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8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86화(286/350)
“오랜만이네…. 알리시아.”
리암은 건물 위에 올라서 있는 알리시아에게 조심스레 인사했다.
그녀 역시 리암과 에밀리를 내려다보고는 대꾸했다.
“…네. 오랜만이에요. 두 분 다.”
“…….”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알리시아의 차가운 목소리.
아카데미아에 있을 적만 하더라도 사근사근하고 상냥하던 음성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전히 하얀 머리칼은 윤기 있게 빛났지만.
항상 맑고 투명하던 푸른 눈동자는 색이 바란 것처럼 보였다.
감정에 따라 쉽게 오르내리던 입꼬리는 무뚝뚝하게 고정되어 움직이질 않는다.
이게 지금의 알리시아.
바르간과 떨어지고 4년이라는 시간을 지낸 그녀의 모습이었다.
“흐, 흐으으윽…! 흐아아악!”
리암이 걸어 뒀던 마비가 풀렸는지 티그레스가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꺼허억—!”
알리시아가 날린 바람의 마법에 의해 가볍게 제압되었고, 티그레슨는 정신을 잃었다.
원소 마법이 초월의 계위에 오른 알리시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적을 죽일 수도 있었다.
“…….”
이내 쓰러져 있는 티그레스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알리시아.
그러나 별다른 감흥은 없는 것인지 도로 리암과 에밀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보고를 위해 따라와 주시겠어요?”
알리시아는 사적인 대화를 일체 하지 않은 채.
온전히 임무에만 몰입했다.
리암과 에밀리 역시 그런 알리시아에게 살가운 말을 할 수 없었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알리시아와 웃으면서 대화를 해 본 게 언제 적 일이었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 이동하자.”
리암과 에밀리는 알리시아를 따랐다.
과거에는 서로 마음을 교류했던 친구였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
“금방 보고하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팀장인 리암은 알리시아와 함께 교회의 안으로 들어섰다.
이 때문에 뒤늦게 합류한 아르하 일행까지 해서 4명의 용사들이 복도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다.
이미 여신교를 조우한 상황이기에 인피면구는 벗은 채였다.
“아씨. 죽 써서 개 줬네.”
아르하가 불만스럽다는 듯 기둥을 찼다.
인피면구까지 써 가면서 주교를 겨우 찾아냈더니, 그 성과의 대부분이 알리시아의 몫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에밀리는 뭐 어떻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도 다친 사람 없었으니까 된 거지.”
“되기는 개뿔이. 우리의 성과가 저 하얀 머리 년에게 넘어가 버렸는데.”
“어차피… 넌 그 자리에도 없었어 가지고 토벌해 봤자 떨어지는 것도 없었을 텐데.”
“차라리 너희가 독점하는 꼴이 나아.”
“너 정말로 알리시아 싫어하는구나…?”
아르하가 얼마나 알리시아를 싫어하고 있는지 몸소 체감하고 있던 에밀리.
그녀의 곁에 어떤 이들이 다가왔다.
“못 본 사이에 완전히 할망구가 되어 버렸수?”
장난기와 걸걸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목소리.
얼굴에 길게 칼자국이 난 남성과 뒤따라오는 이들은 에밀리에게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와, 너희! 이게 얼마 만이야.”
에밀리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이들을 반겼다.
알리시아와 마찬가지로 얼굴을 마주한 건 거의 1년 만인 것 같았다.
과거 아르볼 프루탈 소속이었던 용사들.
동기 카이만과 핀, 후배였던 아달하이드와 마케니아였다.
“진짜, 너무 반갑다!”
과거의 향수가 올라오자 신이 난 에밀리는 그들을 단체로 안았다.
한동안 그들은 안고 방방 뛰던 에밀리는 한 명씩 살피며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와아, 핀 너는 더 몸이 좋아졌네? 아달하이드는 여전히 풋풋하고, 마케니아는… 설마 아직도 오줌 지리는 거 아니지?”
“자연스럽게 나는 빼는구만그래.”
“에이 카이만. 너와 내 사인데 굳이 안부를 물을 필요가 있어?”
“켁. 하긴. 지겹게 말다툼한 사이기는 하지.”
에밀리와 카이만이 투닥거리고 있자 마케니아가 의문을 제기했다.
“잠시만요, 분명 좋은 말 해 주는 분위기였는데 왜 저는 아직도 오줌싸개… 애초에 그게 언제 적 일인데요!”
