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5화(325/350)
다렉 연합국의 중심.
위그드라실의 줄기가 지면 위로 드러나는 지형에는 건물이 있다.
신성한 위그드라실과 가장 가깝게 지어져 있는 건축물. 그러나 이름은 붙여져 있지 않다.
중앙 교회처럼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사용할 만큼 커다랗지도 않고, 웅장한 양식이나 화려한 조각상 따위도 없다.
그저 건물 한 채.
아무도 그 용도를 알 수 없어 추측만 난무하는 장소.
다만, 알고 있는 건 역대 성제들이 1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방문했다는 것뿐.
훤히 뚫려 있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서 위그드라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품에 안겨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미야옹.
그런 신비한 건물의 인근 공터. 기도를 올리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성녀 디피엘리아의 앞에 긴 털을 가진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성스레 기도문을 읊고 있던 디피엘리아는 살짝 입가를 올리며 고양이를 반겼다.
고양이 역시 그녀가 편안한지 자연스레 몸을 비볐다. 디피엘리아는 고양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예뻐했다.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디피엘리아의 손짓을 만끽하던 고양이. 돌연 자신의 임무를 깨달은 것처럼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우더니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부터 비닐에 둘러싸인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디피엘리아는 어깨에 앉은 사역마를 통해 주변을 살피다 종이를 꺼내 펼쳤다.
그러자 눈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짙은 마나가 흘러나왔고 디피엘리아의 귓가를 울렸다.
“그렇군요. 이번이 마지막 연락…….”
귀에 울리는 차가운 남성의 목소리. 그 음성을 듣는 디피엘리아는 어쩐지 아쉬우면서 서글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고 마나의 선 따위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애써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혼잣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연구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고 입지도 확실히 다졌으니까요.”
디피엘리아의 대답에 반응을 보일 리 없는 남성의 음성이 계속해서 들렸다.
고막을 떨게 만드는 진동에 디피엘리아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떴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인상이 어른거린다.
“지금까지 수고했어요. 아뇨…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이르네요. 하지만, 제가 당신을 마주할 날은 앞으로 평생 없을 테니까….”
닿지 않을 걸 알지만 위로의 말을 전해 주고 싶다.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덜어 주고 싶다.
디피엘리아는 마치 정말로 상대를 앞에 두고 있는 듯 진심을 털어놨다. 그렇게 저장되어 있는 모든 음성이 끝났을 때, 그녀가 들고 있던 종이는 뜨겁지 않은 불에 타며 사라져 갔다.
눈앞을 지키고 있던 랙돌 고양이 역시 사라지고 없다.
아카데미아에 있을 적이나 지금이나, 증거를 남기지 않는 철두철미함은 여전한 인물이다.
디피엘리아는 고개를 돌려 중앙 교회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흉흉한 기운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그가 있을 것이다.
“한 번 정도는 직접 제 눈으로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바르간.”
성녀는 마지막 기도를 마쳤다.
***
『아몬님, 바르간이 전선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남쪽 전선의 최전방. 연락책을 맡고 있는 주교가 아몬에게 알렸다.
바르간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아몬은 눈가를 좁히며 중앙교회의 뒤편에 위치한 능선을 바라봤다.
주교는 추가적인 설명을 이었다.
『주교 게르무가 미행한 결과, 바르간이 추기경 제파르 님의 둥지에 무단 침입하는 걸 확인. 아마 접선했을 거라고 추측되나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이런 시기에 제파르를 만나고 오다니 수상쩍기 그지없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르간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인간. 혹여나 저희 의식을 방해하는 건 아닐지…….』
『제가 수상쩍다고 본 건 바로 그 점이에요. 권모술수의 집합체인 그가 의심받을 짓을 대놓고 하다니. 게다가 미행까지 따라붙는 걸 놔두었다는 게 더욱 이해되질 않네요.』
『그, 그렇다면 일부러 의심 받을 짓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무엇하나 확언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으로만 보자면 그럴 확률이 더 높겠네요.』
아몬은 극도로 바르간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탓에 천하무적이었던 이포스를 잃고 수많은 사제와 주교들을 잃어 결국에는 실권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당한 게 워낙 크다 보니 작은 행동 하나도 유심하게 살피며 그 뜻을 분석하려고 드는 게 습관처럼 달라 붙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의심된다고 해도 이미 멈출 수 없어요. 바엘 님께서 무사히 재림하셔 모든 상황을 평정해 주시길 바라야죠.』
『이, 이런 말씀을 드리긴 송구하지만, 혹여나 바엘 님께서 바르간의 간혹한 꾀에 빠져나오지 못하시게 된다면…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불안감에 뱉고 말았지만 도중부터 자신의 발언이 너무나 불경하다고 느낀 주교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아몬은 불쾌하기는커녕 그럴 일은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바엘 님께서 당하실 일은 없어요.』
아몬은 경험을 바탕으로 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성서를 들고 있었던 저는 알 수 있어요. 그 안에 담겨 있던 힘이 얼마나 무궁무진했는지를…. 개인의 힘만 하더라도 추기경 중에서 가장 무력이 뛰어난 벨레드 이상일 텐데. 성서의 힘까지 품고 계시니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겠죠.』
과거 슈겐하르츠가 두 성서를 부딪치고 나서, 성서는 혈이 막혀 있는 것처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마치 우주를 담고 있는 것과 같은 방대한 질량이 존재하지만 꽉 붙잡혀 있는 상황.
