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1화(321/350)
촥—!
솨학—!
넓은 공터. 하얀 머리칼의 소녀가 검을 휘두르고 있다.
올해 열네 살이 된 소녀. 시골 마을인지라 마땅한 인물에게 배운 것도 아니건만, 소녀는 제법 자연스럽게 검을 가지고 놀았다.
그녀의 스승은 검과 자연 그 자체였다.
시냇물은 동작의 부드러움을 강조했고. 날카로운 침을 가진 벌은 찌르기의 본보기가 되었다.
본인의 감각과 자연에서 배운 기술들을 토대로 검의 춤을 추는 소녀.
그녀는 재능과 꿈이 많은 아이다.
사학—!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며 소녀의 검이 뻗어졌다.
가상의 상대의 목을 노린 소녀는 한동안 자세를 유지했다.
연이은 활발한 동작으로 숨이 필요한 몸은 호흡을 반복했고, 이마에 맺힌 송골송골한 땀은 볼을 타고 내려와 턱 끝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녀의 마나가 검에 달라붙는다.
즈으응….
검 끝에서 아주 작은 빛이 발한다. 곧이라도 꺼질 듯하지만 틀림없는 마나의 푸른 빛.
오러다.
사그락사그락—.
구상만 하고 있던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자 놀란 것도 잠시.
소녀는 주변 풀숲에서 불규칙적이게 나부끼는 소리를 들었다.
곧바로 정적이 맴돌았지만 숨어 봤자다.
소녀는 헛웃음을 지은 채 바람 마법을 사용해 풀숲으로 날렸다.
“꺄악!”
풀숲에 있던 누군가는 귀여운 비명을 질렀다.
바람이 그 누군가를 강제로 꺼내 왔고, 그 인물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알리시아, 언제까지 거기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려고?”
바람에 둥둥 뜬 채 샤를로테의 앞으로 이송된 알리시아.
머리는 토네이도를 형상화하듯 위로 뻗어 있다. 중간중간 꽃잎도 달려 있어 화려하다.
“우으으…. 언니, 마법 풀어 줘.”
“그러게 왜 숨어 있었어?”
“풀어 줘. 무섭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그런 표정 짓지 마. 괜히 더 괴롭혀 주고 싶잖아.”
네 살 어린 동생을 놀리기 좋아하는 샤를로테.
소녀는 알리시아가 울기 전에 마법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두둥실 떠 있던 알리시아의 몸이 천천히 바닥에 닿았고, 알리시아는 두 발로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언니, 머리는 왜 놔두는 거야?”
“별로야? 나는 예쁜 거 같은데.”
“별로야! 어서 풀어 줘!”
“칫.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
중력을 무시하던 알리시아의 머리칼이 내려앉았다. 긴 생머리가 산발이 된 듯했지만, 워낙 윤기가 흘러 꽃잎을 털어 내고 손으로 몇 번 빗질하니 금방 돌아왔다.
입가가 쭉 내려가 있는 걸 보니 알리시아가 다소 토라진 듯하다.
“으이구.”
“뭐, 뭐야, 또.”
“그냥 귀여워서 그런다.”
알리시아의 머리를 다시 헝큰 샤를로테.
알리시아가 하지 말라며 나무랐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운 동생의 투정이었다.
“그나저나 알리시아, 매번 그렇게 숨어서 볼 거면 너도 마법이나 검을 다뤄 보는 건 어때?”
“나 따위가 무슨.”
“왜? 나는 재능 있을 거라고 보는데.”
“…나는 언니랑 달라.”
마을의 자랑인 샤를로테.
아무도 가르침을 준 적이 없어도 그녀는 마법의 기초를 스스로 터득했다.
게다가 검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샤를로테가 훗날 용사… 더 나아가 영웅이 될 거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 샤를로테를 일찍부터 지켜봐 온 알리시아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지 말고 한번 해 봐. 내가 알려 줄게.”
“괜찮아. 난 싸우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부모님 도와주면서 집안일 하는 게 더 재미있….”
“일단 해 보라니까.”
샤를로테는 미리 준비해 둔 여비 목검을 던졌다.
