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9화(29/350)
경기장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몸을 숨길 만한 커다란 차폐물도, 꺼슬꺼슬한 작은 모래알들도 없다.
그 공간에 있는 것이라곤 세 명의 인물.
리암, 알리시아.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심판이 전부.
“…….”
그녀뿐이다.
아무런 주변의 간섭 없이. 리암의 시야에 오로지 알리시아만이 들어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별들로 수놓은 듯 반짝이는 머리카락. 눈처럼 하얀 피부가 생기 있다.
초식동물의 눈은 그녀가 들고 있는 커다란 검에 대립되어 이질적이다.
“정말 이래야 하나요. 알리시아 씨? 저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이번처럼 날붙이를 들고 있든 그렇지 않든. 리암은 알리시아와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싸울 이유가 없다.
연구회에 들어가 바르간을 감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큰 스토리의 줄기로 봤을 때.
그녀는 자신이 읽은 소설의 히로인이지 악당이 아니었다. 본래였으면 그녀는 주인공인 왕자와 우연한 계기로 만남을 이어 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구속되어 본래 진행됐어야 할 운명을 거스르고 있다. 한 악역에 의해서 놀아나는 채로.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바르간에게 저당잡혀 있습니다. 불쌍하게도 저런 자에게…. 저는, 그런 당신을 구하고 싶습니다.”
“…….”
“한마디. 단 한마디로 됩니다. 도와달라고 말해 주세요. 그에게 걸린 구속을 풀고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 말해 주세요.”
“사람으로요…?”
“네, 사람으로요. 당신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권한이 있고 그래야 마땅한 일이니까요!”
입을 꾹 닫고 말을 듣고 있던 알리시아가 반응을 보이자 리암은 감정을 이끌어 내며 그녀를 설득하는 데 몰입했다.
지금의 그녀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 이 쇠사슬을 푸는 데 그녀의 힘만으로 역부족이라면 자신이. 더욱 나아가 아카데미아의 힘을 빌리면 될 것이다.
아카데미아의 규칙에 따르면, 아카데미아의 재학생은 본래 시종을 데리고 있을 수 없다. 가문의 종사자를 데려와서도 안 되고, 신분이 낮은 재학생을 시종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는 내부에 들어오는 외부인을 최소화하여 안전을 지키고, 계급 간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상황은 옳지 않아요.”
왕족이나 황족에게도 적용되는 이 규칙을, 바르간은 기존에 일하던 종사자가 입학했을 뿐이라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알리시아는 아카데미아에 입학하기 전부터 바르간의 시종이었기에. 외부인도 아니고 재학생이 시종으로 된 경우도 아니다.
따라서 그가 알리시아를 시종으로 두고 있는 것이 얼떨결에 용인되고 있다.
아카데미아에서도 시종이 입학하게 된 경우는 처음인지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배움의 기회도 적고, 하루하루 일하기에도 벅찬 그들이 꾸준히 준비해 온 엘리트들을 능가해 입학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신분을 원래대로 돌릴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어요. 알리시아 씨가 도와달라는 한마디의 말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정말 그 한마디의 말이면 된다.
그 하나의 사실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테니까.
아카데미아가 중요시하는 자유와 평등을 들먹이며, 재학생인 그녀가 부당하게 잡혀 있고 시종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만 밝혀 준다면.
어떻게든 부딪힐 명목이 생긴다.
아카데미아의 권위자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까지 그녀의 처한 상황을 설파해서 세력을 형성하고 힘을 기를 수 있다.
“알리시아 씨,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도와달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설령 지금이 힘들다면 이후라도 좋아요. 저는 당신을 기다리며…!”
“리암 씨.”
알리시아가 리암을 부른다.
평소와 같지만, 평소와 다른 말투로.
“리암 씨에게 저는 ‘사람’이 아니었군요?”
“네?”
알리시아의 입에서 빠져나온 문장은 리암이 기대하는 것과 완전히 결이 달랐다.
이런 냉기도, 분노도.
리암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에 제가 사과할 때 절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셨죠? ‘슈겐하르츠에서 일하게 되셨다면서요.’라고요.”
“네, 그…랬죠. 근데 지금 그게 왜….”
“이상하지 않나요. 일하게 되셨다니. 제가 슈겐하르츠가에 들어온 건 6개월도 더 된 일이에요. 길지는 않지만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죠. 그런데 리암 씨는 마치. 제가 슈겐하르츠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혹은, ‘일하기 전의 저를 아는 것’처럼 말했어요. 분명 처음 만난 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
“하지만 그건 단순히 단어의 선택을 실수한 것일 수 있으니 괜찮아요. 제가 따질 부분이 아니기도 하고요.”
다소 놀란 눈을 한 리암에게 알리시아는 친절하지만 어딘가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리암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아까는 제가 다소 공격적으로 말했지만, 리암 씨가 어떤 의도로 저에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을 했는지 알아요. 어째서인지 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마음도 전해지고요.”
알리시아는 리암과의 대화 동안 유지하고 있던 자세를 바꿨다. 한쪽 발을 뒤로 밀며 몸을 살짝 옆으로 돌린다.
그녀가 봤을 때에도, 리암은 굉장히 ‘선하고 올바른’ 사람이다. 낯선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설 수 있는 인물.
“정말 감사해요. 사람의 호의를 받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알아차리는 게 쉽진 않지만. 리암 씨의 따뜻한 마음은 잘 전달됐어요.”
‘그런데요.’
그녀는 새롭게 운을 뗐다.
“리암 씨는 오해하고 있어요.”
“오해요…?”
