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1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11화(311/350)
“바엘이 전면적으로 다른 세력들을 척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져 갔네. 항상 천지에선 피 냄새가 진동을 했고, 파리나 까마귀들은 잔치를 벌였지.”
한 시대를 상징하던 인물의 죽음은 커다란 파장을 끼쳤다.
마법사의 뒤를 이어 제자들을 이끈 바엘은 붉은 괴물들 즉, 알티프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그 피해는 매년마다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들은 외쳤다.
—배신자들을 죽여라!
—배신자들의 피를 바쳐라!
갑작스러운 마법사의 자살. 그 의문을 풀지도 못한 채 그녀를 믿고 따랐던 이들은 분노의 화살을 반대 세력에게 돌렸다.
성서에 적힌 마지막 한마디는 불씨가 되어 맹렬하게 타올랐고.
세상은 전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매일같이 성서와 마법의 연구를 이어 가면서도 사람들을 보호했고, 그 대가로 마나를 나눠줬네. 그들은 나를 위해 싸운 게 아니야. 그들 자신과 그들이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지.”
“잘 이용했군. 살인을 하면서 명분으로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건, 어느 시대에서나 먹히는 책략이지.”
“…그런 까닭에 했던 건 아니었네만. 아무튼, 그렇게 전쟁이 무르익어 갔을 때. 나는 바엘과 겨루게 되었네.”
슈겐하르츠가 바엘과 직접 맞붙었다고 하자 바르간은 일부러 놀란 기색을 보였다.
직접 바엘을 보아서 알지만, 그의 힘은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막대했기 때문이다.
“바엘과 붙을 정도로 네가 성취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군.”
“성서의 힘을 빌렸으니 말이네. 그럼에도… 바엘은 무척이나 강하더군. 전투의 중반부터 나는 그를 죽이는 걸 포기했네.”
“죽이는 걸 포기했다는 건, ‘봉인’을 택했다는 말인가.”
“그렇네. 죽이는 것보다야 몇백 년이고 몇천 년이고 봉인하는 편이 내겐 그나마 쉬운 안이었으니까.”
‘…그런가. 바엘은 슈겐하르츠와의 격전 이후 봉인되었기 때문에 다른 알티프들과는 달리 갇혀 있던 거였어.’
바르간은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잇던 슈겐하르츠는 돌연 머리가 아픈지 눈살을 구겼다. 엄지로 관자놀이를 쭉 누르고 나서야 비로소 안색을 폈다.
“미안하네. 잠시 두통이 있었군.”
“성서의 부작용인가?”
“그런 건 아니네. …아니, 영 틀린 말은 아닌가.”
슈겐하르츠는 힘없이 피식 웃었다.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바엘을 봉인할 때. 나는 전력을 쏟아부었어야 했네. 내 마나는 물론 성서의 힘을 대량으로 빌려야 했지.”
“그랬겠지.”
“거의 실신 상태였다고 봐야겠지. 그저 바엘을 봉인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내 모든 걸 쏟아부었네. 마나 결핍 상태에는 진작에 빠졌었지.”
두통은 그때 당시 발생했던 충격과 고통을 뇌가 기억했기 때문인 듯했다.
기억이 수복되면서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간신히 바엘을 봉인시키고 나니 나는 그가 들고 있던 성서를 펼쳐 볼 수 있었네. 내가 살롬의 일생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도 전부 이 덕분이지.”
살롬과 성서, 그리고 이어진 바엘의 이야기를 읽은 슈겐하르츠는 성서를 파기해야 하는 물건으로 보았다.
애초에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 성서를 소유하는 자들이 새로운 비극을 반복할 것이다. 그리 확신하고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면서까지.
하지만, 성서는 좀처럼 파손되지 않았다.
일부 페이지를 찢을 수는 있어도 곧 다시 생성되었으며, 불에 타지도 않았으며 펄펄 끓는 용암을 부어도 그을림조차 생기지 않았다.
결국 슈겐하르츠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후우우…….”
긴 숨을 내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리는 슈겐하르츠.
그는 아직도 그 선택을 후회한다고 했다. 아무리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좀 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일을 진행시켰어야 했다고.
