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8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80화(280/350)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재판장.
알티프의 무리가 멈추지 않고 솟아 올라왔다.
케에에엑—!
자폭을 하는 특이체들은 개구리처럼 주요 관료들에게 뛰어들어 폭발했다.
주변의 용사들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검과 지팡이를 꺼내 들고 대항하지만, 그 수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주교도 여럿 있어 곤란했다.
“지, 지켜…! 나를 지켜라!”
가장 높은 곳에서 바르간을 내려다보고 있던 재판장은 허둥지둥 자리에서 내려오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자리는 가장 눈에 띄는 위치인 만큼.
가장 저격하기 편한 곳.
곧 주교가 날린 기다란 촉수에 얼굴을 관통당한 재판장은 몸의 무게를 이겨 내지 못하고 철푸덕! 앞으로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르간을 사형시킬 생각에 기분이 퍽 좋아 보였던 입가는 이제 비릿한 피와 함께 뇌수를 흘릴 뿐이다.
“으악! 으아아아악!”
“사, 살려 줘! 살려 줘!”
“꺄아아아악!”
마나도 제대로 훈련되지 못했던 일반인들은 이미 납작하게 터져 나간 지 오래.
그나마 간신히 몸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추기경 벨레드의 압력에 의해 움직일 수는 없는 이들이 죽어 나갔다.
—크르륵!
—케르르륵!
경비를 맡은 용사들이 필사적으로 저항에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알티프들.
혼란과 광기.
혈흔이 낭자한 이곳에서 프리다는 뒤로 묶인 손을 부단히 움직이며, 눈으로는 빠르게 내부를 살폈다.
알티프의 떼는 프리다를 비롯한 형상파의 세력을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현장을 미리 짜맞추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디 있나… 분명히 이 안에 있는데.’
발달한 프리다의 오감이 한 사람을 찾고 있다.
바르간을 극도로 증오했던 녀석.
여신교이면서도 제 임무를 다하지 않고 결국 내부 고발을 해 버린 그 녀석.
—철컥.
이윽고, 혼란을 틈타 자신의 손발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 낸 프리다.
그녀는 하얀 손의 무리에 잡힌 채 괴물의 입안으로 옮겨지고 있는 바르간과 슬쩍 눈길을 교환한 후 움직였다.
벌써 몇 개월 전부터 이어졌던 프리다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단 하나의 임무만 달성하면 그토록 기다려 왔던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용사들은 붙잡혀 있던 형상파의 세력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고위 관료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설마 대주교도 아닌, 사람을 재판하는데 추기경이 나설 것이라고 그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바르간을 견제해서 용사 랭킹 5위의 궁사를 배치하고 경비 인원을 늘렸다고 하더라도.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기 있구나.’
군중 속에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성을 발견한 프리다.
남성 역시 프리다를 발견하곤 도망치려 들었다.
프리다는 긴밀한 몸놀림으로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갔으며, 빠르게 남성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크헉!”
재빨리 마나로 강화된 주먹을 휘두른 프리다.
후두부를 가격당한 남성은 외마디의 고통을 호소한 뒤 쓰러졌다.
퍼억퍼억! 발길질과 함께 욕설을 퍼붓는 프리다.
남성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고 두들겨 패다가 멱살을 잡았다.
“내가 놓칠 줄 알았냐. 이 돼지 새끼야.”
얼굴을 감싸고 있던 후드가 벗겨지자 남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오셀 랑피트 보르그.
형상파의 신자 중 하나이며 바르간을 미워하여 신앙심을 버린 배신자다.
“크허, 허어억….”
“이 돼지 새끼 몰골 좀 보소? 신충이 배 속에서 꿈틀거리느라 괴로운가 보지? 어?”
보르그는 여신교를 배신했다.
간접적으로 클레멘스에게 증거와 실마리를 제공하여 바르간을 궁지에 몰기 위해 움직였다.
그 대가가 이것.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잘도 재판을 보려고 했구나. 보르그 이 새끼야.”
“…컥.”
알티프화가 사분의 일 정도 진행된 보르그.
잔뜩 부어오른 채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피부는 프리다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
그의 목에 걸려 있는 목줄. 그것은 알티프화가 완전히 진행되면 발동되도록 술식이 새겨져 있는 마도구였다.
프리다는 그에게 험담을 퍼붓다가 외쳤다.
