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1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12화(312/350)
정방 회의의 마지막 날.
아몬은 풀숲에 숨어 기회를 옅보는 한 마리의 뱀처럼 조용히 눈길을 흘겼다.
곧 있으면 길었던 정방 회의가 끝이 난다.
교섭과 소통의 테이블은 막을 내리고 한자리에서 마주했던 이들은 각자의 이념에 따라 발걸음을 달리하게 된다.
‘바르간, 당신에게 악감정은 없어요. 하지만 벨레드는 당신을 필요 이상으로 의지하고 있죠.’
바르간은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내.
여신교 내에서 휘두를 수 있는 권력 또한 만만치 않다. 이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위험물 그 자체인 상태이다.
늦든 빠르든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를 제거한다면 대전쟁이 시작되기 전, 모든 힘과 전력을 재정비할 틈이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아몬과 눈이 맞은 이포스는 지그시 눈을 감는 것으로 계획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렸다.
폐회의 알림이 이곳을 울리는 순간.
아몬은 자신의 권능을 모조리 거둬들이고 이포스는 마지막 단계까지 힘을 개방한다.
그가 노리는 건 바르간의 목.
채 반응하지도 못하게 생명을 앗아가 버릴 심산이다.
‘바르간의 전력이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다는 게 불안 요소이긴 하지만,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이포스를 상대할 순 없을 터.’
아몬은 바르간 살해에 관해서는 일체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르간보단, 그가 죽고 나서 길길이 날 뛸 강경파 세력의 무력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앞으로 20초 남짓.’
아몬은 시선을 얼트레만에게 돌렸다.
회의의 진행을 맡은 얼트레만은 길었던 회의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럼 금일을 마지막으로 정방 회의를 마치려 합니다. 여신교의 영원과 인류의 파멸을 위해 이 자리에 찾아 주신 모든 추기경 분들과 대주교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탑햇을 벗고 깊게 고개를 숙이는 얼트레만.
앞으로 한마디.
그가 고개를 올린 채 한마디만 더 뱉는다면 회의는 끝이나고 계획은 시작된다.
『…….』
권력 유지와 여신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 생활이 깊이 베어 있는 아몬.
그녀는 사냥을 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여유까지 느껴지는 아몬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마지막으로 바르간을 살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대상이 목이 떨어지는 순간 정도는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고 있어?’
그녀는 바르간의 입가에 걸쳐진 미세한 웃음을 똑똑히 각막에 새겼다.
비록 한순간이었지만, 모른 채 넘기기에는 꺼림칙한 기운이 감도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리고, 폐회의 마지막 문장이 끝나려는 바로 그 순간.
회의실의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아, 아몬 님! 아몬 님! 비상 상황입니다!』
무서운 줄도 모르고 정방 회의에 난입한 한 주교.
얼핏 얼굴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는 온건파 소속이다. 분명… 그람이라는 자로 하늘을 고속으로 나는 게 특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신 나갔어? 무슨 생각으로 회의 도중에 끼어드는 거야!』
온건파 소속의 대주교 크로셀이 버럭 화를 냈다.
대주교 이상만이 참여할 수 있는 정방 회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각 세력의 주교 및 사제들은 아예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그런 곳을 멋대로 끼어들었으니 중죄를 진 것이나 다름 없다.
『죄, 죄송합니다…! 그, 그, 그 그러나 급히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그람. 알겠으니까 용건을 말하도록 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몬은 침착하게 주교 그람이 말을 이을 수 있도록 도왔다.
현재 정방 회의가 진행 중인 대왕거북 아르켈론의 위에는 그 어떤 마나도 흐르지 않는 섬인 상황. 즉, 통신은 물론이고 물리적으로도 바다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다.
그람 역시 마나와 체력이 상당히 고갈되어 있다.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수백 키로의 해면을 따라 날아 왔으니 장난 따위일 리가 없다.
그람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공포에 질린 듯 말했다.
『용사들이… 용사들이 아몬 님의 둥지에 쳐들어왔습니다! 그,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주교 포라스 님과 페넥스 님, 게다가 알로케스 님 의 둥지마저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린가!!』
콰앙—!!
온건파의 대주교 페넥스는 성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내리쳤다.
탁자를 반으로 쪼개진 탁자.
