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7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73화(273/350)
바르간의 근처에서 붉게 빛나고 있는 마나의 톱니바퀴.
그것은 무언가 걸린 듯 굴러가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다가도 덜컹거리며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그러나, 바르간이 에리카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후.
때마침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알리듯. 푸른색을 띠더니 이내 굴러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었군.”
에리카를 마주하고 있던 바르간은 작게 읊조리더니 마나를 움직였다.
구멍 뚫린 것처럼 새어 나가고 있는 바르간의 마나가 선장의 지시에 움직이는 함대와도 같이 질서를 유지한 채 확산되었다.
그러자.
—구구구궁!
아카데미아를 감싸고 있던 방어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거대한 공중 도시는 무거운 몸체를 움직이며 천천히, 지상으로 떨어져 간다.
교회와 용사의 상징이던 아카데미아가 추락해 간다.
마치 굴레마시아의 권한을 획득한 듯.
아카데미아를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마석이 완전히 바르간의 말에 복종을 하는 꼴이었다.
콰가가강—!
퍼버벙—!!
아카데미아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사라지자 천둥보다 소란스러운 전쟁의 소음이 여기까지 닿게 되었다.
바르간과 에리카를 비추는 외부의 달빛.
그 세기가 여려졌음을 느낀 바르간은 입을 열었다.
“어둠이 걷혀 가고 있다. 용사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때쯤에는 날이 밝아 오겠지.”
가미긴이 죽어 버린 지금.
전장의 판세는 교회에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고. 결국 주인을 잃은 가미긴의 세력은 패배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던 병사들 중의 일부가 아카데미아로 날아오겠지.
모든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바르간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 자신의 앞에서 필사적으로 마나를 움직이고 있는 작은 여성을 바라보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안쓰러울 정도다.
“에리카. 치유 마법을 걸 필요 없다. 무의미한 행위일 뿐이야.”
“…그건 아직 모르는 거잖아.”
“…알 수 있다.”
“아니! 아직 모르는 거야!”
바짝 바르간의 근처에 다가온 에리카는 눈물을 쏟아 내면서 마나를 움직였다.
바르간을 감싸는 따뜻한 치유의 마법은 피부 안으로 스며들어 퍼렇게 점철되어 있는 멍을 일부 사라지게 만들었지만.
잠시일 뿐. 곧 하얀 종이에 떨어진 먹과 같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바르간은 피가 흐르는 입을 움직였다.
“너무 험하게 봉하지는 말거라. 아르카네.”
“……!”
어느새 다가왔는지 에리카를 노리고 있던 아르카네.
아르카네는 어둠을 고무처럼 쭉 당겨 에리카를 덮쳤고. 그녀의 움직임을 봉인했다.
검은 천을 둘러싸 매고 있는 것 같던 모습은 곧 투명해져 에리카 홀로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임무를 완수한 어둠의 정령.
아르카네는 유유자적하게 바르간의 지팡이 속으로 들어갔다.
“…이거 놔 바르간!”
“움직이려고 하면 괴로워질 뿐이다. 아르카네가 단독으로 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지팡이의 힘도 가중되고 있으니까.”
“놓으라고!”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말하지 않았느냐. 치유 마법으로는 돌릴 수 없다고.”
“아니야… 아니야…!!”
잔뜩 망울진 눈물을 연이어 떨구는 에리카.
필사적인 에리카를 바라보고 있자니 바르간의 얼굴 표정에도 애달픔이 묻어났다.
바르간은 자신의 그림자로 돌아온 어둑이를 움직였다. 어둑이는 에리카의 주변에 떨어져 있던 가미긴의 심장을 들었고 바르간의 앞으로 가져왔다.
바르간은 그 심장을 쥔 채 읊조렸다.
“…네가 물었지.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고. 왜 너를 이곳에 데려왔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
“잠시 이야기 하나를 들어 주겠나.”
네 의문에 대한 답을 거짓 없이 보여 줄 터이니.
