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8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84화(284/350)
“가만 보니 넌 두 개의 영혼 말고도 눈에 띄는 특징이 있구나….”
리암이 혼백관에 도달했을 때, 카닐리스크는 리암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중얼거림과 같이 가볍게 뱉은 대사에 지나쳤고. 곧 카닐리스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젠 거의 관행과도 같은 문장이었다.
“그래.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아해야. 너는 왜 이곳 혼백관에 찾아온 것이냐.”
“…….”
리암은 정중하게 예를 보이며 제대로 인사를 올렸다.
대부분의 재능이 없는 자들이 안개산맥의 고난을 지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자기소개는커녕 곧잘 쓰러졌던 걸 생각하면 비교적 말끔한 옷차림의 리암은 이례적이었다.
“반갑습니다, 카닐리스크 님. 저는 아카데미아에서 온 리암이라고 합니다.”
“그래그래. 아해야. 인사는 됐으니 본좌의 묻는 말에 답이나 하거라.”
“제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오호라… 고난이라 함은 두 개의 영혼에 관한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리암은 빙의나 외부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제외하고 간단하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카닐리스크조차 처음 들어 보는 특이한 상황.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카닐리스크는 주름진 입가를 올렸다.
“끌끌끌. 그것참 난처했겠군. 좁은 방 한 칸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서 겪는 고충이 만만치는 않았겠어.”
“…….”
“아해야, 하나 묻자꾸나.”
“예, 말씀 하시지요.”
“너는 영혼 하나를 죽이고 싶은 것이냐?”
카닐리스크의 물음은 날카로웠다.
전부터 이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봤던 리암은 잠시 정적을 유지하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
“속내를 숨김없이 밝히거라. 본좌와 혼백관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말이다.”
“…….”
머릿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던 리암.
곧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아해가 너 말고 또 있었단 말이냐?”
“예…. 그런데, 그 친구는 하나의 영혼을 제거한 듯 보였습니다. 아니. 분명 그랬습니다.”
카닐리스크는 그 친구라는 인물에 관해서도 관심이 갔지만, 우선 리암의 이어지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어떻게 한 건지조차 알 수 없으나…. 저 또한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저에게 정답일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오호…. 그래서 그 답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말이렸다?”
“그렇습니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혼백관에 찾아온 아해가 재능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할 줄이야.”
카닐리스크는 호박색의 눈동자로 리암을 살폈다.
안개산맥을 헤매다 이곳에 왔다는 건, 기본적으로 재능이 없다는 뜻.
그러나 저 멀쩡한 외관을 봐선 결코 안개산맥의 역경이 통하지 않았음이 분명했고.
그 말은 즉 저 어린 나이에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어 냈다는 말.
뒷짐을 진 카닐리스크는 잔뜩 안개가 낀 하늘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죽을 날이 다가오는 건가? 근래에 특이한 아해들을 많이 보게 되는군.”
“네?”
“아카데미아에서 왔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핀…. 그 녀석이 이곳에 대해 알려 줬겠군…. 아해야, 네가 혼백관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 갈지는 본좌 역시 장담할 수 없다만, 혹 하산하게 되면 핀 그 고얀 녀석에게 전하거라.”
“핀…. 아, 예.”
카닐리스크는 슬슬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제법 화가 묻은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내 ‘구름’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 저는….”
“입관은 허가한다. 죽어 버리면 네 시체는 맛있게 먹어 줄 터이니 알아 두거라.”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카닐리스크 님!”
이렇게 리암은 혼백관에 입관할 수 있었다.
***
“퍼레이드를 위한 도로를 이렇게 조성해 놨구나? 예쁘다.”
주교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날이 저물었다.
에밀리는 넓게 뚫린 도로의 주변을 바라보았다.
양옆의 주택에는 나뭇가지와 값싼 발광석을 엮어 만든 장식물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영롱한 초록빛이 은은하게 도로를 밝히고 있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퍼레이드가 열리는 내일 이 시각.
이 도로 위로 수많은 사람이 모이게 될 것이고.
주교들은 그때를 노릴 확률이 높다.
가능하다면 그 전까지 로즈 안에 있는 주교들의 뿌리를 뽑고 싶지만, 어려운 일이겠지.
속으로 한숨을 쉰 리암은 에밀리를 보았다.
신이 난다는 듯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리암은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아, 왜 풀어… 아직…!”
이에 에밀리가 왜 팔짱을 푸느냐고 나무라려던 차, 대신 손을 잡는 리암.
깍지를 낀 그는 애써 딴 곳을 바라봤다.
덕분에 에밀리는 돌아간 리암의 귀를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리암이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귀가 빨개.”
“어? 거짓말. 어두워서 안 보일 텐데?”
“미안한데 다 보이거든요? 왜 이렇게 귀여운 짓을 골라서 하실까?”
“…….”
놀리듯 웃음 짓는 에밀리와 머쓱한 리암.
그렇게 잠시 둘만의 달콤한 시간이 흐르는가 싶던 찰나.
“……!”
“……!”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반응했다.
누가 뭐라고 한 적도 없건만 손을 놓은 채 시선을 주고받은 둘.
곧 고개를 끄덕이더니 같은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리암이 외쳤다.
“이대로면 놓칠 거 같아! 에밀리, 내가 먼저 달려 나갈게!”
“알았어! 곧 쫓아갈게! 무리는 하지 마. 리암!”
“걱정하지 마!”
-쿠웅!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충격파를 일으키며 뛰어나가는 리암.
마치 총을 쏜 듯 발사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현상.
리암이 지나간 자리는 옅은 전류의 흔적이 남았으며.
그 속도는 일반인이라면 감히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속도에도 불구하고, 리암은 좁은 골목을 매끄럽게 지나갔다.
