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92화(292/350)
“리암. 한 번이라도 ‘상태창’이라는 힘에 대해서 의구심을 느낀 적이 없었나? 마법과도 다른, 순리에서 벗어난 그 힘이 그저 주어진 것으로 보았나?”
“상태창…. 그, 그럼 설마… 상태창이라는 건….”
“그건 대주교 라움의 권능. 아니… 일종의 ‘축복’이라고 보는 게 맞겠군. 축복은 권능에 이르기까지 성장이 가능하니까.”
일반적인 인간의 육신과 영혼으로는 권능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물며 리암과 같이 재능이 쥐뿔도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나, 그와 함께 성장이 가능한 축복이라면.
혹은 그와 비슷한 성질의 권능이라면. 마나 총량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사용할 수 있다.
“그, 그럴 수가…. 그런….”
—리암이었나? 소문대로 상당히 강해졌군. 같은 유파의 계승자로서 자랑스럽다.
문뜩, 리암의 뇌리에 대주교 블뤼란스가 했던 발언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사용하던 번개의 창술.
그리고, 이를 스킬로서 전수해 주었던 상태창.
“우연이 아니었어….”
묘하다고는 느꼈다.
어째서 같은 개화되어 가는 스킬이 대주교가 사용하는 창술과 뿌리가 같은지 의문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고가 확장되어 여신의 힘이었을 거라곤….
강해져 가는 스킬이. 높아져 가는 스탯이. 설마 축복이 권능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
리암이 두 손을 발발 떨고 있자 바르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네가 읽었던 원작도 결말 이후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읽은 소설에서 나온 여신교의 존재가. 네가 읽은 소설에는 나오지 않기도 했으니까. 인류의 평화를 장담할 순 없지.”
“…….”
“그러나, 네 존재가 여신교의 번영을 앞당긴 것은 확실하다. 히로인을 전부 죽인 주인공이라니 대단하구나 리암.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다.”
“전부… 그 말은… 또 누가 나 때문에…?”
“너와 엮여서 죽어 버린 인원들을 일일이 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히로인들이 죽은 순서로 말한다면. 성녀 에밀리, 사령술사 프란체스카, 정령술사 니켈라, 준영웅 알리시아가 있구나.”
“…니켈라.”
과거 리암과 같은 조였던 수줍음이 많은 여인.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자신을 구해 주다가 무리해서 마나를 사용하게 되고.
결국, 마법을 사용하기 힘든 정도에 이르러 아카데미아를 나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그녀.
“…에밀리도?”
현재 리암의 연인인 에밀리.
말괄량이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여리고 섬세한 마음을 가진 여인.
그런 그녀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
“나 때문에… 에밀리가 죽었어? …정말로?”
“그래. 성녀가 될 수 있다는 떡밥만을 남긴 채. 네 각성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었지.”
“…각성.”
—띠링!
조건 : ‘동료의 죽음’. ‘극한의 공포’의 극복.
해당 조건을 달성하여 [특수 스킬]의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상태창은 동료의 죽음에 반응했다.
리암의 동료들이 위험에 처할수록, 지키지 못해 분노를 일으킬수록 능력은 더욱 강해져 갔다.
과연, 그건…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받은 힘일까.
아니면, 여신교에 방해가 될 동료를 죽였기에 받은 ‘보상’일까.
“그럼… 에밀리는… 성녀가 될 예정이었고. 난 그걸 막았다는 거야…? 여신교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
현재의 자신은 벌이지 않은 일이지만.
바르간이 없었다면 벌어졌을 거라는 현실감이 리암을 떨게 만들었다.
반면, 자기와 관련 없다는 반응의 바르간은 느긋하게 대꾸했다.
“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만. 뭐, 우선 그 정도로 인지하고 있으면 충분하겠지.”
즈즈증—.
대화를 마친 바르간은 마나를 움직여 세계를 원래대로 돌렸다.
노을이 걸려 있던 학교는 어느새 밤이 찾아와 어둡다.
리암은 손끝을 떨며 연신 중얼거렸다.
바르간에게 확인하고 싶은 사항이 아직도 많았으나. 머리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망치로 둔부를 강하게 맞은 것처럼 눈앞이 어지럽다.
