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97화(297/350)
“오르가논도 인사하게. 이쪽은 벨레드. 자네와 마찬가지로 마법사님의 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인일세.”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그녀를 살폈다.
추기경 벨레드.
분명 맞을 터인데…. 내가 알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 이질적이다.
키는 조금 줄어들고 머리 색이나 피부색이 다르긴 하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태도나 자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혀 다르다.
추기경 벨레드는 세상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에 둔 절대자와 같은 면모가 돋보였는데.
이 여자는 절대자는커녕 상당히 위축되어 있어 나와 눈도 마주치기 꺼려 한다.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벨레드란 말인가?
“그녀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네.”
그녀를 살피고 있자 슈겐하르츠가 첨언했다.
마치 위축되어 있는 벨레드의 어깨를 펴 주기 위한 발언 같기도 하다.
“그녀가 어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줄 아나? 들으면 깜짝 놀랄 걸세. 무려, 공간에 간섭할 수 있지!”
“……그것 참 놀랍군.”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적당히 장단에 맞춰 주었다.
놀랍다면 놀랍기는 하다.
공간을 접하는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래도 그 벨레드가 정말로 그녀인 듯하니까 말이다.
“…….”
내가 낯설어서 그런지 거리를 좁히지 않던 벨레드. 그녀가 돌연 주변을 살피다가 입을 뻐끔거렸다.
너무 작아서 뭐라고 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는데 용케 들은 슈겐하르츠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군. 슬슬 노숙 준비를 해야겠어. 그럼, 미안하지만 장작을 부탁해도 되겠나? 그동안 우린 시체를 정리하고 있겠네.”
“‘우리’라…. 자연스럽게 나를 포함시키는구나.”
“지원으로 온 것 아니었나? 그렇다면 뒤처리도 함께해 주어야지. 부탁 좀 하겠네 오르가논.”
“…….”
“…….”
슈겐하르츠의 부탁을 받은 벨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멀어졌다.
며칠을 굶은 것처럼 마른 두 다리가 걸어가는 게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 모습.
그녀가 벨레드의 과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하늘이 어스름해진 지금 그녀가 홀로 작업을 하러 가는 게 걱정되었을 정도다.
“아름다운 여인이지?”
슈겐하르츠는 멀어져 가는 벨레드를 보며 그렇게 읊조렸다.
다만, 욕정이 담겼으리라 오해할 법한 대사와는 달리 그의 눈동자엔 그윽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슈겐하르츠는 일부러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사연… 있지. 오르가논. 그거 알고 있나? 아름다움이라는 건 때론 독이 되기도 하더군.”
“독이라.”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꺾으면 말라 버리게 되는 것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녀를 말라 버리게 한 원인이 되어 버렸네.”
“…….”
나는 슈겐하르츠가 한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가 말했다.
“그녀는 창부였던 건가?”
“…어린 나이에 창관에 팔렸다고 하더군. 저 외모 탓에 비싼 돈을 지불하려는 사람들로 줄을 섰었다지.”
팔렸다는 말은, 부모였던 자가 그녀의 가치를 알고 사용했다는 말.
저 눈에 띄는 외모가 그녀에게는 독이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입을 다문 채 있자, 슈겐하르츠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타인을 위한 삶…. 그곳에서 살아가던 벨레드가 아이를 한 명 배었다고 하네.”
“아이….”
슈겐하르츠는 그 아이의 아버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 일을 하다가 실수로 태어난 생명이기 때문인 듯했다.
“벨레드는 그 자식을 굉장히 어여삐 여겼다고 하더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꿋꿋하게…. 그녀는 훌륭한 한 명의 어머니였던 것이지.”
“…….”
“한데, 자네도 알다시피 마물과의 전쟁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지 않았나. …그 탓에 하나뿐이던 자식을 잃게 되었고. 그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 저리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거네.”
