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8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81화(281/350)
“도련님이 그렇게 사라진 이후에 재판장 안에 있던 고위 관료들이 대부분 죽었다고 하더라. 말로는 퀼레를 전복시킬 거라고 했지만, 그 정도 전력이 아니었던 걸 보면 애초에 목적이 탈출과 재판장 내부의 관료들이었던 거 같아.”
중앙교회의 수많은 방 중 하나.
불이 다 꺼진 이곳.
흔들의자에 앉은 나이아스는 앞뒤로 의자를 움직이며 말했다.
“용사들이나 학생들은 별 피해가 없었다고 해. 최면이 걸린 것처럼 유난히 관료들만 물어뜯어 댔다지… 하지만. 추기경의 힘에 의해 터져 나간 민간인들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눌렸다고 하더라고.”
그 밖에도 기존 형상파였던 인원들은 전멸했다고 알려졌다.
형상파를 노리지 않던 알티프의 무리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돌변하기 시작했고.
형상파의 신도들을 죽이거나, 신도들 자체가 알티프로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삐걱— 삐걱—.
의자가 흔들릴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밖에 비가 오기 때문인지 축 늘어진 나이아스. 정령은 고개를 들어 좀처럼 대답이 없는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전했다.
“대역죄인이 된 거야. 도련님은.”
“…….”
“뭐, 인간들 사이에서 그렇다는 거지만.”
자신과는 별 상관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정령.
나이아스는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쫙 켰다. 그러곤 알리시아가 최근 잡지 않았던 자신의 매개체를 보았다.
등외품 나이아스.
하마터면 중앙교회에 빼앗길 뻔했던 걸 파울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되찾아 낸 검이다.
항상 광이 나게 손질되어 있던 검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 진짜 심심해서 죽어 버리겠네. 이래서야 정령계에 있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
툴툴거리는 나이아스.
주변에 굴러다니는 물건을 발로 툭툭 차면서 알리시아의 관심을 끌어 보려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며칠째 밥도 먹지 않고 있는 알리시아.
나이아스는 눈에 띄게 야위어진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쇄골이 드러나도록 옷을 젖혔다.
“문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
“누가 지웠는지 몰라도. 티도 안 나게 잘 지웠다~. 이래서야 매혹의 저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그치?”
“…….”
나이아스가 지독한 무료함에 알리시아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알리시아의 눈동자에 불길한 이채가 돌더니.
“흐으윽….”
“어…? 뭐야, 울게? 이렇게 갑자기 울어 버린다고?”
얇은 어깨를 달싹이며 흐느꼈다.
그녀를 울릴 생각까지는 없었던 정령은 당황스러웠다. 심심해서 조금 건드리려고 했던 게 일이 커져 버리게 됐다.
“야, 야…! 아니, 왜 울어…!”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 한 줄기가 마중물이 된 것처럼 알리시아의 눈에서 연이어 눈물이 흘러나왔다.
숨까지 떨려 하며 슬퍼하는 그녀.
나이아스는 이도저도 못 하고 있다가 어쩐지 제 눈에도 습기가 차오름을 느꼈다.
“야이씨…. 네가 너무 서럽게 우니까 나까지 눈물이 나려고 하잖아…!”
별안간 나이아스의 코끝이 빨갛게 변하더니, 알리시아와 마찬가지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어린아이와도 같이 펑펑 울었다.
나이아스는 울면서 말했다.
“도련님 이 나쁜 인간아…! 왜 아르카네만 데려가고 나는 버린 건데에에……! 으아앙!”
정령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 나이아스는 마음이 상해 있었다.
바르간이 범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두고 갔다는 생각에 서글픈 것이다.
심지어 후배였던 아르카네는 지팡이의 에고로서 데려가 버렸으니 그 충격은 배가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함께 울고 난 후.
조금 진정된 나이아스가 훌쩍 거릴 때쯤.
팔찌로 차여 있던 알리시아의 족제빗과 사역마가 빼꼼 고개를 들었다.
—뀨잇?
하얀 털뭉치 같은 녀석이 길게 몸을 빼어 알리시아의 어깨로 재빨리 올라왔다.
