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0화(320/350)
신목 위그드라실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대한 몸통이다.
태양을 가릴 정도의 굵고 커다란 줄기는 ‘신성한 산맥’의 중심에 위치하여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아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
드높은 산능선과 험준한 지형으로 유명한 신성한 산맥에 위그드라실이 자라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 위그드라실이 있는 곳에 세월이 지나 신성한 산맥이 형성된 것.
워낙 위그드라실의 줄기가 보이는 위용이 어마어마하기에 일반인들은 그 뿌리의 비현실성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한다.
위그드라실은 겉으로 보이는 줄기보다 흙으로 덮인 뿌리가 더욱 거대하고 길었으며, 그 흙더미 위에 짙은 마나를 머금은 산지가 형성되어 지금의 신성한 산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산맥에서 제공되는 풍부한 마나와 자원을 얻고자,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위그드라실의 줄기를 중심으로 많은 소국들이 형성, 이들은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맹 관계를 맺어 다렉 연합국을 결성했다.
—쿠궁! 쿠궁!
—그그그그그!
다렉 연합국으로 향하는 알티프의 군세.
이동형 둥지 2체와 십수만은 족히 되는 붉은 알티프의 떼가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위그드라실의 목대.
다렉 연합국의 중심부이다.
“트리센나. 현재 확인되는 대주교는 크로셀과 베리스입니다. 살레오스는 둥지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크로셀과 베리스…. 벌레와 꽃을 관장하는 자들…. 상당히 귀찮은 조합이야.”
아몬 소속인 크로셀의 권능은 벌레와 관련이 깊었다.
전신은 각종 벌레들의 특징을 따 기묘했고, 마나로 변질된 벌레를 내뿜을 수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둥지 자체가 온갖 벌레가 모인 군집이었다.
일대일도, 일대다도 가능한 대주교.
단독으로 있어도 전투 방식이 까다로워 상대하기 난해한데 비슷한 성향의 베리스까지 있으니 그 난도가 더욱 높았다.
“…슬슬 합동 술식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직 조금만 더. 적들이 우리 바로 아래를 지나갈 때에 정확히 노릴 거야. 잠시 후에 신호를 내릴 테니 들키지 않게 조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트리센나의 지시를 받은 용사는 그녀의 뜻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현재, 이들은 협곡의 위에 몸을 숨긴 채 기습을 하기 위한 준비 중이었다.
위그드라실의 거대한 뿌리 탓에 이 근처의 지형은 험준하기 짝이 없다.
당연히 협곡이나 단층 따위도 쉽게 볼 수 있었고, 그 협곡 중 가장 넓고 커다란 곳이 알티프들이 지나가고 있는 이곳이다.
“파울라 선배도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네, 하지만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은 오로지 시기를 노리는 데에만 집중해 주세요.”
“믿음직스럽네요.”
굴레마시아의 힘을 일부 이양 받은 파울라는 트리센나의 부대를 적들에게로부터 숨기고 있었다.
마나의 흔적을 지우고 빛의 왜곡으로 상이 관측되지 않게 했다.
이미 용사직에서 물러난 몸이었으나 그녀의 마법은 현역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높았다.
—쿠궁쿠궁!
—즈그그극!
알티프의 무리가 다가온다.
얼마나 수가 많으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울림이 벽면을 타고 협곡 위까지 전해졌다.
‘그래, 그대로 조금만 더 가까이 와라. 우리가 덥석 물어 버릴 테니.’
트리센나가 이끄는 특공대.
정예 마법사 2천과 한 명의 검사로 이루어진 부대는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쿠궁!
—구구궁!!
이윽고, 적들의 선두가 일직선상을 지나자 트리센나는 마나를 움직이며 지시를 내렸다.
“합동술식 1차 전개!”
고오오오—!
그들은 각자의 마도구와 마력을 끄집어냈다.
힘이 모이는 곳은 트리센나가 만든 기초 토대.
