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7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79화(279/350)
“도련님…….”
중앙에 구속되어 있는 바르간을 바라보는 알리시아.
그녀의 눈빛은 마치 아니라고 말을 해 달라고.
부디 부정의 단어를 입에 머금어 달라고 부탁을 하듯 절실하며 가여웠다.
그러나 바르간은 알리시아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 파울라 역시 애써 담담하려는 태도로 묵과할 뿐이었다.
“이상으로, 증인 알리시아에 관한 심문을 종료합니다.”
그렇게, 알리시아의 증언은 무참하게 끝이나 버렸다.
“잠시만… 잠시만요…. 잠시….”
알리시아는 마치 고장 난 장난감이 되어 버린 것처럼.
무의미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고.
양옆의 용사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이동되었다.
“바, 바르간 도련님…. 도련님…!”
알리시아는 바르간을 불렀다.
그가 돌아보지 않더라도 몇 번이라도 불렀다.
“도련님! 도련님……!”
알리시아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한마디면 족했다.
단 한마디. 짧은 한 문장의 부정이면 그녀는 바르간을 믿을 수 있었다.
남들이 조사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부디 한마디의 말로 그렇지 않다 해 준다면. 바르간에 대한 신뢰를 단단하게 지킬 수 있었다.
그를 사모하는 자신의 감정에 당당할 수 있었다.
“도련님—!”
하지만, 바르간은 한순간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문이 닫혔다.
알리시아가 떠나간 공간에서, 알리시아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재판장 안을 울렸으며.
그 울림은 배심원들의 분노로 치환되었다.
“저 씹어 죽일 새끼.”
알리시아가 바르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만큼.
바르간의 무혐의를 강하게 주장한 만큼.
배심원들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듯 자연스레 그녀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었고.
그 원흉인 바르간에게 분개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재판이고 뭐고 필요 없어! 저딴 녀석은 사지를 찢어서 죽여야 해!”
“뻔뻔한 낯짝 좀 봐! 평범한 감정이라는 게 없는 거야! 여신에게 심취해 있는 자가 분명하다!”
자신의 감정을 이겨 내지 못하고.
욕설과 함께 서적이나 웃옷 등 각종 물건을 재판장 안으로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몇몇이 바르간에게까지 닿았고. 그의 머리에 피를 흘리게 했지만.
바르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상황을 관망했다.
—땅땅땅!
재판장은 흥분한 배심원들을 진정시켰으며 간신히 재판을 이어 갔다.
파울라는 재판장에게 허락을 구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바르간, 좀 물어볼게.”
“…….”
“처음부터 총장님의… 굴레마시아 님을 이용해서 추기경 가미긴을 잡을 생각이었던 거야?”
“…….”
“전쟁이 있기 전! 굴레마시아 님과 단둘이서 담화를 나누었던 그때! 굴레마시아 님을 부추긴 거야…?”
그녀는 굴레마시아가 멋대로 중앙교회의 명을 거부하고 행동할 리 없다고 여겼다.
하물며 전장의 와중에서 독단적으로 움직이다니. 상상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의 입김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대답해! 언제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을 생각이야? 자꾸 아무런 해명 없이 시간만 끌면 불리해져만 간다는 걸 알잖아!”
“…….”
그녀의 호통이 터져 나오자, 비로소 바르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파울라를 살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느긋하게 훑은 그는 말했다.
“굴레마시아의 고유술식이 나쁘지 않게 성공한 거 같구나.”
“…뭐?”
“아직 완전하게 다룰 수는 없고, 굴레마시아의 전성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그렇다 해도 영웅이라 불렸던 자의 유산은 대단하군. 대부분의 성취가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어.”
“너… 너…!”
묻는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뱉고 있는 바르간.
파울라는 미안함은커녕 관심조차 없다는 듯한 바르간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까지 말 돌리고 있을 거야! 누가 내 현 상태를 집어 달라고 했어? 빨리 묻는 말이나 대답을 해!”
“…….”
파울라의 성취를 확인한 바르간은 흥미를 잃었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약간의 무료함마저 눈동자에 어리는 게 마치 굴레마시아가 어쨌든, 뭘 했든 더는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눈치다.
파울라가 노발대발하고 있자, 클레멘스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방법이 있다고 했다.
사실상 이미 판결은 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재판장님, 피고인 바르간과 더불어 추가 용의자들을 이만 들여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세요.”
클레멘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재판장의 문이 열렸고.
13명의 인원들이 줄을 서서 들어왔다.
검사 보조인인 클레멘스는 배심원들에게 그들을 소개했다.
바르간에게도 상당히 익은 자들이다.
“피고인 바르간과 함께 아카데미아의 붕괴를 이끈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들이자, 아카데미아에 잔류한 여신교의 신도들입니다.”