마치 울지 말라고 토닥이듯 목을 따뜻하게 감싼 채 온기를 전하는 사역마.
알리시아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사역마를 쓰다듬었고.
비로소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도련님께서는… 괜찮으실까요?”
“…뿌우웃! 어? 뭐라고?”
커튼을 손수건 삼아 콧물을 풀어 버린 나이아스.
알리시아가 한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 그녀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밥은 잘 챙겨 드시고 계실까요…? 많이 다치셨는데 몸은 많이 회복되셨을까요?”
“알리시아…….”
“나이아스 님… 저… 도련님이 너무 보고 싶어요. 걱정이 돼서 미칠 것만 같아요….”
재판장에서 바르간에게 이용당했던 여자로 낙인찍힌 알리시아.
그녀는 잔인한 조사 결과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르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제 이런 마음이 잘못된 건가요…? 저주로 인해 만들어진 가짜에 불과한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똑똑.
알리시아가 감정의 분출을 이어 가고 있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참 힘들어하는 도중에 미안해요. 알리시아 학생, 알려 줘야 할 게 있어서 왔어요. 잠시 실례 좀 할게요.”
용사 헤일리온.
바르간의 스승이기도 한 그가 알리시아가 머물고 있는 방에 찾아왔다.
헤일리온은 테이블 근처에 있는 작은 의자를 끌고 와 알리시아의 앞에 앉았다.
나이아스는 어쩐지 그가 꺼려진다는 눈치로 슬쩍 검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알라시아와 몇 마디를 주고받은 헤일리온은 말했다.
“알리시아 학생에 관한 모든 조사가 끝났어요. 내일 리케이온으로 가는 비공정을 준비해 둘 테니 타면 돼요.”
“…….”
“가면 아카데미아에서 봤던 다른 학생들도 만날 수 있어요. 명칭은 더 이상 아카데미아가 아니게 됐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죠. 혹시 궁금한 건 있나요?”
“……”
알리시아가 묵묵부답이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헤일리온. 곧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의 질문에 발을 붙잡혔다.
“…도련님께서는 어떻게 되시는 거죠?”
“바르간 학생의 취급 말인가요?”
“…….”
“음…. 그냥 가감 없이 말할게요?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테니까.”
헤일리온은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중앙교회는 바르간 학생을 1급 범죄자로 결정짓고 전 세계에 지명수배를 내렸어요. 다른 죄들도 무겁지만, 무엇보다 아카데미아에 관한 죗값이 무거우니까요. 가미긴의 권능도 어느 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고요.”
“그렇다는 건….”
“네, 바르간 학생은 포획이나 교섭 대상이 아닌, 살상 대상이에요. 모든 용사들은 그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될 거고요.”
“…….”
바르간을 죽일 거라는 말에 알리시아의 마나가 반응했다.
불안한 듯 떨리지만 적의를 가지고 천천히 일어났다.
헤일리온은 그것을 알고도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알리시아 학생이 나서지는 않아도 돼요. 그는 제가 맡을 거니까요.”
“……네?”
“제자의 뒤처리는 스승이 해야죠.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쳤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어요?”
싱긋 웃는 헤일리온.
지금이 웃음을 보일 타이밍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알리시아는 그의 눈을 마주했다.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
예전부터 그랬지만 헤일리온이라는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감정선이 다른 것만 같다.
“아무튼, 너무 얽매여 생각하지 말고 환기를 해 봐요. 냉정한 말일 수 있겠지만, 알리시아 학생의 재능은 이대로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걸요?”
헤일리온은 할 말을 다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이 켜지지도 않은 방에 알리시아를 남겨 둔 채, 한 줌의 빛이 새어 나오는 문 앞으로 걸어간 그가 충고하듯이 말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바르간 학생에 대한 그 마음을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곤란할 거예요. 알리시아 학생이 피해자이긴 해도 바르간 학생의 최측근이었던 만큼 좋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
“그럼, 쉬어요. 알리시아 학생.”
쿵—.
문을 닫고 나온 헤일리온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방 안에서는 다시금 알리시아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헤일리온은 느릿하게 발길을 옮겼다.
“피해자… 피해자라.”