덕분에 목표물과의 거리는 삽시간에 좁혀졌고.
코너를 확 꺾게 되는데.
“…꺄악!”
나타난 건, 웬 어린 여자아이.
소녀는 갑자기 나타난 리암에게 놀랐는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야야야….”
리암은 잠시 멈추고 감각을 확장시켰다.
주변에 느껴지던 마나가 사라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식별되지 않는 마나가 감지되었는데 지금은 범위를 최대치까지 확장을 해도 없다.
리암은 넘어진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많이 놀랐지? 다치지는 않았어?”
“다치지는 않았어요. 근데…….”
내뻗어진 리암의 손을 잡는 소녀.
소녀의 품 안에 번뜩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당신은 용사인가 봐요. 그렇죠?”
치지직—!
리암은 전류를 방출시켰다.
그러자, 소녀는 어린아이라고 믿기 어려운 몸놀림으로 거리를 벌렸고, 곧 인체를 재형성하여 그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어린아이였던 ‘그’는 씨익 웃으며 마나를 뿜어 댔다.
“얼간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좀 친다?”
“…….”
리암은 날째로 붙잡은 단검을 주변에 던졌다.
옅은 오러의 막으로 감싸고 있어 손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역시 여신교인가. 마나가 감지되지 않았던 걸 보니 축복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군.”
“이야, 우리 용사님 똑똑하시네. 모르는 게 없으시겠어.”
남자는 장검을 빼내 들었다.
대치 상황이 익숙한 듯 자세를 잡는 그의 모습에 리암은 분석을 이어 나갔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검이 아니야. 초식이 있고 자세가 안정적인 것을 보아 분명 유파가 있어. 하지만…….’
채앵—!
검과 검이 부딪쳤다.
초 단위로 몇 십합이 나눠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검술의 정도(正度)를 걸었지만, 오랜 방랑 생활과 실전 탓에 바깥 물을 많이 먹었군. 호흡이나 잔기술에서 그 흔적이 보인다.’
스르릉—!
리암의 검을 흘리는 남자.
곧 자세가 흐트러진 리암의 몸체를 노리지만 실패하고 만다.
‘게다가… 검술과 외모가 어딘가 눈에 익어. 나는 이 남자가 겨루었던 장면을 분명 봤던 경험이 있어.’
그르륵—.
검을 겨루던 리암은 잠시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상대를 깊이 관철하는 눈을 한 채 물었다.
“혹시 네 이름이 라반 델 티그레스냐.”
“…하, 너 진짜 뭐냐? 나를 알아?”
“사실이었던 건가…. 아카데미아에서 추방되더니 방랑 생활 끝에 여신교에 들어갔나 보군.”
“아카데미아… 푸흡! 야, 너 덕분에 오랜만에 그 이름을 듣는다? 와, 아카데미아래 아카데미아! 푸흐흐읍!”
라반 델 티그레스.
소국이지만 공작가의 자제로 한때 아르볼 프루탈에도 잠시 몸을 담갔던 자.
그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내밀었다.
“너도 아카데미아였나 보다? 그치? 야, 그년은 잘 지내냐? 여전히 얼굴은 반반하고?”
“…….”
“왜 대답을 안 해? 날 개쪽 주고 퇴학시켰던 그 몸종년 말이야. 아 ×발. 내가 그년 때문에 가문에서도 쫓겨나고 얼마나 개고생 하면서 살았는지 알기나 하냐?”
때는 1학년 1학기.
아르볼 프루탈의 간부였던 알리시아를 성희롱한 티그레스는 알리시아로부터 등급전 신청을 받았다.
둘이 카티아 이외로 내건 사항은 ‘승리한 이의 명을 순순히 따르자’는 것이었고.
티그레스는 환각에 철저하게 당한 채, 꼴사나운 패배를 당하고야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존나 짜증 나네. ×발. 뭐, 제 주인님은 괜찮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남이 먹는 거 나도 한번 먹어 보려고 했던 게 뭐가 어떻다고 그 개지……!”
“넌 여전히 쓰레기구나. 티그레스.”
리암의 목소리에서는 잠잠하지만 짙은 분노가 묻어났다.
원래는 조금 더 대화를 이어 그에게서 여신교에 관한 정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듣기 싫었다.
티그레스는 그 분노를 읽어 비아냥의 미소를 띠었다.
“지랄. 아카데미아에서 나랑 말 한번 나눠 본 적 없는 새끼가 뭘 안다고.”
“…….”
티그레스는 검날에 푸른 오러를 둘렀다.
비록 거칠기는 해도 속성 확립까지 되어 있는 경지의 오러였다.
그는 여신교에 들어와서 이 검 하나로 수많은 사람의 목을 베고 배를 꿰뚫었다.
그중 좀 괜찮다 싶은 여자가 있으면 죽이기 전에 실컷 가지고 놀면서 그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에게 살인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별다른 감흥도 여흥도 되지 못했다.
저 머저리같이 올곧은 눈을 하고 있는 녀석은 남자이니, 가지고 놀 것도 못 된다.
바로 목을 베어 버려야지. 시체는 또 어떤 방식으로 유기하면 좋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티그레스.
검을 잡고 있던 그의 양팔이 댕강! 잘려 나갔다.
“×발…?”
너무 갑자기 벌어져 채 고통이 찾아오지도 않은 순간.
티그레스의 눈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제 두 팔과 녀석을 담았다.
—치지직.
리암의 몸과 주변에서는 ‘붉은 색의 전류’가 흘렀다.
그건, 분명 초월에 이른 오러.
심지어 티그레스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리암 만의 검술이었다.
“걱정하지 마, 티그레스. 정보를 빼내기 전까지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