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93화(293/350)
거대한 요새 안에서 알티프들이 훈련을 이어 가고 있다.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3천의 주교.
벨레드의 충실한 수하인 그들은 바르간의 명에 척척 움직였다.
인간의 지시에 따르는 걸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주교도 있었으나. 겉으로 표출해서는 안 되었다.
바르간의 직급은 집행관.
대주교 중에서도 둘밖에 없는 존재.
게다가 추기경 벨레드의 총애를 한껏 받고 있는 몸이었기에 괜히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었다.
“1대대는 방진을 넓혀라!”
바르간의 말이 떨어지자. 이번 훈련에서 방어를 맡은 1대대의 주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미리 전략에 대해 설명들은 대로 날개를 펼치듯 진을 형성하며 달려드는 2대대를 막아선다.
콰앙! 콰앙—!
곧이어 두 대대가 부딪히게 되자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과 방패.
치열한 두 세력의 다툼이 시작되자 자욱한 먼지와 함성,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3대대. 돌격하라!”
그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외부 세력. 3대대의 주교들이 1대대의 뒤를 덮쳤다.
꼼짝없이 양옆으로 둘러싸이게 된 1대대는 분란하게 방진을 바꿔야 했고. 격전을 이어 갔다.
『으, 으으…. 으으…!』
양의 뿔을 달고 있는 청년의 외관.
최정상급 주교 시클라멘은 1대대에 속했고.
위험에 처하자 듣는 이의 귀를 멀게 할 정도의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누가 저 자식 입 좀 막아 봐!』
그러자 2대대는 물론이고 뒤에서 공격하던 3대대의 주교들마저 움직임을 멈추며 괴로워했다.
항상 사용하던 시클라멘의 광범위 공격.
지휘대에서 이들을 관찰하던 바르간은 눈가를 좁히더니 곧 입가를 올렸다.
“그동안 데리고 다닌 보람은 있군.”
바르간은 모의 전장의 상황을 보며 그렇게 평가 내렸다.
비명을 지르는 시클라멘.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속한 1대대의 주교들은 소리를 들었음에도 멀쩡했다.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오로지 적인 2대대와 3대대뿐.
시클라멘은 자신의 권능을 보다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 훈련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의 속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바르간은 훈련을 종료시켰다.
고된 훈련에 지친 주교들은 비로소 헉헉거리며 숨을 고를 수 있었고. 탈진하여 쓰러지는 주교들도 종종 보였다.
즈응—.
그제야 바르간은 연병장을 힘껏 짓누르고 있던 마나의 압력을 지웠다.
주교들은 일반적인 중력보다 몇 배는 되는 환경에서 훈련을 이어 나가고 있던 것이다.
바르간은 재차 오늘치의 훈련이 모두 끝났음을 알렸고.
주교들은 비로소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카하하하! 주교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구만 집행관!』
호탕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대주교 블뤼란스.
그는 어깨에 긴 창을 올리고 그 위에 양손을 걸치고 있다.
『전술 훈련을 하는 주교들이라니.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란 말이야.』
인간에 비해 개개인의 신체 능력과 무력이 뛰어난 알티프.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는 그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특히 공동체의 화합을 중시하는 전술 훈련은 더욱 그랬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건 오로지 충성을 맹세한 상위 알티프뿐.
같은 층에 있는 다른 알티프들은 도움을 주고받거나 힘을 합치는 동료의 개념이 아니었다.
블뤼란스의 표정을 읽은 바르간은 말했다.
“내가 집행관이 된 게 내키지 않는 모양이구나?”
『카하하! 당연한 말을! 배알이 꼴려서 아플 지경이지. 근데, 그건 네가 인간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나보다 늦게 들어온 대주교가 내 위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거 자체가 거슬리는 거다.』
“…원한다면 재증명은 언제든지 해 줄 수 있다.”
블뤼란스를 바라보며 알기 쉽게 마나를 움직이는 바르간.
블뤼란스는 켁! 하고 코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이미 네 강함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 아무리 싸움을 좋아하는 나라고 해도 불과 며칠 전에 패배한 개 신세가 됐는데 곧바로 다시 덤벼들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
“그렇다면 다행이군.”
