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8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83화(283/350)
다그닥다그닥—.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시각.
튼실한 말의 다리를 가진 사역마들이 힘차게 달려 나간다.
얼굴과 깃털은 영락없는 새의 종류인데 근육질의 몸이 땅을 거세게 울리고 있다.
그 위에 각자 타 있는 다섯 명의 용사들.
가장 앞에 위치한 리암은 어느덧 보이기 시작한 문화의 도시 로즈를 바라보았다.
‘소설에 적혀 있던 대로 상당히 발전된 도시네.’
리암은 이번에 로즈에 오는 것이 처음이었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아카데미아 다닐 시절 방학을 이용해 오려고 했던 곳.
나이아스의 비밀 던전으로 가기 전에 거쳐 갈 예정이었다.
…본래라면, 말이다.
‘알리시아가 나이아스를 들고 있어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바르간은 히로인이었던 알리시아를 시종으로 들인 것도 모자라 나이아스까지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에고인 정령을 살린 상태로.
따라서 리암이 나이아스의 비밀 던전으로 향할 일은 없었고.
로즈에 발을 디딜 일 또한 없었다.
—모두. 이번 임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줘.
선두에서 달려 나가던 리암은 마나를 움직이며 말했다.
거친 바람에 주변 소리가 묻히기 십상이었지만, 리암의 목소리는 똑바로 팀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최근 여신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을 거야. 위그드라실과 여신교 사이에서 흐르는 긴장감과 잦은 분란은 착각이 아니야. 이미 중앙교회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대규모 전쟁’이 시작될 거라고 보고 있어.
리암은 임무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간략하게 배경을 설명했다.
이미 알고 있을 게 분명하지만, 간혹 가다 모르는 팀원…. 가령, 아르하 같은 인원에게 다시금 이 임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신교의 대주교 자리는 여전히 바르간을 마지막으로 공석을 유지하고 있지. 근데 중요한 건, 주교들이 최근에 다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는 거야.
비어 있는 대주교의 좌.
세상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주교들.
모두는 이 두 조건이 겹치는 상황을 이미 겪어 봤다.
—5년 전과 마찬 가지. ‘새로운 대주교’에 선발되기 위해서 주교들이 날뛰고 있어.
리암과 팀원들이 1학년이었던 시절.
2학기 축제가 벌어지던 그때.
당시 아카데미아에 있던 리암은 학생 신분으로 별다른 무력도 갖추지 못했으며, 그럴 만한 입지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더이상 리암은 보호 받는 존재가 아니라, 보호하는 자.
용사가 되었다.
—중앙교회는 5년 전과 같이 주교들이 한 번에 몰아칠 것이라 보고, 예상 피해 지역을 좁혀 놨어. 그중의 한 곳이 저기. 로즈야.
지금까지의 역사가 말했듯.
녀석들은 시끌벅쩍한 때를 골라 커다란 일을 벌였다.
그리고, 당장 이틀 후부터 위그드라실은 식사를 제한하는 금식재(禁食齋)에 들어간다.
—금식재 전날에 열리는 축제. 이번에도 녀석들은 모두가 즐거운 때를 보내고 있는 순간을 급습하여 혼란과 파괴를 야기하겠지. 이미 주교들이 저 안에 잠복해 있을 확률도 적지 않아.
물론, 무조건 주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날뛸 거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한, 용사들은 움직여야 한다.
적들을 소탕하고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기에.
—결국, 우리의 임무는 하나. 도시 로즈에 잠복하여 주교들이 피해를 발생시키기 전에 처단하는 것.
리암은 마지막 문장을 입에 담으며 모두의 의지를 다잡았다.
더는 과거와 같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알티프를 잡아 평화를 되찾자.
***
도시에 들어가기 전, 리암과 팀원들은 인피면구를 뒤집어썼다.
중앙교회에서 제공해 준 물건이라 그런지 완성도가 높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친숙한 소꿉친구였던 에밀리는 난생처음 보는 여성이 되어 있었다.
