한다.
“노려야 하는 건 녀석의 핵이다! 저건 그저 커다랗기만 할 뿐인 ‘둥지’일 뿐이니—!”
공중에 떠 있던 비공정까지 닿을 정도로 올라오는 자연(自然).
숲의 중심부에 숨어 있던 가미긴의 둥지가 파괴를 노래하며 식을 탐하기 시작했다.
***
“이상하다. 왜 아무도 없는 거지?”
300위 대의 용사.
워프 마법의 사용자 톰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상해서 말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봤지만 워프의 좌표가 틀린 건 아니었다.
과거에 자신 역시 아카데미아에 다녔기에 주위의 환경만 보더라도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기존에 아카데미아가 있던 곳임이 틀림 없는데….’
톰은 통신 역할을 하는 새 사역마로 연신 동료들을 불러 댔다. 그러나 좀처럼 반응이 없어 다시 비공정으로 돌아가려 하니 시야를 공유하는 사역마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톰은 난처함을 표하며 함께 온 에리카에게 물었다.
“혹시 너는 사역마와 연결돼?”
“…….”
에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까막이와 연결이 안 되어 워프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시가 급한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 이들은 아주 곤란하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비공정은 연락도 안 되고. 사역마들은 먹통이고. 결정적으로 여기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계획대로라면 톰은 이 두 학생을 이곳으로 워프시킨 뒤 기다리고 있던 용사들을 만나야만 했다.
에리카가 아카데미아가 이동할 좌표를 고정하고. 바르간은 마나를 공급해서 아카데미아를 다시금 워프시켰어야 했단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이들이 이동을 했을 때는 시야를 공유하는 사역마 한 마리만 덩그러니 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씨… 어쩌지.”
톰은 머리를 긁으며 슬쩍 바르간의 안색을 살폈다.
학생임에도 전쟁의 중요책을 맡으며 마나 총량이 초월에 오른 천재.
반면 워프 마법이 고위에 머물고 있어 고작 학생들의 운반책 역을 맡은 자신.
그 명확한 간극과.
바르간이 생긴 것도 사납고 욕설을 퍼부을 것 같이 생겼으니 괜히 더 눈치가 보였다.
“저… 아무래도 좀 찾으러 다녀야 할 것 같은데?”
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장 연장자이자 실전 경험이 많은 자신이었지만. 일이 계속해서 꼬여만 가자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톰을 바라보던 바르간이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이 X신이! 야, 이 새끼야! 너 빨리 정신 안 차려?!”
“…뭐, 뭐? 지금 뭐라고?”
들려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톰은 제 귀를 후벼 팠다.
애초에 바르간의 표정과 대사가 너무 이질적이다. 얼굴은 세상 무탈한 듯한데 내뱉는 언어가 자신의 선임 용사를 보는 듯 거칠었다.
그런 톰을 이해시켜 주려는 건지, 이번에는 바르간이 톰의 뺨을 휘갈기며 외쳤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이 X발 새끼야!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야, 야…! 내, 내가 아무리 뻘짓 좀 하고. 만만해 보여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아, 아야야… 손은 또 왜 이렇게 매워?”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뺨을 맞은 톰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자신의 얼얼한 볼을 만지며 도로 바르간을 바라보는 톰.
그런데, 바르간의 생김새가 조금 이상하다.
아니… 그 옆에 있던 에리카 역시 괴상하다….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다고나 할까? 왜 저렇게 보이는 건지 이해가….
‘…어?’
눈을 깜빡거리며 앞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톰.
분명히 이 자리에 있던 바르간과 에리카는 사라지고 익숙한 선임,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중 바르간의 위치에 있던 선임 용사가 톰의 멱살을 잡고 올렸다.
그는 이 녀석이 이제야 좀 정신머리가 돌아온 것 같다면서 성질을 부리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너 왜 지금 여기 혼자 왔어? 바르간이랑 에리카인지 하는 학생들은 어디다 두고?”
“예예, 예…?”
“네가 워프시켜야 했던 학생들은 어디다 두고 혼자서 이런 곳으로 쳐 왔냐고!”
“아니 그게 무슨…?”
“상황 파악이 안 돼? 야, 내가 알게 해 줘?!”
톰의 멱살을 잡고 있던 용사는 이번엔 그의 머리통을 두 손으로 잡으며 강제로 주변을 둘러보게 했다.
낯선 장소.
여긴 아카데미아가 원래 있던 곳 따위가 아니다.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톰의 사역마 고양이.
그래… 톰은 저 고양이를 원래 위치에 배치해 두어 시야를 확인한 뒤 워프를 했었다.
그런데 왜 지금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너 뭐야? 톰! 이 새끼야. 너 뭐 여신교라도 돼? 그래서 이딴 짓을 저지른 거야?!”
선임 용사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톰의 귓구멍을 강제로 뚫리게 했다.
“대체 그 둘을 어디로 워프시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