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4화(324/350)
전장과 다소 떨어진 제파르의 둥지.
그곳을 지키고 있던 대주교 글라샬라볼라스는 그르릉 이를 갈며 제 살을 물어뜯었다. 터져 나오는 피. 동시에 변화가 나타난다.
꾸드득. 까자작—.
절단면에서 부풀어 오르는 세포 덩어리.
점차 생명체의 형상으로 바뀌어 가던 그것은 어느새 입을 갖추게 되어 말했다.
『낄낄낄. 알리시아… 생각보다 더욱 우수한 실험체였구나. 이번에는 놓치고 말았다만 머지않아 반드시 네 몸에 나이프를 댈 것이다.』
세포 분열을 마친 제파르가 완전한 모습을 갖췄다. 제파르는 글라샬라볼라스로부터 분리되었고, 곧 글라샬라볼라스의 상처는 자글자글 끓으며 회복됐다.
『그르르르.』
돌연, 몸을 돌리며 경계 모드를 취하는 글라샬라볼라스.
주인인 제파르를 지키기 위해 낯선 이에게 살의를 내뿜었다.
제파르 역시 그 기척을 느끼곤 먼저 입을 열었다.
『침입을 허한 기억은 없는데… 어떤 의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는가. 집행관. 약화된 나를 죽일 생각인 겐가?』
어째서인지 조금 신이 나 보이는 제파르의 목소리.
얼굴이 보일 때까지 가까이 다가온 바르간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저는 추기경님들을 지키는 수호자 같은 존재. 집행관의 이름을 더럽힐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물며… ‘그 육신’은 제파르 님의 본체도 아니지 않습니까.”
바르간의 시선이 완성된 제파르의 몸을 향했다.
제법 민감할 수 있는 발언이었음에도 제파르는 낄낄낄 웃었다.
『성서에는 그런 사사로운 사항까지 적혀 있는 건가?』
여신교 내에서 바르간은 집행관인 동시에 성서를 완독한 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미신과도 같은 존재로 정확히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건지 어떤 내용을 읽은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성서는 만능이 아닙니다. 제가 성서에서 읽었던 건 바엘 님께서 봉인되시기 전의 먼 과거일 뿐. 현재에 관해서는 까막눈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낄낄. 성서에 관해서 아무런 내용도 발설하지 않는 주제에 말을 잘하는군.』
“집행관의 자리를 차지하곤 있다만, 태초부터 타고난 인간의 육신. 언제 이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 패를 그리 쉬이 보여 드릴 순 없지 않겠습니까?”
벨레드가 여신교의 세력을 쥔 이상, 바르간의 암살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
그 점을 알면서도 바르간은 뻔뻔하게 입을 놀렸다.
제파르는 그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에 대해 밝히라고 했고 바르간은 말의 꼬리를 이었다.
“현재 아몬 님께서 형상파와 무형파의 모든 신자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인간 사회에 암약하기 위해 만든 집단.
온건파 내의 분파이나 오로지 인간들로만 이루어진 그들.
“제단과 제물이 갖추어졌으니 곧 의식이 거행될 것입니다.”
이미 성대하게 이루어진 두 번의 전장.
아몬은 그들을 바쳐 남은 조건을 충족하고 바엘을 재림시킬 요량이다.
『슬슬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다소 조급하게 구는군. 어지간히도 벨레드를 교황직에서 몰아내고 싶은 모양이야. 한데,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 일분일초가 바쁜 집행관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는 겐가?』
제파르는 본론을 어서 말하라는 듯 바르간을 추궁했다.
바르간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그리 한가로운 몸이 아닙니다. 알티프의 대군세가 중앙교회의 사방을 봉한 지금, 전장을 지켜야할 제가 이곳을 찾은 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제파르. 곧바로 목을 물어뜯어 버릴 것만 같은 글라샬라볼라스의 경계를 풀도록 했다.