동생인 아달하이드와 함께 아르볼 프루탈의 공개 면접을 봤던 마케니아.
그는 면접 도중에 오줌을 지렸고. 아카데미아가 리케이온에 편입된 이후로도 오줌싸개라고 불렸다.
또한, 마케니아는 면접에서 떨어져 본래 아르볼 프루탈의 멤버가 아니었으나.
알리시아가 아르볼 프루탈의 구성원들을 데리고 새롭게 만들어 낸 연구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달하이드는 그런 마케니아를 한심스럽다는 듯 바라보다 읊조렸다.
“…등신.”
“…….”
동생이 면전에 대놓고 무시를 해도 마케니아는 아무런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아달하이드에게는 지금껏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이 풀리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에밀리는 문뜩 핀에게 물었다.
“세레나나 다른 애들도 여기에 있어?”
“전부는 아니고 몇몇만. 세레나는 밴틀로와 함께 다른 도시에 잠복해 있어.”
“그렇구나…. 좀 아쉽네. 다른 애들도 보고 싶다. 잘들 지내고 있는 거지?”
“우리야 그렇지. ‘직할대’는 대우가 후하잖아.”
“아 하긴. 내가 너희를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
에밀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위그드라실 내 구세력의 정점인 성제 리오베르고.
그의 명을 최우선으로 따르는 직할대.
용사랭킹 1위의 실베스테르.
용사랭킹 2위의 헤일리온.
용사랭킹 9위의 알리시아.
이들을 비롯한 일부의 용사들은 일반적인 용사의 임무 말고도 성제가 내리는 특수 임무를 받게 된다.
이들의 목적은 기존 교회 체제의 유지와 보수.
구세력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
과거 아르볼 프루탈이었던 인원들은 연구회장 알리시아를 따라 직할대에 흡수되었다.
이 때문에 아르볼 프루탈 인원들은 신세력인 성녀 디피엘리아의 용사들과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는데.
신세력에 속한 에밀리와 리암은 이러한 판세에도 불구하고, 기존 멤버들과 잘 어울렸다.
“…아무튼 잘 지낸다니까 다행이네.”
에밀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신입 용사들이 임무에서 죽어 나가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몇 개월… 혹은 며칠 뒤에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는 일은 부지기수인 것이다.
핀과 다른 인원들 또한 그 의미를 알고 있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었다.
에밀리는 다소 측은해진 눈으로 예전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핀의 주머니에서 달싹거리는 무언가를 보았다.
“…근데. 핀. 넌 아직도 그 구름 가지고 다니는구나?”
“아….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본래 주인한테 돌려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임무가 바쁘니까 갈 틈이 없어.”
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이들의 인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보고를 올리던 알리시아와 리암이 말을 주고받으며 나왔다.
“리암은 지금부터 팀원들과 함께 움직여 주세요. 특히 성녀인 에밀리도 함께 있으니 주의하고요.”
“알겠어. 너희는 이곳을 지켜야 하는 거지?”
“네, 알티프가 성왕님을 노리지 않을 리 없으니까요. 계속해서 도시에 숨어 있는 주교들의 수색과 정찰을…….”
알리시아는 말을 이으려다 말았다.
자신의 앞으로 불쾌하다는 눈을 한 채 걸어오는 아르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요? 아르하.”
“성제에게만 꼬리치는 개가 명령하지 마.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니까.”
“…….”
“야, 아, 아르하…!”
아르하의 발언에 당황한 리암은 그녀를 말리려 하지만, 아르하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방해하지 말라며 되레 성을 냈다.
아르하를 비롯한 대부분의 리케이온 출신 용사들은 신세력의 일원이었다.
“아르하. 다른 것도 아니고 주교들이 도시를 함락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신세력이든 구세력이든 나눌 때가 아니라는 뜻이죠.”
“그래,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이곳 로즈의 성왕은 그 대단하신 구세력의 핵심 인물 중 하나니까. 손을 벌릴 수 있는 대로 벌리고 싶을 거야. 그러다가 우리가 죽어 버리면 더 좋겠고? 맞지?”
“…그 이상의 발언은 묵과할 수 없어요. 아르하.”
“묵과하지 못하면… 어쩔 건데?”
날 선 시선을 주고받는 두 사람.
아르하의 몸은 곧이라도 마법을 사용할 것처럼 힘이 들어갔다.