에밀리는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 보며 확인하다 물었다.
“어때, 리암? 자연스러워?”
“감쪽같아. 마나까지 죽이고 있으니 특히 더 그래.”
“진짜 신기하다. 가죽 하나 쓴건데 완전 다른 사람 같아.”
리암은 자신을 요리조리 둘러보는 에밀리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인원들을 확인했다.
아르하를 비롯해서 에를리히, 가바 역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답답해 죽겠네. 다른 용사들은 안 쓰고 다니기도 한다면서, 우리는 왜 굳이 써야 하는 거야?”
아르하가 지금이라도 인피면구를 벗어 버리고 싶다며 말했다.
리암은 그녀의 납득을 위해 했던 말을 반복했다.
“혼란을 주기 위해서야. 여신교 역시 교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을 테지만, 정확히 얼마나 도시 안에 있는지 알기 어렵게 해야 하니까.”
“그건 알아. 근데 왜 우리가 변장을 하는 쪽이냐고. 안 쓰고 잘만 돌아다니는 다른 용사들도 있는데.”
“그건… 글쎄?”
“모른 척하긴. 내가 꼽주려고 돌려 말한 걸 알면서도 그러네. 얘 때문인 거 아니냐. 얘 때문에.”
아르하는 신경질적인 턱짓으로 에밀리를 가리켰다.
이들이 변장을 한 팀에 속하게 된 이유는 높은 확률로 그녀 때문이었다.
“뻔하지 뻔해. 대단하신 성녀님을 보호하기 위해서겠지. 성녀를 잡으면 순식간에 주교의 악명이 높아질 테니까.”
에밀리는 용사인 동시에 세상에 둘밖에 없는 성녀.
특히나 주교들이 판치는 곳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 두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리암은 아르하의 불만을 잘 다독이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우리는 대중 속에 섞여 있어야 하니까 5명이 한꺼번에 다니기에는 너무 많고. 2명, 3명으로 나누자.”
“어떻게 나눌 건데?”
아르하가 묻자 입을 여는 이는 리암이 아닌 에밀리였다.
그녀는 리암과 자신을 나머지 셋과 나누었다.
“이렇게 둘 셋으로 나누는 건 어때?”
“아주 지랄을 해라 지랄을. 이거 임무가 아니라 축제에서 놀 생각으로 가득 찼구먼?”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욕에 에밀리는 발끈할 뻔했지만.
이미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르간에 의해 단련된 에밀리의 끓는 점은 그리 낮지 않았다.
무턱대고 화를 내기보다는 그 까닭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잖아. 나랑 리암은 함께한 시간도 길고 연인이니까 당연히 자연스러울 거고. 너희도 리케이온에서 함께한 시간이 기니까 그편이 나을 텐데?”
“그래, 마음대로 해라. 야, 가자.”
아르하는 질렸다는 반응을 보이며 먼저 나섰다.
에를리히와 가바는 가볍게 인사를 하곤, 곧 아르하의 뒤를 따랐으며 이로써 에밀리가 바라는 그림이 완성됐다.
“우리도 가자, 리암.”
“팔짱까지 끼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잖아.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팀장인데 계속 리드 안 할 거야? 팀원은 이렇게 힘내고 있구만.”
“…….”
머리를 긁적이던 리암은 슬쩍 팔 한쪽에 공간을 마련했고, 에밀리는 그 안으로 제 팔을 속 집어넣으며 몸을 붙였다.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녀가 실실 웃고 있다는 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 뭐. 임무를 위해서 하는 편이 낫긴 하니까.’
리암 역시 에밀리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
잘 만들어진 가짜 살가죽으로는 실제와 다름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활기가 가득한 시장을 돌아다니며 처음 보는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도 간단히 가능했고.
주름이 질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짓는 것도 가능했다.
리암과 에밀리는 말 그대로 축제를 즐기는 연인을 연기했다.
