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1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16화(316/350)
중앙교회와 다렉 연합국으로 향하는 길에는 드넓게 펼쳐진 토즈캄 평야가 있다.
언뜻 수평선으로도 보이는 광경. 멀찍이 보이는 낮은 산맥은 하나의 섬과 같다.
여름철 생명의 푸른빛으로 덮여 있던 토즈감 평야는 가을을 맞아 누렇게 변했다.
뿌우우우—!
여신교의 선발군이 토지를 짓밟은 채 진격했다.
그들은 몸을 감추지 않았다. 애초에 이 거대한 군세를 숨길 수도 없었을 뿐더러, 거대한 뿔피리를 불어 대며 경고했다.
뿔피리와 지면을 울려 대는 대군의 발걸음을 들은 들짐승들은 바쁘게 몸을 피했다.
저들은 그야말로 괴물들의 집단.
몸집이 20미터가 넘는 거구가 몇 백.
하늘을 날아다니며 주변을 정찰하는 개체만 삼천이 넘고.
전신이 근육으로 뒤덮인 일반 알티프들은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를 자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협적인 건 움직이는 거대한 요새.
자연적으로 발생됐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외관의 둥지가 땅을 갈며 진격한다.
선발군의 이동형 둥지는 세 채.
하나하나가 20미터의 거인들을 꼬마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커다랗다.
“…저런 괴물들을 상대로 정말 승리할 수 있을까?”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집결한 연합군. 병사들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직 제법 거리가 되지만 토즈캄 평야를 붉은 물결로 가득 채워 버린 압도적인 수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닥쳐. 뭔 헛소리 하고 있어?”
동료 병사는 약한 말을 뱉은 친구의 뒤통수를 때렸다.
용병으로 고용된 그들은 오랫동안 헌터 생활에 몸 담가 온 나름 베테랑들이다.
“야, 우리가 뭐 언제는 편하게 살아왔어? 던전에서 × 빠지게 굴러 돈을 벌어 와도 개 같은 헌터 새끼들의 패악질로부터 지켜야 하는 일생이었잖아.”
“…그랬지. 이 업으로 먹고사는 연놈들 중에 상도덕이 없는 새끼들이 많았으니까.”
“그래. 지금까지 다음 날 눈을 못 뜨게 돼도 이상한 게 없었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약한 소리냐? 난 저딴 괴물 새끼들보다 악착같이 살아왔어도 아직까지 번듯한 집 한 채 없는 우리의 현실이 더 무섭다.”
“하하…. 하긴, 알티프건 마물이건 때려죽일 수라도 있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은 때려잡으려야 잡을 수 없으니.”
병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동료의 말에 공감했다.
병사의 긴장이 다소 풀린 것 같자 동료 병사는 알티프의 대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조건 살아남아야지. 저것들 다 족치고 승리해야지. 승전해서 돌아가기만 해도 중앙교회에서 거금을 주는데, 그걸로 1년은 걱정 없이 살 거 아니냐.”
비록 지금까지 시궁창 같던 삶을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인류가 패배하면 그마저 누릴 수 없게 된다.
동료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검과 방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쪽박 아니면 대박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단단히 먹고 인생 걸어야지 어떡하겠냐.”
“네 말이 맞다.”
“그리고 아무리 저쪽이 쪽수가 많아도 우리 쪽에는 용사들과 ‘영웅’이 있어. 이 판세가 어떻게 굴러갈지는 하늘도 모른다. 이 말이다.”
그들은 눈길을 돌려 영웅이라고 불리는 남성을 바라봤다.
연합군의 최전방 사령관을 맡은 영웅 헤일리온.
그는 알티프의 대군을 보더라도 주춤거리기는커녕 담담하게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새까만 팔찌를 매만지며, 판을 주도하기 위한 수를 생각한다.
“헤일리온.”
생각에 잠긴 헤일리온의 곁에 검사 크샤놀이 다가왔다.
크샤놀은 파악을 끝낸 상대의 전력을 상세히 보고하곤 명령을 받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빨리 만나게 되었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 별건 아니에요. 그보다 크샤놀, 상대 지휘관과 잠시 대화를 하고 싶은데 병사들의 사기 증진은 맡겨도 괜찮을까요?”
“상대의… 알겠습니다.”
크샤놀은 적진의 최선두에서 다가오고 있는 한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받아들었다.
헤일리온은 크샤놀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천천히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치, 지지직—.
마나를 주파수 삼아 멀찍이서 다가오는 상대와 연결을 시도하는 헤일리온.
상대가 마나를 받아들이고 신호를 번역해야만 하는지라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지만, 헤일리온은 그가 거절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지지지직—.
이윽고 그가 생각한 대로 마나의 선이 연결되고, 헤일리온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바르간 학생.
상대의 선발군을 이끌고 있는 지휘관이자 집행관의 좌에 앉아 있는 바르간.
인류의 배반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남자에게 헤일리온은 예전과 같이 학생이라고 불렀다.
—헤일리온 님, 이런 식으로 대담을 신청하실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역시 제 상정을 항시 넘나드시는군요.
—옛 제자와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지 오래된 거 같아서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런 점도 변한 게 없으시군요.
피식 웃는 바르간.
두 사람은 곧 맞붙게 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말을 나누었다.
대화만 듣고 있노라면 정말로 단순히 오랜만에 조우하는 스승과 제자의 담화.
하지만, 현재 두 사람의 위치는 과거와 완전히 달랐다.
—항복이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요. 저희가 항복하면 중앙교회는 그대로 알티프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는걸요?
