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0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00화(300/350)
‘…그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행진 당일.
다른 제자들과 마법사를 기다리고 있는 슈겐하르츠.
마왕 토벌 1주년을 축하하며, 인류의 번영을 기원하는 커다란 행사를 앞두고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인물이 있었다.
‘오르가논, 자네는 나에게 가명을 말해 줬던 건가?’
마물 잔당의 퇴치를 마치고 노숙에 들었던 다음 날.
오랜만에 취한 숙면에 만족스럽게 잠에서 깬 슈겐하르츠는 자신을 오르가논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사라졌음을 알았다.
처음에는 잠시 경계를 위해 근처라도 나선 건가,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해 보았지만 결국 그는 오지 않았고.
슈겐하르츠는 벨레드와 함께 둘이서만 복귀해야 했다.
임무를 완료했다고 보고한 슈겐하르츠는 곧바로 신입 제자들의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오르가논이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었고… 슈겐하르츠는 그의 존재에 대해 의문이 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신입인 것치고 지나치게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적성이나 재능 따위의 영향을 받기도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그게 아니었던 건가?’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마법을 사용했으며 어째서 자신들을 도와주었단 말인가.
결국 슈겐하르츠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시간은 훌쩍 지났고, 그는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옷을 입고 이곳에 서 있다.
“아, 씨, 아직도 볼이 얼얼하네.”
“나도 그래, 오빠. 어디서 긁힌 거 같지도 않은 데 눈이 쑤시고 입술이 아파.”
슈겐하르츠의 귀에 들리는 소년 소녀의 대화.
외관상으로는 아직도 처음 프릭칸리스크의 감옥에서 봤던 그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미 15년 전의 일이다.
아미와 자간은 마치 누구에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볼이나 입술을 매만졌다.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데 저리 반응을 보이니 특이할 따름이다.
아미는 말했다.
“지난번 꾼 악몽 이후로 이러는 거 같은데. 대체 원인을 알 수가 없네. 잠자리 위치라도 바꿔야 하나?”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어…. 정확히 어떤 꿈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오빠랑 나랑 같은 날 악몽을 꾸고 몸이 아팠잖아. 돌아가면 침실 위치부터 바꾸자.”
“진짜 묘하긴 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 생각만 하면 무섭기도 하면서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란 말이지….”
말을 이어 가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슈겐하르츠와 눈이 마주친 아미.
아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요?”
“…음? 아, 아니다. 너희를 보고 있으니 문뜩 15년 전의 일이 생각이 나기에 그만….”
“15년 전…. 대체 언제까지 저희에게 감사 인사를 받고 싶은 거예요?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요.”
“물론이지. 애초에 난 당시 수많은 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도 없어.”
슈겐하르츠는 프리칸리스크의 감옥에서 구출해 낸 인원들의 사분지 일도 구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수호지에서조차 큰 희생을 내고 말았다. 그 죄책감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발목에 족쇄와도 같이 달려 있다.
슈겐하르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시 어떻게든 프릭칸리스크를 쓰러트리긴 했지만 피해가 너무 컸었지. 다 내 잘못…….”
“예? 당시 프릭칸리스크를 쓰러뜨렸다고요? 누가요? 아저씨가요?”
눈썹을 구부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아미.
이젠 기억 왜곡을 하는 거냐며 말을 이었다.
“프릭칸리스크는 그로부터 4년 뒤에 팀을 꾸려서 토벌했잖아요. 나이를 드셔서 헷갈리시나? 왜 이러시지?”
“어? 아, 그렇지. 그래, 프릭칸리스크를 토벌한 건 그로부터 4년 후였지. 내가… 방금 뭐라고 했던 거지?”
“와, 진짜 위험하시네. 육체는 그대로인데 뇌는 노화가 진행되는 건가?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
착각했다?
그 사실에 슈겐하르츠는 괴리감을 느꼈다.
한순간이긴 했지만, 그토록 자신을 괴롭게 했던 거대한 사건의 결말을 헷갈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누군지도 모르는 인물’과 함께 협력했다고 왜곡된 채 말이다.