바르간은 추기경의 배려에 작은 감사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바엘이 부활한 후, 제파르 님께서 ‘실행하실 계획’을 조력하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바르간의 발언에 눈동자에 이채를 띠는 제파르. 그는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흥미와 추측을 문장으로 뱉었다.
『위대한 존재에게 구태여 존칭을 사용하지 않은 까닭은 현 교황인 벨레드에 대한 예인가. 아니, 뒷말과의 맥락을 생각하면 단순히 그런 의도만은 아닌 듯한데…….』
“꿍꿍이 같은 건 없으니 그대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땅에 스며든 피와 마나로 구 교황의 재림을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늦든 빠르든 바엘은 이 땅에 발을 디디게 될 터.
벨레드의 총애를 받는 바르간은 그 점을 짚었다.
“하나, 저는 바엘이 아닌 벨레드 님을 섬기는 자이지요. 때문에 벨레드 님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저지하는 게 제 일입니다.”
『…재밌는 말이군. 보수적인 아몬이 들으면 크게 노하며 사형을 논할 수도 있겠어.』
불신과 불충이 다분한 말.
하지만, 바르간은 여신교에서 궁극적으로 추앙하는 존재가 바엘이 아닌 여신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건 여신에 대한 모욕이 아닐 뿐더러 오랜 역사가 뒷받침하는 관습이라는 주장이다.
“예부터 여신교 내에서 세력 다툼과 사사로운 권력 싸움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 여파가 교황에까지 끼쳤다고 해서 저희의 신앙심을 의심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바르간은 벨레드의 권력 유지를 명목으로 내세워 바엘에게 어떤 제재를 가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선 추기경인 제파르의 도움이 필요했고 이는 서로에게 득이 될 터였다.
『집행관이 여기에 왔다는 건 벨레드의 뜻도 마찬가지라는 건가. 정보는 또 어디서 새어 나간 거지? 성서? 간자? 낄낄낄. 이해할 수 없군. 아주 흥미로워….』
눈앞의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바르간을 살피는 제파르. 그는 혼잣말을 이어 가며 상황을 판단하자 바르간은 첨언했다.
“지금까지 제파르 님의 행적을 살피면 바엘의 재림을 반기지 않을 거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제파르 님이 바라시는 이상은 마음대로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 인류를 전멸시키려는 바엘과는 뜻이 맞지 않지요.”
이미 원작을 통해 바엘이 나타난 이후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바르간은 제파르의 계획 역시 모를 수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인류의 완전한 사육화.
실험 재료로 쓸 모든 인간이 죽어 버려서야 곤란할 따름이었다.
바르간이 잠시 말문을 멈추자 제파르는 틈새를 정확히 비집고 들어갔다.
『인류의 전멸…. 마치 바엘을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반드시 씨를 말리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아니요. 과거를 읽은 전 알 수 있습니다. 바엘의 목적은 인류의 멸망. 성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던 ‘살롬’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그는 반드시 그리 움직일 겁니다.”
여신의 본명 살롬.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던 성서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배반자들을 남김 없이 멸하고 싶었다. 그 한 문장으로 인해 바엘은 당시 폭군이 따로 없는 교황이 되었으니까요.”
한동안 시선을 교환하던 둘.
제파르는 자신들은 그 당시를 기억하지 못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눈길을 피하려고 하자, 바르간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제파르 님. 아니, 라페즈 님. 어째서 여신님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던 성서의 페이지를 뜯어 가신 겁니까?”
『…….』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은 말은 마십시오. 한 장이라고 할지라도 성서를 지니고 있던 당신이 과거를 잊었을 리 없습니다.”
성서의 격돌 후. 성서에 남겨 있던 모든 페이지의 기록이 소실되었지만, 그 직후 죽음을 맞이했던 슈겐하르츠의 기억은 온전히 남아 있다.
마지막까지 성서를 들고 있던 바엘 역시 마찬가지. 원작에서 재림에 성공하자 곧바로 인류의 학살을 자행했다.
즉, 성서는 기억의 온존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한 페이지가 어느 정도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물고 늘어질 필요는 있다.
