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90화(290/350)
“저 바르간과 대주교 퍼티글 블뤼란스 및 주교 시클라멘. 대주교 선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무사 귀환하였습니다.”
인위적으로 조작되어진 공간.
백색과 흑색으로만 채워진 이곳에 바르간의 일행은 한 위대한 존재에게 무릎을 꿇었다.
바르간은 대도시에서 강탈해 온 등외품 팔찌를 그 존재에게 바쳤다.
“이번에 얻어 낸 등외품입니다. ‘영광의 링’이라는 유물로 착용자의 마나를 강화시켜, 마나 출력을 상시 1.2배로 올려 주는 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바르간의 손을 떠난 등외품이 두둥실 떠올라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 꼭대기로 올라간다.
이곳의 유일한 권좌에 앉아 있는 여인. 추기경 벨레드.
그녀는 팔찌를 받아 대충 살피더니 시클라멘에게 말했다.
그녀의 입가가 기분 좋게 올라가 있다.
『겁이 많은 아이야.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나.』
『아, 아닙니다! 저, 저저 전부 여기에 있는 대주교 두 분이 도와주셨기에 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 현 시점에서 남은 유력 주교는 둘. 선발 결과는 회의 이후에 알려 줄 터이니 그동안 대기토록 하거라.』
남은 유력 후보 중 하나인 시클라멘.
그는 벌벌 떨면서 머리에 달린 양의 뿔이 바닥과 부딪힐 정도로 깊이 조아렸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시클라멘과 블뤼란스. 둘은 이만 물러나도 좋다.』
『예, 옙!』
『네.』
벨레드의 지시에 시클라멘과 블뤼란스는 신속하게 퇴거했다.
이 넓은 공간에 남은 존재는 바르간과 벨레드뿐.
그녀는 아직까지도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바르간을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인간의 아이야. 이번에도 고생이 많았구나.』
벨레드는 제법 나긋한 목소리로 바르간을 불렀다.
눈은 마치 귀여운 애완동물, 더 없이 귀한 물건을 바라보듯 애정이 깊이 배여 있다.
다른 여신교의 존재들이 지금의 벨레드를 보게 된다면 필히 크게 놀라고 마리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과관계가 상정했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감히 추기경의 앞에서 보이기에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말.
그러나, 벨레드는 전혀 인상을 구기지 않았다.
마치 섬세하게 조각된 것 같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눈가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오만한 너다운 말이로구나. 하지만, 그마저도 재롱으로 보이니 이것을 어미의 애정이라 말할 수 있겠지.』
4년 전.
바르간이 대주교가 되고 벨레드의 수하로 들어온 시점부터.
강경파. 즉, 벨레드의 세력은 급팽창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여신교의 내부를 꽉 잡고 있던 온건파의 수장. 추기경 아몬이 견제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인간을 혐오한다. 미천한 존재인 인간을 당장이라도 멸족시키고 싶지. 하지만… 너는 다르단다.』
벨레드의 음색이 감미로운 곡조와도 같이 들렸다.
선율을 타고 흘러들러 오는 매혹의 음성이 바르간의 귓가를 간질였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음에도, 나에 대한 깊은 충성을 알고 있다. 네 실력과 능력은 지금까지 그것을 증명해 왔지. 나는 너를 높이 산단다. 강경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부흥을 누리고 있으니까. 한데…….』
바르간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던 벨레드.
그녀는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툭툭 누르며, 최근 신경쓰이는 일에 관해 언급했다.
『제파르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더구나. 녀석이 중립을 지키지 않고 아몬과 손을 잡으려는 게 아닌지. 나는 의심하고 있다.』
추기경 제파르.
미친 과학자라고도 불리며 여신교 내에서는 중립을 유지하던 세력의 수장이다.
그녀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는 바르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립인 제파르는 그저 실험에만 미쳐 있는 괴물일 뿐입니다. 녀석이 원하는 건 아무런 문제 없이 실험을 이어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권력 다툼 따위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요.”
『그렇다 한들, 제파르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아몬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충분히 의심이 될 법한데. 이는 강경파에게도 위기로 닥칠 수 있지 않겠느냐?』
벨레드의 근심 섞인 물음에 바르간은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파르가 원하는 건 안정적으로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 그가 지금껏 중립을 고수해 왔던 것도 이미 정해져 있는 권력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추기경을 기준으로 여러 세력이 나눠져 있으나, 사실상 추기경 아몬이 이끄는 온건파 1강 체제였던 여신교.
그러나 추기경 가미긴의 세력이 파멸하고 나서.
본래라면 온건파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야 할 저울이 오히려 서서히 강경파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자간과 아미가 토벌되어 온건파는 약화된 반면.
강경파인 벨레드는 성향이 비슷한 가미긴의 잔여 세력을 그대로 흡수해 버렸고.
대주교 퍼티글 블뤼란스의 영입.
대주교 바르간의 연이은 영입. 또한, 바르간이 막대한 이익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바르간은 제파르가 현재 아몬의 세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오히려 강경파의 입장에서 청신호라고 했다.
“제파르가 그쪽에 다가가 있는 만큼. 저울이 저희 쪽으로 기울었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니 우려할 것 없다는 바르간.
그의 당당한 모습에 벨레드는 입가를 올리며 물었다.
『저울이 강경파 쪽으로 기울었다고 했지만. 여전히 온건파에는 많은 대주교들이 있으며, 집행관이라고 불리는 그녀석이 있다. 여기에 중립 세력까지 빨아들이게 되면 강경파는 대항할 수 없으리라 본다만?』
이에 바르간은 흔들림 없이 대꾸했다.