리암은 그런 아르하를 만류하기 위해 강제로 떼어 놓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알리시아에게 말했다.
“아, 아니야! 오해하지 마! 아르하도 나쁜 의미로 그런 건 아니니까.”
“야! 리암! 네가 뭔데 내가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를… 으읍!”
“자자, 우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도시를 지키러 가야지. 그럼, 다들 다음에 보자.”
리암은 아르하의 입을 막은 채 팀원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동료들과 재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어 보였다.
“…….”
알리시아는 그런 리암과 일행을 바라보았다.
“야, 아르하! 좀 가만히 있어!”
“으, 으으읍! 으으읍! —으극!”
“끄으아…! 너, 소, 손을…!”
자신의 손이 물렸음에도 꾸역꾸역 아르하를 데려가는 리암.
멀어져 가는 와중에도 아르하는 성난 들개처럼 크게 울부짖었다.
“알리시아—! 잘 들어! 너 존나게 재수 없어! 알아?”
“…….”
“예전에는 순한 맛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어중간하게 뭐 하는 짓이야? 이 위선자 년! 그렇게 권력이 욕심났냐—!”
“…….”
“그딴 식으로 해서 올라가니까 좋아? 좋냐고 이년아! 성제한테 아양 떨고, 중앙교회에서 단물만 빨고 있으니까 좋냐고—!”
이들이 건물 뒤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더는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알리시아는 마치 아직 그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가만히 어둠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곤 도로 눈을 돌렸다.
***
“괜찮아 리암? 피, 피가…!”
“괜찮아….”
리암의 손에 그대로 난 이빨 자국.
얼마나 세게 물었으면 가죽이 찢어져 피가 올라왔다.
아르하를 나무라던 에밀리는 급히 치유 마법을 사용했고. 리암은 멀찍이서 걷고 있는 아르하에게 말을 걸었다.
“아르하. 진짜 조심해야 해. 알리시아는 용사랭킹 9위야.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용사직에서 잘라 버릴 수 있다고.”
“참나, 할 거면 하라고 해! 내가 무서워 할 줄 아나?”
“진짜 걱정이다…. 나중에 네 팀원들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신경 꺼라.”
“…….”
길게 한숨을 내쉬는 리암.
입을 꾹 다문 채 걸음을 이어 가다가. 아르하의 화가 누그러져 갈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알리시아를 싫어하는 거야? 직할대가 구세력이긴 하지만, 엄연한 교회의 일원이고. 솔직히 나쁜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
“…….”
“네가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제정신 아니네. 넌 성녀가 그 개고생하는 걸 옆에서 봤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냐?”
“성녀? 디피엘리아 말이야?”
“…그래.”
퉁명스러운 반응의 아르하.
아르하는 디피엘리아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을 언급했다.
“걔가 교회의 썩은 물을 퍼내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냐? 리케이온에서도 그랬지만. 용사 되고 나서는 더하지.”
“…….”
“그 신충 억제제만 해도 그래. 중앙교회에서도 못한 걸 제 혼자서 피땀 흘려 가며 완성시켰는데 구세력 놈들은 그걸 꿀꺽하려고 했지. 하여간 그 놈들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그런 일이 있긴 했지…. 음.”
“그뿐이야? 그 외에도 많이 있잖아.”
아르하의 요점은 이랬다.
구세력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다 보니 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바빴고, 직할대는 그 돼지들의 배를 더욱 부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그런데, 알리시아가 아르볼 프루탈을 이끌고 직할대에 제 발로 걸어가 버렸으니 절대로 곱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알리시아에게 호의를 갖겠어? 봐, 전에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돌아다니더니 권력을 좀 차지하니까 바로 냉랭하게 돌아서 버리잖아.”
“그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좀 의외네.”
“뭐가?”
“네가 그렇게까지 디피엘리아랑 신세력에 애정을 품고 있는지는 몰랐어.”
리암이 말이 끝나자 아르하는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곤 어이없다는 식으로 대꾸했다.
“그럼, 좀 살 만한 세상 만들려고 발악하는 애한테 내가 침이라도 뱉을까 봐?”
“…그것도 그러네.”
“뭘 웃어? 기분 나쁘게.”
리암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르하는 용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뭘 웃냐고. 웃지 마라…. 아, 웃지 말라고!”
…….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때.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시간 뒤.
대도시 로즈의 성왕은 주교의 습격에 의해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