그러자 제파르는.
『…아무래도 과거를 읽었다는 말은 정말인 모양이군.』
의의로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곤 바르간이 여신교에 들어오기 전의 이름을 곱씹으며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슈겐하르츠. …아니면 슈겐하르츠 그자가 죽기 전에 뭔가 준비라도 했단 말인가? 뭐가 되었든 놀라운 일이로다.』
말이 길어질수록 제파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수한 가능성을 따지며 가정의 상황을 잔뜩 그려 봤다.
그러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제파르가 바르간을 바라봤다.
『슈겐하르츠의 후손들에게 이따금씩 나타난 저주. 물음. 물음…. 어째서라….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단 뜻이고. 활자로서 읽었다는 건지 영상으로서 봤다는 건지도 아직 알 수 없고 그렇다면…….』
스위치가 켜지기라도 한듯 한참을 중얼거리는 제파르.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와 같이 말을 잇던 그가 결론을 내리곤 딱 멈췄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눈. 그가 말했다.
『슈겐하르츠의 고유술식인가?』
“제파르 님.”
『아, 그래그래 질문이 있었지? 내가 어째서 여신님의 죽음이 기록된 페이지를 찢어 갔느냐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제파르. 그는 냅다 자신의 품에 있는 주머니 속에서 온갖 물품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도저히 저 안에 다 들어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크기와 양. 그가 과거에서부터 애용해 온 공간 왜곡이 걸린 마도구임이 틀림없다.
특정 물건을 찾는 와중에도 제파르는 말을 이었다.
『오해할 수도 있으니 말하지만, 나는 여신님을 살해하지 않았네. 당시 여신님을 뵙기 위해 침소에 들렀던 건 사실이나 그분께서는 이미 생을 잃은 뒤셨어.』
탁—. 터엉. 챙그랑.
워낙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인지 물색에 바쁜 그.
주변에 물건이 너저분하게 쌓여 간다.
『그런데 내가 그분의 죽음을 곧바로 밝히지 않고 되려 성서의 페이지를 찢어 간 이유? 그야 성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 워낙 터무니없었으니까. 바엘과 신자들이 봤다간 전쟁은커녕 제 목을 그었을 텐데 놔둘 수야 있겠나.』
바르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건만, 물꼬가 트인 제파르는 연이어 정보를 쏟아 내다가 물었다.
『성서에 ‘배반자들을 남김 없이 멸하고 싶었다’라고 마지막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했지? 내가 성서의 페이지를 뜯어 갔을 적에는 그런 문장 따위 존재하지 않았네. 내가 뜯어 갔던 게 마지막 페이지였으니까.』
그는 말했다.
성서에 적힌 문장은 그 어떤 마법이나 기술을 가해도 수정이 불가하며, 빈 페이지에 글씨를 새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자신이 직접 갖은 실험을 통해 밝혀 낸 사실이니 확실하다고.
『이것으로 더욱 내 가설에 신빈성이 생기는군. 낄낄낄. 여태까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답답했는데 겨우 이해자가 생겼어.』
그렇게 간신히 마도구 안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아낸 제파르.
그는 고급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듯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읽어 보게. 이게 자네가 찾던 성서의 소실된 페이지네.』
바르간은 그가 내보인 페이지의 글자를 빠르게 읽어 나갔다. 성서의 충돌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분리된 역사였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지막에 적힌 문장.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글이다.
—살롬은 자살했다.
앞의 내용과 관계성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어째서, 언제, 어떻게 따위도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른 내용들이 자잘한 행동까지 세세하게 적힌 데 반해 지나치게 건조하다.
『조금 전에 내가 모르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했지? 역시…. 성서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 피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마법사님과 바엘을 이용한 것이지…!』
제파르의 눈은 어딘가 광기에 취해 있었다.
비극을 말하면서도 잔뜩 흥이 올라 기뻐 보였다.
『마법사님의 죽음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던 게 아니야. 성서에 죽음이 기록되었기에 마법사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