“네, 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어요. 아니, 말이 잘못됐네요. 저한테는 과분한 정도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는. 지금이 꿈은 아닐까.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도하면서 잠들어요.”
“그건….”
“바르간 도련님이 오해받기 쉬운 분인 건 잘 알아요. 슬픈 일이게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일면만을 보고 모든 걸 알았다고 판단하죠.”
“…….”
“도련님과 리암 씨가 왜 서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네요.”
리암이 그것을 물으려고 하자.
조금씩 움직임을 다잡던 알리시아가 온전한 자세를 잡았고, 동시에.
“……!!”
“리암 씨가 패배했다는 사실이요.”
⎯콰지지지지직!
돌풍과 함께 달려든 알리시아가 순식간에 리암에게 접근하더니, 칼끝을 그의 목에 집어넣으려 한다.
마력을 가득 머금은 알리시아의 오러와, 미리 준비된 두꺼운 마법 장벽이 강하게 반응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어졌다. 다소 늦게 상황을 파악한 리암은 알리시아의 검을 밀어내며 거리를 벌리려 하지만.
삐이이익⎯⎯⎯!
마법 장벽이 발동된 순간부터. 승부는 끝이 난 것이었다.
경적 같은 고음과 이어지는 기계음이 다시 한번 그 현실을 자각시켜 준다.
『17시 40분. A-23 경기장. 승자, 알리시아. 승자, 알리시아.』
***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하마터면 귀족의 품위를 잃어버린 채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자제력이 뛰어난 나였으니 망정이지 다른 놈이었으면 감정에 잡아먹힌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조금 전의 전투는.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꼴불견이었다. 일말의 도움도 안 되는 녀석 같으니라고!”
모처럼 자리를 잡아, 알리시아와 승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건만 실컷 수다만 떠들다가 방심해서 당했다.
참으로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녀석답다면 녀석다운 한심하고 경멸심이 이는 승부였다. 아, 생각하니까 또 화가 치밀어 오르네.
이래서야 리암과 알리시아의 현 상태를 비교하는 것을 글러 먹게 되었다.
아니지. 이미 확인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 건가. 실력이 어쨌든 저런 상태면 절대로 알리시아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하루라도 빨리 리암이 정신을 차리고 활약하길 기도하자. 신은 믿지 않지만.
‘뭐, 그래도. 얻은 것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알리시아가 리암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리암이 상상이상으로 버러지 같은 모습을 보였듯, 그 버러지에 대한 알리시아의 감정도 생각보다 더 부정적이었다.
⎯괴물 잡듯이 해도 되겠네.
등급전에 들어가기 전, 알리시아가 했던 말이 아직까지 귓가에 맴돈다.
그녀의 감정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긍정적인 요소이며 계획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도련님!”
교복으로 갈아입은 알리시아가 멀리서 나를 부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고서는 자신이 체통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속도를 줄이며 허리를 꼿꼿이 편다.
저 정도면 상당히 신난 것 같다.
“도련님. 저, 첫 등급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카티아도 10이나 더 늘어, 20카티아가 되었습니다! 전부 도련님께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덕분입니다!”
…정정한다.
상당히 ‘많이’ 신난 것 같다.
만약 그녀가 다렉 연합국이나 마족이라 꼬리가 있었다면 빠르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래, 잘했구나. 승부가 어처구니없이 끝나기는 했다만. 틈을 노리고 무자비하게 들어간 것은 아주 보기 좋았다. 훌륭할 정도로 치사하게 잘 성장하고 있구나. 알리시아.”
“감사합니다! 아… 예? 도련님? 칭찬으로 하신 말씀이신 겁니까 아니면….”
“칭찬이다.”
드디어 이 거친 세상의 풍파를 견딜 수 있는 초석이 준비되었는데 마땅히 칭찬함이 옳다.
그녀의 유약하고 착해 빠진 본성도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이번 승부의 결과로, 에밀리 씨는 연구회에 들어오고 리암 씨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겠군요.”
“그런 조건이었으니 말이다.”
에밀리의 사항을 추가해서 말이지.
리암이 승리할 경우, 리암은 연구회에 들어올 권한을 얻게 되고 에밀리는 연구회의 모든 활동을 ‘자의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알리시아가 승리할 경우, 리암은 연구회에 들어오지 못하며 에밀리는 연구회의 모든 활동을 연구회장의 ‘통제하에’ 참여해야 한다.
쉽게 말해, 귀찮은 리암 녀석은 시야에서 제외하고. 말 더럽게 안 들을 에밀리는 부르고 싶을 때 불러서 강제로 활동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예정된 죽음에 의해 도움이 되겠지만,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원작에선 밑밥만 뿌려지고 회수되지 않았던, 그녀에게 내재되어 있을지 모르는 또 하나의 가치.
예정된 미래대로 죽는 것보단, 확인하고 보다 나은 이후를 생각한다는 방안이 더 매력적이다.
“자, 그럼 등급전도 끝났겠다. 저기서 하찮은 리암을 위로하고 있는 에밀리를 끌고 돌아가자꾸나. 연구회실에서 세레나와 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아, 으으. 본격적으로 연구회 활동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신나서 뛰어다니면 이마가 붉어진 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앗… 유념하겠습니다.”
반사적으로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는 알리시아가 묻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연구회의 이름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떤 명칭의 연구회입니까?”
나는 똘망진 눈으로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답한다.
“학생회다.”
“아… 주제 넘는 참견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아카데미아는 ‘학생회’라는 단체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럼 적당히 앞에다 신(新)을 붙이면 되겠구나.”
다소 극단적일지라도, 우선은 그것이면 된다.
최우선 목적은 화제성을 얻는 것이니까.
학생회는 이를 위한 최적의 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