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1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14화(314/350)
아포스가 죽었다.
대주교 최강 무력이라고 불리던 그가 용사들의 협공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포스는 죽기 직전까지 무신의 면모를 지켰다.
용사 랭킹 4위이자 무투가의 정점이던 그레이든의 오체를 사방으로 찢어 놓았고, 3천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이포스가 기존에 갖고 있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생각하면 용사들에게 이번 승리의 의미는 컸다.
머지않아 있을 대전쟁.
그 중심축이 되는 거물 중 하나를 쓰러트린 게 아니겠는가.
또한, 아몬의 둥지의 핵을 파괴시키고 둥지 내에 있던 상당수의 알티프들을 토벌하였으니,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에게 상승 기류가 넘어온 듯 보였다.
그레이든의 죽음으로 그의 아래 순위를 차지하던 용사들이 한 칸씩 올라가게 되겠고.
알리시아는 용사 랭킹 8위에.
핀은 이포스 토벌의 지대한 공을 인정 받아 10위에 올랐다.
한편, 위그드라실 내부에서 개혁이 일어나는 동안 여신교 내부에서도 이제껏 없는 대격변이 일어났다.
‘제파르…. 저 박쥐 같은 남자….’
아몬은 분하다는 듯 제파르를 노려봤다.
제파르는 일절 아몬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일부로 그러는 게 분명했다.
‘이포스가 죽었다는 걸 듣자마자 강경파에 붙다니. 예전부터 계산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리도 다리가 가벼울 줄은 몰랐네요.’
중립을 외쳤으나 사실상 온건파를 지지하고 있던 추기경 제파르.
정확히 말해, 이포스가 출발한 그 시점부터 간을 보고 있던 그는 이포스가 사망하기 전. 여신교 내의 정세가 완전히 바뀔 것을 알고는 강경파에게 손을 내밀었다.
벨레드는 그 손을 잡았고. 결국, 수천 년 동안 여신교의 중축을 맡았던 온건파는 강경파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다.
‘이래서야 완전히 벨레드와 바르간의 손에 여신교가 놀아나게 생겼어요.’
정방회의 직후, 벨레드는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지 않고 대왕거북 아르켈론을 장악했다.
절대 중립 지역인 아르켈론을 독점하겠다는 게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하나.
추기경의 위. 유일한 좌에 오르겠다고 대놓고 선전한 것이다.
‘벨레드는 바르간의 꾀에 넘어간 게 분명해요.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죠.’
벨레드는 스스로 교황이 되겠다고 밝혔다.
지금 이 자리에 모든 추기경와 대주교들, 그리고 주요 주교들이 모인 것도 그 까닭.
아르켈론이라는 신성한 중립지에서 즉위식이 진행 중이다.
절대자만이 앉을 수 있는 옥좌가 자리하고 가운데 붉은 융단으로 쭉 길이 나 있다.
그 옆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신교의 세력가들.
온건파의 수장인 아몬은 성서를 든 채 옥좌에 근접해 있다.
『…젠장.』
『어째서 우리가 이런 꼴이.』
그녀를 비롯한 온건파의 알티프들은 조용히 분노를 곱씹었다.
그중에서도 전신에 뜨거운 불이 타오르는 대주교 페넥스는 잔뜩 인상을 구기곤 은근 슬쩍 아몬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몬 님, 정말 이대로 보고만 있으실 겁니까?』
『…….』
『정식으로 벨레드를 새로운 교황으로 인정해 버리면 머지않아 바엘 님께서 재림하셨을 때 그 감당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진 알겠어요. 하지만,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돼요.』
아몬은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판세를 정확히 읽으며 행동 방침을 정하는 지략가다.
현재 강경파는 급성장 중인 상태, 반면 온건파는 이포스라는 거대한 전력을 잃은 것도 모자라 제법 많은 병사를 잃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제파르가 강경파와 손을 잡았으니 저울의 균형은 완전히 강경파 쪽으로 기울어졌다.
『벨레드는 그토록 갈망하던 여신교의 주도권을 이제 처음으로 잡았어요. 절대로 놓고 싶지 않겠죠. 설령 피로 강물을 흐르게 만들지라도요.』
『그 말씀은… 즉위식을 방해하면 대주교라고 할지라도 목을 벨 거라는 겁니까?』
『…대주교만이 아니에요. 어쩌면 추기경… 저 역시 무사할 수 없을지 몰라요.』
『설마 그런…! 망나니 같은 짓을!』
『쉿. 페넥스. 그러니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아몬은 시기를 노리려 들었다.
그리고 그때는 오래 지나지 않아서 도래할 것이다.
『바엘 님께서 재림하시고 나서. 인류를 정리하고 나면 벨레드는 어쩔 수 없이 바엘 님과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그때를 노리면…!』
『네, 그러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해도 참도록 하세요. 온건파의 수장으로서 무의미하게 지지자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싶진 않거든요.』
온건파가 칼을 숨기고 차후를 기약하는 동안 나팔 소리가 들렸다.
붉은 융단의 끝에 위치한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리며 두 존재가 나타나자 강경파의 알티프들은 화색을 보였다.
『오오오!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벨레드 님!』
『이 순간을 얼마나 학수고대하였는지!』
『드디어…! 드디어!』
먼저 융단을 밟는 바르간.
여신교 유일하게 집행관을 직위를 갖게 된 그가 앞장서며 벨레드를 안내했다.
벨레드는 한껏 꾸며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땋아진 머리카락은 왕관과도 같이 얼기설기 엮여 있었고.
예식을 갖춘 복장으로 권위와 위용을 한껏 드러냈다.
이지적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여황제와도 같다.
