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0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01화(301/350)
‘젠장…. 곤란하게 되었군.’
여신. 최초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여인.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그녀가 나를 알아차렸다.
우주를 담은 듯 몽환적이고 광활한 에너지를 담은 눈동자.
눈을 피하려 해 보지만 압도적인 질량에 억눌린 듯. 눈꺼풀, 손가락 끝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전히 마나나 독특한 기운 따위는 느껴지지 않아도, 쥐가 거대한 뱀을 목전에 둔 것과 같이 근육은 본능적으로 잔뜩 긴장되었고 등줄기를 타고 한 방울의 긴장감이 흘렀다.
‘마나를 움직여야 하나? 아니면….’
시간으로 따지면 2초나 채 되나 싶을까.
눈이 마주친 순간은 길지 않으나 그녀는 분명히 내가 이질적인 존재임을 눈치챘다.
그런데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관찰을 하기 위해서?
행진을 망치지 않으려고?
뭐가 되었든, 내가 먼저 마나를 움직일 경우 제압을 위해 마나를 움직일 위험이 있다.
“…….”
나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렇게 3초가량이 추가로 지나고.
그녀는 다른 꽃을 찾아 떠나는 한 마리의 나비와도 같이 나풀거리는 눈썹을 덮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를 태우고 있는 가마는 타악기 소리와 함께 갈 길을 이어 갔다.
‘…못 본 체를 한다? 아니… 저건 관심이 사라졌다고 봐야 하나?’
의중이 파악되지 않는 와중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그녀가 들고 있는 커다란 책 한 권이었다.
여인의 상반신 정도 되는 크기의 두꺼운 양장본.
어떤 재질로 만들었을지 알 수 없는 자색의 가죽 표지가 묘한 불쾌함을…….
***
—크라아아악!
—케에에엑!
주변을 시꺼멓게 물들인 마물의 떼.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카하아악!
피비린내와 내장의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을 하고, 북이 울리듯 소음으로 가득한 이곳.
나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마물을 향해 반사적으로 바람의 마법을 발현했다.
쉬하아악—!
가벼운 손짓에 해득의 끝자락에 이른 경지의 원소 마법이 토네이도를 형성했고.
마물 떼를 양분하며 훤히 길을 텄다.
—그르르륵!
—커엉커엉!
내 반격이 예상을 웃돌아서인지 마물들이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이빨을 갈며 충혈된 눈으로는 내 약점을 살폈다.
그 틈에 나 역시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어라…? 지금 이 상황은…….’
분명 여신의 행진을 지켜보고 있던 나.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마물 떼의 중심. 심지어는 이미 겪어 봤었던 경험이었다.
나는 마나를 움직여 근처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살폈다.
잡히는 기운은 두 개.
둘 다 일반적이지 않다.
여신교로 따지면 대주교…. 그중에서도 높은 개체와 맞먹을 정도의 힘이 느껴진다.
‘역시.’
분명 슈겐하르츠와 벨레드이다.
완전히 과거의 형상 안에 들어왔던 첫 순간과 일치한다.
즈즈증—.
나는 마물의 떼를 물리치며 혹시나 내게 걸려 있을 저주 마법을 확인하기 위해 마나를 움직였다.
그러나, 잡히는 기운은 없다.
대신 시야의 한쪽에 깜빡거리는 숫자 하나.
「5」
그 숫자는 곧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뜨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모양을 바꾸었다.
「4」
5에서 4로.
마치 나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해 주려는 듯 선명히 떠 있다가 사라진 그것.
“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자 헛웃음이 나왔다.
여신을 만나 죽었나 싶었는데 냅다 회귀를 해 버렸다.
남은 목숨을 알려 주듯 친절하게 숫자까지 보여 주며 말이다.
‘나는 아직 ‘제2 고유술식’을 발현한 기억이 없거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에 완성시킨 제2 고유술식.
우로보로스.
가지고 있는 정보를 취합하여 모의의 세상을 만들고.