“리암. 사전에 나와 약속했던 사안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알아. 알고 있어….”
“네 반응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만.”
“…….”
아무리 내용이 충격적이더라도 버텨 내 보이겠다 다짐한 리암.
그는 흔들리던 눈의 초점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래, 그거면 됐다. 내가 말했던 최악의 분기점에서는 이미 갈라져 나왔지 않느냐.”
“…….”
“에밀리는 살아 성녀가 되었고. 니켈라는 비록 영웅은 되지 못했으나 죽지 않은 채 고향으로 돌아갔다.”
“…….”
“또한 프란체스카는 아직까지도 문제없이 연구를 이어 가고 있으며, 알리시아도 버젓이… 원작에서 보았을 적보다 더욱 수준을 끌어 높인 상태이지.”
오히려 여기선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대목이다.
대주교 라움이 아닌, 용사 리암. 너로서는 말이다.
바르간은 그렇게 말했다.
“…….”
그리고 리암은 생각했다.
그래, 전개는 바뀌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개는 아르테리온이 주인공이었을 때와는 다르고.
아마 자신이 주인공이었을 때와도 다르다.
바르간에 의해서 달라진 길.
그중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사건들.
‘알리시아를 시종으로 들여 원작보다 일찍이 재능을 깨우고 가르친 것.’
‘아카데미아의 인재들을 모아 양성한 아르볼 프루탈.’
‘학생회장이 되어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의 중심부 역할을 했던 성녀 디피엘리아. 현재 교회 신세력의 토대가 된 학생들.’
‘대주교가 되어 버린 악역 바르간. 그가 이끌고 있는 거대한 세력.’
“……!”
그렇게, 비로소 리암은 깨달았다.
바르간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너… 여신교를 내외부로부터 박살 내려는 거야? 그래서 대주교가……!”
치지직—.
점차 바르간의 몸과 공간이 번지고 있다.
이제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듯하다.
“제법 긴 대화였지만, 여기까지다. 나는 바쁜 몸이니 이 이상 시간을 쪼개 선생 노릇을 할 순 없지.”
“자, 잠깐만…! 아직도 한참 남아 있어!”
“이후로는 알아서 해석하고, 알아서 움직여라. 머저리 주인공아. 밥상을 차려 줬으면 된 거지. 떠먹여 주기까지 바라고 있는 건가?”
치지지직—.
바르간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가 흩어져 간다.
빠르게 와해되어 가는 그의 모습에 리암은 급히 외쳤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뱉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하다못해 알리시아에게만이라더라도 모든 사실을 전해! 네가 그렇게 떠나고 나서… 4년 동안 알리시아는 단 한 번도 웃질 못했어!”
“…어처구니가 없군.”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지어졌다.
알리시아를 팔아넘겼을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죄악감이라도 피어오른 것일까?
알고 보니 자신이 소설 속의 캐릭터였음을 전한 와중에, 저 녀석은 알리시아를 걱정했다.
원작에서보다 더한 등신이 틀림없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바르간은 공간과 함께 사라지기 직전에 그렇게 말했다.
***
“…….”
방 안 의자에 앉은 채 마나를 움직이고 있던 바르간.
곧 술식이 끝이 나고 눈을 떴다.
“…알리시아라.”
그는 읊조렸다.
담배 연기를 뱉어 내듯 깊이 숨을 몰아냈다.
여신교에 입교하고 나서, 얼굴을 마주하긴커녕 스친 적도 없던 하얀 머리칼의 여인.
일부러 피했던 게 사실이다.
따로 할 말도 없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에 관한 건 소식으로 들으면 충분했다. 그 이상의 관심은 불필요한 감정이다.
—끼이익.
바르간은 방을 나서 기나긴 복도를 걸었다.
여신교 내에서 강한 통솔권을 지닌 만큼 책임도 막중하며 해야 할 업무 또한 태산이었다.
밤이 늦어 달이 가장 밝게 빛나는 시간이 될지라도.
그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집행관 취임을 축하해요. 바르간.”
복도에서 마주친 꽃의 대주교 베리스.
