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7화(27/350)
지금으로부터 1년 후.
용사들의 주적, 알티프(Artife)가 아카데미아를 급습한다.
아카데미아에 전례 없는 비극이 도래한 것이다.
알리시아가 말하던 붉은 괴물들.
그들은 부르는 정식 명칭인 알티프. 그들의 세력은 전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며, 지금도 실시간으로 수를 불려 나가고 있다.
아카데미아를 덮치는 붉은 파도에 2학년이 된 주인공 일행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단단하게 아카데미아를 보호하고 있던 방어 체계는 파괴되고, 수많은 학생이 학살된다. 특히 그 시기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절반 정도가 사망한다.
2학년들도 상당수가 죽음에 이른다. 1학년들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었으나 결코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사망한 대부분의 이들은 기존에 뒤떨어졌던 이들.
에밀리와 핀도 그 무리에 속해 있다.
히로인이었던 에밀리는 죽는 장면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었으며, 단순 조연에 불과했던 핀은 나중에 죽었다고만 명시되었다.
평소 에밀리라는 캐릭터를 보고 의아했을 수 있다.
그녀는 주인공인 리암을 연모하지만 알리시아처럼 특출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며, 성격이 완만한 것 또한 아니다.
그런 그녀가 히로인이라니. 어떤 이가 좋아하겠는가. 누가 좋은 시선으로 보겠는가.
그래서인 것일까.
그녀는 죽는다.
정확히 말해, 죽어서야 도움이 된다.
그녀의 죽음에 리암은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분노에 포효하며 각성한다.
자신의 미숙함을 탓하고, 안일했던 지난 시간을 반성한다.
그녀는 주인공의 성장을 도와주는 발돋움 판이었다.
참혹한 전개지.
리암의 각성과 아카데미아의 비극은 이야기의 분위기가 매우 전환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깨달았다.
내가 빙의한 이 소설의 배경을 결코 밝지 않다. 주연이라고 해서 반드시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조연은 말하면 입만 아프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무리하지 않는다.
무리란 목표치에 비해서 과하게 임하는 것.
나는 평소 수면 시간을 2시간으로 잡았다.
틈만 나면 마력을 다스리며 자신을 함양하는 데 집중한다.
밑 작업을 하며 시기를 기다린다.
부족하면 부족했지 절대 과하지 않다.
내가 마주해야 할 앞으로의 전개란 그런 것이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넘긴 에밀리는 아마도 1년 후에….”
죽으려나.
하긴, 그것도 괜찮기는 하지. 그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면야.
핀 녀석은 잔뜩 긴장한 눈으로 마른침을 삼켰는데, 과연 어떨지.
“음?”
필수 교양 수업을 듣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자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찡그린 표정을 바로 하며 나를 무시하려 든다.
이거 또 섭섭하게 하시네.
“어차피 같은 수업인데 함께 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주위의 시선도 있으니 말이다.”
“…….”
“환영회 무대에서는 둘도 없는 호흡을 보이지 않았느냐. 나는 그때 네가 나에게 온전히 마음을 연 것으로 보았다만?”
“웃기지도 않는 소리.”
약혼녀인 그녀가 당돌하게 대응한다.
단어 하나하나에 가시가 돋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한 거였잖아. 가문만 아니었다면 내가 너를 찾아갔을 일도 없었을 거고, 억지로 표정을 지으며 춤을 출 일도 없었을 거야.”
“그런 것치고는 꽤 괜찮은 표정이었는데 말이지.”
“그만큼 처세술이 늘었다는 소리겠지.”
에리카는 팔짱을 끼며 싱겁게 답했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바르간의 기억이 나에게 남아 있어 그녀가 과거에 어땠는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긴 하다. 그녀는 발전하고 있다.
“키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시끄러워 슈겐하르츠.”
“뭐가 어찌 되었든,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한 쌍의 원앙새처럼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
트로아 제국의 유명 인물인 나와 그녀이다. 우리가 약혼했다는 사실은 어딜 가더라도 귀족들이 있는 곳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너도 그래서 완벽히는 뿌리치지 못하는 거고.
“…이렇게 된 게 누구 탓인데 천연덕스럽게.”
에리카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강의실로 들어섰고, 에리카는 내키지 않아 했으나 결국엔 뒤를 따랐다.
***
수업이 시작되고 벌컥 문이 열리며 당당하게 들어온 이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이번 1학년 마법 술식 심화 이론 1을 맡게 된 파울라라고 해요~!”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또 묘하네.
저택에서 보였던 텐션 그대로 교수직을 하는 건가. 역시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다.
아무래도 별문제 없이 복직 과정을 마친 모양이다. 다소라면 문제가 생겼어도 좋았을 텐데.
“어머머, 반가운 얼굴도 보이네요!”
파울라가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든다. 애써 대꾸해 줄 필요는 없다.
그녀는 이어서 내 옆에 앉아 있는 인물을 주시하더니 뭔가를 알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나와 에리카는 다소 거리를 벌려 앉기는 했으나, 누가 봐도 지인끼리 붙어 앉아 있다는 모습을 연출했다.
파울라도 나와 에리카의 관계쯤은 알고 있으니 대충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을 것이다.
“입학 성적 최상위 부부도 같이 들어 줘서 기뻐요. 미남미녀가 붙어 있으니 그림이 되네요. 호호호.”