학생 12명과 교수 1명.
그들의 손목과 발목에는 두꺼운 사슬이 채워져 있다.
그중에는 여우 귀를 한 아인종 프리다 역시 있었으나.
바르간의 악평을 퍼트리고 다녔던 보르그만이 쏙 빼고 없었다.
“피고인 바르간은 작년 축제 이후, 아카데미아 내의 여신교를 축출한다는 명목으로 움직였으나. 실상은 이렇듯 비밀리에 세력을 유지시키고 다루었습니다.”
클레멘스는 주장했다.
바르간이 축출해 낸 여신교의 세력은 외부에 보이기 위한 눈속임용이었으며.
아마 잔여 여신교 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이들 중 프리다라는 여학생이 대시계탑에 들락날락했다는 목격담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상당히 지나 버려 대시계탑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에게 어떤 저주의 마법이나 바르간의 마나로 추정되는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검사 보조원, 이들이 여신교의 신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해 낸 것이죠?”
“페랑기스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용의자들의 뇌를 직접 살폈습니다. 이 과정에서 2명의 학생이 알티프화하여 사망하였고 그 과정을 작성하여 문서로 남겨 두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재판장은 추가로 받은 문서를 살폈다.
내용으로 살폈을 때, ‘내부 고발자’의 간접적인 도움으로 인해 클레멘스는 어렵지 않게 용의자들을 체포하여 검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재판장은 내부 고발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클레멘스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아카데미아에 있던 형상파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여, 여신교! 정말로 여신교의 신자들이!”
“봤지? 내가 뭐랬어? 나 지금 소름 돋으려 그래! 바르간이 여신교 세력을 숨기고 있었다니까!”
“바르간을 죽여라! 여신교를 사형시켜라!”
“재판을 끝내고 당장 저 악인을 처형대 위로 올려라!”
좌중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여신교의 세력마저 드러나게 됐으니 이미 모든 혐의는 진실이 된 셈이나 마찬가지.
여론은 바르간을 사형하자는 쪽으로 완전히 넘어갔으며.
이는 회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땅땅!
재판장은 배심원을 함묵시킨 뒤, 바르간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늙은 재판장과 검사의 입가가 저도 모르게 살며시 올라가게 되었다.
“피고인. 최후 변론을 하겠습니까?”
“…….”
누가 보더라도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바르간은 여전히 침착했다.
나릿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바르간.
자신과 형상파의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원들이 위에 위치해 있다.
그가 서 있는 이 둥그런 장소는 하나의 무대.
관람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하나의 유희.
“하지 않겠다면 곧바로 판결이 내려질 겁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피고인 최후 변론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연극의 무대는 본래 저들이 아닌, 바르간이 생전에 활약하던 곳이다.
주연을 뺏겨서는 그의 체면이 살질 않았다.
그의 인생은 지금껏 그래 왔으니까.
“인정한다.”
모두의 감각이 곤두서 있는 지금.
한마디의 대사가 재판장 내부에 울렸다.
대사의 주인은 피고인 바르간.
그의 눈은 사람이 아닌 마치 알티프와도 같이 이질적이며 섬뜩했다.
그가 씨익 입가를 올리며 말했다.
“내 모든 혐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나 바르간은 이를 인정한다.”
순간 단체로 얼이 나가 버린 좌중.
그들의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상황이 극악으로 치달아졌으니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는 있다.
이미 사형임은 확실하지만 그나마 편안하게 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바르간의 태도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여길 수 없었다.
그랬다면 저리도 즐겁다는 듯 미소 짓고 있을 수 없지.
“저, 저저, 저 녀석이 지금 인정한 거지? 자기 죄를 인정한 거지?”
“저 천하의 X새끼! 저런 건 당장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해!”
“처형대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당장 극악무도한 범죄자 바르간을 죽여라! 갈기갈기 찢어 버려라!”
“아카데미아의 길고 긴 역사를 끝내 버린 대역죄인이다! 눈알을 빼고 손가락을 자른 뒤 불구덩이에 내던져라!”
“뒤르테문드의 영웅은 얼어 죽을! 저자에게 협력했던 모든 이들도 샅샅이 조사해서 벌을 내려야 한다!”
정신을 차린 배심원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토해 냈다.
죄송하다고 펑펑 울면서 싹싹 빌어도 모자란 판국에 저리 뻔뻔하게도 고개를 들고 있는 죄인의 모습에 천불이 일었다.
“…….”
그러든 말든 바르간은 배심원들이 아닌 재판을 이끌어 가던 주요 인물들을 살폈다.
그 대부분은 예전부터 바르간이 심판 무구를 얻거나 업적을 세웠을 때 사사건건 개입하던 중앙교회의 고위 관료들.
일이 어떻게 진행되든 방해만 되던 폐기물들이다.