그렇게 말한 바르간은 에리카의 푸른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에리카는 몸과 함께 움직여지지 않는 마나를 간신히 움직이려 들었고, 바르간은 그것을 알면서도 이야기의 서두를 열었다.
그가 뱉는 말은 하나의 희곡처럼 대사와 행동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청년이 물었다.
—정말로… 정말로 그거면 영혼을 제거할 수 있는 거야?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서히 몸의 주도권을 빼앗긴 청년은 필사적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 의지할 수 있는 다른 안이 없었던지라, 청년은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매달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자 악마가 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대로 움직이니 모든 게 술술 풀리지 않았나? 이번에도 나를 믿으면 된다. 나는 인간을 미워하지 않아. 오히려 공존을 원하고 있지.
악마의 속삭임에 청년은 침을 꼴딱 삼켰다.
지금까지 악마의 말대로 움직여서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된 건 사실이었다.
청년은 이미 마음속 깊이 악마를 의지하고 있었으며 물러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만히 둔다면 자신은 몸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심한 경우 사라지고 말 것.
그 두려움이 청년을 악마와 손잡게 만들었다.
—그래, 너를 신뢰할게. 제파르.
청년의 말이 떨어지자 악마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곤 청년을 은밀한 곳으로 이동시키며 속삭임을 이었다.
—영혼이 머물러 있는 곳이 심장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 심장은 이른바 영혼의 집이다. 그런데 멀쩡한 몸에서 심장만을 적출해 내면 영혼은 어디에 존재하게 될까?
—…전에 너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 몸이라며.
—큭. 그래. 집이 부서졌거나 날아가 버렸다고 해서 집이 있었던 토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집의 거주자는 새로운 집을 지을 지언정 어지간해선 그 토지를 떠나지 않지.
—…….
—영혼도 같다. 심장은 영혼이 거주할 곳이며 동시에 보호받기 위한 장치. 그렇기 때문에, 네 안에 있는 또 다른 영혼을 제거하려면 물리적으로 심장을 떨어트려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 내가 수술을 통해 네 심장을 잠시 적출시켜 놓으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마는 구시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벨레드 그년이 도와줬다면 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녀석은 인간을 극도로 혐오해서 말이야. 쯧쯧. 멍청하게도. 강경파는 아직도 한참을 후퇴해 있어. 최근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바르간이라는 인간을 등용하긴 했지만…. 어차피 장난감처럼 쓰다 버릴 게 뻔하지.
그러고 보니 바르간이라는 이름은 너에게는 친숙하기도 하겠군? 악마는 그렇게 말하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청년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고 악마는 계속해서 말했다.
워낙에 수다스러운 악마인지라 말이 끊기질 않고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영혼에 관한 다른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려 줄까?
—재밌는 사실?
—본래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지만…. 너는 ‘외부인’이 아니지 않나. 숨길 이유가 없지. 낄낄낄.
—…….
듣는 이를 불쾌하면서 오싹하게 만드는 웃음소리.
청년은 입을 다문 채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하나의 영혼은 오로지 하나의 ‘힘’만을 담을 수 있다. 그릇 하나에 두 개나 세 개의 힘을 넣는 건 불가능하지.
—힘이라니…?
—‘여신의 힘’. 즉, ‘권능’을 말하는 거다.
—…….
—아무리 대단한 추기경이라 한들 하나의 권능밖에 갖지 못하지. 나도, 벨레드도, 가미긴도, 그리고 아몬 역시도. 이유는 간단하다. 그릇이 되는 영혼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은근한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기껏 영혼을 두 개나 갖고 있음에도 하나를 지워야 하니 안타깝군.
마치 군침 돌게 맛있는 음식이 썩어버려 버리게 된 것처럼. 악마는 혀를 찼다.
이어서 말을 잇는 악마는 본래 권능은 여신의 힘이며 여신으로부터 나눠 받은 것이라고 했다.
알티프의 방대하며 특별한 마나는 영혼이라는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 재료로.
권능을 담을 수 있게 해 주는 필수적인 역할을 맡는다고.