“그런 거였군…. 근데,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 줘도 괜찮은 건가? 쉽사리 내뱉을 말은 아니라고 여겨진다만.”
“…그야, 실례지. 하지만, 자네가 실수로 자식이나 아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는 단언했다.
생각해 보면, 슈겐하르츠는 오늘 노숙을 한다고 하였고.
나는 그들에게 합류한 상황. 그렇다면 적어도 열 몇 시간은 함께 있어야 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미리 내 입막음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처사가 자연스러운 걸 보면, 아무래도 예전에 벨레드의 앞에서 아이나 자식에 관한 주제가 나왔고. 이로 인해 벨레드가 불안증세와 같은 반응을 보인 것 같기도 하다.
“자, 그럼. 우린 죽은 마물들의 사체를 소각시키도록 하지. 양이 원체 많으니 시간이 좀 걸릴 걸세.”
“뭐… 내키진 않지만 도와주겠다.”
“그건 고맙군!”
***
어째서 또다시 이런 과거에 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외부인이나 마찬가지기에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어지간히 사람이 좋은 슈겐하르츠는 그 대상으로 딱이었고, 나는 그의 일을 도와주며 함께 노숙하게 되었다.
노숙을 할 바에는 벨레드의 마법을 사용해서 이동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녀의 마나가 과열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란다.
미치광이 과학자 라페즈는 어디다 두고 벨레드를 데리고 있나 했더니, 일종의 보호자 같은 느낌으로 그가 벨레드와 파트너를 맡은 모양이다.
타닥타닥.
그렇게 날이 완전히 저문 시각. 모닥불이 튀는 소리를 들은 채 둥글게 앉은 우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리를 모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벨레드를 대신해서 슈겐하르츠가 자꾸만 내게 말을 걸었다.
의심이 없는 건 정보를 끌어내야 하는 내게도 좋은 일이긴 했지만, 처음 만났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내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묘하다.
“…그러니 그때. 프릭칸리스크의 군세를 막아 내지 못한 건 아직도 통한으로 남아 있네. 단 한 명…. 나나 라페즈와 같은 동료가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막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슈겐하르츠는 15년 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프릭칸리스크의 성에 갇혔던 포로들부터 해서 내가 시련을 받는 동안 겪었던 이야기와 일치하였으며.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개입하지 않은 본래의 세계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당시 라페즈와 슈겐하르츠밖에 없었던 이들은 프릭칸리스크의 군세를 다 감당하지 못했고.
현재는 마법사의 제자가 된 아미나 자간을 비롯한 몇몇만을 살리는 게 고작이었다고.
‘그게 15년 전의 이야기라…….’
나는 대화를 이어 나가는 슈겐하르츠는 몰래 살폈다.
그의 성취를 보면 거짓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실제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의 외관을 보면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
단순히 덜 늙었다는 게 아니라 전혀 늙지 않았다.
마법사에게 마나를 받으면서 불로의 힘이라도 받은 것일까. 뭐가 되었든 절대로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또 하나.
“슈겐하르츠. 그래도 마왕이 죽었으니 평화의 시기라면 평화의 시기이지 않나? 남은 일은 잔당을 처리하는 것 정도이니 어렵지도 않지.”
현시점에서는 이미 최초의 마법사와 제자들에 의해 마왕이 쓰러졌다는 것.
나는 그와의 대화가 현 상황에 힌트가 될 수 있음을 알아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슈겐하르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말이네. 나도 그럴 줄 알았네만.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더군….”
‘여기서 말하기 싫은 기색을 보이는가.’
술술 정보를 내뱉던 슈겐하르츠의 입이 멈췄다.
표정에서 엿보이는 난처함과 자기 비하, 분노의 감정.
그리고 현 상황.
‘최초의 마법사와 제자들이 마왕을 무찔렀다면 그들은 권력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한데도 꾸준히 제자들을 영입하고 있다. 이는 세력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이들은 전원이 마법이라는 신비로 무장한 병사.