—하나뿐인 제자의 요청인데도 불가한 겁니까?
—안 되죠. 게다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에요. 바르간 학생이 전에 제게 부탁했었잖아요. 알리시아 학생을 제자로 들여 달라고.
—설마 정말로 받아들이실지는 몰랐지만 말입니다.
—흠. 그런 걸로 할까요, 그럼?
알리시아로 주제가 넘어가자 헤일리온은 알리시아의 재능과 노력에 관해서 언급했다.
요 4년간, 그녀가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높이 성장했는지.
헤일리온이 그녀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등.
—…이제 보니 알리시아의 자랑을 하기 위해 제게 연락을 취하신 것이로군요.
—미안해요.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알리시아 학생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니까 아쉬워서요.
—…….
잠시 정적을 유지하던 바르간.
거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지만, 한 걸음씩 다가오는 헤일리온에게 물었다.
—알리시아의 검에 깃들어 있던 머뭇거림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까?
—으음, 글쎄요. 그녀는 제게 완전히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서 말이에요. 하지만… 이거 하나 정도는 말할 수 있겠네요.
“우오오오오오—!”
대화를 이어 가는 도중, 헤일리온의 뒤편에서 터져 나오는 병사들의 외침.
하늘에 닿을 듯 사기를 충전한 그들은 방패를 두들기거나 창과 검으로 땅을 때리며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투웅! 투웅!
땅과 대기가 병사들의 기세로 가득차자 헤일리온은 말을 이었다.
—설령 상대가 바르간 학생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검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이에 바르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건 잘된 일이로군요.
바르간이 떠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리시아 역시 성장하고 변했다.
헤일리온은 알리시아가 바르간과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그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정도의 각오와 진심이 그녀의 눈과 심장에 자리 잡혔다.
—근데 말이에요. 바르간 학생. 마지막으로 제안할 게 있어요.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시는군요. 좋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고사하고 우선 들어는 보겠습니다.
아직 헤일리온은 그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지만 바르간 역시 부대에서 떨어져 더욱 앞으로 나왔다.
마치 서로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듯. 아직도 멀기만 한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바르간 학생. 5년 전, 중앙교회에서 바르간 학생에게 가르침을 줬던 거 기억해요?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태어나서 그 정도로 얻어맞았던 적이 없는데 잊었을 리가 없지요.
—그럼, 그때 제가 말했던 승리의 조건도요?
헤일리온에게 실전 훈련을 받던 나날들.
그는 바르간에게 말했다.
—바르간 학생이 저에게 작은 상처라도 입힌다면 승리. 못 하면 패배. 그런 규칙이었죠.
지극히 단순한 규칙.
심지어 헤일리온은 단 한 가지 계열의 마법만 쓰겠다는 페널티를 갖고 있었다.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만한 조건에도 돌아가는 전날까지 처참하게 당했었죠.
—마지막 날에는 제가 부패의 불에 맞아 버렸지만 말이에요. 근데 그거 알아요? 사실 풀 죽어 있는 바르간 학생 기 살려 주려고 일부로 맞아 줬다는 거.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 또한 없다고 했거늘. 아무리 치욕스러웠다고 한들 좋을 대로 개변하려고 하시다니…. 실망스럽습니다, 헤일리온 님.
—하하,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지만,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에요. 그때도 말했듯. 신기하게도 제 주력 마법은 정확히 바르간 학생의 천적이잖아요.
—…….
헤일리온의 주력 마법은 신성 마법.
바르간의 주력은 유일하게 신성 계열에만 취약한 저주 마법.
헤일리온은 그 점을 짚었다.
—신기하죠? 마치 유일신 위그드라실이 제게 바르간 학생을 막으라고 천명을 내린 거 같지 않나요?
—아쉽게도, 저는 여신을 믿고 있는 자이기에 그런 나무의 말이 어쩌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무교라고 하더니 이젠 여신인가요.
—무지했던 과거를 탈피하고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것이죠.
너무나도 작위적인 톤에 헤일리온은 작게 웃었다.
—아무튼,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째서 혼자 앞서 나가고 있는지. 이제 알겠죠?
—예, 잘 알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 같긴 하군요. 화려한 전쟁의 막을 알릴 딱 좋은 신호탄이 될 겁니다. 규칙은 5년 전과 같은 건가요?
—그러면 좋겠지만, 저도 이제 봐 줄 수는 없을 거 같아서요.
—그건 참으로 영광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굳이 말을 더 잇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서로 속도를 높였다.
짙은 마나가 감도는 전신에는 사역마로 이루어진 의상이 걸쳐진다.
착마마법(着魔魔法).
마나는 급격히 활성화되고, 각자의 심판무구는 주인을 영혼까지 빨아먹을 듯 마나를 뽑아낸다.
벨레드에게 수여받은 ‘영광의 링’.
바르간의 손목에 반짝거리는 유물과 이미 자욱한 향기를 내고 있는 ‘생명의 향수’가 바르간의 힘을 더욱 증폭시킨다.
공간감을 잊은 듯, 빠르게 좁혀지는 두 사람의 거리.
함성을 지르며 그 뒤를 따르는 거대한 군세.
뿌우우우우—!
쿵쿵쿵쿵!
드넓게 펼쳐진 토즈감 평야에 양 세력이 충돌하려 들고.
그 중앙, 누구보다 빨리 부딪칠 듯한 양 세력의 지휘관들.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바르간 학생, 이게 마지막 수업이에요.
콰아아아앙—!!
격돌하는 두 사람의 마나.
미소를 짓고 있는 두 인물은 전력을 보인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저를 쓰러트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