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96화(296/350)
정방회의는 길게 이어졌다.
대전쟁에 관해서 추기경과 대주교들은 뜨겁게 의논했고.
더 나은 방안을 물색하기 위해 지략과 정보를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중립의 의견이 같진 않았으나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으며 전력의 분배나 둥지의 이동 등 세부적인 사항은 2일 차로 미뤘다.
이어서 대주교 선발에 관한 안건이 다시금 나오게 되었고.
벨레드와 강경파는 주교 시클라멘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강경파의 세력이 더 이상 확장되는 게 마땅치 않았던 온건파는 대립하였으며, 그렇게 내려진 결과는 대주교 둘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강경파 성향의 최정상급 주교 시클라멘.
온건파 성향의 정상급 주교 샤울.
두 존재가 대주교로 올라갈 게 정해지며 정방회의의 1일 차가 끝이 났다.
『카하하하! 시클라멘. 그 녀석이 들으면 좋아서 오두방정을 떨겠군!』
바르간과 함께 있던 블뤼란스가 괄괄하게 웃어 젖혔다.
방방 뛰면서 기뻐할 시클라멘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생각이 났다.
반면 바르간은 침착하게 계산을 끝마치고 말했다.
“이것으로 강경파에 대주교가 다섯이 되었다. 시클라멘과 샤울의 전력 차를 생각하면 온건파와의 차이가 더욱 줄어들게 된 셈이지.”
『그래서 샤울이 대주교로 올라가는 걸 막지 않았던 건가? 세세한 것까지 다 신경 쓰고 있었군.』
“작은 차이 하나하나가 중요한 법이다. 블뤼란스.”
『설교할 생각은 하지 마. 그런 건 질색이니까.』
손을 내젓는 블뤼란스.
주제를 바꾸어 이번 정방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던 추기경과 대주교들을 언급했다.
『집행관은 이번에 처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어땠나?』
“무슨 의미지?”
『다른 대주교들이야 그렇다 치고. 그 셋 말이야.』
블뤼란스의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끝에는 어쩐지 투쟁심과 긴장감조차 서려 있어 바르간은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대주교 최강 무력 집행관 이포스.
온건파의 수장이자 여신교 내 절대 권력 추기경 아몬.
시대을 월등히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추기경 제파르.
바르간은 그들을 떠올리며 눈가를 좁혔다.
“하나하나가 방심할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카하하! 벨레드 님을 포함한 여신교의 오랜 기둥들이니 당연하지!』
“단순 무력뿐만이 아니야. 정세를 파악하는 능력도, 이를 이용하는 능력도 상당하더군.”
괜히 오랫동안 권좌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바르간과 대화를 잇던 블뤼란스는 어느 순간 창을 어깨에 턱하고 걸쳤다.
『아무튼, 나는 이제 객실로 돌아가야겠어. 집행관은 계속 여기에 있을 셈인가?』
“이곳의 지형을 조금 더 파악하고 갈 생각이다.”
『그건 참 지루한 일이군.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거북인데 뭘 그렇게 볼 게 있다고.』
“인간의 개념으로 보면 이 정도 크기의 거북은 신기하다 못해 괴이하다.”
이곳.
정방회의가 열리는 장소는 바다 한가운데.
웬만한 섬은 거뜬히 넘는 무척 커다란 거북의 등껍질 위에 마련된 장소.
그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탑의 꼭대기에 있던 블뤼란스는 켁 하고 헛웃음을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겁도 없는 것인지 계단을 사용하지 않고 냅다 난간에서 떨어지는 블뤼란스.
바닥에 닫기 직전. 인간의 인격인 퍼티글로 변하여 두둥실 떠올라 이동했다.
“…….”
그렇게 바르간은 한동안 거북의 전신을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원작의 마지막 에피소드. 대전쟁.
그 시기를 1년가량 앞당기게 되었지만 상관없다.
