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7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71화(271/350)
『쿠화아아아악—!!』
폭포수와도 같이 독기를 뿜어대는 가미긴.
그의 형상이 흐릿해져만 갔다.
매연처럼 퀴퀴하고 먹물보다 짙던 그의 몸이 흩어졌고, 사이사이 난 틈새로 아카데미아의 배경이 보였다.
『굴레마시아…! 굴레마시아…!』
가미긴은 분노에 휩싸여 외쳤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피로 눈과 입을 적셔 온 가미긴이 입을 쩍 벌리며 굴레마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양손을 잃은 굴레마시아는 바닥에 떨어져 몸을 일으키기 위해 버둥대고 있다.
수명이 다한 몸.
이미 한계치를 넘은 그의 몸뚱어리는 저 괴물과 공멸하기 위해.
마른 가지보다도 얇실한 다리의 근육을 쥐어짰으며.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굴레마시아……!!』
이젠 가미긴의 눈에서도 터져 나오는 독기.
체내에 있는 굴레마시아의 마나를 분리하려고 해도 더는 불가능했다.
심장에 박힌 굴레마시아의 손가락이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장과 그 주변의 검은 뿌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형체가 남지 않게 된 가미긴.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 한 줌에 남아 있던 모든 독기마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끝끝내 굴레마시아의 이름을 저주하며 분노를 쏟아부었지만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다.
철퍼덕—.
가미긴의 몸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심장과 뿌리가 떨어졌다.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
그러나 푹 박혀 있는 굴레마시아의 손가락 탓인지.
아니면 신체가 사라졌기 때문인지.
점차 그 고동은 약해져 갔다.
“…….”
굴레마시아는 흐릿해져만 가는 시야로 그 새빨간 심장을 보았고.
잘려 나가 버린 손을 대신해서 팔꿈치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저건 알티프.
그것도 추기경에 이른 괴물 중의 괴물.
심장을 부숴야 한다.
핵을 제거해야 한다.
이미 수명이 다한 그의 육신이 영혼을 떠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건.
아직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집념 때문이었다.
“끄흐으…….”
굴레마시아는 바닥을 기었다.
하늘을 나는 법은 잊어버렸고.
땅을 걷는 방법은 맹독에 절여져 불가능했으니.
그가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바닥면을 기어가는 것 말고는 없었다.
아주 느리면서도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
딱 달라붙은 살가죽. 뒤틀려지는 마른 근육. 터져 나가는 핏줄. 바들바들 떨리는 팔과 다리.
도저히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쩍쩍 갈라져 가는 피부는 내부에 있던 뼈를 보였다.
새하얗게 뼈가 타 버린 것처럼 그을려졌다.
“크하악……!”
더는 짜낼 피가 없을 텐데도 굴레마시아의 모든 곳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피에 절여진 시야.
상도 제대로 맺히지 않는 망막은 저물려 한다.
그의 몸은 그만 안식을 취하고 싶다.
영원한 안식을.
“…….”
결국 멈춰 버린 굴레마시아의 몸.
거대한 나무 위그드라실처럼 굳게 세워져 있는 그의 의지는 기억과 함께 흐트러졌다.
독이 몸을 좀먹어 가며 망각의 현상은 지속되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모든 것들을 앗아 간다.
바닥을 침대 삼아 뺨을 붙이고 있는 굴레마시아. 그의 동공은 더 이상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았다.
빛이 얼마나 들어온다 하여도 마지막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
어두워져 가는 그의 세계.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잊혀져 가는 과거였다.
총장실에 앉아 넓은 아카데미아의 정경을 바라보았을 때.
강의실에서 수많은 학생을 직접 가르쳤을 때.
용사로서 동료들과 함께 알티프를 토벌해 나갈 때.
사랑스러운 손녀가 아카데미아에 입학했을 때.
딸의 가족이 살해당했을 때.
딸이 아이를 낳아 자신을 할아버지라고 소개했을 때.
“…파울…라.”
