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6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69화(269/350)
쿠구구구궁!
전장의 한복판.
가미긴의 둥지가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며 비공정들을 향해 입을 벌려오는 때.
전장의 소음은 지칠 줄을 모르고 세상을 울려 댔으나, 방어막으로 둘러싸인 아카데미아에 전장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콰가강—!
쿠과가가각—!
그러나, 두 존재의 격돌로 인해 아카데미아는 굉음으로 가득했다.
고오오—!
전성기 이상.
마법사의 극치를 보여 주듯 성스러운 교회에 가득 찬 굴레마시아의 마나.
그 힘에 따라 공중을 부유하는 온갖 사물들은 오로지 그의 명령에 복종하며 추기경 가미긴에게 포탄과도 같이 쏟아진다.
그때마다 가미긴은 정면으로 부딪히며 모든 것들을 파괴한다.
『카하하하하하!』
가미긴의 웃음소리와 함께 퍼진 불쾌한 연기.
치명적인 독성을 담은 그 연기는 모든 사물을 녹였으며.
그에게 닿는 물체들 역시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문드러진다.
그림자처럼 검은 가마긴의 손끝은 그 안을 파고들어 굴레마시아에게 내뻗어진다.
살짝만 닿아도 바로 죽을 것만 같은 지독한 독기와 그의 끔찍한 권능이 그 끝에 어려 있다.
즈응—!
굴레마시아는 워프 마법을 사용해 그와의 접촉을 피했다.
다시금 멀어진 두 사람의 위치. 굴레마시아는 긴 수염을 쓸며 상황을 파악했다.
“호호호…. 역시 당신에게 일반적인 사물체의 구성은 통하지 않는군요.”
대부분의 생물이라면 그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움직이지 못할 상황.
그러나 현 마법사의 정점인 굴레마시아는 마치 한 명의 사냥꾼과 같이 매서운 눈초리를 한 채 최후의 사냥감을 상대했다.
그 모습은, 학생들을 좋아하며 인자한 웃음을 짓던 평소의 그와는 사뭇 달랐다.
굴레마시아는 지금 아카데미아의 총장이 아니라.
알티프를 토벌하려는 한 명의 용사였다.
탁—!
굴레마시아가 짚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정확히는 허공을 짚었으나 마치 딱딱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소리가 났고.
그 즉시 사방을 부유하던 물체들에 얇디얇은 오러의 막이 생겼다.
가미긴의 독기로부터 사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굴레마시아는 발전 형태의 프로텍터 역시 사용할 수 있었다.
『카하하하! 그래, 명색이 영웅이라고 추앙받는 자인데 마땅히 이 정도는 되어야지—!!』
커다란 교회의 안.
그 안을 꾸미고 있는 화려한 굴레마시아의 마법들.
동화처럼 환상적이고,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지금의 광경이 가미긴은 퍽 마음에 든다는 듯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지금 이 전장에서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 초월급 성취만 5개.
마나 총량, 원소, 워프, 염동, 오러.
그런데도 대마법사 굴레마시아는 전혀 무리 따위 하지 않고 있다는 듯 이지적인 눈동자를 온연히 빛냈다.
마치 끝이 짐작되지 않는 우물처럼 깊으며 미지의 두려움조차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가 조우했던 그날이 떠오르는구나…. 굴레마시아.』
가미긴은 굴레마시아의 눈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그와 전투를 벌였던 때.
벌써 100년도 더 된 이야기. 추기경 가미긴이 단독으로 대도시에 쳐들어가 초토화를 시켜 버렸던 날.
당시 긴급 파견되었던 용사들은 가미긴에 의해 전멸 당했으며.
살아남아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오직 유망했던 젊은 마법사 굴레마시아뿐이었다.
『워프 마법만 아니었더라도 너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지.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네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그때 잡지 못했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가미긴은 붉은 이빨을 드러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이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굴레마시아.
제3자가 봤을 때, 이는 적의 혀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한 함묵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오랜 세월동안…… 몇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을 봐 온 가미긴은 알았다.
『아, 그래.』
동공의 구분이 없는 것인지 눈동자 전체가 용암처럼 시뻘건 가미긴의 눈동자에 동산과 같은 굴곡이 지어졌다.