바르간은 사나운 기운을 뿜어 대던 마나를 도로 가라앉혔다.
언제든 자신의 무력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바르간.
절반은 인간의 피가 흐르는 블뤼란스에게 바르간의 파급적인 언행은 항상 흥미를 유발했다.
『…참 신기한 인간이란 말이야.』
피식 웃는 블뤼란스.
잠시 바르간과 군과 관련된 사담을 나누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곧 정방회의(正方會議)가 시작될 테니 이동해야지.』
정방회의.
중요한 사안을 다룰 때 소집되는 회의로, 여신교 내에서 대주교 이상만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
“알고 있다. 안 그래도 걸음을 옮기려 한 참이지.”
『내가 방해했다 이건가? 하. 기껏 알려 주려 온…….』
『저, 저저, 정방회의면 대, 대주교 선발에 관해서도 논의하겠죠?』
대뜸 바르간과 블뤼란스의 대화에 끼어든 시클라멘.
겁이 많아 대주교라는 자리에 올라가길 무서워하기도 했으나,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바르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블뤼란스가 대주교로 선발된 마지막으로 정방회의가 열린 5년 전만 하더라도 그랬으니까. 물론… 이번 회의의 안건은 그게 주가 아니겠지만.”
『…드, 드디어. 생각보다 긴장되네요.』
시클라멘이 마른침을 삼키자 블뤼란스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카하하! 걱정 안 해도 된다. 우리가 그렇게 생고생을 했는데 네가 대주교가 못 될까 봐?』
『그, 그런 걱정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자리 자체가 그렇잖아요.』
『정방회의가?』
『네. 추기경분들과 다른 대주교분들이 모이는 자리라니…. 그 무시무시한 온건파랑 중립… 다 있을 거 아니에요…. 어우. 저는 대주교가 되어도 못 갈 거 같아요.』
『새끼가. 겁은 많아 가지고.』
시클라멘의 등을 세게 치는 블뤼란스.
눈물이 핑 돌 정도의 타격에 시클라멘이 징징대고 있자, 바르간은 이곳에 막 도착한 또 다른 대주교의 마나를 느꼈다.
“푸르푸르까지 왔으니 다 모였군.”
『그 늙은이. 멀리 있어서 늦지 않을까 했는데 용케도 제 시간 안에 도착했구나!』
벨레드의 둥지이자 요새인 이곳.
지금 이 요새에 있는 대주교만 무려 넷.
바르간, 블뤼란스, 베리스, 푸르푸르.
추기경 벨레드 산하의 대주교들이 전부 모였다.
마음만 먹으면 대국을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인지하곤 손에 땀을 쥐던 시클라멘은 문뜩 의문이 들어 물었다.
『그, 근데, 왜 이곳으로 모이시는 거예요? 정방회의가 열리는 곳은 바다 한가운데라 여기서 한참을 가야 할 텐데요.』
『시클라멘. 이 멍청한 자식아. 아직 네가 모시는 추기경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거냐?』
『예? 알죠. 벨레드 님이시잖아요. 공간을 지배하시는… 아!』
『그거다 인마.』
블뤼란스는 피식 입가를 올렸다.
***
벨레드의 알현실 앞으로 걸음을 옮긴 바르간과 블뤼란스.
거대한 문의 앞에는 이미 대주교 푸르푸르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적지 않게 나이를 먹은 법한 중장년 남성.
그런데도 아직 총기를 잃지 않은 푸르푸르의 눈동자가 바르간과 블뤼란스를 향했다.
『그대들인가.』
『카하하!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군. 아직 정정해 보여서 다행이야. 이곳까지 오다가 지쳐서 뒈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닐세.』
대주교 푸르푸르.
그의 근처까지 다가가자 바르간의 주머니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작은 십이신수가 깨어나 밖으로 나왔다.
“…후아!”
푸르푸르의 주변을 돌다가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는 하얀 요정.
다시금 바르간에게 날아들어 그의 어깨에 앉았다.
푸르푸르는 그 요정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4살 무렵인 거 같군. 십이신수의 성장은 언제나 빠르지.』
“이 아이가 탐나나?”