“실제로 강경파와 온건파가 부딪치게 된다고 할지라도, 제파르는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발 물러나 승자가 된 세력에 빌붙으려 하겠지요.”
『제법 확신을 갖고 말하는구나.』
“녀석의 성정이 그러하니까요. 또한, 그래야만 좋아하는 실험을 오랫동안 이어 갈 수 있을 테니 어쩔 수 없이 그리할 것입니다.”
마치 모든 판세를 읽고 있는 듯한 바르간의 답변.
모든 답변을 들은 벨레드는 만족스럽다는 듯 소리를 내어 웃었다.
4년 동안 그녀를 모셔 온 바르간이었지만, 그녀의 입술에서 웃음소리가 비집고 나오는 걸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심지어는 자리에 일어선 그녀.
그대로 긴 다리를 뻗어 천천히 피라미드의 아래로 내려왔다.
『아몬이 이끄는 온건파는 강력하다. 여전히 여신교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이는 몇 천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만고불변의 법칙이었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벨레드의 맨발.
그 살결이 바닥과 부드럽게 닿는 소리가 들린다.
단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뿐인데, 이를 듣는 이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공포에 질리기 마련이었다.
어지간한 대주교들도 긴장을 한 채 등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바르간은 내색하지 않았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눈매를 한 채 꿋꿋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너’라는 아이가 내게 오고. 처음으로 그 구조가 깨지려 한다.』
온건파의 1강 체제에서.
온건파와 강경파의 2강 체제로.
아직 온건파의 세력이 강경파를 웃돌기는 하나, 언제 바뀌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성서’를 완독한 아이야. 나는 네 공로를 인정하고 싶구나.』
어느덧 바르간의 앞에 위치한 벨레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바르간의 눈에 시체처럼 하얀 벨레드의 발끝이 언뜻 보였다.
벨레드는 말했다.
『이만 고개를 들고 일어나라.』
그녀의 지시에 따르는 바르간은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위대한 추기경의 바로 눈앞에 위치하게 됐다.
같은 곳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벨레드의 시선은 장신인 바르간보다도 높았다.
그녀의 손길이 바르간의 뺨을 훑는다.
차가운 기운이 그 흔적을 남겼다.
벨레드는 고혹적인 미소를 보이며 다른 한 손으로 공간을 잘라냈다.
그 안에서 두근거리며 뛰어대기 바쁜 붉은 덩어리를 꺼냈다.
『계약의 담보로서 맡아 두었던 네 심장이다. 이젠 돌려주도록 하마.』
벨레드는 심장을 잡아 바르간의 가슴팍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마치 투명한 막을 통과하듯 심장은 자연스레 옮겨졌고, 바르간의 안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벨레드는 은으로 만들어진 팔찌를 그에게 건넸다.
바르간의 일행이 그녀에게 바쳤던 등외품. ‘영광의 링’이었다.
『이건 알티프인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물건이니, 네가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해라.』
무려 상시 1.2배의 마나 출력을 낼 수 있게 하는 괴랄한 성능의 유물.
교회에서도 정말 큰 공로를 세운 영웅에게 주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물건을 쉽사리 수여받은 바르간.
그가 지금의 의미를 짐작할 때쯤.
벨레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또한, 주교는 물론 대주교들을 통솔할 중역. ‘집행관’의 자리를 내주겠다. 아몬이 극구 반대하겠지만,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집행관.
대주교들 중에서도 최강의 무력을 갖춘 ‘한 존재’를 위해 만든 계급.
실질적으로 추기경 바로 다음가는 권력의 좌.
이 모든 것들은 한 번에 주며 벨레드는 길게 미소를 지었다.
보는 이를 절로 떨게 만드는 눈동자에는 강렬한 욕구가 담겨 있다.
정상에 서고 싶다는 원천적인 욕망이.
『나를 교황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였었지. 인간의 아이야. 너를 믿어 보마.』
벨레드는 말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선보여서 자신을 교황의 자리까지 올려놓으라고.
그리한다면 바르간에게도 무소불위의 권력과 명예를 주겠노라고.
『내가 교황의 좌에 앉는 날은, 네가 추기경의 좌에 앉는 날이 될 것이다.』
사랑스러운 인간의 아이야.
어디 한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거라.
나는 그것들을 지원하고 밀어주겠다.
영광의 그날이 올 때까지…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할 수 있겠느냐?』
바르간은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새하얀 벨레드의 손등을 가져오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미 벨레드 님께 충성을 맹세한 몸입니다. 지금보다 더욱 벨레드 님의 권세와 영광이 높아지도록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그래…. 부디 내가 실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구나.』
***
벨레드와의 대면을 끝낸 바르간.
그녀의 공간을 나와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이곳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성.
오로지 알티프들로만 차 있는 요새였다.
“…….”
바르간은 왼 가슴에 손을 올려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무려 5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심장.
벨레드의 권능에 의해 비록 고동의 움직임이나 소리가 달라진 건 없었으나.
현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와 확연하게 달랐다.
대주교.
그중에서도 집행관이라는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벨레드의 무한한 지원과 신임도 받고 있다.
여신교 내에서 그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던 바르간은 생각했다.
빙의를 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업적과 행동, 성취는 오로지 그 한순간을 위해서다.
달칵달칵—.
창문의 경첩이 달싹인다.
밤하늘에 가득 찬 먹구름.
전운을 머금고 있는 구름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대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모든 과정은 그곳에서 끝이 날 것이다.
바르간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