바르간은 당시 그가 들고 있던 패를 떠올리며 슬쩍 물었다.
“설마, 네가 들고 있던 성서와 맞부딪힌 건가?”
마치 가미긴 토벌 당시 아카데미아를 소환하여 사용했듯이.
같은 피가 흐르는 거 아니랄까 봐 둘은 같은 방안을 시도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푸른 성서와 자색 성서의 힘을 서로 최대치까지 뽑아낸 뒤 맞부딪혔네. 내가 원한 건 자색 성서의 파손뿐만이 아니라 성서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슈겐하르츠는 바엘과의 전투 도중 성서끼리 서로 반발 작용을 일으키며 충격을 줄 수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마나 결핍과 큰 부상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 그는 성서를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굴러가게 됐다.
“두 성서의 충돌은 모든 페이지의 소실을 일으켰네.”
“모든 페이지의 소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진행된 게 아닌가?”
“…그게 그렇지가 않네. 앞서 말했듯 파손되지 않은 성서는 페이지를 재생성해 내지. 그리고… 완전히 제거된 페이지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더군.”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하,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군.”
원작에서 여신 살롬과 마왕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마치 누군가 일부로 제거한 듯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바르간은 그동안 품어 왔던 의문이 해소되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서에 적혀 있던 기록들이 모조리 제거되었지만, 그 외의 파편들. 그리고 남은 자들의 악의가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게 됐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겠군.”
비교적 늦게 성서를 사용한 슈겐하르츠와 바엘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하게나마 남아 있을지 모르나 에리카의 기억을 직접 지웠던 전적이 있는 바르간은 알았다.
일부 기억만을 정확히 지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해당 기억과 연관되어 있는 다른 기억들에도 영향이 갔을 터이고 연쇄 작용이 일어나 사실상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보는 게 올바르다.
“그 이후 어떻게 된 거지?”
바르간의 물음에 슈겐하르츠는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다가 답했다.
“난 죽고 말았네.”
“결국 죽은 건가. 그럴 줄 알았다만.”
“슬퍼해 주지 않는 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제 할 일을 하다 죽은 건데 슬퍼해 줄 리가.”
바르간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면서 말을 이었다.
“성서의 충돌 이후 넌 죽었다. 하지만 먼 후손인 내게 접촉한 걸 보면 뭔가 꼼수를 썼다. …하여간 슈겐하르츠가의 시조 아니랄까 봐 대비는 더럽게도 잘해 놨구나. 아무 생각 없이 냅다 성서를 부딪친 건 아니었어.”
“…그 점에 관해선 자네를 비롯한 다른 후손들에게 사과를 해야만 하네.”
슈겐하르츠는 바르간 앞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의 일념을 위해서 수많은 후손들을 희생시키게 되었다고 했다.
“바르간. 자네가 어려서부터 앓아 온 ‘불치병’은 내 탓이네.”
원작 바르간의 약점.
신의 저주라고 불렸던 불치병.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 치료법도 없이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의문의 병.
“바엘과의 마지막 전쟁 전, 나는 후손들에게 저주를 하나 걸었네. 자네들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고유 술식이라고 불리는 힘을 말이네.”
바르간은 저주의 특성을 떠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정제했다고 한들 내 대까지 저주가 이어지려면 어지간히 강력한 저주였겠지. 하하. 저주 마법의 특성을 생각하면 과연 그만한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슈겐하르츠의 직계를 제외하고도 몇 세대, 몇십 세대, 몇백 세대를 지나 그의 피는 널리 퍼졌다.
그들 중 저주의 부작용이 일어나는 극소수가 있다고 한들 이상한 건 없으리라.
그 부작용을 몸소 경험해 봤던 바르간은 테이블에 몸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전하고 싶었던 게 이 역사인가? 슈겐하르츠.”
“…나를 원망하는가?”
“내가 묻는 말이나 답해라. 네 목적이 뭐냐. 정확히 뭘 하고 싶은 거냐.”
“…….”
잠시 뜸을 들이는 슈겐하르츠.
그는 자신의 진의를 밝혔다.