이미 필요한 준비는 모두 끝이 났고, 시뮬레이션이라면 셀 수도 없이 돌려 보았으니까.
망상이나 상상 따위가 아닌. ‘2번째 고유술식’으로 만들어 낸 환경에서 말이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지 않나? 고유술식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차마 파악하지 못한 정보가 있을 텐데.
“…….”
—바르간. 나는 자네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어 버리네. 뭐든 좋으니 대꾸라도 해 주는 게 어떤가.
바르간의 곁에 서 있는 어떤 존재가 말했다.
그런데도 바르간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그 존재는 말을 이었다.
—굳이 입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고만으로도 충분히 내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자네의 영혼은 아닐지라도 그 육신의 오랜 조상인 나를 이리 방치해 둘 생각인가?
‘시끄러워 죽겠군. 입을 다물어라. 슈겐하르츠.’
—드디어 반응을 보여 주는군.
육신을 갖지 않은 존재가 입가를 올렸다.
과거 바르간이 고유술식의 시련에 임했을 때. 먼 과거 속에서 보았던 슈겐하르츠 가문의 시조. 슈겐하르츠.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가 바르간을 바라보고 있다.
—자네 덕분에 오랜만에 옛 동료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네. 비록 그들은 나를 인식은커녕 기억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아, 라페즈… 아니 여기선 제파르였지. 그 녀석도 여전히…….
‘그딴 건 됐고. 멋대로 나오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나. 나중에 필요가 있을 때 부를 터이니 들어가 있어라.’
—그렇게까지 말하면 따르는 수밖에 없군…. 알겠네. 그럼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르게. 우린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사이이니 말일세.
겨우 바르간의 앞에서 사라진 슈겐하르츠.
바르간은 긴 한숨을 쉬더니 곧 생각을 정리하고 객실로 돌아갔다.
***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슈겐하르츠가 다시금 내 눈앞에 나타났던 건 두 번째 고유술식을 완성시킨 직후였다.
새로움 힘을 습득하여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개방감과 동시에 내 정신은 다른 곳으로 이동되는 것 같은 묘한 감각을 느꼈고.
눈을 뜨고 보니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크라아아악!
—케에에엑!
주변을 시꺼멓게 물들은 마물의 떼.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카하아악!
피비린내와 내장의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을 하고, 북을 울리듯 소음으로 가득한 이곳.
나를 잡아 먹기 위해 달려드는 마물을 향해 반사적으로 바람의 마법을 발현했다.
쉬하아악—!
가벼운 손짓에 해득의 끝자락에 이른 경지의 원소 마법이 토네이도를 형성했고.
마물 떼를 양분하며 훤히 길을 텄다.
—그르르륵!
—커엉커엉!
내 반격이 예상을 웃돌아서인지 마물들이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이빨을 갈며 충혈된 눈으로는 내 약점을 살폈다.
그 틈에 나 역시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꿈인지 뭔지는 몰라도 아무 정황도 모른 체 당하고만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도시나 마을이 아닌 걸 보면 녀석들의 거주지였던 것 같은데. 누구와 싸우고 있었던 거지?’
나는 마나를 움직여 근처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살폈다.
잡히는 기운은 두 개.
둘 다 일반적이지 않다.
여신교로 따지면 대주교…. 그중에서도 높은 개체와 맞먹을 정도의 힘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저들이 여기에 있는 마물들의 군락에 난입한 모양이었다.
“마물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우선 정리를 할 필요는 있겠군.”
그렇게 판단을 내리자.
마찬가지로 내 기운을 느낀 ‘그’가 나타났다.
“자넨…!”
“…넌?”
나와 비슷하게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전에 봤을 적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성취가 높아졌지만, 틀림없는 슈겐하르츠였다.
—케르르륵!
—카아아악!
슈겐하르츠는 마찬가지로 마물을 떼를 몰고 다녔다.
나는 그를 도와 주변의 마물을 토벌하는 데 힘을 썼고.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도 나와 합을 맞췄다.