—마나의 성질과 양. 그게 인간과 알티프의 절대적인 차이이며 인간이 ‘권능’을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이다.
—…….
—하지만, 의문이 들더군. 그렇다면 만약 권능의 힘을 약화시키면 어떻게 될까? 혹은 마나 총량이 초월에 이를 정도로 막대해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킨다면?
악마는 웃었다.
다시 생각해도 역사적인 순간이었음을 회상하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권능의 힘을 희석시킨 ‘축복’을 만들어 냈다. 희석시킨 것이니 적성만 맞다면 같은 축복을 발현시킬 수 있는 자들. 다수에게 배양시킬 수 있었지.
—그 ‘축복’을 미끼로 인간 신자를 폭발적으로 늘였고….
—아몬 녀석이 그렇게 사용하더군. 많은 샘플을 얻을 수 있으니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
—뭐 어찌 됐든. 인간에게 약화시킨 권능을 배양할 수 있다는 건 확인됐다. 마나 총량의 성장에 따라 배양 시킨 축복을 키워 나가는 것도 말이지. 그럼 자연스레 기대감이 들지 않겠는가. 만약 축복을 배양받은 자의 마나 총량이 초월에 이른다면?
축복은 권능에 미칠 정도의 위력을 보이게 되겠지.
악마는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지 길게 입꼬리를 올리며 또 다른 가정을 이야기했다.
—혹은, 만약 처음부터 대상자의 마나 총량이 초월에 이르러 있다면 어떨까?
악마가 웃으며 말했다.
—확신하건대, 그 존재는 희석시킨 축복이 아닌, 원액인 ‘권능’조차 제법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째깍째깍—.
대시계탑의 내부.
아르카네에게 붙잡혀 옴짝달싹을 못 하고 있는 에리카.
바르간의 말을 듣자 저항하기 위해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몸이 쳐지게 되었다.
그녀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동자를 커다랗게 채 물었다.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바르간…. 무슨 말 하고 있는 거야…?”
“네 물음에 대한 답이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움직였는지… 무엇을 하려는지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서.”
“그게 무슨…. 그리고 제파르라면…!”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건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니.”
바르간은 말했다.
지금까지 네게 거짓말만 해 왔지만 마지막까지 그러고 싶진 않다고.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심장을 칼로 쑤신 듯 말을 잇지 못하는 에리카.
바르간은 에리카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다 뺨에 손을 뻗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뺨이 눈물에 의해 축축하게 젖어 있다.
“…바르간. …너!”
그의 차가운 손이 닿는 순간 에리카는 깨달았다. 그의 마나가 비정상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극도로 불안정하며 새어 나가고 있는 건 조금 전과 같지만,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 바르간의 마나는 매우 이질적이다.
마치 사람이 아닌, 알티프의 것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에리카는 황급히 시선을 내려 바르간이 가미긴의 심장을 쥐고 있던 손을 확인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심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 중심에 위치해 있는 핵은 색을 빨아먹힌 듯 무채색이었다.
“넌 정말 언제까지…!”
에리카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알 수 없는 희곡을 내뱉어 자신의 시선을 돌리곤, 은밀하게 작업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악마가 말했다. ‘당연하게도 권능을 사용하려면 초월에 이른 마나의 주인이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겠지만.’ 기나긴 대화를 듣고 있던 청년은 의문이 생겨 물었다.”
바르간은 에리카의 눈물을 닦아 주며 희곡을 이었다.
에리카는 불길함을 느꼈는지 싫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바르간은 멈추지 않고 통째로 기억하고 있는 원작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읊어 나갔다.
“‘그럼…. 만약 그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청년의 물음에 악마는 우스운 것을 묻는다며 대꾸했다.”
그리고 악마의 마지막 대사로 인해 장면은 끝이 났다.
“권능을 발휘하다 얼마 못 가서 죽어 버리겠지.”
바르간은 마나를 움직였다.
그건, 평소와도 같이 무색무취였으나.
기억을 먹는 가미긴의 권능을 담아 사악한 기운을 내뿜어 대는 마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