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3화(323/350)
“당신이군요…. 당신이 추기경 제파르….”
알리시아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실시간으로 마나와 체력을 빼앗기고 있으면서도, 추기경이라는 거물에게 붙잡혔음에도 알리시아는 겁먹지 않았다.
『네 새로운 아비가 될 내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 거냐? 낄낄낄. 유쾌하구나. 아주 유쾌해.』
공포에 질리지 않은 알리시아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제파르.
그는 실험 재료의 감촉을 실제로 느끼면서 이 상황을 즐겼다.
『내게 대드는 그 눈빛. 그 앙칼진 목소리. 마치 살레오스를 마주한 첫날 같구나. 아무런 가공을 받지 않는 날것의 원재료. 고도의 기술력이 아니면 다듬을 수 없는 그 가치가 내 녹슨 심장을 뛰게 만드는구나.』
살레오스와의 과거를 언급하자 순간 눈썹이 떨린 알리시아.
제파르는 그녀가 반응을 보임을 눈치채고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당시 넌 정신을 잃은 채 창고 안에 있었으니 나를 직접 보진 못했겠구나. 낄낄낄. 과거의 상황을 복기하는 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좋다. 이제부터 내 새로운 발명품이 될 너에게 특별히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 주도록 하마.』
제파르가 말을 잇는 동안 몸에 힘을 주어 저항해 보려는 알리시아.
그러나 저항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했고 손실되는 마나의 양도 컸다.
제파르는 그녀의 행위가 무의미함을 알고 말의 꼬리를 이었다.
『그날은 모든 확률이 내게 유리하게 맞아떨어지는 날이었지. 일반 개체의 배를 채우기 위해 우연히 습격한 마을에서 살레오스와 같은 보석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알리시아의 가족이 살아가던 작은 시골 마을.
당시 지성이 없는 사제급 알티프와 특이체를 융합시켜 대주교 글라샬라볼라스를 만들어 내고 있던 제파르는 해당 알티프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그곳에 들렀다.
『그때의 나는 대주교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글라샬라볼라스는 내 기술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었지. 하지만… 효율이 지나치게 나빴다. 소모되는 시간은 물론이고 글라샬라볼라스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 쓰인 알티프의 수만 5만이 넘었으니.』
제파르는 항시 머리 한구석에서 색다른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대주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안.
그러던 와중 재능에 빛나는 14세의 소녀. 샤를로테가 제파르의 앞에 나타났다.
『샤를로테…. 그건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아이였다. 평생을 시골구석에만 박혀 있던 소녀였지. 한데, 그런 아이가 오러와 중위 마법을 사용하며 내 알티프들을 도륙하는 게 아니겠느냐.』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지 미소 짓는 제파르.
알리시아에게 그녀를 비추어 보며 즐거움을 표했다.
『설마 사제들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이 있을 줄이야. 제법 흥겨운 볼거리였지. 그런데 고군분투하고 있는 네 언니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하더구나. 특출난 재능을 가진 용사로 알티프를 만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말이다.』
한번 꽂힌 건 절대로 놓지 않는 제파르는 샤를로테의 힘을 측정하고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알티프를 보냈다.
그녀의 검술, 마법의 성취, 의지, 신체의 능력….
파악하면 할수록 매력적이며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이 보이는 듯했다.
『인간관계에 따른 반응을 살피고자 구태여 샤를로테의 앞에서 차근차근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다만 아쉬웠던 건 부모가 이미 죽어 있어 일정 이상의 격한 감정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 정도겠군.』
샤를로테가 전력으로 보호하고 있던 한 명.
어린 알리시아만을 제외하곤.
『네 언니는 끈질겼다. 어떻게 해서도 사제들을 네가 있는 창고로 보내지 않으려 하더군. 낄낄낄. 그걸 보고 확신했다. 아, 저 더러운 창고 안에 들어 있는 것마저 죽이면 이 녀석은 망가지겠구나.』
망가져 버린 재료는 사용할 수 없다.
해서 제파르는 샤를로테의 심장이 알티프에게 관통당하고 난 후 모습을 드러내 그녀에게 제안을 했다.
—저 더러운 창고 안에 있는 네 동생을 이대로 놓아줄 테니 나에게 복종해라. 그 죽어 가는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지고 새 삶을 영위하라.