과거 아카데미아의 축제 시절. 주교들과 함께 난입했던 대주교이다.
걸어 다니는 향수와도 같이 진한 꽃의 내음을 풍기는 그녀는 몸 곳곳에 식물이 자라 있다.
베리스는 입꼬리를 쓸쩍 올리며 교태로운 목소리를 냈다.
“이걸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네요. 정말 대단해요.”
“…무슨 용무지?”
“후후. 같은 추기경을 모시는 사이에 꼭 용무가 있어야만 오나요? 그냥, 보고 싶어서 올 수도 있는 거죠.”
“용무가 없다면 가겠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이다.”
바르간의 앞길을 막아서는 베리스.
흥미가 깃들어 있는 눈동자를 띤 채 바르간을 올려다본다.
“달빛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계속 일만 하게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상관있죠. 당신은 대주교잖아요. 좀 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어요.”
검지를 뻗은 채 바르간의 가슴팍을 살살 문지르는 베리스.
용무가 없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바르간은 어쩜 그렇게 아름다워요?”
미(美)를 추구하는 베리스가 말했다.
품 안에 안길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서. 살며시 고개를 들며 선분홍색 입술을 움직인다.
“이 날렵한 턱선과 코도 그렇고요. 흑연보다 진한 눈동자도 그래요. 또, 능력은 얼마나 출중하게요? …인간만 아니었다면 곧바로 제 침실로 데리고 갔을 텐데요.”
“멋대로 지껄이는군.”
“아, 하긴. 가미긴 님의 권능을 일부라도 사용할 수 있으니 사람은 아닌가요?”
사사로운 감정이 다분한 웃음.
남자를 현혹하는 향을 뿜어대는 베리스는 까치발을 들곤 바르간에게 귓속말했다.
“어때요? 바르간이 사람인지 아닌지. 오늘 저랑 확인해 볼래요?”
“…….”
바르간은 베리스를 바라보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비켜라.”
“쌀쌀맞네요. 따로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라도 있는 거예요? 아… 혹시 그 아이이려나?”
“그 아이?”
살짝 거리를 벌리는 베리스.
검지를 턱 끝에 댄 채 과거의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 보는 체를 했다.
“살레오스의 동생… 알리시아. 아카데미아에서 시종으로 데리고 다녔던 그 하얀 머리의 용사요.”
“뭔가 했는데, 헛소리였나.”
“정말 헛소리인가요?”
“이만 가겠다. 더 어울려 줄 시간이 아깝군.”
“이대로 가게요?”
바르간이 자신을 제치고 복도를 걸어가자 베리스는 말했다.
의미심장한 어투로 그를 긁어본다.
“그 아이…. 요즘 제파르 님이 손에 넣기 위해 안달이 나신 거 같던데……. 뺏기는 건 아깝지 않겠어요? 원래 여신교에 데려오려고 열심히 키우던 아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말이에요. 빼앗기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남이 가져갈 바에는 아예 없애 버리는 걸 선호하죠.”
“나보고 알리시아를 죽이라는 건가?”
“아니요. 집행관님이 나설 것도 없어요. 그 아이는 전부터 제가 침을 발라 놓은 용사거든요. 살레오스를 보고 절망하는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죽기 직전에 절망으로 가득 찬 표정은 제가 직접 만들어 주고 싶네요.”
얼굴을 붉히는 베리스.
올라간 입꼬리가 가학적인 미소를 지어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바르간은 답했다.
“마음대로 해라.”
“어머, 무정하셔라. 그럼 지시받은 걸로 알게요?”
“한데 말이다…. 네가 정녕 할 수 있겠느냐?”
“……그게 무슨 의미죠?”
눈썹을 달싹이는 베리스.
웃음기만 가득하던 그녀의 얼굴에 작은 일그러짐이 발생했다.
“말 그대로다. 네가 지금의 알리시아를 상대할 수 있냐고 물은 거다.”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 알리시아를 높게 취급하는 것이지.”
“…….”
“현재 용사랭킹 9위에 올랐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알리시아의 현 성취가 그 이상이라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당연한 걸 묻는군.”
바르간은 씨익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는 한 치의 의심을 담지 않았다.
“알리시아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최고의 실패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