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0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03화(303/350)
그로부터 2년 후.
수도 페트란.
본래 왕가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성은 마법사가 들어온 이후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평화와 힘의 상징이었던 마법사였지만 ‘영웅의 행진’ 이후 또다시 2년간 방 안에만 틀어박힌 생활을 이어 갔고.
이제는 은근히 그녀와 그녀의 제자들이 머무르는 것을 불편해하는 눈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에르 님, 왜 자꾸 끼니를 거르시는 겁니까.”
“…….”
“아무리 마법사님의 힘을 이어받은 몸이라지만, 자꾸 식사를 거부하시면 정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
온갖 꽃들로 아름답게 꾸며 둔 성내 정원.
비쩍 마른 중년의 남성은 어린 소녀를 앞에 두고 이길 수 없는 입씨름을 이어 갔다.
남성의 이름은 플라우로스.
마법사의 제자 중 하나이자, 유일한 자손인 부에르를 책임지는 보호자다.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소녀 부에르. 꾹 다물고 있는 입은 무언가를 속에서 억누르고 있는 듯했고, 쓸쓸해 보이는 눈동자는 힘주어 버티고 있다.
“부에르 님….”
플라우로스는 걱정스럽게 부에르를 바라봤다.
막 태어나던 시절부터 부에르와 함께했던 그는 친부모 못지않게 그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아니… 어쩌면 지금은 친부모 이상일지도 모른다.
행진 이후, 그녀의 어머니인 마법사는 딸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지 2년이 다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인 바엘 역시 세상을 누비느라 딸에게 소원해진 지 오래다.
이 넓은 성에서 어린 부에르가 가장 의존해야 할 두 사람이 모두 멀어지게 되었으니.
플라우로스는 책임감 이상의 거대한 감정을 양 어깨에 올리고 있는 상태였다.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부에르가 뱉은 한마디.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이루어 줄 수 없는 바람. 플라우로스는 뭐라고 대답을 하면 좋을지 망설이다가 말했다.
“곧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현재 바쁘셔서 그렇지. 그 누구보다 부에르 님을 사랑하는 두 분이 아니십니까?”
“…….”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다 보면 분명….”
“거짓말. 나를 사랑한다면…. 왜 지금 내 곁에 안 계신 건데?”
부에르의 우울한 목소리. 세상만사가 즐겁고 신기할 어린아이가 내기에는 지나치게 조숙하다.
“……내가 중요하지 않은 거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거야.”
슬픔을 머금은 부에르의 음성.
그녀는 정원에 솟아 있는 어린 새싹을 바라보다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새싹은 평생 받을 햇살과 양분을 한 번에 다 받은 듯이 무럭무럭 자라났고 순식간에 봉우리를 맺었다.
부에르는 봉우리가 맺힌 꽃의 줄기를 뚝. 하고 힘없이 끊어 냈다.
아직 향기조차 배지 않은 꽃은 꽃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이젠 나도 알아. 몸이 크지 않았다고 해서 나이를 먹지 않는 건 아닌걸.”
신체 나이가 여섯 살에 멈춰 있는 부에르.
자신이 원한다면 성인처럼 바꿀 수도 있었지만, 마법사가 칩거를 이어 가는 동안 부에르는 자신의 신체를 성장시키지 않았다.
우울증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는 행동.
플라우로스는 별 다른 말을 못 해 준 채 측은한 눈동자를 띨 뿐이다.
그런데.
—비켜라! 오늘은 반드시 마법사님을 만나 뵈어야겠다!
성내를 울리는 남성의 호통.
잔잔하기 그지없던 이곳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플라우로스는 본능적으로 부에르를 자신에게 가까이한 채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 들었다.
쿵쿵쿵—!
—마법사님! 들리십니까! 당신의 제자 슈겐하르츠입니다! 문을 열어 주십시오!
‘슈겐하르츠? 이 소음을 일으킨 장본인이 슈겐하르츠 님이란 말인가?’
