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7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78화(278/350)
피고인 바르간의 증인으로서 재판장으로 향하는 알리시아.
양옆의 용사들로부터 보호를 명목으로 한 감시를 받고 있는 그녀는 바르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도련님께서 아카데미아를 무너뜨린 거라니. 말도 안 돼.’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르간과 붙어 다녔던 그녀.
알리시아는 바르간의 혐의들이 얼토당토않다고 여겼다.
‘그 누구보다 인재 양성에 힘쓰셨던 분인데. 여신교라는 누명까지 쓰시고….’
만약 바르간이 여신교라서 아카데미아를 붕괴시켰다면.
어째서 아르볼 프루탈이라는 연구회까지 만들어 가며 예비 용사들의 육성에 힘썼겠는가.
그가 항상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해도 결과적으로 인류의 공익을 위했다.
알리시아는 대표적인 예시로 자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시골구석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다가 바르간에 의해 아카데미아에 입학하게 된 자신.
만약 그가 인류와 대적하는 여신교였다면, 과연 자신을 아카데미아에 입학시켰을까?
차라리 재능이 개화하지 못하도록 시골구석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로 모순이 많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내가!’
알리시아는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머리를 차갑게 하려고 애썼다.
최근, 대주교 살레오스나 자신의 주인과 관련된 일이 연속으로 터지다 보니 좀처럼 감성적으로 되기 십상이었으나.
지금만큼은 어떻게든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자신의 은인께서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하셨다.
어떻게 해서든 도움이 되어야 한다. 구해 내야만 한다.
끼이익—.
자신을 이송해 온 두 명의 용사에 의해 커다란 재판장의 문이 열리고.
알리시아는 재판장의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 명의 여성에게로 향했으며.
재판장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증인석으로 올 것을 명했다.
알리시아는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며 걸어 들어갔다.
기죽지 않는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는 그 틈새를 전략적으로 물어뜯어 버릴 테니.
‘…도련님!’
한눈에 재판장을 살피던 알리시아.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바르간의 모습이 들어왔다.
전신을 답답한 사슬로 채워져 있는 그.
제대로 된 치료와 소독도 받지 못했는지 진득하게 굳어 있는 피가 그의 머리카락 끝에, 볼에, 발끝에 눌어붙어 있다.
마력을 금지 당했는지 온몸을 감싸고 있는 시퍼런 멍도 거의 낫질 못했다.
‘…내색하지 않아야 해.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가야 해.’
알리시아는 입술을 꽉 다문 채 바르간을 염려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하지 않으러 애썼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를 속박하고 있는 모든 마법과 구속을 풀어헤치고 치유 마법을 걸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증인석에 서 재판장을 올려다봤다.
‘현재 가장 중요한 건 이 재판에서 도련님의 무죄를 밝혀 낼 수 있도록 돕는 거야.’
알리시아의 눈동자 안에 세워져 있는 심지는 흔들림이 없다.
재판장은 알리시아의 신원 정보를 읊으며 그녀가 맞는지를 확인하곤 검사로부터 증인의 심문을 허락했다.
검사는 중앙교회 소속의 관료였다.
“증인 알리시아는 약 1년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피고인 바르간의 고용인으로서 활동하며, 그의 행적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봐 왔던 인물입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피고인 바르간이 아카데미아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을 남몰래 준비했던 그 은밀한 순간을 보았을 가능성 또한 있겠군요?”
“…제 양심에 맹세코 단 한 번도 수상한 행위를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재판장님. 보시다시피, 피고인 바르간은 자신의 수발을 맡은 고용인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는 철두철미한 계획성을 의미하며, 아카데미아의 방어 체계를 파괴한 일이 결코 한순간의 선택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그, 그게 무슨…! 그건 지나치게 비약적인……!”
—땅땅!
재판장은 알리시아의 말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끊었다.
지긋하게 나이가 든 재판장은 검사의 편에 손을 들었다.
“증인은 감정적으로 재판에 임하는 걸 삼가세요. 검사는 계속해서 증인 심문을 이어 가시죠.”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
알리시아는 날이 선 눈으로 검사를 바라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문을 이어 갔다.
“여기에 계신 모든 배심원들도 아시다시피,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아카데미아는 차별을 금기시합니다. 하지만, 피고인 바르간은 아카데미아의 규칙을 교묘하게 피해 증인을 고용하여 위화감을 조성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방금 전, 증인께서도 인정을 했고요.”