굴레마시아의 불어 터진 입술은 제대로 된 단어조차 담을 수 없었음에도 불렀다.
잔뜩 쉬어 버린 목구멍은 옅게 공기를 뱉어 내며 어떻게든 소리를 내려고 필사적이었다.
“파…울라….”
하지만, 그마저도 몇 번 부르지 못하고 멈춰 버리고 만다.
그래서 굴레마시아는 입이 아닌 마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의식은 사라져 가고, 어떤 의미를 담는지는 자기 자신 역시 몰랐지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불렀다.
되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읊조렸다.
파울라. 파울라.
파울라…….
…….
파울라.
어째서인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름이다.
* * *
“영웅의 이름에 걸맞은 최후였습니다. 굴레마시아 님.”
아카데미아의 본관.
그 앞에 나타난 바르간과 에리카.
바르간은 죽어 버린 것과 죽어 가는 것을 앞에 두며 읊조렸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용사가 채 날개를 활짝 펴지도 못하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겠지요. 가족도, 동료도, 그때까지 이룩해 왔던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로 말입니다.”
그래서 바르간은 굴레마시아를 이용하기로 정했다.
가미긴과 유일하게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던 굴레마시아.
그가 할 후회와 미련을 알기에 철저하게 써먹기로 한 것이다.
굴레마시아는 바르간의 안을 따라 주었고, 오히려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결과가 나오게 될지라도 그의 소명을 이룰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니까.
“…….”
바르간은 몸을 숙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왜곡된 시체에 다가갔다.
아직 감지 못한 채 떠 있는 눈꺼풀.
그것을 덮어 주었다.
“이만 쉬시지요.”
잠시 예를 취하고 있던 바르간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아카데미아의 곳곳이 파괴되어 있다.
건물이었는지 의심될 정도로 철저하게 무너진 것들 하며, 달의 크레이터처럼 푹 꺼진 지면.
웬 커다란 구멍이 연이어 뚫려 있는 벽들.
굴레마시아와 가미긴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흔적이다.
“…가미긴의 심장인가.”
바르간은 그중에서 유독 시뻘건 물체를 보았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맥을 이어 가고 있었으며, 차근차근 검은 뿌리를 펼치고 있었다.
심장은 자신의 독에 중독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놀랍게도 추기경의 생명력은 그것마저도 해독해 가고 있었다.
이미 마나나 권능 따위는 발현되고 있지 않는데도 말이다.
“끈질기군. 이대로 가만히 두었다면 정말로 부활했을지도 모르겠어.”
스슥—.
바르간은 어둑이가 숨어 있는 그림자를 움직여 심장을 들어 올리며 가까이 했다.
기억을 먹는 자 추기경 가미긴.
무려 추기경의 심장이다. 계획했던 대로 잘 진행되어 주었다.
앞으로 조금만 있으면… 조금만 더 있으면 된다….
그토록 기다려 왔던 때가….
“…에리카, 이게 무슨 짓이지?”
“…….”
가미긴의 심장을 가까이하는 와중.
에리카가 워프 마법을 사용해서 그것을 가로챘다.
심장을 얼려 버린 채 들고 있는 에리카. 자신의 품으로 감추는 듯 자세를 잡았다.
바르간은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 심장을 앞에 두니, 설마 심판 무구가 갖고 싶어진 것이냐?”
“…….”
“말이라도 해 보는 게 어떠냐. 여기까지 오는 데 네 공이 컸다. 당연히 마땅한 보상을 지불할 생각이었지.”
아카데미아를 워프시킨 뒤.
바르간은 고유술식을 발동해 2만의 검은 알티프를 지상에 내렸고.
예정했던 대로 300위대 용사 톰의 도움을 받아 워프했다.
물론, 그 위치값은 전혀 교회의 계획과는 달랐지만 말이다.