『지금의 너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기억을 먹는 자. 추기경 가미긴.
때문에 전쟁광이라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싸우고 싶어 하지 않으며.
마주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 누구도 머물고 싶지 않아 한다.
혹시나 그의 권능이 발동할까.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이다.
쿠웅—!
대답을 대신하듯 굴레마시아는 오러의 층이 덮인 정육면체의 강철들을 움직여 상하좌우에서 가미긴을 짓눌렀고.
가미긴은 피하기는커녕 자색 마나를 터트리며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염동으로 움직여지고 있던 물체들은 양옆의 압력을 이겨 내지 못했고.
밟은 빈 캔처럼 찌그러졌다.
가미긴의 불길한 눈은 오롯이 굴레마시아에게 향해 있으며 곧장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비틀어 버릴 것만 같다.
고오오—!
곧바로 굴레마시아는 10개의 검은 구체를 가미긴의 주변에 만들어 냈다.
그 구체들은 모두 최대한의 원소 마법이 응축된 것이자, 모든 것을 찢어 버릴 작은 블랙홀.
굴레마시아의 첫 번째 고유술식.
상대가 설령 극도로 몸이 단단한 알티프라고 할지라도 정신없이 먹어 치울 힘을 가진 마법.
그러나.
상대는 전쟁광, 그리고 전투광.
싸움이라는 하나의 오락에 미쳐 있는 괴물이었다.
『카하하하하하—!』
자신의 신체가 어찌 되든 상관없는지 역시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가미긴.
그 때문에 몸을 이루고 있는 검은 형체들이 무더기로 사라져 갔지만.
녀석은 돌진을 멈추지 않는다.
‘피해의 정도가 미미하다.’
굴레마시아는 자신의 고유술식과 제대로 맞부딪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력을 잃지 않는 녀석의 신체에 눈살을 찌푸렸다.
10개의 구체를 모두 사용했음에도 저 정도.
다른 괴물들이라면 하나로도 충분히 파멸로 몰고 갈 수 있었을 터인데.
가미긴에게는 고작 살점을 도려내는 게 전부란 말인가.
즈으응—!
멈추지 않고 연이어 워프와 염동 마법을 사용하는 굴레마시아.
그를 뒤쫓으며 단 한 번의 접촉을 원하는 가미긴.
그 아주 짧은 사이에 나눠지는 수많은 마법과 격돌.
한 번 부딪힐 때마다 교회는 물론 공중 도시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떨렸고.
이는 아카데미아에 박힌 막대한 마석의 힘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여전히 도망치는 거 하나는 잽싼 놈이로구나!』
가미긴과 몸이 닿으면 대부분의 생물은 독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 즉시 죽는다.
그러다 간혹 버티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굴레마시아가 기피하는 건 그런 육체적인 손상이 아니었다.
『어지간히도 네 지식들을 잃고 싶지 않은 건 같지만… 과연 그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망각(忘却).
가미긴의 권능이 발동한 순간,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생물의 뇌에 새겨져 있던 정보들이 지우개로 지우듯 절로 사라져 가지만.
그 망각을 더욱 빠르게 조정할 수 있는 게 신체의 ‘접촉’이다.
다른 대주교들처럼 프로텍터로 몸을 보호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막을 수 없다.
추기경의 권능은 아무리 두꺼운 마나라 하여도 구리에 흐르는 전류처럼 전도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건 가미긴.
기억을 먹는 괴물.
이대로 있다간 굴레마시아만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릴 뿐인데…….
“…호호. 가미긴. 당신이 저를 자석처럼 따라와 주어 완성되었습니다.”
교회의 바닥과 공중.
보이지 않던 점과 선으로 이어져 있던 하나의 술식.
꽤 오랜 준비 과정이 필요한 또 하나의 고유술식이 그어져 순백의 빛을 발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가미긴은 전보다도 길게 입꼬리를 올리며 되레 그 술식을 반겼다.
『카하하—! 속력전을 펼치면서 이런 계산을 이루어 냈다는 건가! 천재는 이빨이 빠진 늙은이가 되어도 천재로군!』
굴레마시아는 그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워프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이 희대의 천재는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와중 모든 좌표값과 마법의 방정식을 계산해 가며 술식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발현되는 광범위 마법.