상대할 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발생했다면, 입지가 좁아진 왕족 등의 기존 권력과 부딪혔든가.
혹은 마법사의 세력 내에서 문제가 발생했든가.
‘…슈겐하르츠의 반응으로 짐작해 보자면 후자의 가능성이 보다 높겠군.’
나는 결론을 내리고 은근슬쩍 가장 유력한 갈등 대상을 언급했다.
슈겐하르츠와 함께 다니던 파트너의 이름을.
“라페즈에 관한 건가.”
“…짐작하는 대로네.”
라페즈의 이름이 나오자 수심이 깊어지는 슈겐하르츠.
그는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더니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그래, 우린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송을 받는 마법사님과 그 제자들이니 한껏 들떠 있는 걸세. 그러니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고….”
“…….”
“한데, 라페즈는 그 선을 거하게 넘었네. 무고한 시민들을 괴물로 만들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마법사님을 추종하는 이들을 실험체로 이용하다니….”
괴물.
슈겐하르츠가 말하는 괴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외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렴풋하게 짐작이 갔다.
“아니지… 사실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하면 안 되었네. 아무리 전력이 부족하다고 한들 마법사님을 뜯어말렸어야 했어.”
슈겐하르츠는 그날의 순간을 후회한다면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되었다.
이빨을 가는 그는 말을 이었다.
“죄수들을 괴물로 만들어 마물과 싸우게 한다. 이게 인간을 마물로 만드는 마왕과 다른 게 무엇이란 말인가.”
“…….”
“하지만 나는 묵과했네. 어쩌면 지쳐 있었을 수도 있지. 길어지는 전투. 커져 가는 피해. 대의를 위한 수단이랍시고 말이야.”
본인들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슈겐하르츠는 그렇게 말했다.
“오르가논. 자네가 죄인이라는 건 아니네. 우리가 벌여 놓은 문제에 늦게 들어온 자네들을 끼워 넣을 수야 없지.”
그가 다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죄수들을 괴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안에 동참했을 터이지만, 굳이 의견을 밝히진 않았다.
“…그나저나. 마법사님께서도 최근에 변하신 거 같아 걱정이군. 라페즈가 그런 짓을 저질렀음에도 가만히 두시다니.”
그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내부 사정이 복잡한 듯했지만, 더 묻게 되면 아무리 의심 없는 슈겐하르츠라도 의아해할 수 있으니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자.
슈겐하르츠는 무거워진 주제를 돌리기 위해 말했다.
“그 근사한 옷은 행진 때 입기 위해서 마련한 건가?”
근사한 옷?
내가 입고 있는 정장 말인가?
나는 대화의 흐름에 탑승하기 위해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하기야, 마법사님을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성대하게 환호받는 자리이니 신경을 쓸 만하지.”
그러고 보니 마왕을 잡은 지 이제 1년이 되었다고 했지.
예상이지만 1주년을 기념해서 행진 같은 걸 하는 것 같다.
몇몇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마왕의 세력을 물리친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을 테니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한데 내가 정말 그 행진에 참여해도 되는 건가? 나는 마왕과 전쟁을 벌일 당시 제자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럼, 상관없지. 오르가논. 자네도 어엿한 마법사님의 제자가 아닌가.”
“조금 전까지 나는 죄인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던 것과는 대비되는군.”
“그것과 이것은 경우가 다르지 않나. 신경 쓰지 말고 참여해도 괜찮네.”
“그렇군.”
나는 대충 받아들이는 척을 하며 넘겼다.
마법사의 제자가 아닌 내가 행진에 참여를 할 순 없겠지.
빼도 박도 못하고 들키게 될 테니까.
…그런데도. 신경 쓰이는 요소가 있어 행진이라는 사건을 머릿속에 박아넣었다.
제자들.
그리고 최초의 마법사.
이들을 단체로 볼 수 있는 자리는 충분히 가치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