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9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98화(298/350)
아직 밤이 채 끝나지 않은 시각.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장작불에서 올라온 거뭇한 매연은 코끝에 어른거려 탄 향을 낸다.
내 주위에 잠들어 있는 두 사람.
아니, 이들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처럼 보이는 자들.
슈겐하르츠와 벨레드가 잠에 빠져 있는 와중. 나는 불침번을 서고 있다.
나의 어떤 점을 믿고 이렇게 곤히 잠에 빠질 수 있는지 놀랍기까지 한데, 아무래도 벨레드와 파트너를 맺고 나서 슈겐하르츠는 잠을 도통 이루지 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벨레드를 믿고 잠을 청한다는 건 불침번을 세우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잠은 자되, 숙면을 취하진 못했겠지.
“…흐, 으으윽.”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새우잠을 자고 있는 벨레드의 인상이 구겨졌다.
무서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지 질끈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비쩍 말라 있는 그녀의 입술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
“아가야….”
“…….”
그러고 보니, 뒤르테문드에서 만났던 프릭칸리스크도 비슷한 처지긴 했다.
아이를 찾아 헤매던 어미.
차이점이 있다면 벨레드의 자식은 이미 화마에 휩싸여 재가 되었다는 점이지만….
‘벨레드는 제 수하들을 ‘아이’라고 불렀지.’
또한 인간을 극도로 증오해 강경파의 수장에 이르렀던 그녀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창관에 팔려 당했을 처우들을 생각하면 아예 인과관계가 없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흠.”
나는 잠을 청하고 있는 둘에게서 눈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아직 어둡기 그지없었지만, 슈겐하르츠에게 이곳이 대충 어디쯤인지 주변에 어떤 도시가 있는지를 들었다.
지금 부지런히 움직이면 날이 밝을 적에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슬슬 이동해야겠군.’
아침까지 함께 있게 된다면 나는 꼼짝없이 벨레드의 마법으로 이동을 하게 될 터.
녀석들이 활동하는 본거지를 확인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 정체가 쉬이 탄로 날 것이다.
슈겐하르츠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빼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여기선 몰래 빠져나가는 게 현명하겠지.
츠즈즈….
나는 마력을 감추며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불침번을 서 주지 못하지만, 설령 마물들이 이들을 덮친다고 하여도 큰 문제 없이 쓰러트릴 것이다.
어차피 이 세계에 마왕은 사라졌고.
십이신수들은 죽거나 최초의 마법사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상위 대주교의 무력을 지닌 둘이 쉽사리 죽어 버릴 턱이 없다.
“흐윽….”
벨레드의 흐느낌을 뒤로한 채 나는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가로막고 있는 듯 캄캄하였지만, 이미 상당히 발달된 감각을 통해 마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려움 없이 이동이 가능했다.
***
이동하면서 이것저것을 확인해 봤지만.
나와 계약을 맺은 사역마들을 소환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공간 이동의 제약 때문인 듯했는데,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대신 다른 마법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이 가능했다.
비록 착마마법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저주 마법이나 마력포는 전과 같이 사용 가능하니 만약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이를 중점으로 사용하자.
“저기군.”
노숙을 하던 위치에서 그나마 가까이 있던 도시.
고대에 해당하는 시기임에도 높게 뻗어 있는 성벽은 이 도시의 부를 드러냈다.
성문 앞에 도착하자 경비원 한 명이 나를 막아 세웠다.
“멈춰 서십시오.”
“뭐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신원을 알지 못함에도 험하게 대하진 못하는 걸 보면 내 옷이 간접적으로 신분을 알렸기 때문일 터이다.
그는 다소 긴장된 어조로 말했다.
“통행증이나 신원 확인서를 보여 주십시오.”
“…귀찮군.”
나는 재킷의 안쪽을 뒤지는 척을 했다.
당연히 나에게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고. 마나를 움직이는 수 말고는 없었다.
저주 마법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이거면 됐나?”
본래 하얀이였을 손수건을 내밀었다.
당연히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는데, 그것을 꼼꼼히 살피던 경비원은 곧 손수건을 돌려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래.”
원한다면 성벽을 넘어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편하게 성문을 지나가면 되는 데 굳이 좀도둑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성문을 지나가니 사방으로 뻥 뚫린 거대한 도로변이 나왔다.
아직 시간이 일렀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거대한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여인들.
가축을 줄줄이 이끌고 일찍 시장으로 향하는 노인.
모두 맞춘 것처럼 하얀 옷을 걸치고 있어 이 시대의 복식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아직 알 수 없는 사항이 너무 많으니 정보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최우선적으로는 복식을 어떻게 해야겠군.’
나는 도로를 걸어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내 옷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었는데, 곁눈질로 나를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방법이 있다면 있다.
근처에 옷가게에 들러 적당한 옷을 구매하는 것.
다만, 하얀이가 평범한 손수건이 되어 버린 이상 값을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금 덩어리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지도 않고, 반지 따위도 끼지 않았으니까.
물론, 저주 마법을 사용하면 쉽사리 속일 수 있겠지만. 그래서야 도둑질과 다름없으니 차안책으로 밀어 두었다.
비록 슈겐하르츠가에서 나왔지만, 귀족의 품위를 잃어서야 안 되니까.
‘한 명 정도는 있을 텐데…. 흠. 그래. 저 정도면 맞겠군.’
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걷다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을 발견했다. 두꺼운 책을 여러 권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나름 잘사는 집안의 도련님쯤 되는 모양이다.
바지 길이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저 정도면 나쁘지 않다.
“이봐.”
“…저요?”
“그래, 네놈. 잠깐 이쪽으로 오거라.”
“…무슨 용무로… 예, 알겠습니다.”
