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2화(322/350)
그그그긍—.
저편에서 언뜻 느껴지는 파동.
마나에 예민한 이들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진동이 다렉 연합국의 병원까지 닿았다.
“…알리시아.”
알리시아의 멘토였던 샤를로테. 그녀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애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저 멀리서부터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친언니와의 싸움.
알리시아가 괴로운 전투를 이어 가고 있듯,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샤를로테 역시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미안해, 알리시아.”
만약 자신이 강했더라면, 그래서 살레오스를 조우했던 그날. 자신의 손으로 살레오스를 포획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 후회를 해 보지만 전부 의미 없는 일.
살레오스와 샤를로테의 실력 차이는 현저했고. 목숨을 건진 게 겨우였다.
그그긍—.
언덕 끄트머리에 희끗 보이는 붉은 광채.
초월에 오른 오러.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알리시아의 것이다.
‘부디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길.’
샤를로테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지금의 간절함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강하게 깍지를 꼈다.
‘부디 네가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아카데미아에서 알리시아와 멘토 멘티를 맺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샤를로테.
당시 알리시아가 짓던 순수하고 온화한 미소가 어른거린다.
‘부디 네가 다시 웃을 수 있기를. 신이시여….’
무력하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건 비참한 일이다.
너무나 가늘어진 두 다리로 간신히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샤를로테는 그 사실을 너무나 깊이 통감할 수 있었다.
***
카가가가강—!
알리시아가 검을 휘두른다. 살레오스는 이를 막는다.
전투의 초입에 비하면 상당히 격해진 알리시아의 검술. 살레오스를 제압하기 위해 더욱더 강하게 몰아붙인다.
그녀들의 주변에 가득했던 붉은 꽃가루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건 붉은 나비.
무수한 나비 떼가 날갯짓을 하며 서서히 무대를 잠식해 간다.
카강—!!
제대로 맞붙은 두 검. 극도로 견고한 오러끼리 부딪히며 거대한 충격을 일으켰고 밀려난 살레오스와 알리시아는 잠시 거리를 유지한 채 숨을 몰아쉬게 된다.
『하아…. 하아….』
지금껏 용사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이 정도로 가쁘게 숨을 쉬어 본 적이 없었던 살레오스.
온몸이 비에 젖은 듯 땀이 흐른다. 안정되어 있던 마나의 기운도 바람을 맞은 불씨처럼 흔들린다.
살레오스의 눈동자는 눈앞의 여성을 담았다. 그녀와 닮은 용사는 마찬가지로 지쳐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으나 마나가 안정되어 있다.
어지간한 산전수전을 겪고, 또 수련으로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서야 도저히 불가능한 정도의 성취다.
『…….』
인간이 아닌 살레오스의 몸은 이 짧은 타이밍에도 저절로 회복되어 간다. 다만, 붉은 오러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곳은 그 속도가 현저하게 더디다.
그리고 알리시아가 낸 상처에서 붉은 오러의 흔적이 진하지 않은 곳은 찾기가 힘들다.
『…강해졌구나. 알리시아.』
살레오스의 말에 이를 꽉 깨무는 알리시아.
전신에 성스러운 빛을 둘러싸고 있는 그녀는 더욱 오러의 세기를 높였고, 그녀의 의지에 따라 주변에 가득한 나비 떼가 움직였다.
자자자자작!
기괴한 소음을 내며 충돌하는 나비와 꽃가루.
둘 다 붉은 오러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지녔으나 담고 있는 마나의 정밀도가 다르다.
한 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건 다름 아닌 알리시아다.
자자자작—!
점차 꽃가루를 압도해 가는 나비 떼.
마력을 검날에 가득 모은 살레오스는 나비 떼를 없애기 위해 거대한 참격을 휘두른다.
이윽고 추가로 참격을 맞은 나비 떼는 한순간 사라지며 폭풍을 일으켰는데.
『…강해졌어. 아주 많이.』
폭풍을 뚫고 나온 알리시아.
맹금류와도 같이 눈을 번뜩인 채 검을 사선으로 긋는다.
촤학—!
살레오스의 어깨가 깊숙이 베어졌다. 피와 함께 살점이 터져 나갔다.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일격.
그러나 눈가조차 일그러트리지 않는 살레오스는 오히려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심장의 고동과 함께 욱신거리는 상처. 자글자글한 세포가 올라오며 회복을 시도하지만 쉽지는 않다.
자색의 마나는 균형을 잃은 듯 불안하다.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해도 어렵다. 시야는 뿌옇고 간신히 보이는 건 알리시아와 그녀의 검이다.
즈즈즈증—.
여전히 맹렬한 오러를 태우고 있는 검.
붉은 오러만 감싸져 있는 게 아니다. 악을 멸하는 신성한 빛이 그 오러에 새겨져 있다.
헤일리온의 두 번째 고유술식 정화(淨化). 찬란함의 극치가 붉은 오러와 어울린다.
철컥.
알리시아는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있는 살레오스의 목에 검날을 겨눴다.
알리시아의 눈은 죄인에게 죽음의 벌을 내리는 사형집행인과 같다. 무감정하고 차가우려 한다.
그 감정을 직면하고 있는 살레오스의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알리시아.』
도로 무뚝뚝하게 변한 살레오스의 얼굴과 말투.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한 감정이 담긴 듯한 문장이다.
『어쩌다…. 그렇게 강해졌어…?』
그건 자신에게서 승리한 알리시아를 탓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반대. 그녀는 곁에서 동생을 지켜 주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다.