바르간은 어깨에 앉은 십이신수를 손가락으로 놀아 주며 그렇게 말했고.
푸르푸르는 고개를 저었다.
『탐을 낼 리가 있나. 이미 자네를 아버지로서 여기고 있는 아이네. 끝까지 책임지고 예뻐해 주게.』
『푸르푸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같이 다닌 지 좀 된 내가 장담하지. 다른 건 몰라도. 집행관이 사역마랑 십이신수 하나는 끔찍하게 아낀단 말이야.』
대신 답을 하는 블뤼란스.
푸르푸르는 ‘그렇다면 다행이다.’라고 읊조리며 어딘가 측은한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으로 실컷 십이신수와 놀아 주던 바르간은 아이가 도로 재킷의 앞주머니에 들어가자 말했다.
“넌 십이신수를 데려오지 않은 모양이군.”
마치 애완동물을 언급하듯 가벼운 말.
그건 십이신수를 데리고 있는 바르간과 대주교 푸르푸르만이 가능한 대화였다.
『우리 아이들은 둥지에 두고 왔네. 그대의 아이처럼 주머니 속에 넣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일세.』
푸르푸르를 모시는 두 마리의 십이신수.
또한, 지성이 없는 알티프보다 육성하고 있는 마물의 수가 많은 그는 사역마 분야에서 바르간과 유사했다.
바르간은 그 점을 콕 짚어서 말했다.
“한때 마왕이라고 불렸던 자의 손자라 그런가? 정말로 자신의 자식을 대하듯 십이신수를 부르는군.”
마왕.
아주 오래전, 십이신수의 정점으로서 모든 마물을 통치했던 유일무이한 존재.
전설 속에나 적혀 있는 존재의 후계자가 푸르푸르였다.
『마왕이라…. 이미 우리 아버지 때부터 여신님에게 충성을 맹세한 지 오래이거늘. 퀴퀴한 이야기를 꺼내는군.』
푸르푸르는 조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여신에게 패배한 후 기억을 소거 당한 것인지, 아버지조차 할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마왕에 대한 이야기는 세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그는 여신.
그중에서도 추기경 벨레드를 따르는 대주교에 불과했다.
『어머, 벌써 다 모였네요?』
마지막으로 모이는 꽃의 대주교 베리스.
모두를 보며 싱긋 미소 짓는 여인은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자연스레 바르간의 옆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잘생겼네요. 집행관님.』
“곧바로 알리시아를 치러 가는 줄 알았더니 가지 않았더구나.”
『대주교의 몸으로 정방회의를 무시하고 갈 수는 없죠. 따로 노리는 시기가 있으니. 나중을 기대해 주셔요.』
진한 꽃내음을 풍기며 바짝 몸을 붙이는 베리스.
바르간에게 추파를 던지려 하지만.
그녀의 도착은 모든 대주교의 집합을 의미했으며 그 사실을 성의 주인이 모를 리 없었다.
『내 아이들아.』
복도를 울리는 자애로운 여성의 목소리.
그러나 안에 굳건히 중심 잡고 있는 무게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들의 앞에 있는 커다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2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문.
양쪽으로 열리며 위대한 존재가 앞으로 나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대주교들의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모두를 짓눌렀다.
척척. 서 있던 네 명의 대주교가 모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보였다.
『일어서거라.』
거대한 뿔을 달았으며, 성인 남성보다 월등히 큰 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그녀 추기경 벨레드가 말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대주교들은 일어섰고.
벨레드는 자신의 소중한 아이들을 한 명씩 살피더니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손을 움직였다.
쩌어어억—.
활짝 열린 문 대신 거대한 입이 생겨났다.
날카롭게 솟아 있는 수많은 이빨을 보이며 벌어진 입. 공간과 공간을 연결시키는 힘은 벨레드가 만들어 낸 권능의 일부였다.
『이미 다른 추기경들이 회장에 들어서 있으니, 하다 못한 대화는 회의가 끝나면 나누자꾸나.』
강경파.
추기경 벨레드와 네 명의 대주교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회장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