그가 흥분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들의 둥지가 급습을 당했다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죽은 자도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겠구나! 지금껏 잘만 감춰져 있던 둥지가 하나도 아니고 다수로 발견될 일이 있을 리가 없잖나!』
전신이 시뻘건 불로 타오르고 있는 페넥스의 화염이 더욱 커졌다.
그 열기가 회장에 가득 차자 그람은 벌벌 떨면서도 제 임무를 다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아, 아아 아마도 용사들이 정방 회의가 열리는 날을 파악하고 계획에 옮긴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럼 누군가가 정보를 유출시켰다는 건가!』
주먹을 움켜쥐는 페넥스.
그의 날선 시선이 바르간을 향했다.
동시 다발적인 용사들의 급습. 여신교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지 않다면 이해되지 않는 기막힌 타이밍.
게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피해를 입고 있는 건 전부 온건파의 둥지.
배신자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바르간 말고 없다.
『다들. 잠시 진정하고 기다려 보세요.』
아몬은 말에 마나를 담은 채 회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나의 울림이 있다는 건, 아몬이 회장에 걸린 권능을 해제시켰다는 뜻.
둥지로부터 연결시켜 두었던 마나의 선도 살아나게 되었다.
아몬은 눈을 감은 채 마나의 선을 읽다가 입술을 뗐다.
『…아무래도 급습을 당한 건 사실인 듯하네요. 마나의 선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제 둥지와 포라스의 둥지에 전쟁의 소란으로 가득해요.』
남은 둥지들은 마나의 선이 잘려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
빠드득—.
아몬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그녀의 고운 미간에 굴곡이 생겼다.
이른바 빈집털이.
정방 회의 탓에 모든 대주교들과 추기경들이 자리를 비운 새 용사들이 둥지에 있는 주교들과 사제들을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바르간…! 네 녀석……!!』
잔뜩 화가 나 방 안을 모조리 태울 기세로 불길을 내뿜는 페넥스.
하지만, 그가 바르간의 멱살을 잡기 위해 달려드려는 순간. 채 파악하기도 힘든 속도로 날아들어 바르간의 멱살을 붙잡은 남자가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이해하고 있는 건가. 바르간.』
바르간의 목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힘을 주어 멱살을 잡은 집행관 이포스.
그 어떤 광물보다도 단단해 보이는 그의 눈은 바르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갈색이던 그의 피부는 검은 크리스털과도 같이 검게 변했다. 어찌나 마나가 짙은지 확인하려고 시도하는 이들의 머리가 되레 아플 정도다.
이포스의 멱살이 바르간의 숨을 거둘 정도로 강해졌을 때.
바르간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글쎄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군요….”
비릿한 미소를 잃지 않는 바르간. 그는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기를 죽이기는커녕 맞불처럼 강하게 타오른다.
“온건파가 내게 누명을 씌우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쿠우웅—!
진한 마나를 터트리는 바르간.
그와 이포스를 중심으로 합쳐진 두 성질의 마나가 풍압을 일으켰다.
바르간은 이포스의 손을 뿌리친 채 말을 이었다.
“내가 정보를 유출했다? 웃기지도 않는군!”
탁자의 중심에 지지직거리고 있는 홀로그램을 가리켰다. 전쟁을 위해 동원할 각 세력의 둥지가 있는 위치를 나타나는 세계지도다.
“강경파 이외의 둥지 위치를 공유한 게 이번이 처음이거늘! 온건파는 나를 죄인으로 몰려는 것인가! 이 신성한 아르켈론의 위에서 사역마는 물론이고 마나를 이용한 모든 통신이 막혀 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강경파가 아닌가!”
회의 내내 평온한 모습을 보이던 바르간은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된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주장했다.
“나는 수천 년 역사 동안 그 어떤 알티프도 붕괴시키지 못했던 아카데미아를 무너뜨리고, 추기경이었던 가미긴 님의 권능을 이어받는 데 성공했다! 그뿐인가! 지난 4년간 여신교는 몸집을 크게 불릴 수 있었다!”
바르간은 이포스는 물론이고 회장에 있는 모든 알티프들에게 전했다.
어구마다 담긴 마나의 무게는 그의 감정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임을 나타내듯 피부를 저릿하게 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강경파는 나를 의심하는가! 아무리 이름뿐이라고 한들 집행관인 나를 더러운 오물통에 넣어 죽이려 드느냔 말이다!”
바르간은 성을 내면서도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정보를 누가, 어떻게 유출시켰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은 둥지에 처들어온 용사들을 몰살하는 것.