샤를로테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자신이 제안을 따르지 않고 죽게 되면 이 괴물. 제파르는 틀림없이 알리시아에게 마수를 뻗을 것이다.
반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죽음을 뒤로 미룰 수 있는 것과 더불어 최소한의 언질을 받아 낼 수 있다.
『그래, 그때의 눈빛과 말투….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곧은 심지가 아주 인상적이었지. 알리시아. 지금의 너처럼 말이다.』
“크윽. 크으윽…!”
전신이 제파르의 세포로 뒤덮인 알리시아.
그녀의 근육이 마나를 받아 더욱 발버둥 친다.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제파르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를 드러냈다.
『낄낄. 걱정하지 말거라. 이미 살레오스로 해 볼 수 있는 실험은 거의 다 해 봤다. 너는 더욱 완성도가 높은 물건으로 만들어 주마.』
제파르는 천천히 알리시아를 제 앞으로 끌어왔다.
그는 이대로 알리시아와 살레오스를 데리고 전장에서 빠져나갈 요량이었다.
어차피 전장에 있는 사제급이나 특이체는 도시나 마을을 습격하면 금세 수를 불릴 수 있다. 중요한 건 대주교에 필적하는 개체들.
밀려 있던 연구와 알리시아의 개조가 먼저다.
“…당신만은 용서할 수가 없어요.”
진한 노기를 품은 알리시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항하기를 그만둔 건지 한계가 온 건지 힘이 빠진 몸은 축 처져 있는데 눈동자는 여전히 매섭다.
“생명을 우습게 알고 실험을 위한 재료로밖에 여기지 않는 그 사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죽어 나간 수많은 사람들…. 고향…. 부모님…. 용사가 되려 했던 우리 언니…! 당신만…! 당신만 아니었다면!”
알리시아가 이 정도로 화를 내는 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알리시아를 붙잡고 있던 제파르의 입가는 환호에 젖어 올라갔다.
『이건….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힘이로구나…!』
콰하아아아앙—!!
알리시아의 마나가 폭발했다.
성스러운 붉은 빛이 전장을 밝히며 어둠을 몰아낸다.
헤일리온의 비기, 제5 고유술식.
성화(聖火).
거기에 붉은 오러를 섞은 발전형.
알리시아 제2 고유술식.
홍성화(紅聖火).
그 일순간의 위력은 스승인 헤일리온을 능가했다.
“제파르. 이대로 끝인 게 아닌 걸 알아요.”
피육이 사방으로 터져 나간 제파르. 떨어지는 머리통을 보며 알리시아가 말했다.
“저는 반드시 당신의 본체를 찾아 죽일 겁니다. 부디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살기를 띤 알리시아의 눈. 절대악과 대항하는 영웅의 눈이다.
『낄낄낄…. 그건 기대가 되…….』
—서걱!
알리시아는 검을 내리치며 제파르의 머리를 반으로 잘라 버렸다.
그 여파가 둥지를 떠나 전장에까지 끼치게 되었고 알티프의 군세는 반으로 갈라졌다.
마치 신이 내린 형벌과도 같은 위력.
준영웅 알리시아가 영웅으로 승격되는 순간이었다.
***
권능을 발휘해 전장에서 도망치는 두 대주교.
벌레의 대주교 크로셀과 꽃의 대주교 베리스는 한시라도 빨리 전장에서 멀어지려 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처지에…!』
베리스는 달아나는 와중에도 분노에 찬 문장들을 뱉어 댔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대주교. 그 고귀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꽁지 빠지게 도망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열불이 났기 때문이다.
알리시아가 전장을 갈라 버린 이후. 형세는 완전히 용사들에게 넘어갔다.
기습 때 당한 피해도 피해였지만, 알리시아의 존재가 엄청났다.
비록 본체는 아니었을지라도 추기경의 옥체를 단번에 산산조각 낸 힘. 그 정도의 위력은 베리스나 크로셀의 권능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살레오스… 알리시아…. 그 밉살스러운 자매…!’
베리스와 크로셀은 전장에서의 패배를 피부로 느꼈고, 살기 위해 군세를 버려야만 했다.
뿔뿔이 흩어지라고 명하긴 했어도 당시 지형은 좌우가 막힌 협곡.
