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7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70화(270/350)
“할아버지 미워!”
붉은 머리의 소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볼을 부풀렸다.
앙증맞은 두 팔을 교차한 채 고개를 홱 돌리고 있는 소녀.
말괄량이인 이 소녀의 토라짐은 언제나 있는 일이었으나 이번에는 더욱 단단히 삐진 듯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부풀어진 소녀의 뺨을 만지며 시선을 맞춰 앉았다.
“우리 파울라가 왜 또 이렇게 심통이 났을까? 할아버지가 왜 미워?”
“할아버지는 맨날 바쁘다고 하고 나랑 안 만나 주잖아!”
“파울라야, 할아버지께서는 할 게 정말 많은 분이셔. 다른 대단한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해야 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하는걸?”
“공부는 나도 하고 있는걸! 나도 바쁘단 말이야!”
이제 막 마법에 입문한 파울라.
위대한 마법사의 피를 이어서인지,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파울라도 마법 술식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책상 한편에 놓여 있는 두꺼운 책.
굴레마시아가 하나뿐인 손녀를 위해서 알기 쉽도록 마법의 기초를 정립해 둔 서적이다.
파울라는 몇 번이나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또 이해하며 자신의 것으로 학습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슬쩍 그 책을 보다가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가 파울라의 마법을 봐 주셔야 하는데. 못 보여 드려서 서운한 거구나?”
“…몰라. 할아버지 미워.”
“곤란하네…. 할아버지는 파울라를 너무나 사랑하시는데.”
“거짓말.”
“어머, 거짓말 아니야. 얼마나 사랑하시면 바쁜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오늘 오신다고 하셨겠어?”
“…거짓말.”
“얘는 거짓말 아니래두. 안 그래도 아빠가 지금….”
똑똑—.
“봐. 오셨나 보다. 네, 지금 나가요!”
“…….”
트로에 제국에서 멀찍이 떨어진 산골 집.
나무꾼과 사랑에 빠진 파울라의 어머니가 마련한 보금자리.
굴레마시아의 피를 이었음에도 선천적으로 몸이 유약하여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던 그녀가 행복을 찾아낸 공간.
그 상징인 딸. 파울라는 토라진 고개를 바로하며 슬쩍 문을 바라봤다.
아직 완전히 화가 풀린 건 아니었지만, 정말로 할아버지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축 내려져 있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빨리 오셨네요? 더 걸리실 줄 알았는…….”
끼이익—.
『찾았다. 굴레마시아의 숨겨 둔 자식.』
어린 시절의 파울라는 그 후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얼추 기억하는 건.
그 말이 들린 직후 집안의 공간이 일그러져 할아버지가 나왔다는 것과.
그때 문 밖에서 얼핏 보인 광경에서, 파울라네를 비밀리에 보호하던 퇴역 용사의 얼굴과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이 마치 공처럼 주변에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데굴데굴.
데구르르…….
“할아버지…. 엄마가 죽었어.”
“…….”
“아빠가 죽었어…. 삼촌이 죽었어….”
“…….”
가족상을 치르게 된 파울라의 가족.
굴레마시아는 비석이 되어 버린 그들의 앞에 섰다.
하나뿐인 손녀의 손을 잡은 채.
그들을 추모했다.
파울라는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도 같이 죽고 싶어.”
“…미안하구나. 파울라야.”
굴레마시아는 어린 손녀에게 사과했다.
하나뿐인 딸과 그 가족을 잃은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듯.
이 어린아이가 겪고 있을 감정은 그보다 더 크면 컸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마법사는 무릎을 꿇었다.
눈물도 말라 버린 눈동자로 파울라를 담으며 애절함을 토로했다.
“정말로… 미안하구나.”
* * *
『경이로운 실력이었다. 굴레마시아.』
완전히 무너져 버린 교회.
그곳에 서 있는 권능해방을 마친 추기경 가미긴.
그는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굴레마시아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있다.
이미 굴레마시아의 전신은 곳곳이 알티프의 마력과도 같은 자색으로 물들어 있는 상황.
전신에 퍼진 치명적인 독과 그의 권능이 빠른 속도로 굴레마시아의 몸과 영혼을 갉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너희 종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수 있었군. 그래, 너희는 약하지만 나약하진 않다. 아무리 밟아도 다시 자라나는 잡초와도 같지.』
뚝. 뚝.
옥수수의 실처럼 길게 내려져 있는 굴레마시아의 수염.
그 끝에 젖은 붉은 피가 멍울져 바닥에 떨어진다.
깊은 우물처럼 깊던 현자의 눈동자도 색이 바래 버렸다.
그 안에 가득하던 시원한 물이 모두 메말라 죽은 것만 같다.
“…….”
굴레마시아는 말라 비틀어진 눈동자를 간신히 움직여 가미긴을 바라봤다.
늙은 눈동자에 비친 가미긴.