『얼마나 스스로를 몰아세운 거야…?』
강함. 즉, 성취란 아무런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능이 있건 없건 노력 없이 강해질 순 없으며, 설령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주교 살레오스가 올랐던 수준은 절대 일반적인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다.
즈즈증—.
알리시아의 검에 둘러싸인 오러의 범위가 다소 확장되며 살레오스의 목에 일부분 파고 들어갔다. 오러가 증발시키는 탓에 벌어진 상처로부터 핏물조차 떨어지지 않는다.
“…대주교 살레오스. 질문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 있어. 네가 입을 열 수 있는 건 내 물음에 답하는 때뿐이야.”
사적인 감정을 담지 않으려 하는 알리시아.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눈매를 바로잡으며 말을 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넌 특별히 선택을 할 수 있어. 첫 번째는 이 자리에서 즉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두 번째는 우리에게 포획되어 매일같이 온갖 고문 혹은 뇌와 장기를 파헤쳐지며 생체 실험의 재료로서 살아가는 것.”
『…….』
“시간을 오래 줄 수 없으니 어서 골라. …살레오스. 너는 어느 쪽을 택할 거지?”
잠시 유지되는 정적.
알리시아를 멍하니 바라보던 살레오스.
감정의 생기가 돌지 않는 그녀는 알리시아를 빤히 살피다가 그 미묘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말했다.
『울지 마.』
알리시아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살레오스는 한 번 더 말했다.
『울지 마. 알리시아.』
살레오스의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탓을 수 있으나, 그녀는 알리시아가 울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소리도 없이 눈물도 없이.
알리시아는 견디기 힘든 슬픔에 울고 있는 듯했다.
“질문에나 답해라 살레오스! 너는 어느 쪽을 선택할 거냐!”
알리시아는 검날을 더욱 바짝 세우며 살레오스를 몰아붙였다.
아직 전장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처리해야만 하는 적은 살레오스만이 아니다.
때문에 알리시아는 더욱 고압적으로 굴었다.
가족이라는 연을 떠나 알리시아는 용사. 인류를 수호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인물이다.
『…죽을 순 없어. 아직 그분께서 내 죽음을 허락하지 않으셨어.』
추기경에게 종속되어 있는 살레오스. 그녀는 자신의 의사보다 제파르의 의사가 더 중요했다.
“그럼, 생체 실험의 재로로서 살아가겠다는 말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살레오스.
알리시아는 의미를 알기 힘든 숨을 떨리듯 쉬며 품안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의문의 보라빛 액체가 담긴 주사기가 있었다.
『…그건?』
“아직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한 시험용 물건이야. 자세히는 알 필요 없어.”
디피엘리아로부터 건네받은 액체.
살레오스가 살겠다고 말한 이상, 그녀는 최초의 시험 대상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죽음보다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는 상황.
알리시아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살레오스, 정말로 두 번째를 택하겠다는 거겠지?”
『난 아직 살아 있어야 해.』
“그래.”
의사 확인을 마친 알리시아는 여전히 검을 겨눈 채 몸을 가까이 했다.
혹시나 살레오스가 반격을 할 수 있으니 대비는 해야 했다.
‘살레오스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니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거야.’
디피엘리아로부터 약물의 효능에 대해서 미리 들었던 알리시아는 감정을 숨기며 동작을 이었다.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으나.
그런 약물을 투약해 확인하는 게 생체 실험의 목적이다.
그렇게 주사 바늘을 꽂으려는 알리시아.
그런데, 어깻죽지부터 파인 살레오스의 상처 단면이 이상하다.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 살레오스의 몸. 넋이 나간 살레오스는 작게 읊조렸다.
『…피해.』
콰다다다다닥—!
화학 반응이 일어나듯 한순간 부풀어 오른 정체불명의 무언가.
살레오스의 깊은 상처로부터 솟아난 그것은 언뜻 생물의 장기 같기도, 세포를 마구잡이로 합친 덩어리 같기도 하다.
알리시아의 검은 물론 주사기를 든 손마저 꽉 잡은 핏덩이.
불길하고 기괴한 그것은 아주 빠르게 알리시아의 마력과 체력을 흡수해 갔다.
“크으윽…!”
알리시아는 벗어나기 위해 붉은 오러를 키웠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벨 붉은 오러 역시 정체불명의 세포에게 빨려 들어갔다.
꾸득, 콰닥. 드드득—.
세포는 빠르게 분열을 반복한다.
기괴한 모양새로 점차 커져가 어느덧 생물체의 모습에 가깝게 바뀌고 있는 그것.
상처로부터 빠져나온 그것은 양손으로 알리시아를 붙잡은 채 섬뜩할 정도로 긴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잡았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끔찍하게 진한 독기.
전장을 강하게 짓누르는 압도적인 마력.
분명 처음 보는 남자였지만 알리시아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절대적인 포식자를 만난 듯한 감각.
빨리 도망치라고 전신의 세포가 경고등을 울리며 전했다.
“추기경……!”
여신교의 실세 추기경. 그중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자는 오직 한 명뿐.
미치광이 과학자 제파르.
『낄낄낄. 알리시아. 너를 잡고 싶어 얼마나 안달복달이 나 있었는지 아느냐…!』
제파르는 광기에 찬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알리시아는 이미 실험대에 올라가 있었다.
『아아…. 어서 그 고운 피부에 나이프를 대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