평소에 점잖기로 유명해서 호통은커녕 성질을 부리는 모습을 보인 적 없던 그.
멀리서 들리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다급하며 화가 나 있는 지 알 수 있다.
부에르는 불안함에 눈살을 굽힌 채 말했다.
“무슨 일이지?”
“부에르 님, 가지 않으시는 게 나으실… 부에르 님!”
플라우로스의 말을 무시한 채 달려 나가는 부에르.
분명 슈겐하르츠가 두들기고 있는 문은 엄마가 있는 방의 것이었다.
짧은 뜀박질을 이어 나가자 부에르는 현장에 도착했다.
거인도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거대한 크기의 문 앞에 도착하자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는 슈겐하르츠가 문을 부서져라 때리고 있었으며. 주변에서는 그를 만류하려 들었다.
“마법사님! 대체 언제까지 모든 독대를 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더는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슈겐하르츠의 무서운 얼굴.
부에르는 섬찟 몸이 떨렸고.
어느샌가 달려온 플라우로스와 상황을 지켜봤다.
“제자 슈겐하르츠. 들어가겠습니다!”
마법까지 써 가며 주변에 만류하던 이들을 멈춘 슈겐하르츠.
그대로 손에 힘을 준 채 굳게 닫혀 있던 문을 멋대로 열어 버렸다.
그 만행에 모두는 입을 떡 벌렸다.
바엘 이외에게는 절대로 출입을 허하지 않던 마법사의 방.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의 정점에 선 인물의 명을 무시한다는 것은 이들이 느꼈을 때 범죄보다도 죄가 무겁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말로 문을 열었어….”
부에르 역시 커다랗게 눈을 뜬 채 굳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불온을 저지르고 있는 슈겐하르츠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오랜만에 열린 문의 내부에 시선이 갔다.
언뜻 보이는 한 여인.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세의 미모를 간직할 것만 같던 여인의 볼이 움푹 파여 있다. 눈 밑에는 진한 먹구름이 껴 있고. 손톱은 손질이 전혀 되지 않은 칼날과 같았다.
그녀는 알현실과 비견될 만한 방 안에 혼자 있다.
슈겐하르츠는 성큼성큼 그 앞으로 걸어 들어갔고.
마법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는 시종과 제자들은 그를 막지 못했다.
“마법사님!”
충분히 반역으로 여겨질 수 있는 거친 행위.
슈겐하르츠는 곧 다른 제자들이 자신을 말리러 올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 빠르게 목적을 밝혔다.
그 역시 마법사의 상태가 신경 쓰이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이를 일일이 언급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당신께서 칩거에 들어가신 지도 언 2년 반! 제자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억제력을 잃고 있습니다!”
슈겐하르츠는 제자들의 부정부패를 언급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인체 실험을 자행하는 라페즈부터.
마법사의 제자라는 위치를 들먹이며 각종 놀음과 마약, 방탕한 삶을 지내는 이들까지.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법사님! 저희가 무엇 때문에 마왕과 싸워 왔단 말입니까! 무고한 사람들을 악의 무리로부터 해방시키고 평화를 되찾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마법사님께서 바라오시던 평화란 이런 것이었습니까?”
“…….”
“마법사님께서 얻으려고 하셨던 건 고작 권력 따위였던 겁니까? 그렇다면 선택을 잘못해도 한참을 잘못하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의 악행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이 급증하고 있고.
이로 인해서 그동안 쌓아 왔던 마법사의 명성이 산사태가 난 듯 무너져 내리는 중이라 하며 말을 이었다.
“완전한 권력이란 환상입니다! 마왕을 토벌한 직후에도 마법사님과 저희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세력은 존재했습니다! 한데, 지금은 오죽하겠습니까?”
“…….”
“마법사님을 견제하는 이들의 세가 삽시간에 불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마법사님의 추종자들과 부딪혀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기 일보 직전 입니다!”