“재판이 끝나기 전에 나도 한 가지 물어보지.”
바르간은 그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그리도 두려운가?”
그 문장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었다.
일반적인 용사나 학생들과는 달리, 바르간은 항상 제 의견이나 행동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빠르게 성장해 나갈수록, 심판 무구를 얻고 세력을 키워 갈수록.
중앙교회의 일부 고위 관료들은 그를 견제했고 통제하려 들었다.
하지만, 바르간은 통제를 따르지 않으며 행보 역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진취적으로 뻗어 나가 관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들에게 제약할 수 없는 힘이란 위협인 동시에 제거의 대상.
결코 영웅 따위가 아니었다.
“…질문에 답이 없군. 나보곤 떠들지 않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더니만.”
코웃음을 치는 바르간.
이어서 그는 직접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부의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점철한 채, 그의 죄가 더욱 가중되게 말이다.
“나는 반강제식으로 사용인 알리시아를 100골드에 사들였다. 알리시아에게 건 저주 중 매혹의 저주가 포함되어 있음은 사실이며, 그녀를 내 입맛대로 다루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작년 아카데미아의 축제 당시 사건의 주범으로 추측되던 여신교 프란체스카를 죽이는 시늉을 하며 이동시켰다. 이때 약혼녀이던 에리카의 워프 마법을 강제적으로 이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에리카에게 각종 고문과 협박을 가했다.”
“나는 외부로부터 아카데미아 여신교 세력을 보호하였다. 이들을 활용하여 대시계탑에 있는 장치를 풀어낼 수 있었고 아카데미아 붕괴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는 가미긴과의 전쟁 당시 워프 사용자 톰에게 환각 마법을 걸어 임무를 실패하게 만들었다. 톰은 온전히 내 통제 하에서 움직였고, 그가 나와 에리카를 아카데미아로 워프시킨 것 역시 내 의지였다.”
“나는 굴레마시아를 꼬드겨 가미긴과 공멸하게 유도했다. 이로 인해 내가 얻어 낸 것은 가미긴의 권능이며. 아카데미아를 추락시키며 사용을 끝마친 에리카의 기억을 권능으로 지워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
빙그레 웃은 채 모두를 올려다보는 바르간.
배심원들은 그가 하나하나 죄를 언급할 때마다 끔찍한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고.
파울라와 같이 바르간과 깊은 관련이 있던 자들은 비참한 표정이 되어 갔다.
바르간이 기존 혐의를 모두 인정하자, 재판장은 만족스러운 듯이 수염을 매만지더니 판결을 내리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렸다.
—땅땅땅!
“조용히들 하십시오! 지금부터 위그드라실의 판결을 알리겠습니다.”
유난히도 엄중한 목소리.
재판장은 자신들이 짜 놓은 각본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고는 ‘대역죄인 바르간!’이라고 외치려 했다.
더는 피고인이나 용의자가 아닌 죄인으로 말이다.
하지만, 재판장의 입이 열리기도 전, 선수를 친 건 바르간이었다.
그의 죄는 아직 끝나질 않았다.
“또한, 나는. 현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 퀼레를 전복할 것이며 그 시초는 이 재판장이 될 것이다.”
쿠우우웅—!
“끄아아아아악!”
돌연 재판장을 누르는 거대하고 불길한 힘.
마치 중력이 말도 안 되게 증폭된 것처럼 일반인들은 바닥과 하나가 되어 짜부라졌으며, 높은 랭킹의 용사들 역시 양 다리로 바닥에 박은 채 버티기 급급했다.
재판장의 경비를 맡고 있던 용사 랭킹 5위의 타우롬.
그는 황급히 활을 겨냥해 바르간을 향해 쏘았다.
극도로 견고한 마나를 두른 화살.
그러나 화살은 바르간에게 닿지 못하고 발현된 이질적인 구체에 의해 사라져 버렸다.
—쩌어어억!
바르간이 서 있던 재판장의 바닥.
평범한 바닥이던 그곳에서 갑자기 이빨이 솟아난 채 벌어지더니, 무수히 많은 알티프의 떼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곧 그 안에서부터 하얀 손들을 내뻗어져 바르간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렇게 들리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
알티프 그중에서도 정상에 위치하는 한 존재가 아주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오만한 인간의 아이야. 내 너를 인정하마.』
그것은 추기경.
그중에서도 공간을 지배한다고 일컬어진 존재.
벨레드.
『비록 혐오스러운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넌 나의 자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시체와도 같이 새하얀 손은 바르간을 점차 괴물의 입 안으로 당겼다.
결코 거칠지는 않고 따뜻하게. 어미가 아기를 다루듯이.
벨레드는 인류를 배반하고 커다란 공을 세운 바르간을 받아들였다.
『이만 이리로 오거라. 내 새로운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