아무리 절벽 사이의 간격이 넓다고 한들 하늘을 날지 않는 이상 도주가 어렵다.
『젠장. 일 났군. 이동형 둥지 2체랑 대주교 한 명. 사제급 16만의 손실인가…. 돌아가면 작살이 나겠어.』
벌레의 대주교 크로셀이 중얼거렸다.
크로셀의 말대로 이번 패배는 쓰렸다. 둥지 중에서 이동형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용사들에게 포로가 된 대주교는 그 괴짜 추기경이 아끼던 개체다.
사제급이야 보충을 하면 늘릴 순 있으나 오랜 시간이 걸릴 터.
게다가, 위그드라실을 포위하지 못했으니 중앙교회가 결계 안에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크로셀 잠시 멈춰 봐요.』
『여기서?』
추적자들은 모두 따돌렸는지 주변이 조용하다.
모습을 감추기 위해 숲을 통과하고 있던 두 존재는 걸음을 멈췄다.
『왜? 설마 정말로 돌아가는 게 무서워지기라도 한 거야? 인마 작살이 나도 온건파인 내가 작살이 나겠지 네가 작살이 나겠냐? 지금 실세가 누군데?』
『…….』
『뭔 말이 없어. 분위기 잡고 뭐 하자는 건데?』
『크로셀은 분하지 않아요?』
『뭐?』
『영웅 행세 하는 그년한테…. 알리시아한테 꼬리를 말고 온 게 분하지도 않냐고요!』
정방회의가 있기 전, 베리스는 바르간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현재 용사랭킹 9위에 올랐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알리시아의 현 성취가 그 이상이라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당연한 걸 묻는군.
당시 바르간은 한 치의 의심을 담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리시아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최고의 실패작이니까.
까드득—.
베리스의 이가 갈린다.
분명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카데미아에 놀러 온 베리스의 장난감에 불과했던 알리시아.
그런 알리시아가 현재는 영웅이라고 불리며 베리스… 더 나아가 살레오스 이상의 무력을 지니게 됐다.
굳이 직접 맞붙지 않아도 알았다.
그 사실이 베리스의 분노를 가중시켰다.
『그래서 뭐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붙기라도 하게? 아서라, 돌아가면 그년만 있는 줄 알아? 그년 동료들도 상대해야 해. 전력도 잃어버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냐.』
『…….』
『싹 다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은 잘 알겠는데, 지금은 물러날 때다. 돌아가서 파리새끼마냥 싹싹 빌어야지 어떡해. …X발. 말로 하니까 뭣 같긴 하네. 파리는 조종만 해 봤지 내가 파리가 돼 본 적은 없는데.』
『…….』
『괜히 분위기 잡지 말고 돌아가기나 하자. 괜히 여기에 더 있다가 추격자들이 쫓아오기라도 하면…….』
『아니요. 크로셀. 저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이년이 진짜 돌았나? 그럼 대체 어쩌자는 거—.』
—촥!
베리스와 연결되어 있는 식물의 뿌리가 크로셀의 등을 찔렀다.
대화를 하면서 슬금슬금 뿌리를 움직인 것이었다.
『베, 베리스…. 이, 이년이…!』
『미안해요, 크로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는요. 항상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해요.』
『뭔… 개 같은 소리를…!』
『우수함은 미의 기준이 되죠. 강함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그년이 저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가만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크로셀의 생기를 빨아들이는 베리스.
크로셀이 저항하기도 전. 급속도로 성장하는 그녀의 뿌리가 크로셀의 전신에 내꽂힌다.
『인정할게요. 제가 그동안 세상 물정을 모르고 오만하게 있었네요. 동족에게 쓰기 꺼려져서 안 쓰고 있었는데 가릴 때가 아니었어요.』
『베… 베리…스…!』
『복수는 해 줄게요. 편히 눈 감아요, 크로셀.』
꿀떡꿀떡—.
곧이어 크로셀의 모든 생명력을 빨아들이자 베리스의 형태가 변화한다.
그녀의 몸에 달려 있던 식물의 수는 더욱 늘어나고, 봉우리 져 있던 꽃들은 만개했다.
그렇게, 미라가 되어 버린 크로셀의 시체를 식인 식물에게 섭취시킨 베리스는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