슈겐하르츠는 간곡히 부탁했다.
부디 칩거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와 달라고.
“움직여 주십시오! 더 늦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제자들이 부패한 것은 아닙니다. 마법사님이 보여 주셨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직 저를 비롯한……!”
그때, 방 안으로 빠르게 달려들어 슈겐하르츠를 막아 세우는 두 사람.
아몬과 이포스.
그들은 무력으로 슈겐하르츠를 이끌며 방 밖으로 나서려 들었다.
“아몬! 이포스! 이거 놓게! 아직 마법사님과의 독대가 끝나지 않았네! 너희가 진정으로 마법사님을 위한다면 나를 이렇게 끌어내서는 안 되네!”
끼이이익—.
슈겐하르츠의 격렬한 저항에도 아몬과 이포스의 힘을 막아 내기란 무리였고.
간신히 열리게 된 문은 도로 닫혀 갔다.
“마법사님! 부디 그 안에서 나와 주십시오! 마법사님—!!”
—쿠웅.
결국 다시금 닫혀 버린 문.
아몬과 이포스의 손에 의식을 잃은 슈겐하르츠는 축 늘어진 채 연행되었고, 부에르는 플라우로스의 곁에 딱 붙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부에르의 손.
플라우로스는 꼬옥 그 손을 잡은 채 멀어져 가는 슈겐하르츠를 눈에 담았다.
그저 가여운 것을 보듯 여리던 플라우로스의 눈동자에는 어떤 마음이 결정화되어 굳어 가려는 듯했다.
***
“드디어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는군.”
산골 마을. 한 허름한 오두막에서 거주하는 바르간.
그는 벨레드의 마법을 사용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다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벨레드를 납치(?)하고 무려 2년이다.
이 세계에 이렇게 오랫동안 있을지도 몰랐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아가야.”
오두막의 한편에는 벨레드가 아이와 놀아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입을 여는 때가 거의 없는 벨레드였지만, 자신의 아들에게만큼은 대화를 시도하려 애썼다.
‘저것도 슬슬 나이를 먹게 해야겠군.’
바르간은 벨레드와 함께 나무토막을 가지고 놀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그 소년은 벨레드가 그렸던 그림을 토대로 만든 바르간의 환각으로 당연히 실존하는 게 아니었다.
선한 바르간은 아이를 그리워하는 어미의 마음을 이용하는 게 뼈에 사무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벨레드를 순순히 따르게 하기 위한 보다 적절한 수가 생각나질 않았다.
‘…아무튼. 아직까지도 마법사와 제자들이 나와 벨레드를 찾으러 오지 못했다. 결국, 훗날 여신이라고 불릴 여인과 교황이라고 할지라도 전지전능하다는 건 아니라는 소리지.’
벨레드가 마법사로부터 마법을 받은 걸 생각하면 그녀의 한계성이 더욱 뚜렷해진다.
그녀는 초월자 따위가 아니다.
초월자의 흉내를 내고 있는 필멸자에 불과하다.
‘또한 2년 전에 행진이 끝났음에도 내 회귀가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내가 이 세계에서 회귀하는 조건은 날짜와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전에 발생한 회귀는 행진에 참여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
정확한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나 마법사와 연관이 있음은 확실하다.
벨레드를 통해 세상 이곳저곳에서 소식을 종합한 바르간.
그중 가장 많은 정보가 오고 가는 수도 페트란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의 틈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반자 슈겐하르츠가 도망쳤다!
—배반자를 잡아 죽이라는 마법사님의 명이 떨어졌다!
마법사를 따르는 제자에서 하루아침에 배반자로 낙인 찍혀 버린 슈겐하르츠.
바르간은 그 배경에 분명 얼트레만이 개입했을 것이라 추측하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한껏 값이 올랐을 때 팔았으니 두둑하게 지갑을 채웠겠구나. 얼트레만.”
덕분에 본래라면 더 늦게 일어났을 사건을 앞당겨 진행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