“지금은 둥지를 지키는 게 최우선 사항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몬 님!”
바르간은 모두의 눈길을 아몬에게 돌렸다.
그녀는 여신교를 꽉 잡고 있는 실권자.
그녀의 말 하나에 알티프들은 개처럼 헐레벌떡 뛰어나가 활약할 것이다.
『…그의 말이 옳아요. 정보가 어디서 샜는지 보단 먼저 둥지에서 멋대로 날뛰고 있는 용사들을 처리해야겠죠.』
『…….』
아몬과 이포스는 곧은 눈에 가득 차 있는 화를 참아 냈다.
분명 정보를 퍼트린 인물은 바르간이 틀림없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
게다가 급히 꺼야 하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상황.
여기서는 바르간 살해하는 계획을 조금 틀 필요가 있다.
모든 둥지들과 전력이 무로 돌아가 버리면 온건파의 세력은 약화되어 강경파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우선 확인되는 건 제 둥지에 그레이든과 트리센나, 성녀 디피엘리아를 중심으로 한 신세력 용사들이 있군요. 포라스의 둥지에는… 타우롬과 헤네즈인가요. 나머지는 마나의 선이 죽어서 확인이 불가해요.』
사용 가능한 용사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아무리 주인이 비어 있는 둥지라 한들 네 곳을 동시에 치려면 주요 인물들인 랭킹 10위 내의 용사들을 나눌 수밖에 없었을 터.
가장 문제가 되는 그들의 위치만 알면 대주교와 이포스를 제 곳에 배치해서 진압시킬 수 있다.
『그람, 페넥스와 알로케스의 둥지에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으니 선이 남아 있을 때 통신을 나누었겠죠.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밝히세요. 10위 내의 나머지 용사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그람은 자신이 알고 모든 정보를 내뱉었다.
아몬은 헤일리온과 최근 용사 랭킹 3위가 된 페랑기스.
준영웅이라 불리는 알리시아 등의 위치를 인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벨레드,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상당히 뻔뻔하구나. 아몬. 내 아이를 죽음으로 몰려고 들더니 이젠 능청스럽게 내 힘을 빌리려는가?』
『…이건 단순히 온건파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만약 이번 사건으로 온건파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면 대전쟁의 패배는 물론 여신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움을 받고 싶다면 조건을 걸어야겠죠.”
바르간은 추기경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벨레드와 미리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술술 말을 이어 붙였다.
“이곳에서 가장 먼 전장…. 아몬 님의 둥지까지 향하려면 아무리 초인적인 속도로 날아간다고 하더라도 반나절은 걸릴 겁니다. 그때가 되면 둥지는 허무한 구조물이 되어 버리고 주교들은 시체더미로 바뀌게 될 겁니다.”
바르간은 벨레드의 권능에 현재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알렸다.
특히나 추기경인 아몬의 둥지는 중요도가 더욱 컸다.
이 정도의 힘을 공짜로 사용하는 건 허용할 수 없다는 바르간의 주장.
이에 아몬은 인상을 구겼다.
아몬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걸 아는 바르간.
그는 여신교 내의 위급 상황인 건 확실하니 특별히 유리한 조건을 내주겠다며 말을 덧붙였다.
“아몬 님의 둥지와 다른 대주교들의 둥지에 지원군을 이동시키는 도움을 받은 둥지들의 소유권을 벨레드 님에게 넘겨주시죠.”
잠시 회장에 도는 정적.
곧 온건파의 대주교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말도 안 되는 폭리라고 외치며 바르간을 욕했다.
아몬 역시 생각하는 바는 같았다. 그야말로 얼토당토않는 조건. 집을 구하려다 그 집을 강매 당하게 생긴 꼴이다.
『아몬 님, 이자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 없습니다.』
그런 와중, 도저히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아몬의 충신 이포스가 바르간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포스는 상당히 열이 올라와 있는 듯했다. 검은 크리스털 같은 그의 몸에 결정이 더욱 돋아나고 있으며, 목에는 굵직한 핏줄이 올라왔다.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마나의 밀도는 에너지의 원천과도 같이 대단하다.
『아몬 님의 둥지에 겁도 없이 발을 디딘 용사들은 제가 한 걸음에 달려가 전부 숙청시켜 보이겠습니다.』
집행관 이포스.
그가 붉게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바르간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