‘나와 라페즈.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
그렇게 슈겐하르츠가 기억 오류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할 때.
문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어린 소녀 잔뜩 들뜬 어조로 외쳤다.
멀리서부터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여인은 남편 바엘의 경비를 받고 있다.
“엄마!”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말하는 소녀의 이름은 부에르.
그녀의 어머니라고 하면 단 한 분 말고는 없다.
* * *
시끌벅적한 대도시.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이곳 수도 페트란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온 외부인들의 수도 엄청났다.
수도의 내부는 물론이요, 성문에서부터 성벽의 바깥까지.
행진의 코스대로 쭉 나열되어 있는 사람들의 무리.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인간들로 만들어 낸 거대한 다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꺄하하하하!”
“드디어 마법사님을 뵐 수 있어! 마법사님을!”
“우리의 구세주! 사악한 마왕을 무찔러 주신 분!”
아직 성에서부터 마법사와 그 제자들이 나오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은 이미 잔뜩 흥분된 상태였으며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마치 신에게 목매는 신자들과도 같이, 그들은 마법사라는 상징적인 존재에 열광하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건 좋지만. 너무 부대끼니 불쾌하군.’
바르간은 군중 속에 있었다.
마나를 감춘 채 일반 시민을 흉내 내고 있었는데.
소문으로만 익히 들었던 마법사의 실물을 보기 위함이었다.
‘아미와 자간에게서 빼낸 정보에 의하면 최초의 마법사는 여신이 확실하다. 그녀가 마물과 싸우기 위해서 만들었다던 괴물도 알티프의 원형이겠지.’
그간의 정보를 취합하는 바르간.
원작과 그가 본래 살고 있던 현실 세계를 통해 압도적인 정보량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여신에 관한 정보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의문이 남게 되지. 어째서 여신과 그 제자들은 악의 축이 되었으며, 또 어째서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에는 이 시기의 기록들이 없다시피 한 것인지….’
누군가 의도성이라도 갖고 지우지 않았다면…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아무런 증거나 기록도 후세에 남지 않을 리가 없다.
특히나 마법사와 같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면 더욱이. 모든 흔적을 지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런데 실제로 일어났다. 이건 중간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밖에는 상상되지 않아.’
그 사건이라는 게 뭔지는 감도 오지 않지만.
분명 소설을 관통하는 무언가일 터.
바르간은 그 정체를 알기 위해 마법사를… 여신을 보러 왔다.
채앵-!
두두두둥!
이윽고 시간이 되자.
징과 같이 놋쇠로 만든 악기가 기세 좋게 울리며 그 뒤를 수많은 북소리가 뒤따랐다.
영웅들의 행진을 알리는 음악.
드디어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고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와아아아아아!”
열광하는 사람들.
목이 터져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영웅들을 환호했다.
척척척-!
영웅들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
오랜 연습이라도 했는지 손과 발이 각을 잰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진다.
거대한 코끼리나 사자와 같은 크고 희귀한 동물들도 줄을 맞춰 나왔으며.
군악대는 쉴 새 없이 북을 두드리고 금관악기를 불어 사람들의 흥을 더욱 고조시켰다.
개미 떼와도 같이 기나긴 행렬.
그리고 그 행렬의 중심부에 겨우 나타난 제자들.
시기적으로 최근에 들어온 이들부터 해서 마왕 토벌 전부터 있었던 이들.
널리 이름을 알린 제자들과 십이신수를 직접 토벌했던 영웅들.
모두가 마법이라는 기적을 사용하는 존재들로.
위대한 마법사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는, 영광의 좌에 앉은 인물들이다.
영웅들의 작은 손짓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환호했고.
수 없이 이름을 불러 댔다.
“이포스 님! 여길 봐 주세요!”
“슈겐하르츠 님! 슈겐하르츠 님!”
“아몬 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가족은…!”
사사로운 도움부터 해서 자신들이 살던 나라를 구원받은 커다란 은혜를 받았던 이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을 마주한 듯 눈물, 콧물을 쏟아 내며 감사를 표했고, 열광하였다.