굴레마시아의 네 번째 고유술식
백악(百惡).
“본래는 이런 좁은 곳에서… 그것도 적 한 명을 위해 사용하는 마법이 아니라서 수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개량형.
일점백악(一點百惡).
하나의 점으로 집중된 세상의 모든 악.
“가미긴.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모순되게도, 그 악이 품고 있는 건 찬양하기에 마땅한 신성마법의 극한.
굴레마시아가 장장 5개월에 걸친 시련을 이겨 내고 얻어 낸 술식으로.
그 위험성과 신성 모독의 죄로 금술로 지정된 굴레마시아의 역작이었다.
『카하하하하하—!!』
빙그레 웃음 짓는 가미긴.
그는 전력을 쏟아 내며 이를 받아 낸다.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굴레마시아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그렇다면, 터져 나오는 쾌락에 몸을 맡겨 그저 맞서 싸울 뿐이다!
오랜만에 이런 긴장감을 느낄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거야말로 전장의 묘미, 전투의 정점이다!
그렇게 한 종의 꼭대기에 오른 두 존재는 다시금 부딪혔고.
백색의 빛과, 흑색의 연기가 서로 뒤엉키며 폭발을 하듯 터져나왔다.
* * *
먼지가 자욱한 아카데미아의 교회.
아니…… 교회였던 것의 잔해물.
웅장했던 건물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부서져 버렸다.
다중 마법으로 처리가 되어 있는 아카데미아의 건물들 중에서도 특히나 튼튼했던 교회였지만 지고한 두 존재의 충돌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쿨럭… 커허으으음…!!”
그 한 곳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굴레마시아.
멋스럽게 자라 있는 그의 흰 수염에도 그 잔해물이 묻어 붉게 물이 들었다.
“크흠, 끄흐으으음.”
숨을 뱉어 낼 때마다 녹슨 소리가 목울대를 울렸다.
굴레마시아는 남은 핏물을 뱉어 낸 뒤 건물의 벽을 구성하고 있던 주변의 돌덩이를 잡고 몸의 균형을 유지했다.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는 일점백악의 위력을 버티지 못하고 벼락 맞은 나뭇가지처럼 갈라져 버렸다.
전성기 이상의 힘을 최대치로 이끌어 낸 것이었으니 등외품에 올라 있는 유물이라고 할지라도 견디지 못했다.
“……부족했던 모양이로군요.”
굴레마시아는 늙은 눈썹을 슬쩍 들어 눈동자로 눈앞의 현상을 목도했다.
두근, 두근.
힘차게 뛰고 있는 시뻘건 심장.
신기하게도 몸의 중앙에 위치한 뼈나 살점과 같은 방어를 걸치고 있지 않다.
대신 심장의 곳곳에 연결된 검은 나뭇가지 같은 무언가.
그 나뭇가지를 타고 가면 비로소 육신으로 여겨질 만한 형태가 나왔다.
『감탄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건 더욱 악마의 형상에 가까워진 가미긴.
그 괴물의 모습이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르다.
머리의 양옆에는 기다란 뿔이 뒤쪽을 향하게 자라나 있다.
성인 남성만 하던 키는 그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크게 자랐으며.
무엇보다 감추어져 보이지 않던 심장이 떡하니 상반신의 중심에 위치하여 뛰어 댔다.
『이 모습이 아니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추기경 가미긴.
그의 권능 해방.
세상에 몇 번 보인 적 없다는 가미긴의 제대로 된 전투 모드.
『그래서 ‘제거’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마법이었지.』
가미긴의 소름끼치는 눈이 굴레마시아를 향했다.
굴레마시아는 독의 기운에 잠식된 오른손의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잠잠히 그를 마주했다.
분명 자신은 저 알티프에게 고유술식을 썼다.
그 술식을 위해서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했을 터이다.
하지만, 더는 기억나질 않는다.
초식은커녕 어떤 계열의 마법이었는지조차 완전히 잊어버렸다.
가미긴은 그 꼴을 보며 비웃었다.
『다음은 뭘 지워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