“그렇게 해서까지 바르간 님을 죽이고 싶었냐? 그 정도로 원망스러웠어? 근데 이 미련한 돼지야.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어차피 바르간 님을 다 알고 계셨어! 넌 그냥 보기 좋게 놀아나다가 뒈지는 거라고!”
보르그를 안면을 연이어 패는 프리다.
본래 바르간의 명령은 보르그를 향한 폭행이 아닌 척살. 보르그를 죽여 내부에 있던 사역마를 밖으로 꺼내 역소환될 수 있게 하는 것.
따라서, 이건 예전부터 쌓아 왔던 그녀의 감정의 분출이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바르간 등에 칼을 찌르려 했던 그를 용서할 수 없기에.
퍼억!
퍼억—!
그렇게 주먹질을 이어 가던 프리다는 손톱을 날카롭게 해서 그의 살점을 찢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보르그는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댔고.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 앞날도 모르고 신나서 절벽에 떨어진 돼지! X신 새끼! 바르간 님이 구속된 걸 보고 얼마나 좋아라 했을까! 모든 게 의도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탄력이 붙은 프리다는 더욱 폭력의 수위를 높였다.
사실, 프리다는 이런 한심한 녀석을 놔두고 있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뭣도 모르고 신나 하는 꼬락서니를 차마 모른 척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프리다. 보르그를 죽여 내 사역마를 해방시켜라.
손톱으로 보르그의 낯짝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헤집는 프리다.
그녀는 바르간의 지시를 떠올리며 성의를 다했다.
어딘가 절실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충실함과 진심을 보여 주어.
보란 듯이 그 결실을 맺기 위해서.
—그렇게 해 준다면 나는 너만을 데려갈 것이야.
“하아… 하아…….”
너무 한 번에 몰아붙여서인지 프리다의 숨이 거셌다.
그녀의 아래에는 얼굴이 갈기갈기 찢어진 보르그가 가드도 포기한 채 누워 있다.
그래도 알티프화가 진행되고 있어서인지 살점이 덜렁거리고 눈이 찢어졌어도 숨이 붙어 있었다.
“프리다…. 이… 멍청한… 여우야…….”
“뭐라는 거야? 아직도 주절거릴 힘이 남아 있나 보네?”
프리다는 왠지 모르게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보르그에게 자신의 우위를 보여 주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러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보르그는 숨이 넘어갈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꾸역꾸역 말했다.
지독할 정도로 귀족 의식에 절여 있는 그는 아무리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아프더라도 남에게 고개를 숙이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보르그가 프리다를 비웃듯이 말했다.
“너도… 나랑 똑같이…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콱!
프리다는 길게 내뺀 손톱으로 녀석의 목을 뚫어 버렸다.
잠시 후, 보르그는 하려던 대사를 끝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뒀고. 그의 입에서부터 슬라임 형태의 사역마가 꾸물꾸물 새어 나왔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역마의 아래에 곧 역소환의 진이 밝혀졌으며.
그렇게 사라졌다.
“…됐어. 드, 드디어 내 임무를 끝냈어…….”
차가운 바람이 뒷목을 훑고 지나간 것처럼 순간 몸을 떨던 프리다.
애써 진정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끄아아아악!”
“저 녀석을 잡아! 절대로 검사님의 근처로 다가가지 않도록 해라!”
“죽여! 죽여!”
아직도 무질서로 가득한 공간.
피와 내장의 냄새로 가득 채워진 재판장에서 프리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불안해하지 마. 처음 죽여 본 것도 아니잖아.”
사람을 죽인 손.
그 손에는 바르간이 선물해 준 붉은 보석의 반지가 끼어 있다.
할렘가에서 죽을 위기와 겁탈당할 위기에 당면했을 때 말고는 벌인 적 없던 살인.
괴물들을 죽여 왔음에도 그녀는 아직 그 행위에 익숙하지 못했다.
“바르간 님. 바르간 님은….”
떨리는 몸과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며 바르간을 찾는 프리다.
재판장의 정중앙에 있던 그는 현재.
“…….”
사라지고 없었다.
수많은 알티프 떼를 내뿜어 대던 괴물의 입도 사라지고 없다.
더는 알티프가 충원되지 않는다.
“괜찮아. 괜찮아…. 금방 데리러 와 주실 거야.”
불안감에 파르르 떨리는 프리다의 입술.