…그렇게, 주변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자. 더이상 살아서 움직이는 야생의 마물들은 찾을 수 없었고.
상황이 정리되었다.
“…….”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슈겐하르츠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다가왔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가 떠오르지 않은 것처럼 어딘가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자네. …자네는.”
“…….”
설마 과거 고유술식의 시련과 상황이 이어지는 것일까?
그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자.
내 구석구석을 관찰하던 슈겐하르츠는 눈가를 긁으며 말했다.
“아…. 미안하네. 순간 어디선가 봤던 인물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모양일세.”
“…그런가.”
슈겐하르츠는 나를 몰랐다.
세이만 던전에서 첫 번째 고유술식의 시련에 인과관계가 적용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런 듯했다.
한데, 던전도 시련도 아니거늘. 어째서 또 이 먼 과거의 환상에 들어오게 된 거지?
“초면에 당황스럽게 해서 미안하네. 나는 슈겐하르츠일세.”
“…오르가논이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라도.
나는 자연스레 전에 했던 것과 같은 가명을 댔다.
혹시 몰라 그의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는데, 그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지 웃으며 잡고 있는 손을 흔들 뿐이다.
“오르가논이라. 좋은 이름이구만. 한데, 자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던데. 마법사님의 새로운 제자인 거 같군.”
‘전과는 반응이 다르다. 그때와 시간선이 다른 건가?’
처음 만났을 적에는 마법을 사용하는 나를 경계하던 슈게하르츠.
한데 이번에는 반응이 딴판이다.
마법사의 새로운 제자라고 멋대로 이해하는 걸 보면, 아직 모든 사람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몇 년, 혹은 몇 개월일지 모르는 시간의 간격 사이에 마법사의 제자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현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뜻일 터이다.
나는 이 흐름에 편승하기로 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슈겐하르츠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나를 반겼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토벌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어.”
“그래.”
“그런데…. 지원을 하기 위해서 혼자서 온 건가? 파트너는?”
파트너.
전에 함께 있었던 라페즈도 그랬고.
저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누구가도 있는 걸 보니 함께 다니는 동료를 의미할 터.
나는 고개를 저었다.
“파트너를 배정받지 않았다.”
“파트너가 없다고?”
“정확한 건 모르지만 내 성향상 혼자다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군.”
“그…런 건가? 특이하군. 보통 2인에서 3인은 기본으로 다니는데.”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슈겐하르츠는 크게 의심을 하진 않았다.
역시, 현 시점에서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최초의 마법사를 따른다는 증거인 셈이다.
나 말고도 종종 이런 상황이 있었던 거겠지.
어중간하게 마법이라는 자원을 독점을 하고 있으니 이런 틈이 발생했다.
물론 나로서는 사용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그런데…. 이번에는 언제까지 이 장단에 맞춰 줘야 하는 거지?’
매번 이 시기로 올 때면, 중요한 사건에 개입이 되었고 그걸 해결해야만 했다.
또한 던전의 클리어나 고유술식의 습득 등 현실의 보상과도 관련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역시 마찬가지인 걸까?
왜 자꾸 나는 이 시기에 오게 되는 거지?
‘…의문만 늘어나는군.’
그렇게, 우선은 정확한 시기의 파악을 이어 가려던 찰나.
슈겐하르츠의 동료가 도착했다.
“아, 왔는가. 어서 이리로 와 보게. 이자는 오르가논이라고 최근 마법사님의 제자가 된 자라고 하네.”
“……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어째서 슈겐하르츠는 동료로 데리고 다니는 게 항상 거물인 걸까.
저번에 라페즈 때도 그랬지만.
이번도 마찬가지.
‘파트너가 벨레드라니.’
장신의 키에 하얀 피부.
고혹한 분위기를 뿜어대는 여성은, 내가 현실에서 모시고 있던 추기경의 과거다.
역시 범상치 않은 일에 휘말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