“나는 내 의지를 이어 줄 인물을 찾고 있었네. 시련을 통과할만한 충분한 힘을, 그릇을 갖추고 있는 인물을 말이네.”
“…….”
“바르간. 대화를 시작할 때 말했지. 모든 걸 이야기하고 나면 내 부탁 하나를 들어 달라고. 내 저주에 고통스러워했을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염치를 불고하고 이렇게 부탁하겠네.”
슈겐하르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치우더니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이고 자존감이고 그는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입을 열었다.
“부디, 이 지독한 연쇄를 끝내 주게.”
“…….”
“성서의 참극을 막고 고통받아 온 이 세계를 구원해 주게. 그 부탁을 하기 위해 나는 죽어서까지 이곳에 남아 있는 걸세.”
슈겐하르츠의 진실함을 반영이라도 하듯.
푸른 성서가 빛을 발한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환한 빛을 말이다.
…….
“…어차피 할 일이었다만, 나도 참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고 말았군.”
기존의 시대로 돌아와.
정방회의의 첫날을 마친 바르간은 객실의 의자에 앉아 슈겐하르츠와 그간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슈겐하르츠의 부탁.
몰랐던 소설의 뒷배경.
그리고 슈겐하르츠에게 전해 받은 푸른 표지의 책 한 권.
두둥실—.
바르간의 근처를 맴도는 푸른 성서.
구분을 위해 바르간이 [신약]이라고 부르는 그 책 위에는 하얀 요정이 앉아 놀고 있다.
“성서를 사용할 수 있다면 수월했겠지만. 역시 그리 쉽게는 진행되지 않는군.”
허공에서 책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살피다 곧 마나의 무리로 바꿔 버린 바르간.
신약은 반짝반짝 별 무리가 되어 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삐야!”
자신의 의자가 마나로 변모하자 깜짝 놀란 요정은 바르간의 어깨에 날아와 앉았다.
바르간은 손가락으로 요정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어둠이 깔린 창밖을 바라봤다.
자욱하게 깔려 있는 먹구름은 전쟁을 기운을 머금고 있듯 불길했다.
***
한편, 같은 시각.
온건파의 수장인 아몬은 집행관 이포스와 함께 있었다.
대주교 최대 무력을 갖춘 이포스는 아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충성을 보였다.
창밖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짙은 먹구름.
아몬은 풍경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포스도 느끼고 있을 거예요. 벨레드. 그녀는 지나치게 ‘그’를 애정하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죠.”
눈가를 좁힌 아몬.
그녀는 정방회의에서 바르간의 입지를 똑똑히 눈에 새겼다.
바르간은 강경파 내부에서 과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일개 대주교가 가지고 있기에는 넘칠 정도의 권력을 말이다.
“그의 행동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어요. 그런 위험 요소를 여신교 깊숙이 두고 있다가는 언젠가 큰 화를 입게 될 거예요.”
아몬은 바르간이 필히 꿍꿍이를 감추고 있다고 봤다.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벨레드는 그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지만, 자신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여신교의 중심 역을 맡은 아몬.
그녀의 감은 그 어떤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정방회의의 마지막 날. 회의가 끝나는 즉시 저는 권능을 거둘 거예요.”
현재 정방회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곳에는 아몬의 권능이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다른 대주교들은 물론 추기경들 역시 자신들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푸른 마나를 사용하는 바르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거대한 거북은 고립된 섬이나 마찬가지.
사역마의 통신도, 그 어떤 마법의 술식도 통하지 않는 무효화 지대였다.
아몬은 몸을 돌려 이포스를 내려다보며 명했다.
그녀의 손에는 흉흉한 자색의 책 한 권이 들려 있다.
“이포스. 제가 힘을 거두는 즉시 최대 전력을 개방해서 바르간을 살해하도록 하세요.”
평소의 아몬이라면 사용하지 않는 강압적인 수단.
그러나, 비록 강경파와 척지게 될지라도 바르간은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폭발물이었다.
나긋하면서 잔혹한 지시를 들은 이포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충직하게 명을 받들 뿐이다.
“그게 당신의 뜻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