마나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는 마법.
과거 알리시아의 트라우마를 극복시켜 주기 위해서 걸었던, 귀찮고 준비물과 조건을 상당히 갖춰야 했던 마법. 그것을 간략화한 동시에, 타인이 아닌 술자인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한 술식.
아쉬운 게 있다면 시뮬레이션 안에서 얻은 성취를 밖으로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었지만.
상황 예측을 단순히 머리로 계산을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며, 실시간 전투 중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다.
한데… 나는 이번에 제2 고유술식을 발현하지 않았다.
여신에게 들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듯 회귀를 했다.
이 상황은 대체…….
‘…알리시아가 당시에 이런 기분이었겠군.’
종종 떠오르는 하얀 머리칼의 여성.
나는 루비드 마을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고.
우선 이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넨…!”
“…….”
일전과 마찬가지로 다가온 인물은 슈겐하르츠.
우린 잡담을 나누기 전에 모든 마물을 토벌하였고 주변이 피비린내로 진동을 할 때쯤에야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슈겐하르츠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다가왔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가 떠오르지 않은 것처럼 어딘가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자네. …자네는.”
‘슈겐하르츠는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지. 그때와 또 같은 대사를 이어 가야 하나?’
그가 이후에 뱉을 말은 ‘아…. 미안하네. 순간 어디선가 봤던 인물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모양일세.’ 이것.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는 모였던 미간을 활짝 펼치며 전과 다른 말을 뱉었다.
“그래, 맞아…! 오르가논! 자네, 오르가논이 아닌가!”
‘뭐?’
내 가명을 알고 있다.
그의 표정을 살피면 오랜 친우를 만난 듯 상당히 반가워 보이기까지 하다.
“대체 이게 몇 년 만인가! 어디 보자… 10년… 아니 15년은 되었군그래!”
“…15년 전에 나를 만났단 말이냐?”
“아, 설마 내 얼굴을 잊은 건가? 나일세. 슈겐하르츠. 그 왜, 15년 전에 ‘낄낄낄’거리며 웃는 라페즈와 함께 프릭칸리스크의 감옥에 갇혀 있던 자들을 무사히 수호지까지 안내하고 프릭칸리스크를 토벌하지 않았었나!”
“…….”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그럴 리가.
슈겐하르츠는 15년 전이라고 말했었지만.
내겐 몇 년 지나지도 않았다.
당시 있었던 모든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거지?
다른 과거 형상에서 있었던 일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게 아니었나?
나는 현재의 세계선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프릭칸리스크가 토벌된 게 15년 전의 일이라고?”
“자네와 만났던 게 15년 전이니까, 확실하네. 그 이후 갑자기 자네가 사라져 얼마나 놀랐었….”
말을 잇지 못하는 슈겐하르츠.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군…. 그러고 보니 프릭칸리스크의 토벌은 15년 전이 아니라 11년 전…. 게다가 당시 나와 라페즈는 수호지를 지키지 못했던 거 같은데….”
그의 머릿속에서 모순되는 두 상황이 충돌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올리곤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조금 전 띄고 있던 반가움은 사라지고 당혹스러움이 그 자리를 대체한 듯했다.
“…오르가논, 우린 며칠 전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았었나?”
“이건 또 놀라운 발언이군.”
아무래도 슈겐하르츠의 뇌 속에는 바로 직전에 있었던 회귀의 전 상황도 얼핏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혹시 몰라 조금 더 대화를 이어 가 보니.
모든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잔재가 되어 그의 머리 안에 떠돌아다님을 알 수 있었다.
‘회귀 전. 분명 나를 처음 봤을 슈겐하르츠는 상정 이상의 호의와 신뢰를 내게 가지고 있었다. 그것과도 관련이 있는 걸까?’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되레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
곧이어 벨레드가 오자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나를 본 기억이 있나?”
“…….”