알리시아가 바르간의 시종으로서 일한 날을 재확인하면서 이미 공개적으로 그녀가 시종으로서 부려졌음을 환기시킨 검사.
그의 모든 말들은 처음부터 잘 짜인 각본과도 같았다.
“…조사 결과, 피고인은 증인의 양어머니로부터 강압적인 거래를 통해 100골드라는 거액으로. 노예 매매와 완전히 같은 형태의 일방적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자, 잠시만요…! 제 얘기도 좀…!”
“이는! 철저한 힘의 불균형 속에서 이루어진 부정당 거래로! 계급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아야 할 용사의 기본적인 규율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입니다!”
검사는 알리시아와 바르간 사이에서 오갔던 계약을 언급하며.
바르간이 예비 용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계급주의에 찌들어 있으며, 비단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악인’으로서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알리시아가 무슨 말을 하고자 입을 열려 할 때면 검사는 막았고.
재판장은 매번 알리시아를 함구시키며 검사의 편을 들었다.
그제야 알리시아는 깨달았다.
당황스러움과 억울함이 눈가에 차올라서야 주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말은 재판장이니 배심원이니 해서 현대의 형사재판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으나.
그 속살을 뒤집어 까 보면 이단 심문이나 다름이 없다.
재판장과 검사는 즉 위그드라실의 이단 심문관이었으며.
이미 중앙교회는 바르간을 여신교의 신자로 여기고 있다.
교회는 바르간을 처형하기로 결론 내린 것이다.
지금 이 자리는 지금껏 바르간이 쌓아 왔던 명성을 철저하게 부수기 위한 곳.
진실을 바로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닌, 여신을 추종하는 불길한 이교도를 공개적 처형하기 위한 장소였다.
‘도련님….’
알리시아는 떨리는 눈으로 바르간을 바라봤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태평한 모습.
그러나 그런 바르간을 눈에 담고도 알리시아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그가 또 무언가를 준비했겠지. 대책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안심감이 피어올랐을지 모르나.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명목상의 증인 심문. 알리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음에도 재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자신의 존재는 그저 바르간의 악행을 가시화해서 보여 주기 위한 수단.
그들은 알리시아의 의견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발언권 따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증인은 또 한 명의 가엾은 피해자입니다. 이는 피고인의 죄가 더욱 무거움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알리시아가 크게 외쳤다.
절규하듯이 터져 나온 음성. 지금껏 남들에게 소리를 친다는 행위를 거의 해 본 적이 없다시피 한 그녀가 절실함에 목청을 울렸다.
그 진솔함이 닿았는지 순간 재판장에는 정적이 흘렀고.
검사는 날카로운 눈매를 더욱 굽히며 물었다.
“뭐가 아니라는 거죠?”
“처음부터… 처음부터 완전히 엉터리예요!”
알리시아는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그녀는 현재 검을 들고 있지 않았지만, 마치 나이아스를 들고 오러를 뿜어내고 있는 것처럼 당당했다.
“왜 저와 바르간 도련님 사이의 일들을 멋대로 해석하고 깎아내리는 거죠…? 어째서 바르간 도련님에게 불리한 사안들만 골라서 이야기하는 거죠?”
“증인! 증인은 지금…!”
“제가 괜찮다고요! 당사자인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계약이라고요! 확실히… 처음 계약은 남들이 봤을 때 다소 강압적이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 이후에 새롭게 계약을 맺은 건 서로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정당하고 동등한 거래였어요! 결코 부정하지 않았어요!”
“너흰 뭐 해? 얼른 조용히 안 시켜!”
검사의 지시에 알리시아에 근처에 있던 두 명의 용사가 달려들었다.
그녀를 무력으로 포박하는 용사들.
그 와중에서도 알리시아는 굴하지 않았다.
“왜 저를 피해자 취급하는 거죠? 왜 바르간 도련님이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거죠?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저희 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요!”
알리시아의 외침에 좌중은 집중했다.
가볍게 넘겨듣기엔 너무나 진솔 되고 필사적으로 보이는 그녀.
배심원들은 웅성거렸고.
재판장 역시 현장의 분위기를 알아차려 그녀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검사는 증인이 의견이 빠짐없이 전달되도록 심문하세요.”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결국 용사들의 속박에서 풀어난 알리시아.