그녀는 추운 것처럼 자신의 몸을 감쌌다.
—프리다…. 이… 멍청한… 여우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바르간 님과 약속했어.
나는 쓸모가 있어. 보르그와는 달라.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지 않아.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나를 데려오시는 것까지가 계약이잖아.
그런 건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시잖아.
“걱정하지 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야… 그야…. 마지막에 그분 곁에 있는 건 나인걸…? 내가 가장 그분의 많은 비밀들을 알고 있었는걸…?”
바르간의 곁.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알리시아도 에리카도 아닌.
자신.
프리다는 자가 최면을 걸듯.
반복적으로 말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
“환영합니다, 바르간 님. 큰 부상은 없으신 것 같아 다행이군요.”
“…얼트레만인가.”
“음? 뭔가 좀 달라지신 것 같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그 복장은 영 불편해 보이시는군요?”
탑햇을 쓰고 있는 주교 얼트레만.
그는 작은 주머니와는 맞지 않는 크기의 마도구를 꺼내 바르간의 몸을 감싸고 있는 모든 구속구를 풀어 주었다.
“…….”
신체의 자유를 되찾은 바르간은 손목을 까딱거리며 함께 워프된 여성을 바라보았다.
대주교 살레오스.
중앙교회로 이송 중인 것을 급습하여 빼내 왔다.
이송에는 용사 랭킹 7위인 트레센나가 맡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게 분명하다.
“말해 둔 대로 잘 데려왔군.”
“예, 벨레드 님께서는 다른 세력의 대주교들을 이동시키는 걸 그다지 내키지 않아 하시지만, 바르간 님의 말씀대로 다른 추기경분들에게 빚을 씌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요컨대 네 혀를 잘 놀려 벨레드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로구나.”
“설득이라뇨. 저는 그저 제안을 했을 뿐입니다.”
탑햇을 슬쩍 올리며 웃는 얼트레만.
바르간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금 살레오스의 상태를 살폈고 인상을 찌푸렸다.
“상태가 끔찍하군. 나는 인간이라서 많이 봐주고 있었다 이건가?”
“위그드라실의 신도들은 알티프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습니다. 온갖 고문은 기본이고, 이와 같이 구속을 위해 온몸에다 철근을 박아 버리기도 하죠.”
살레오스의 목, 양손, 양발, 그리고 몸의 중앙에는 두꺼운 철근이 박혀 있다.
철근이 비집고 들어가 있는 사이로 피가 계속해서 흘렀는데 질긴 알티프의 생명력 덕에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살레오스 님, 살레오스 님의 상처는 가서 봐 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수술을 하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군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어두운 동굴.
주변에는 벌레나 박쥐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생명의 기운이 전무한 곳이다.
『……』
살레오스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얼트레만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르간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며 정석적으로 인사를 취했다.
모자를 벗자 얼트레만의 이마에 박혀 있는 또 하나의 눈이 나오며 길게 미소 지었다.
“VVIP이신 바르간 님, 당신을 외부 고객이 아닌, 같은 신도로서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정중하고 깔끔하게 고개를 숙이는 얼트레만.
그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앞으로 벨레드 님을 위해서, 여신교의 부흥을 위해서 활약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주교 바르간’ 님.”
“구태여 내 직책을 집어서 말하는 건 이유가 있나?”
“여신교의 새로운 대주교이신 바르간 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자 했습니다. 한데 생각해 보니… 인간의 몸으로 대주교에 들어오시다니. 역사에 이름을 남기시겠군요.”
얼트레만이 너스레를 떨자, 바르간은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웃으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트레만 또한 곁을 따랐으며 살레오스도 함께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바르간 대주교 님. 그 여성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그 여성?”
“재판장의 한구석에서 바르간 님의 이름을 구시렁거리며 부르는 여우 아인종의 여학생 말입니다. 바르간 님께서 구하러 오실 거라는… 그런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얼트레만, 은근슬쩍 나를 시험하려 하지 마라.”
바르간은 잘 손질한 칼과도 같이 예리하게 주교의 의도를 파악했다.
이미 추기경 벨레드로부터 인정받은 자신을 주교 따위가 함부로 시험하려 들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말했다.
“그런 것 정도는 보고하지 말고 네 선에서 끝내라.”
“그 말씀은….”
“확실하게 죽이란 말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음성.
연민의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외적인 모습에 얼트레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대주교 바르간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