얼떨결에 목검을 받게 된 알리시아. 목검의 무게 때문에 몸이 휘청거렸다. 알리시아는 이런 무거운 걸 어떻게 휘두르냐는 식으로 바라봤다.
“살살해 줄 테니까 내 상대 좀 해 줘.”
“…언니는 제멋대로야.”
“맨날 혼자 연습하니까 심심하단 말이야. 자매 좋은 게 뭐겠어.”
어쩔 수 없다는 듯 긴 한숨을 쉰 채 목검을 쥔 알리시아. 처음이지만 샤를로테의 검을 몰래 지켜봐 왔던 만큼, 나름 그럴싸해 보이기도 했다.
“그것 봐. 역시 재능 있을 거라니까.”
“또 그렇게 나를 꼬드기려는 거지? 안 넘어가.”
“얘는 나이도 어린 애가 속고만 살았나.”
“누구 때문인데.”
“누구 때문인데?”
“…….”
기가 찬 샤를로테의 대답에 알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목검에 힘을 주었다. 겨우 대련을 할 의지가 생긴 듯하자 샤를로테는 마찬가지로 자세를 잡으며 미소 지었다.
“진검이라고 생각하고 덤벼. 가검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봤다가 크게 다친다.”
“알겠어. 하지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앞으로는 훈련하는 거 안 도와줄 거니까.”
“알겠어, 알겠어. 그러니 한 번만 해 보자.”
“정말로 안 거 맞지?”
“걱정하지 마, 알리시아. 이게 마지막이야.”
그렇게 서로를 향해 발돋움한 두 사람은 검을 휘둘렀다.
추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안전을 위해 날을 무디게 만든 목검이 아니라 한순간에 목을 베어 버릴 수 있는 진검이라는 사실이다.
카가가가각—!
격렬한 전투를 이어 가는 두 사람.
서로의 검이 충돌할 때마다 두 검날에 깃든 붉은 오러가 성난 불꽃처럼 타오른다.
카가각—!
카각! 카가가각!
잔상을 좇는 게 힘든 속도.
두 사람의 눈동자가 붉게 물든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오러는 광채를 쉴 새 없이 터트린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두 사람의 전투는 밤을 밝히듯 빛의 무리로 가득하다.
살레오스의 몸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거대한 구렁이의 떼. 곧바로 알리시아를 공격한다.
알리시아는 피하지 않는다. 되레 달려들며 저주 마법을 발동. 뱀과 닮은 용의 무리를 만들어 내 구렁이 떼와 맞붙는다.
두 저주 마법은 상쇄.
알리시아는 멈추지 않고 참격을 날린다.
그러나 닿지 못하고 샤를로테의 참격에 의해 공멸한다.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검술.
그리고 초월에 이른 저주 마법.
기술을 양립시킨 두 여인은 그 어떤 꽃보다도 화려하며, 위험하다.
촤자자작—!
살레오스의 주변.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서 드릴 형태의 강철 가시들이 자라난다. 곧바로 알리시아를 향해 미사일처럼 무더기로 쏘아진다.
강화를 한 특수 원소 마법.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 게 분명한 위력을 갖췄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부술 수 있어.’
마찬가지로 원소마법을 발현하는 알리시아. 만들어 낸 강철 가시들의 끝에 성스러운 빛이 발한다.
영웅 헤일리온을 스승으로 두면서 배운 신성 마법. 그 기본.
콰가가강!
알리시아의 마법은 살레오스의 가시들을 산산조각 낸 채 달려든다.
살레오스는 검을 휘둘러 이를 분쇄한다.
그러나.
‘……!’
그 틈을 노린 알리시아.
폭발적인 바람을 일으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마주치는 두 사람의 눈. 알리시아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른다.
아무리 훈련된 검사라고 하더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순간.
하지만, 살레오스.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콰드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검을 들고 있는 살레오스의 팔이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비틀어지고, 내둘러진다.
카가가가각—!!
다시금 맞붙는 붉은 오러.
부러진 살레오스의 팔은 실시간으로 회복되어 간다. 그러나 알리시아는 그녀의 피해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저주 마법의 발현.
그것도 상당한 양의 마나를 담아냈다.
『…—….』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는 살레오스.
저주 마법을 파훼하기 위한 해석 술식이다.