“이거 먹어 봐, 리암.”
“어? 아, 아아….”
“어때? 맛있지? 맛있지?”
“으으음…. 오? 이거 되게 괜찮은데 간이 절묘하게 잘되었어.”
“그치그치? 이것도 한번 먹어 봐!”
…어쩌면 연기는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로 축제를 즐기는 연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경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건물을 살폈으며, 알티프의 흔적이라도 발견하는 때에는 곧장 달려갈 준비를 끝내 놨다.
“…되게 평화롭다.”
문뜩 거리를 걸어가던 에밀리가 말했다.
에밀리의 시선은 멀리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있었다.
연주자가 아코디언의 건반을 누를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들렸으며, 주변의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를 지켜봤다.
근처에서 뛰어다니며 흥겹게 춤을 추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전쟁이나 알티프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웃음이 걸려 있다.
“그러게….”
리암 역시 슬쩍 그 장면을 흘겨보다가 공감했다.
두 사람이 걸어 갈수록 아코디언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져 간다.
사람들의 열기도 함께…….
“벌써 한 6년 정도 됐나?”
시장과 광장에서 벗어나 한적한 거리.
인기척은 물론이고 알티프의 기운마저 전혀 관측되지 않는 곳에서 문뜩 에밀리가 말했다.
리암은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뭐가?”
“음…. 지금이니까 말하는 건데, 그때 너 되게 이상했던 거 알아?”
6년 전.
그 시기는 리암이 소설에 빙의를 한 직후였다.
재능이라고는 없던 소꿉친구 리암이 갑자기 마법과 검술을 다룰 수 있게 된 순간.
하지만, 에밀리가 말하는 ‘이상함’이란 폭풍 성장하는 무력의 성취가 아니었다.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줄 알았어.”
“그…래?”
“알 수 없는 말들을 하지 않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고 대뜸 놀라질 않나.”
“아….”
“근데 결정적인 건, 네 성격이 변했다는 거야. 마을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어. 그때 이후로… 내가 알던 소꿉친구 리암이 아니게 되었지.”
“…….”
리암은 입을 다물었다.
끼고 있는 팔짱에 살며시 힘이 들어갔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근데, 사람이 한결같을 수는 없는 거고. 사춘기라는 것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어. 좀 달라지긴 했어도 친절하고 바보같이 사람 좋은 건 그대로였으니까. 여전히 내가 알던 리암이구나 했지.”
“…….”
“아! 신경 쓰였던 게 있었다면, 갑자기 빈혈이 온 것처럼 벙해 있는 순간이 늘어나는 거. 나는 그래서 네가 무슨 병에 걸린 건 줄 알았어. 진짜 진지하게.”
“…이렇게 건강한데?”
“그러니까 다행이지. 내 군걱정이었잖아. 혼백관에서 단련을 하고 와서 건강해진 건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그 뒤로는 멀쩡했으니까. 산속에 있다더니 좋은 거 많이 드시고 오셨나 봐요?”
장난스레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는 에밀리.
리암은 그런 거 아니라며 웃어 넘겼다.
‘혼백관…. 그래, 생각해 보면 그곳도 바르간 때문에 갈 생각을 하게 됐었지.’
리케이온에서 3학년을 마치고, 자꾸만 주도권을 빼앗아 가는 기존 리암의 영혼 때문에 힘들어져 가던 시절.
리암은 혼백관으로 향했다.
이게 올바른 길인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벌이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실낱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으면서.
1개월간 안개 산맥을 헤매고 헤매다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끌끌끌. 재밌는 아해가 찾아왔구나.
리암의 눈에 비친 건.
마치 신선과도 같이 기다란 수염을 매만지는 노인.
인간의 외모를 하고 있으면서도 호박색의 눈동자는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존재.
—그래,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아해야. 너는 왜 이곳 혼백관에 찾아온 것이냐.
십이신수 카닐리스크가 리암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