저주 마법을 살짝 걸어 주자 남성의 눈동자에 감돌던 빛은 삽시간에 꺼져 버렸다.
이 시대의 주민들은 마나회로 자체가 없으니 면역력 따위도 당연히 없어 다루기가 몹시 편하다.
나는 그를 데리고 으슥한 주변 골목으로 들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주택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화목한 가정의 아침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옷을 벗은 채 내게 건네라.”
“알겠습니다.”
남자는 순순히 명에 따라 옷을 풀어 헤쳤다.
남이 입던 옷을 입는다는 행위가 내키지는 않아도 어둑이가 없으니까 별수 없다.
과하게 눈에 띄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재질이 나쁘진 않군.”
나는 속옷 차림이 된 남성의 옷을 받은 채 이리저리 살폈다.
과연 책을 여러 권 들고 다니는 만큼 옷 상태가 괜찮다.
입어 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나 역시 재킷을 벗으며 며칠 후 있을 ‘영웅들의 행진’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자.
강력한 두 개의 마나가 근처에 반응하였고. 동시에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재밌는 짓을 하고 있네?”
나는 도로 재킷을 입은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건물의 옥상. 소년과 소녀가 입가를 올린 채 건방진 포즈로 걸터 서 있다.
오빠 격인 소년이 적극적으로 말했다.
“여기가 우리 구역인 건 알고 그러고 있는 거지?”
“…….”
“얼굴은 본 적 없는 것 같고. 새로 들어온 신입 제자인가? 요즘은 교육을 엉망으로 시키나 보다. 그치?”
2층 건물의 옥상에서 가뿐히 몸을 날려 착지한 소년과 소녀.
나로선 이제 익숙해진 외관들이다.
“아미. 자간….”
“이름도 알고 있는 걸 보니 정말로 우리 구역인 걸 알고 있었나 보네. …하하. 돌은 건가. 멋대로 구역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마법까지 써?”
“오빠. 조심해.”
“넌 조용히 하고 있어 자간.”
“들어 봐 오빠. 저 사람…. 마나 총량이 범상치 않아.”
“알고 있으니까 조용히 하라고.”
그렇다.
이곳은 마법사의 제자인 아미와 자간이 책임지고 있는 대도시.
나는 그곳에서 대놓고 마법을 사용하면서 마나 총량을 드러냈다.
아미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긴장감 같은 감정이 엿보였다. 그런데도 적의를 갖고 넘실거리는 자색의 마나가 훌륭하다.
과연, 프릭칸리스크의 군세에 쫓기고 나서 마법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더니 15년 동안 허투루 살진 않은 것 같다.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아직도 전혀 육체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
아무래도 마법사의 제자가 되면 신체의 성장과 노화가 멈춘다는 가설은 사실인 듯하다.
저 정도면… 대주교급은 못되더라도 정상급 주교 정도의 무력은 갖추고 있겠군.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내 말에 눈가를 좁히는 아미.
나는 입가를 히죽 올리며 말을 이었다.
“너희가 이곳에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서 이리 왔다는 말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럼, 우리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이곳에 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는 말이야? 왜?”
“나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일해 줄 일꾼이 필요했으니까.”
“…진짜로 미친 건가. 개똥 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죽으려고.”
구우우웅—!
마치 권능해방을 한 듯 마나의 압력을 높이는 아미.
녀석은 내게 경고하고 있다.
아무리 같은 제자라고 하더라도 여기서 물러나지 않고 더 헛소리를 뱉으면 전력으로 공격하겠다고.
15년 전에는 나름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힘을 갖게 된 지금은 사납기만 한 야생동물 같다.
“나는 나갈 생각이 없다. 그럼 죽일 건가? 같은 마법사님의 제자인 나를? 꼬마 둘이서 뒷감당이 될지 모르겠군.”
“…하.”
헛웃음을 뱉은 아미.
어쭙잖은 도발에 걸려들었다.
—쿠웅!
순식간에 자색의 마나로 제 몸만 한 낫을 만들어 달려들었다.
그 옆을 따르는 건 마찬가지로 낫을 들고 있는 자간이다.
‘고작 이 정도의 침범에 진심으로 휘두르려 한다. 제자들은 이렇게까지 막 나가기 시작한 건가.’
나는 현 마법사 세력의 상태를 대충이나마 파악하곤 마나를 움직였다.
이제부터 이 꼬마들에게 재밌는 걸 보여 주려고 한다.
너무 놀라서 눈알이 뒤집어지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카가가각—!
내가 만들어 낸 검은 연기에 부딪힌 아미와 자간.
둘은 눈가를 좁히며 자신들과 충돌하고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낫…?”
“형태가 같아?”
형태가 같다니.
지금 너희 정도가 감히 그딴 망발을 뱉다니 우습구나.
당황해하고 있는 둘이 알기 쉽도록 나는 안개를 걷어 주었다.
그러곤 초승달처럼 길어진 입가를 내리지 않은 채 말했다.
“아쉽지만 그 정도의 힘으론 이 녀석을 감당할 수 없다.”
카가가가각—!
자색의 마나가 폭풍치는 가운데.
아미와 자간의 눈동자에는 자색의 전신갑옷을 입은 한 존재가 보인다.
그건 한때 헤일리온의 왼팔을 앗아 가고.
뒤르테문드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장본인.
「대주교 아미의 권능해방 형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녀석의 전력이다.
“둘이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볼만하겠구나.”
사역마를 써먹지 못한다면 대주교를 써먹으면 되는 일.
굳이 내가 직접 나설 필요도 없다.
이미 내 첫 번째 고유술식, 호접몽이 발현되어 판을 지배하고 있는 지 오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