엘리트 마법사들의 마력이 술식의 획이 된다. 서서히 채워져 가는 술식의 빈 공간. 빼곡하게 차오르는 술식은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적들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망설이지 말고 마나를 쏟아부어라!”
수준 높은 파울라의 마법에 의해 아직 티가 나지 않는 현재.
그러나 본격적으로 술식이 완성되는 2차 전개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터다.
“합동술식 2차 전개!”
지시가 떨어지자 2천의 마법사들은 본인들의 마력뿐만 아니라 주변의 마나를 끌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인 것처럼 나선형을 이루며 빨려드는 마나들.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거대해진 몸집을 이 이상 숨기기에는 무리였다.
—크리아아아악!!
—절벽 위에 용사 놈들이 매복해 있다!
—대규모 합동 술식이다! 어서 막아라!
“날아오는 적들의 요격은 제가 맡겠습니다! 어서 술식을 완성해 주세요!”
더는 부대를 숨길 필요성이 없어지자 파울라는 지팡이를 치켜올렸다. 마나를 움직이며 활과도 같이 날아드는 특이체들을 요파했다.
특이체들이 힘을 못 쓰고 있자, 알티프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세력을 나누며 흩어지려 했다.
그중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알티프의 부대는 조준을 끝냈다.
—발사!
즈콰아아아앙—!!
대기를 진동시키는 광선의 줄기.
추기경 제파르가 만들어 낸 인공 정령 부대는 동시다발적으로 마도공학포를 쏘았다.
그들이 노리는 건 마법사들의 목숨.
마법사들이 죽으면 술식은 완성하지 못한다.
아무리 성취가 높아진 파울라라고 해도, 특이체들을 전부 막아 낸 채 마도공학포까지 무효화시키는 건 불가능한 상황.
이대로 꼼짝없이 당할 것만 같던 때.
트리센나 부대의 유일한 검사가 움직였다.
—스릉.
차분하게 검을 꺼낸 검사.
그는 다가오는 마력포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가늠했다.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사용하면 되는 것인가.
‘보였다.’
검사 핀은 단숨에 앞으로 나가 검을 휘둘렀다.
너무나도 가벼워 보이는 일격.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콰아아앙—!!
마법사들을 향해 매섭게 달려오던 광선 줄기들이 지면과 부딪히며 거대한 충격을 일으켰다. 열기가 남아 있는 궤적이 상황을 드러낸다.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광선의 다발은 특공대에게 그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고마워, 핀!”
트리센나는 핀에게 감사를 표한 뒤 입꼬리를 올렸다.
술식의 빈공간이 모두 찼다. 푸른 마나가 눈이 부시게 반짝이며 술식의 완성을 알린다.
“이렇게나 큰 걸 사용하는 건 나도 처음이네.”
트리센나가 술식을 발동시켰다.
트리센나 제2 고유술식 대규모 개량형.
복합 원소 마나 응집.
즈응, 즈화아아앙—!
블랙홀을 형상화하는 거대한 힘이 알티프의 군세를 덮쳤다.
대주교 크로셀과 베리스가 막아 보려고 하지만 역부족. 블랙홀은 셀 수 없이 많은 벌레 떼와 꽃잎은 물론, 공간 그 자체와 함께 수만의 알티프를 한순간에 괴멸시켰다.
이동형 둥지 1체는 절반가량이 손실. 알티프 군세는 전체의 1/4이라는 막심한 피해를 받았다.
전황을 읽은 트리센나는 생각했다.
‘블랙홀의 발생 좌표가 어긋나 있다. 그 상황에서 저 정도로 막아 낸 건가.’
크로셀과 베리스는 블랙홀의 최소치에 달하는 만큼의 피해만을 허락했다. 제대로 맞았다면 절반은 사라졌을 터이니 다소 아쉬운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승리의 흐름은 완전히 우리 쪽에게 있다.’
트리센나는 명령했다.