『집행관 바르간 님과 추기경 벨레드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식의 진행을 맡은 얼트레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강경파 세력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제파르를 비롯한 중립 세력 역시 분위기를 살펴 고개를 숙였고.
온건파는 이를 갈며 억지로 땅을 바라봤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는 전혀 달랐으나.
종교 개혁의 돌풍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누구도 나서서 막을 수 없다.
또각—.
바르간과 벨레드가 융단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융단의 끝에 놓인 건 오로지 한 명을 위한 옥좌.
음악대의 악기 연주가 귓바퀴와 심장을 울린다.
벨레드는 너무나 오랜 시간, 이날을 기다려 왔다.
사실상 포기했던 영광. 바르간은 벨레드의 은밀한 욕망을 보란 듯이 들어주었다.
—경하드리옵니다, 벨레드 님. 드디어 교황의 좌에 앉게 되시는군요.
문 밖에서 즉위식을 대기하던 바르간과의 대화.
조금 전 그와 나누었던 말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야, 네 공로가 있었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아닙니다. 벨레드 님께서 저를 신뢰하지 않으시고 신자로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애초에 저 역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터. 모든 건 벨레드 님의 선택이고 벨레드 님께서 내신 결과입니다.
바르간은 한없이 자신을 낮췄다.
본래 그를 오만한 아이라고 자주 불렀던 벨레드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만하다고 부를 수 없었다.
내실을 갖춘 행동거지를 어찌 오만이라고 하겠는가.
벨레드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이제껏 말로 표현한 적 없는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는 종족의 차이로 바르간과 보이지 않던 벽을 두고 있던 그녀가 겨우 그 단단한 벽을 허물었다.
—네가 널 들인 까닭은 별게 아니었다. 네 탐욕과 이상은 꽤 마음에 들었고 그 대범함은 제법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지.
그리고 바르간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보여 주었다.
아카데미아를 붕괴시키고 인류를 배반했다.
자신이 반드시 도와주러 가리란 보장도 없음에도 심장을 담보로 넘기고 재판장의 인간들을 기만했다.
—그쯤 되니까 흥미가 생기더구나. 아이야. 네가 가려는 길이 보고 싶어졌다. 또한 너라면 그 과정에 정말로 나를 교황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바르간을 대주교로 올리는 건 벨레드 입장에서도 도박이었다.
안 그래도 정권에서 압박을 받던 강경파는 인간을 대주교로 올림으로서 더욱 짓눌리게 되었고, 벨레드를 의심하는 자들도 생겨났었다.
하지만, 바르간의 이후 행보는 그 모든 걸 전부 뒤집어엎어 버렸다.
강경파는 이제껏 없을 정도로 많은 병사들을 확보했고.
이제는 제일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비록 내 몸으로 낳진 않았더라도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
벨레드는 앞으로 바르간의 행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여신교 내에서 그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이들은 엄벌을 받을 것이며 장애물은 전부 치워 줄 것이라고.
바르간은 살며시 입가를 올리며 대꾸했다.
—벨레드 님께서 나아가실 앞길은 찬란함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또각—.
마침내 왕좌의 앞에 선 벨레드. 그녀의 곁에 성서를 든 아몬이 다가왔다.
아몬은 비참한 심정이면서도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찬송과 영광으로 점철이 된 어구를 내뱉으며 벨레드와 여신교의 미래가 밝으리라 확신했다.
『…벨레드. 전 온건파와 중립 및 무소속 신자들을 대신해서 저 아몬은 정식으로 당신을 새로운 교황으로 인정합니다. 부디 여신의 이름이 한층 드높아질 수 있도록 본교를 이끌어 주시길.』
아몬은 충성의 증거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다른 모든 알티프들 역시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양손을 모아 공손히 자색의 성서를 건네는 아몬.
즈그그긍—!
벨레드가 성서를 건네받자. 강력한 마나의 기운이 성서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구약 성서는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였고, 지금 이 순간부로 벨레드는 여신교의 새로운 교황이 되었다.
『경하드리옵니다! 교황 벨레드 님!』
모두가 입을 맞춰 말했다.
벨레드가 이끌어 나갈 여신교가 영광으로 가득하기를 바랐다.
새롭게 대주교가 된 시클라멘도, 이 상황이 마땅치 않은 대주교 페넥스도.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처럼 벨레드를 칭송했다.
이윽고 성서를 건넨 아몬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바르간만을 최측근에 둔 벨레드는 왕좌에 앉았다.
그녀의 눈에 여신교의 주요 전력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각양각색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이들.
하나하나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이 있고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 분야도 상당수 있지. 하지만… 우선순위를 따져야 하니 그럴 시간은 많지 않을 듯하구나.』
벨레드의 눈길이 모두를 훑었다.
대충 보기에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자신의 옹호 세력이 늘어났다.
모든 일에 인과란 존재한다. 지금 자리 역시 수많은 원인으로 비롯된 결실.
분열되어 있는 단체를 하나로 규합시킨 뒤 제대로 이끌고 나가기 위해선, 모든 비난과 주위를 밖으로 돌리는 게 효과적.
그리고 그 수단으론 전쟁만 한 게 없다.
『나, 교황 벨레드가 명한다. 모든 세력가들은 전 병력을 이끌고 각자의 위치에 집결하라!』
벨레드는 한껏 신이 난 인류에게 힘을 재확인시켜 주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누가 지배자이고 누가 피지배자였는지.
어째서 지금까지 그 구조가 이어져 왔는지 각인시켜 주며 기어오르려드는 인류에게 죽음이라는 벌을 내려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인류와의 마지막 전쟁을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