그 이후, 새롭게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알리시아는 어떠한 왜곡이나 묵살 없이, 자신이 보고 느꼈던 그대로를 전달했다.
또한 계약의 정확한 인과관계에 대해 밝혔고.
아르볼 프루탈이나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축제 당시를 언급하며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바르간의 행적을 알렸다.
그러자 몇몇 일반인 배심원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로 바르간이 아카데미아를 무너뜨린 게 아니지 않을까?
물론 극소수의 인원들이기는 했지만, 변화가 존재한 것이다.
알리시아는 희망을 느꼈다.
교회가, 용사들이 바르간을 죽이려 한다면 일반 시민들의 여론을 얻으면 된다.
아무리 재판장이라 하여도 배심원의 의견을 아예 묵살할 수는 없을 터.
이대로 간다면 조금씩……!
“재판장님, 증인 알리시아의 증언은 효력을 갖추지 못합니다.”
알리시아의 희망의 끈을 단호하게 잘라 버리는 여인.
붉은 머리칼과 날선 눈매가 유난히도 눈에 띄는 한 여학생이 개입했다.
“검사 측 보조원. 그게 무슨 말이죠?”
“이번 재판에 검사 보조를 맡은 오셀 율리오 클레멘스입니다. 네, 지금부터 그 정확한 까닭에 대해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셀 율리오 클레멘스.
이번 재판이 일어나도록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자, 용사 랭킹 1위인 실베스테르의 유일한 여식.
클레멘스는 증명하겠다는 말도, 말씀드리겠다는 표현도 아닌,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알리시아의 근처로 다가오는 클레멘스.
그녀는 알리시아의 근처에 서 있던 용사의 단검을 멋대로 빌려 붉은 오러를 띄었다.
이에 재판장은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하지만, 검사가 끼어들어 고개를 저었다.
“재판장님, 증인의 몸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알리시아 역시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서 있을 때.
클레멘스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베었다.
그러자, 알리시아의 쇄골이 드러나도록 옷의 윗부분이 찢어졌으며.
바르간이 새겼던 저주의 문양이 드러났다.
클레멘스는 그 문양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옷을 젖혀 버린 뒤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증인 알리시아의 발언은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피고인과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녀는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아니에요! 이건…!”
알리시아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계약을 위한 조건 중 하나였을 뿐. 지금까지 자신에게 위해를 끼친 적도 없었고 효과 역시 발동된 적 없었다고.
그러나 마치 노예의 각인과도 같은 문양은 마법에 무지한 일반인 역시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고, 파급력이 대단했다.
“증인의 현 발언 역시 왜곡되어 있습니다. 조사 후, 저주 마법에 걸린 효력을 알아낼 수 있었고. 그 결과를 지금 재판장님께 전달드리겠습니다.”
클레멘스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마치 미리 맞췄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동한 또 다른 보조인은 재판장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재판장은 잠시 그 내용을 살피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반응을 살핀 클레멘스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똑바로 전했다.
“매혹의 저주! 피고인 바르간은 증인 알리시아를 말 잘 듣는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매혹의 저주라는 비인도적인 저주를 걸어 두었습니다!”
“……네?”
클레멘스의 발언에 놀란 것은 좌중뿐이 아니었다.
알리시아 역시 순간 힘이 쫙 풀리듯 가만히 멈춰 서게 되었다.
매혹(魅惑).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것.
즉, 알리시아가 바르간에게 품고 있는 연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증인 알리시아. 아니, 피해자 알리시아는 피고인에게 걸린 저주로 인해 강제적으로 마음을 개조당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클레멘스는 알리시아가 에리카에 이어진 또 한 명의 비참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강조하며. 알리시아의 발언에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요…!”
알리시아는 믿을 수 없다며 조사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였으나.
클레멘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인물로 인해 곧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알리시아 양, 클레멘스 양의 말이 사실이에요.”
“……파울라 교수님.”
재판장은 파울라의 신원에 대해서 밝힐 것을 요구했고.
파울라는 자신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말을 덧붙였다.
“알리시아 양에게 걸린 저주의 조사 총괄을 맡은 아카데미아의 교수 파울라입니다. 검사 보조원인 클레멘스 양이 보여 준 결과는 거짓이나 왜곡이 없는 ‘진실’임을 말씀드립니다.”
파울라는 시선을 돌려 알리시아를 바라보았다.
안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 주며.
“알리시아 양은 지금까지 속고 있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