“부대 전원! 현 거리를 유지하며 무제한 폭격을 가하라!”
그녀의 부대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합동술식과 원거리 지원.
적진 속에서 직접적으로 얼굴을 맞댈 병사들은 자신들이 아니다.
투웅—!
피해를 입지 않은 이동형 둥지에 누군가가 낙하했다.
위치는 둥지 정상 언저리에 위치한 넓은 갑판. 먼지 속에서 보이는 인물은 시꺼먼 대검을 들고 있는 하얀 머리칼의 여인.
그리고 그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외모의 여인이 한 명 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여인은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
트리센나 부대의 반대편 절벽.
알리시아가 이끄는 본대가 돌격했다.
구 아르볼 프루탈은 물론 성제 직할대의 용사들이 대거로 포함된 병사들은 알티프와 피의 잔치를 벌인다.
“…….”
한편, 둥지의 갑판에서 언니와 마주하고 있는 알리시아.
이미 권능 해방을 마친 살레오스는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윤기 있게 반짝이는 머리칼과 호수와도 같이 깊고 푸른 눈은 알리사아와 쏙 빼닮았다.
철컥—.
알리시아는 검을 치켜들었다.
붉은색의 오러가 그녀의 검날에 깃든다.
반면 살레오스는 마치 싸울 의지가 없는 것처럼 검을 빼내 들지 않았다.
알리시아를 보고도 조금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동자는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 않은 듯 무미건조하다.
—잘 들어, 알리시아. 절대로 나와선 안 돼.
마을이 화마에 뒤덮였던 날. 그 악몽 같았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알리시아.
부정하고 싶지만 눈앞에 있는 저 여인이 그때 목숨을 바쳐 자신을 구해 주었던 언니 샤를로테와 겹쳐 보인다.
—눈, 코, 입 막을 수 있는 건 다 막아 놓고 있어. 언니 말 알아듣겠어?
더러운 창고에서 나누었던 눈물의 작별 인사.
어린 알리시아는 불안함에 떨면서 물었다.
—언니… 돌아와?
물음을 들은 샤를로테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감정을 꾹 참아 낸 채 답했다.
—응, 금방 돌아올게.
그러나 창고에 나 있던 작은 구멍으로 보았던 알리시아는 언니의 죽음을 목격했다.
알티프에게 심장을 관통 당한 채 피를 토하던 언니의 모습.
더는 들을 수 없던 언니의 밝은 목소리.
“그래… 그날 언니는 죽었어.”
알리시아는 검의 예기를 더욱 날카롭게 했다.
마나의 압력이 높아지자 살레오스 역시 천천히 검을 들어 알리시아를 마주했다.
무감정한 살레오스의 눈동자에 비치는 알리시아는 눈가를 모은 채 각오를 드러냈다.
“살레오스. 넌 샤를로테가 아니야. 추기경 제파르에게 개조당한 채 샤를로테의 몸과 영혼을 사용하는 괴물일 뿐.”
『…….』
죽음마저 능욕당한 언니를 떠올리자 알리시아의 오러가 더욱 짙어진다.
분노를 담고 있는 기운은 피부를 저릿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언니의 몸으로 사람을 죽이고…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그 영혼을 더럽히는 사악한 괴물. 토벌해야 할 대상. 내가 여기서 너를 놔주게 되면 너는 계속해서 언니의 몸과 영혼을 더럽히겠지.”
알리시아와 살레오스의 마나가 반응한다.
저주의 힘을 담고 있는 푸른색과 자색의 마나가 충돌하며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 낸다.
아직 알티프의 무리가 그녀들의 고향을 습격하지 않았던 시절.
가족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고.
언제나와 같은 평화로움에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던 과거.
들판에 불어오는 상냥한 바람이 봄철의 향기로 코끝을 즐겁게 해 주던 그때.
두 사람은 추억 속에 잠가 둔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내가 괴물로부터 언니를 해방시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