벨레드는 낯선 나를 경계하는지 거리를 벌린 채 고개를 저었다.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불안한 눈동자를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벨레드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슈겐하르츠는 맥락이 끊어져 있는 줄 알았던 과거마저 얼추 기억하고 있다.’
또한, 여신을 마주하자 맞이했던 의문의 죽음.
내 두 번째 고유술식과 유사한 현 상황.
이 모든 조각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나에게 무엇을 보여 주기 위해 진행되고 있단 말인가.
모든 일은 흐름이라는 게 있고.
엄연히 원인과 결과라는 값이 존재한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도 분명한 까닭과 원인이 존재할 터.
그러나, 아미와 자간에게 털었음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자료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지닌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슈겐하르츠. 뜬금없는 말이다만. 나를 은인이라고 느끼고 있나?”
“…은인? 어…. 그야 그러하네. 아직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지만, 자네 덕분에 프릭칸리스크를 토벌하고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아니… 구하지 못했던가?”
어중간한 상태이긴 해도 다행히 슈겐하르츠라는 인물은 내게 호의적이다.
이 감정을 써먹을 수 있을 터.
나는 잠시 구상을 마친 뒤 말했다.
“마물 잔당의 토벌 보고는 조금 나중에 올리도록 해라. 우선은 나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
“하지만, 보고를 후순위로 미뤄서는 곤란하….”
“뒤통수를 크게 다친 상태에서 가는 것보다는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한 채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나?”
지금의 세계선이 정확히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 아미와 자간에게 뜯어냈어도 여신의 정보가 한참 부족하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사안들도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죽음을 맞이했던 행진까지 남은 기간은 6일.
운이 좋게도 이 시간을 대폭 줄여 줄 인원이 마침 있지 않은가.
나는 벨레드를 슬쩍 턱으로 가리키더니 슈겐하르츠를 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네 말이라면 따르는 듯하던데. 지금 당장 이동하도록 하자. 찾아야 하는 인물이 있다.”
또한, 그 인물을 찾기 위해선 싸가지없는 두 녀석을 활용하는 게 빠르지.
***
“아, 뭔데요! 왜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는 거냐고요! 아저씨!”
“하다못해 이 낫이라도 좀 치워 주시면 안 돼요? 잠옷 차림으로 이게 무슨 꼴이에요!”
씩씩 성을 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아미와 자간.
아직 밤이 하늘을 덮지도 않았건만 잠옷으로 갈아입은 걸 보면, 상당히 이른 시간에 수면을 취하는 모양이다.
둘의 옆에는 권능해방을 한 미래의 아미가 낫을 들이댄 채 위협하고 있다.
슈겐하르츠는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내게 부탁했다.
“대화로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가? 굳이 이런 아이들에게 위해를 가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네.”
“시간은 금보다 중요하다. 방법이 다소 거칠긴 해도 가장 효과적이면 쓰는 게 옳지. 또한, 저 녀석들이 외관은 어려 보여도 이미 성인이다.”
“그, 그래도…. 이건 좀. 게다가 같은 제자를 곤란하게 하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네.”
‘그건 그렇지. 내가 아니라 네가.’
나는 뒷말을 삼킨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아미와 자간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자간은 살짝 겁을 먹은 듯하였고, 아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눈을 부라렸다.
그들이 살고 있는 이 대저택만 보더라도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두 꼬맹이는 이 대도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시기는 다르다고 한들, 이런 대도시에 ‘그 녀석’이 활동하고 있지 않을 리 없다.
이미 슈겐하르츠를 통해 녀석의 존재 유무도 확인했으니 찾기만 하면 된다.
나는 두 꼬마에게 전했다.
“지금 당장 내 앞으로 ‘얼트레만’을 불러와라.”
훗날 주교 얼트레만이라고 불리며.
거대한 만물 거래소 테라리움을 운영하는 큰손.
항상 탑햇을 쓰고 다니는 그 녀석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녀석에게서라면, 틀림없이 내가 이 세계에 온 까닭과 목적을 이해하고 달성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