츠즈즈즉. 차앙—!
결국, 저주는 채 발현되기 전에 파괴. 살레오스는 넘실거리는 자색의 마력을 더욱 검에 쏟아붓는다.
점차 모양이 변하는 살레오스의 오러.
그건, 붉은 오러를 사용하는 1급 검사 그 이상.
붉은 오러를 다루며 한계를 깨트린 극소수만이 다루는 힘으로, 초월급이라고 불리는 선택받은 검사의 능력이다.
‘붉은 꽃….’
알리시아는 살레오스의 검에 피어난 꽃들을 봤다.
마치 피를 빨아먹기라도 한듯 섬뜩할 정도로 새빨간 꽃들. 착각인지 몰라도 그 향기마저 나는 듯…….
‘아니, 착각이 아니야…!’
황급히 폭발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거리를 벌린 알리시아.
아주 살짝 마셨을 뿐인데 속을 수천 개의 바늘로 찌르는 것만 같다.
‘무수히 많은 오러의 입자들이 향기와 함께 퍼지고 있어. 가만히 마셨다가는 장기들이 모조리 분해될 거야.’
알리시아는 마나의 감도를 확대하면서 오러의 반경을 살폈다.
황사와도 같이 밀려오는 붉은 꽃의 입자.
살레오스의 마나를 흡수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몸을 불릴 수 있는 듯하다.
『—……—.』
한편, 입술을 달싹이는 살레오스.
그녀는 생명의 빛이 꺼진 눈으로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알리시아는 눈가를 좁힌 채 그 의미에 집중했다. 저주 마법을 사용할 위험이 있으니 파악해야 했다.
그 순간.
『…——려고?』
처음으로 살레오스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다운 말이 나왔다.
그녀는 무언가를 묻고 있는 듯했다.
『그…—왜—…었어?』
너무나 그리운 언니의 목소리.
잔뜩 일그러진 괴물의 것이 아닌 과거 언니의 톤과 극도로 유사한 음성.
『…어. …어. —표정…마. 괜…—싶잖아.』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문장들.
살레오스가 문장의 완성도를 높여 갈 때마다 알리시아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따라하지 마.”
점차 분노가 짙어지는 알리시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쥐고 있는 검은 마력에 반응하여 오러의 밀도를 높인다.
그러나, 알리시아가 뭐라고 한들. 살레오스는 계속해서 입술을 움직였다.
『별…야? 나는 예—것 같은데?』
“언니의 모습으로, 언니가 했던 말들을 따라하지 말라고!”
거대한 마나의 폭풍을 일으키며 다시금 달려드는 알리시아.
살레오스의 전력과 기술을 파악하며 그에 맞게 대응했던 전까지와는 달리 다소 감정적이고, 거칠다.
카가가가강—!!
스파크를 일으키며 부딪치는 두 검.
두 발에 마나를 모으지 않으면 곧바로 날아가 버릴 듯 풍압이 거세다.
알리시아는 아주 얇은 붉은 오러로 자신의 호흡기를 막았다. 숨을 쉬는 게 어려워지지만, 붉은 꽃가루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는 될 터.
거기에 알리시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패를 하나 더 선보였다.
그녀의 몸이 단번에 새하얀 빛으로 감싸졌다.
전신을 새하얀 빛의 갑옷으로 덮어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키는 힘.
헤일리온 제4고유술식.
기백(氣魄).
헤일리온의 제자가 된 지 4년째.
알리시아는 무려 영웅 헤일리온의 고유술식을 사용할 수 있었다.
『…봐. 역시 재능 있을 거라니까.』
“……!”
알리시아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의 눈에 담긴 살레오스는 여느 때와 같이 무표정이 아니다.
차라리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살인자의 것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알리시아가 가장 그리워하는 인물의 과거를 그대로 옮긴 듯하다.
외모도, 목소리도, 이젠 표정조차도.
아무리 처치해야 할 괴물이라고 부정하려고 해도 샤를로테 본인이다.
『걱정하지 마. 알리시아. 이게 마지막이야.』
“하지 마—!!”
영웅의 술식을 사용하는 알리시아는 비명을 지르며 있는 힘껏 마나를 방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