권능해방을 마쳐 한층 불길한 기운을 뿜어대는 그였지만, 제법 곳곳에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피는 흐르지 않았으나, 회복되지 않는 피해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건 망각의 위험성에도 대범하게 피부를 닿아 손상시킨 굴레마시아의 업적이기도 했다.
『권능해방을 하고도 이 정도로 당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싸움다운 개싸움을 벌일 수 있어 즐거웠군.』
가미긴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굴레마시아라는 강자와 싸운 것. 그 시작, 과정, 지금에 이른 결과까지.
한 순간 한 순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고.
갈증 나던 본능을 충족시켰다.
『하지만, 생물이란 결국에 늙고 망각하는 존재. 지금의 네 꼴이 딱 그렇구나. 과거의 화려함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앙상한 뼈대만 남아 버렸지.』
그 망각을 가속화시키는 장본인이 가미긴 본인이었음에도 그는 세월의 매정함을 애탄했다.
마치 더 오랫동안 굴레마시아와 맞붙지 못한 걸 아쉬워하기라도 하듯이.
입으로는 피를 토하고, 전신은 넝마처럼 너덜너덜 해진 대마법사를 보았다.
굴레마시아는 훌륭했다.
비록 자신의 권능에 의해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보여 주었던 마법의 성취는 낮아져만 갔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맞는 마법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그 위력은 하나같이 위협적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권능해방을 한 육신이 파괴될 정도로…. 굴레마시아는 수천 년을 살아온 자신조차 당황하게 할 정도의 위력과 범용성을 보였다.
『카하하. 아직도 발버둥 칠 생각인가.』
어떻게든 손끝을 움직여 보이는 굴레마시아.
그의 움직임에 따라 아직도 초월에서 내려오지 않은 마나가 움직이며 불덩이를 만들었다.
그건 고유술식도 아니며, 하물며 초월도 해득도 아닌.
일반적인 고위의 원소 마법.
『늙고 병든 개가 짖어 봐야 우스울 뿐이다.』
화륵—.
가미긴의 말마따나 굴레마시아가 부딪힌 화염구는 물방울처럼 쉽사리 터져 나갔다.
그러자, 가미긴은 잡고 있던 굴레마시아를 내둘러 던졌다.
포장된 보도블록에 연신 부딪히며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굴레마시아.
그대로 몇 개의 건물 벽을 파괴하다가 두꺼운 아카데미아의 본관에 닿고서야 간신히 멈췄다.
“……컥!”
내장이 쏟아질 것처럼 피를 토해 내는 그.
검붉은 피가 그의 옷을 다시금 적셨으며 정신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롭다.
『이제는 오러조차 다루지 못하게 되었구나.』
눈 깜짝할 새 다가온 가미긴이 현재 굴레마시아의 성취를 말했다.
마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원소마법은 고위.
온갖 물건과 환경을 무기로 사용하던 염동력도 고위.
찬란한 빛이 요란스럽던 신성마법은 중위.
그 밖으론 거의 전부가 ‘저위’였다.
전설이라고 불리는 자의 성취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초라하다.
『그나마 마나 총량이 아직도 초월에서 떨어지지 않아 버티고 있다만. 그것도 곧이겠군.』
끝도 없을 것만 같이 방대했던 초월의 마나도 머지않아 해득의 계위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되면 굴레마시아의 몸이 지금까지 누적된 피해를 견딜 수 있을 리 없다.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
굴레마시아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사신을 보았다.
유별나게도 검은 그는 재앙을 담고 있는 듯 끔찍하게 보였다.
사신이 손을 뻗는다. 죽음이 다가온다.
저항하기 위해 마나를 움직인다. 하지만, 무언가가 어색하다.
마치 평생을 사용해 오던 무기가 달라진 것처럼.
술식을 발현하려는데 이질감이 든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다.
『드디어 마나 총량이…. 오래도 걸렸군.』
검은 사신이 웃었다.
저자를 무찔러야 한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그래야만?
…왜?
왜 싸워야 하는 거지?
“…쿨럭쿨럭!”
전신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거의 모든 마력과 체력을 사용한 몸은 죽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싸울 필요가 있나…?
어차피 죽을 거라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죽는 게 낫지 않나?
왜 굳이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거지?
손은 왜 이래? 어째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폴리모프? 환각? 저 사신이 무슨 저주라도 건 건가?
여긴 어디이며, 이 사신은 누구이고.
나는 어찌하여 이곳에서.
대체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단 말인가.
—할아버지…. 엄마가 죽었어.
—아빠가 죽었어…. 삼촌이 죽었어….
가미긴의 권능에 의해 빠르게 기억을 잃어 가는 굴레마시아.
인격의 상실과 착란이 일어나는 와중.
아직 남아 있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파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같이 죽고 싶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처연하게 세워져 있는 세 개의 비석.