이해하긴 개뿔이.
저년이 또 지랄이다.
“…….”
에리카의 눈썹이 작게 진동했다.
이목이 상당히 쏠려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상당히 불쾌하신 모양.
“어쩜 금슬도 좋아서 착 달라붙어 있네요. 부러워라.”
정도가 지나치군.
나는 파울라의 눈을 직시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뭐라도 한소리 하려던 순간, 나보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에리카였다.
손을 들어서 발언권을 얻은 게 아니라. 바로 꽂는다.
“학생을 동물원의 동물 취급하는 건 그만두시죠, 파울라 교수님.”
살짝 앳되나 지독하게 권위적인 말투.
“저희는 수업을 들으러 온 것이지 놀림거리가 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에리카는 감정을 죽인 눈을 하고 있었다. 상대의 기분이 다소 나빠지는 것은 괜찮다는 건가.
파울라와 처음 보는 사이이며, 교수와 학생의 차이가 있음에도 말이다.
상대가 누구라도 물러서는 일 없이, 품격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것만 같다.
그래, 얘는 이런 캐릭터였지.
“아, 미안해요 에리카 양.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는 학생을 만나 반가워서 그만. 불쾌했다면 사과할게요.”
파울라는 그녀의 냉대에 쉽게 꼬리를 내렸다. 에리카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발언이 남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인지해서일 터이다.
“저도 교수님에게 버릇없게 행동한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언뜻 보면 에리카도 파울라에게 고개를 숙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해석해 보면 전혀 다르다.
사과드리겠다는 것은 의미가 텅 비었고, 무게가 치우쳐져 있는 문장은 ‘앞으로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이다.
결국 그녀는 파울라에게 경고를 날린 것이다. 두 번 다시 그딴 말을 뱉지 말라고.
학생이 교수한테 말이지.
“크흠, 크흠. 그, 그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해 볼까요?”
파울라가 분위기를 전환할 겸 수업을 진행하려 든다.
그러게, 알리시아도 아니건만 왜 건드려서는.
옆을 바라보자 에리카의 긴 속눈썹이 팔락거리며 눈동자는 필기와 칠판을 반복해서 움직인다.
에리카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파울라의 수업에 집중했다.
할 말은 할 말이고, 수업은 수업.
챙길 건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여자다.
“…불쾌하니까 눈 돌려, 슈겐하르츠.”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말했다. 악혼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과연 바르간의 약혼녀이자 악역영애.
싸가지도 보통 싸가지가 아니다.
***
무사히 수업이 끝나고.
아니지, 무사히는 아니려나. 시작부터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에리카는 한시라도 빨리 나한테서 떨어지고 싶었는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싫어하면 괜히 더 말 걸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인데 일부러 저러는 것일까.
“그냥 가는 것이냐?”
내 말에 그녀가 이상한 것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래도 멈춰 서긴 했다.
“할 말도 있는데 점심이라도 같이 먹는 게 어떠냐.”
“…?”
에리카가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의 귀를 매만진다. 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처럼.
그러곤 묻는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너의 그런 반응을 보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 장담하지.
“약혼자와 식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농담이라면 거기까지 해. 유쾌하지 않아.”
“농이라니.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진지하게 대답하자.
이상함을 느낀 에리카가 돌린 고개를 바로 한다.
시선을 주고받는다.
에리카가 표정을 바꿨다. 그녀의 눈이 커진다.
“슈겐하르츠… 드디어 네가 약에도 손을 댔구나. 제정신이 아니야.”
에리카가 질색과 혐오를 드러내며 나를 바라본다.
저 표정은… 집에서 바X벌레가 나왔을 때 사람이 짓는 표정인데. 무례해도 정도가 지나친 거 아닌가.
“멋대로 생각해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함께할 테냐?”
그녀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절대 싫지. 그걸 말이라고 해?”
“아쉽게 됐군. 그럼 다음 기회를 노리도록 하지.”
거절을 당했으니 깔끔하게 물러나자.
한 번에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대략… 열 번은 신청해야 하지 않을까.
“잠깐. 슈겐하르츠.”
내가 떠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에리카가 잡아 세웠다.
당혹감과 경계심이 짙은 얼굴이다.
“가문의 일로 할 말이 있는 거야? 심각한 사항인 건가?”
“가문의 일?”
“그게 아니고서야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건가…. 하긴, 그렇겠군.”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 때문이지.”
“가문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 때문이라고…?”
“그래, 그러니 다음 이 수업이 있는 날의 점심은 시간을 비워 둬라.”
“뭣… 아, 그래. 이제 알겠다. 곧 있을 클래스전 때문에 그러는 거구나. 나와의 대화에서 반에 대한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서.”
‘우승은 우리 4반이 할 거야. 절대 네가 있는 반에 넘어가게는 두지 않아.’ 그녀는 사족을 덧붙였다.
클래스전이 중요한 에피소드이긴 하지. 그런데 지금 상황과는 그다지.
“어렵게도 생각하는구나.”
“그야, 네가 이렇게 나오니까…!”
“그냥 너랑 밥 한 번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원한다면 시간과 장소를 네가 정해도 된다.”
“…!”
에리카는 더욱 눈을 키웠다. 황당무계해도 이 정도로 터무니없을 수는 없다는 듯이.
그러나 들리는 대답은.
“그래도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