바르간과 에리카는 아카데미아로 이동했으며, 곧바로 굴레마시아는 방어막을 쳐 내외부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곤 두 존재의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마 가미긴 역시 우리가 아카데미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겠지만, 녀석의 목적은 애초에 우리가 아닌 굴레마시아였으니까.
굴레마시아와 협업 관계를 맺은 것처럼 에리카와도 그와 비슷한.
아니. 단순히 손익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그보다 훨씬 깊고 진한 관계일 터.
그런 에리카가 바르간의 뜻에서 벗어나 대치하고 있다.
바르간은 에리카를 설득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에리카. 아쉽게도 그 심장의 핵은 부숴선 안 된다. 말하지 않았느냐. 그건 심판 무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심판 무구를 원하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뭐 때문에 이리 나오는 거지?”
“…….”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에리카.
어딘가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바르간을 담은 채 흔들리고 있다.
“계속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을 생각인가?”
“…바르간. 솔직하게 말해 줘.”
“무엇을?”
“이걸로 뭘 할 생각인 거야?”
입을 연 에리카는 물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콕 짚어 집요하게 굴었다.
“왜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거야?”
“…….”
“왜 교회에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궁금한 게 많군.”
“어서 대답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세이만의 던전 이후, 오로지 바르간만을 믿고 따르게 된 에리카.
그녀가 바르간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주던 에리카의 돌발 행동. 바르간은 눈을 감은 채 숨을 길게 뱉다가 말했다.
“이제 와서 아카데미아가 무너질 게 걱정이라도 되는 것이냐?”
세이만 던전에 들어가기 전, 바르간이 추기경 벨레드에게 선보여 주리라 입에 담았던 미래.
아카데미아의 붕괴.
바르간은 거대한 공중 도시를 땅으로 추락시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함과 동시에, 벨레드의 신임을 얻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당연히 에리카는 해당 사실에 대해서 몰랐으며, 아무리 바르간이 우선인 그녀라고 하더라도 아카데미아의 붕괴라는 커다란 죄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잖아!”
그러나 놀랍게도. 에리카가 걱정하고 있는 건 아카데미아에 관한 게 아니었다.
신실하던 포트레트가의 영애는 어째서 계속 모르는 척을 하는 거냐며 쏘아 부었다.
에리카의 눈망울이 떨렸다.
가미긴의 심장을 잡고 있는 작은 손도 마찬가지다.
잔뜩 겁을 먹었으면서도 슬퍼하고 있는 그녀는 최대한 표독스러운 눈매를 유지하려 들며 말했다.
“네가… 바르간, 네가….”
자꾸만 뭉개지려고 하는 날선 눈매.
바르간과 멀어지고 나서 몇 년을 고수해 왔던 익숙한 표정임에도 자꾸만 무너지려 들었다.
그녀의 입이 말했다.
“네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잖아….”
“…….”
“바르간…. 너, 지금 나한테 환각 보이고 있는 거지? 나한테도 고유술식을 사용하고 있는 거지?”
에리카는 바르간의 현 몸 상태를 짚었다.
오늘은 4월 28일. 바르간의 불치병이 악화되는 날.
“나는 바보가 아니야 바르간.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
“그렇게나 방대한 양의 마나를 움직였는데 네 몸이 멀쩡할 리 없잖아….”
“…….”
“네가 그렇게 무리하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네가 원한다고 해서 내가 고분고분 따라 줄 거라고 여겼던 거야?”
“에리카, 우선….”
“아니! 안 들을 거야!”
에리카는 냉기를 터트리며 외쳤다.
그녀의 주변으로부터 투명한 얼음 꽃이 피어났다.
푸른 빛의 마나가 일렁이는 그녀의 손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단도가 쥐어져 있었고. 에리카는 그것을 가미긴의 심장에 들이밀며 말했다.
“지금 당장 내게 건 고유술식을 해제하고 네 현 모습을 똑바로 드러내. 그렇지 않으면 핵을 부숴 버릴 거야.”
악영영애 에리카.
그녀가 오랜만에 과거의 모습을 되찾으며 바르간을 협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