헤일리온은 제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바르간과 함께 행동하며 기억이 지워졌던 에리카도 그랬지만, 그와 오래 붙어 있던 알리시아 역시 ‘피해자’로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각인되었다.
용의자로서 재판장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인원들이 말이다.
…이건, 과연 우연일까?
—바르간 남작, 이야기가 정리되기 전에 묻고 싶군요.
헤일리온은 과거의 한순간을 떠올렸다.
바르간이 새롭게 얻어 낸 심판 무구의 소유권을 회의할 당시의 상황을….
—만약 이번 ‘가마긴 토벌’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걸 받고 싶은지. 생각해 둔 건 있는지 궁금하네요.
헤일리온의 물음에 바르간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대답했다.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헤일리온 님께서 제 시종인 알리시아의 ‘스승’이 되어 주시면 합니다.
“…….”
알리시아의 재능은 확실하다.
조금 전에 바르간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드러냈던 기운 역시 범상치 않았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가르치게 되면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왜…?’
어째서 알리시아를 성장시키려 한단 말인가.
바르간. 그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 거지?
‘알 수 없다.’
제법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제자… 범죄자다.
즈으응—.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복도를 걸어가고 있자.
그의 품 안에 있던 일회용 통신 수정구가 반응했다.
한 번 사용하면 버려야 하는 고가의 물건이기에 어지간해서는 연결이 되지 않는데, 그만큼 급히 알려야 하는 사안이라는 뜻이었다.
—헤, 헤일리온! 지시대로 대역죄인 바르간의 교회령 31호를 조사하러 왔습니다. 왔습니다만……!
다급한 목소리.
어딘가 황망하기까지 한 보고자의 목소리는 연이어졌고.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루비드 마을… 교회령 31호 안에 있어야 할 마을이… 아니, 산이! 뜯어져 나간 듯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난다.
날짜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이 반복된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여 채 인지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잠깐 정체하듯 머무르는 때를 우리는 현재라고 부른다.
“역시 별것 아니었네. 아무리 강하다고 난리 쳐 봐야 주교 따위는 전혀 상대가 안 된다니까?”
거의 시체가 되어 버린 주교를 짓밟고 있는 아르하.
그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심장을 완전히 짓밟아 터트렸다.
그러자 주교의 심장 안에 박혀 있던 핵이 깨졌고, 알티프는 죽음에 이르렀다.
그런 아르하를 보던 에밀리는 비명을 지르더니 곧 한숨을 쉬었다.
“핵을 부수지 말라고 말했잖아…. 그걸 가져가는 게 우리의 임무였다고.”
“뭐어? 그게 임무였다고? 그럼 잘 빼 뒀어야지. 지금까지 뭐 한 거야?”
“누구 때문에 못 한 건데… 하아. 됐다. 너랑 싸우면 입만 아파. 스트레스 받고.”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지 마. 그러다 머리색 더 빠진다.”
아르하는 킥킥 웃으며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붉은색이었던 머리가 마치 탈색을 한 것처럼 잿빛으로 변했다.
“누군 좋아서 바뀌고 있는 줄 아나.”
에밀리는 투덜거리면서도 아르하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치유 마법이 뛰어난 건지 아르하의 팔에 길게 나 있던 자상은 금방 회복되었다.
에밀리는 아르하의 팔을 손바닥으로 팡! 때리며 치료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에 아르하가 불만을 표했지만 익숙하다는 듯, 한 귀로 흘리며 다른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에밀리와 아르하가 속한 팀의 팀장이기도 했다.
“리암, 다친 곳은 없는 거 맞지? 참고로, 옅게 베인 것도 상처는 상처니까 필요 없다는 말 하지 말고.”
“괜찮아. 그보다 에밀리, 너도 피곤하면 좀 쉬어. 무리하지 말고.”
“무리 아니야. 이 정도로는 끄떡없어!”
“그럼 다행이고. …자, 그럼 슬슬 돌아갈까?”
리암은 자신의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의 제안에 좀처럼 남의 말을 따르지 않는 아르하 역시 불만스러운 듯 발걸음을 옮겼다.
용사의 이름을 달게 된 지 2년 차.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인들로 구성된 팀.
그 리더를 맡고 있는 인물은 용사 리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