맞잡고 있는 작은 손.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고 있는 어린 소녀.
파울라…. 우리 어여쁜 손녀.
『크, 쿠화아아아악!』
그때, 돌연 입안에서부터 검은 독기를 토해 내는 가미긴.
떡 벌어진 그의 입에서부터 굴뚝의 매연과도 같이 계속해서 독기가 빠져나간다.
가미긴의 전신을 이루고 있는 독기. 심장을 중심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가미긴의 신체가 대기 중으로 흩어져 간다.
『이, 이 늙은 개가 무슨 짓을 한… 크화아아악!』
예삿일이 아니었는지 가미긴은 드물게 다급한 모습이다.
시뻘건 그의 눈은 더욱 붉게 충혈되어 뜨겁게 보일 정도였고.
지면에 서 있는 그의 다리는 비틀거렸다.
이제껏 겪어 본 고통 중에서도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미긴의 눈에 푸른 마나가 보였다.
지금껏 초월에 이르러 투명하기만 했던 굴레마시아의 마나다.
가미긴은 비로소 상황 파악을 끝냈다.
『구, 굴레마시아…! 이제 보니 늙은 개가 아니라 백년 묵은 뱀 새끼였구나…!』
주변의 마나에 흐리게 남아 있는 흔적.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이며 몹시도 비밀스럽던 성질의 마나.
그건 술식이라고 부르기에는 투박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약해져만 가던 굴레마시아의 상황에서만 가능한 하나의 기술이었다.
마나의 역류.
최대치의 4배까지 이르렀던 굴레마시아의 마나의 밀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차이를 이용한 꼼수.
굴레마시아는 가미긴 직접적으로 부딪혀 싸우는 동안.
그에게 멱살을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그 순간까지도.
은밀하게 최대 농도의 마력을 밀어 넣어 자신의 마나 총량의 계위가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게, 초월에 이른 마나 총량.
다른 사람들은 그 압도적인 질량에 찬양을 하지만.
막상 초월에 이른 이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따로 있었다.
은밀성.
거대한 마나의 탓에 중압을 발생시키기 쉬운 초월의 마나는 되레 그 단계에 이름으로서 압력의 조절이 더욱 쉽게 가능해진다.
세기를 높여 주변의 인물들의 움직임을 봉할 수도 있고.
때로는 아예 기척도 없이 감춰 알아차릴 수 없게 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선 훈련과 더 높은 성취가 필요했지만.
굴레마시아에게 그런 조건들이 불충분할 리 없었다.
『쿠화아아아악—!!』
끝도 없이 검은 독기를 토해 내는 가미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간신히 그의 내부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굴레마시아의 마나가 돌연 본래의 질량을 잃은 채 불안정해졌으니 아무리 단련된 신체라 하더라도.
괴물의 몸이더라도.
버티기 힘들었다.
『이딴 계략 따위에… 내가 죽을 것 같으냐…!』
바람 앞의 연기처럼 흔들리면서도 체내에서 굴레마시아의 마나를 분리시키려는 가미긴.
인간이 아닌 그의 신체는 놀랍게도 본래라면 불가능했을 일을 가능하게 했고.
빠르진 않지만 천천히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쿠화아아아악!』
물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과 피해가 유발되었지만. 가미긴은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굴레마시아는 마나를 움직였다.
현재의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
이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이… 늙은 뱀 새끼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가미긴의 심장을 움켜쥔 굴레마시아.
염동력을 발휘해 짓누르려고 사력을 다해 보지만 단단한 심장은 도통 뭉개지질 않는다.
가미긴은 두 손으로 굴레마시아의 팔을 붙잡으며 떨어트리려 한다.
지독한 독성과 권능을 발산하는 가미긴에 의해 굴레마시아의 눈, 코, 입, 귀….
나올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핏줄은 터져 나가고, 근육은 뒤틀린다.
『끄아아아아악—!!』
그런데도 굴레마시아는 움켜쥔 심장을 놓지 않는다.
고위에서 중위로.
중위에서 저위로.
급속도로 깨달음의 정도가 떨어져 갔지만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해 망가트리려 한다.
그렇게 한동안 마지막 줄다리기가 이어지다가.
결국, 잘려 버린 굴레마시아의 양손.
사라져 가는 그의 염동력.
기울어져 가는 승리.
굴레마시아는 꺼져 가는 불씨와도 같은 마법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나이가 들어 쉰 소리가 났지만.
담고 있는 오랜 마력의 강제성이 대단했다.
“움켜쥐어라.”
푸욱—!
잘려 버린 손가락이 그의 지시에 따라 깊게 파고 들어갔다.
심장을 파먹는 열 마리의 벌레와도 같이.
가미긴의 독이 가득 담긴 손가락들은 그 안에 박혔다.
『쿠화아아아악—!!』
그러자, 가미긴은 전보다 더 많은 독기를 토해 내며.
점차 흐려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