절대악 마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신 영웅들.
아무리 이름을 드높여도 모자랐다.
쿠구구궁-!
커져가는 음악 소리.
곧이어 가마를 탄 채 성문을 지나는 인물은 한 남자와 어린 소녀.
“바엘 님! 부에르 님-!”
첫 번째 제자이자 마법사의 남편인 바엘과 그 자제인 부에르.
그들이 나오자 사람들의 더욱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이쪽을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고래고래 외쳤다.
‘바엘…….’
다른 이들이야 둘째 치고, 바엘이 나오면서 부터 바르간은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신교를 지탱하고 있는 추기경들.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서 있는 유일한 존재.
「교황 바엘」
원작에서도 최후반부, 바르간이 죽고 나서야 등장한 여신교의 정점이 저기에 있다.
‘소설에선 여신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사실상 저 녀석이 마지막 보스였지…. 다른 제자들을 위해 힘을 억누르고 있지만. 채 숨기지 못한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진다.’
절로 피부 위에 돋아나는 소름.
추기경인 벨레드가 이 시기에 아직 발전 중인 걸 생각하면 바엘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었는데… 저기서 더 강해진다라….
과연 인류가 쉽사리 멸망을 당할 만했다.
바르간이 보았던 인류의 최정점. 굴레마시아의 죽기 전 최후의 발악도 지금의 바엘에 비하면 한 차원에서 두 차원은 낮았다.
추기경도 잡아 낸 굴레마시아의 성취보다 더하니.
아무런 대책 없이 저런 괴물이 세상에 나타나면 그야 모두 전멸이다.
오히려 저런 것들이랑 싸워 온 마왕을 칭찬해 줘야겠지.
‘교황까지 나왔다면… 다음은 여신… 최초의 마법사인가?’
초월에 이른 마나 총량은 내 의지에 따라 내 기운을 잘 숨겨 주었다.
지금의 나는 일반 시민들 중 하나.
그들의 행진을 관람하기 위해 온 관람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터이다.
“와아아아아-!”
이미 최대치라고 생각했던 함성이 더욱 몸집을 불린다.
그야 말로 신을 추앙하는 광신도들.
절실한 신자들의 각광을 받으며 나타나는 여인은 이 행진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저 여인이 최초의 마법사…!’
바르간은 커다래진 동공으로 그녀를 담았다.
칼로 깍아 낸 듯 날카로운 턱.
깊이감이 느껴지는 눈동자와 폭포수와 같이 어깨선을 타고 흐르는 머리카락.
세상 모든 값진 걸로 만들어 낸 듯한 귀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은 마치 알리시아를 처음 봤을 적을 연상시키게 했다.
‘지나칠 정도로 미가 추구된 여인이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을 보는 것 같군.’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역시 넋을 놓고 바라볼 만한 외모.
세상의 질투를 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외관을 눈에 새긴 바르간은 이어서 마법적 성취를 확인하고 싶었다.
바엘처럼 어느 정도 티가 났으면 몰라도, 저 여인은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대중 속에 있다. 설령 내 마나를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찾아내는 건 어렵지. 그렇다면 여신의 힘을 살짝이라도 훔쳐보는 게 나은 선택일까?’
짧은 순간 바르간은 계산을 이어 나갔다.
위험성과 행위가 이끌 부가가치를 저울에 놓았다.
그 결론으로.
‘…그만두어야겠군. 설령 마나를 숨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신이 내 존재를 눈치챌 가능성이 있다. 들켜선 곤란해. 이곳에서 나는 지나치게 이질적이니까.’
그녀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모르기에 섣불리 접근할 수 없다.
아쉽기는 하지만, 여기선 한 발 빼기로 한 그.
다른 제자들에게도 접근한 뒤 서서히 일을 진행하려고 마음먹은 찰나.
“……!”
온몸을 감싸는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바르간.
마치 악마가 자신을 노리기 위해 노려보는 듯했다. 그 위치는 조금 전까지 바르간이 향하고 있던 곳이었다.
최초의 마법사.
우주를 담은 듯한 신비로운 눈동자가 정확히 바르간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