아몬은 성서의 힘 대부분이 당시 성서의 주인이었던 바엘과 함께 봉인되었다, 그렇게 판단했다.
“오, 여신이시여! 이제야 당신의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어린 신자에게 축복을…! 당신에게는 무구한 영광을!”
“한 시라도 빨리 이 피를 바치고 싶구나! 그분의 피와 살이 되고 싶구나!”
아몬과 주교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 술식의 위에 올라선 신자들이 찬양의 눈물을 흘리며 이 순간을 기뻐했다.
형상파와 무형파의 신자 약 10만 5천.
광기의 신앙심에 목숨을 바칠 신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몬. 그녀는 이번 제사의 제사장을 맡았다.
신자들이 전부 모였으니 이제 영광의 때가 다가왔다.
『제사를 시작하도록 하죠. 자리로 돌아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또각—.
아몬은 커다란 술식이 훤히 보이는 제단의 위로 올라서며 주변을 둘러봤다.
현재 이들은 불과 몇 킬로 앞에 중앙교회를 마주하고 있다.
극도로 견고한 방어막으로부터 몸을 숨긴 중앙교회. 어지간한 대도시와 맞먹는 정도의 넓은 교회는 주변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했다.
오직 남쪽만 평지가 연결되어 입구 역할을 했는데, 그 앞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는 게 아몬이 이끌고 있는 제1 군단이다.
소속되어 있는 대주교는 포라스, 페넥스, 최근 대주교가 된 샤울까지 해서 셋.
알로케스를 제외하면 온건파의 모든 대주교가 모인 셈이다.
‘온건파의 세력을 앞세워 상당수를 소실시킬 생각이었겠지만, 뜻대로 되진 않을 거예요.’
아몬은 눈에 마력을 모아 수십 킬로 떨어진 북쪽 산맥, 그곳에 위치한 바르간의 군세 10만을 노려봤다.
형상파와 무형파를 제외하고도 100만이 넘는 제1 군단. 그중 80만 이상이 온건파다.
바르간과 벨레드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온건파의 알티프를 줄이기 위해 이들을 선봉대로 앞세웠다.
‘바엘 님께서 계시는 이상, 온건파가 큰 피해를 입을 틈도 없이 전쟁이 끝나고 말 터니까요.’
아몬은 생각을 갈무리하고 눈앞의 신자들을 내려다봤다.
그동안 잘 살찌워 온 가축 10만 5천 마리가 도축해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
『여신님 추앙하는 신실하고 고귀한 신자들이여. 그대들은 오늘 이 순간부로 진정한 하나가 됩니다.』
상냥하면서 위엄이 깃든 아몬의 목소리에 환호하는 신자들.
어린아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아몬은 인상이 구겨질 뻔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하찮은 존재의 비명은 듣기 싫다.
하지만, 지금까지 억지로 저 더러운 종족을 보듬은 대가가 이제야 세상에 빛을 발할 것이다.
『알티프인지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종족이란 육체만을 일컫는 불필요한 단어. 여신님의 앞에서 우린 모두 같은 벌거벗은 영혼입니다.』
아몬은 성녀를 연상시키는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저 어리석은 가축들이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지 않도록 온화함을 연기했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저 역시 마찬가지. 우리의 영혼은 하나인 여신님으로부터 파생된 부산물입니다. 본래 모두 같은 모습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서로 다른 형태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몬은 한 줄기의 눈물을 흘렸다.
마치 진심으로 이 상황을 슬퍼하듯, 인류와 알티프를 넘어 생명 자체를 위하는 선인을 행세했다.
『애탄스러운 일입니다. 차이로 인한 오랜 전쟁과 분쟁. 그동안 감옥에 갇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진정한 신자들이여.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제 여신님께서 그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대들이 고통의 연쇄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찾길 바라십니다.』
즈즈즈증—!
신도들을 올라서 있던 술식이 발동한다.
자색의 마나를 한껏 머금은 빛이 발하자 신도들은 더욱 열광한다.
아몬의 이름과 여신을 목 놓아 부르며 자신의 신앙심이 얼마나 드높은지를 보인다.
『편견과 차별을 갖지 않았던 그대들이야말로 진실된 신자들…! 여신님의 곁으로 갈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여신님의 은혜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길!”
“고난과 역경으로만 가득 찬 속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안을 되찾을 수 있기를!”
“오, 여신님! 아몬 님! 당신들이야말로 저희의 구원자이십니다! 부디 저 불길한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깨달음을 주소서!”
그들에게 제물이란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다.
육체로서의 해방. 사슬을 풀어헤치고 태초의 한 분에게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여신님! 이 신자들의 외침이 들리십니까. 여신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부디 이들을 해방시키시고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이 땅에 보내 주십시오!』
끝나게 되는 아몬의 기도.
그녀의 마나에 반응하는 술식은 빛을 한껏 발산하더니 신자들을 집어삼킨다.
“영광의 빛. 그분의 성스러운 빛이로다.”
신자들은 빛에 감싸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신을 찬양했다.
그렇게 모두를 감싼 빛은 형태를 바꾼다.
콰드드드득—.
꾸드드득. 아그작—.
까자작. 우득우득.
뼈와 살점이 한없이 으스러지는 소리.
인간들을 모아 통째로 한곳에 갈아 버린 것만 같은 소름끼치는 괴음이 들리다 빛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진한 핏물의 덩어리.
정확히 구체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피의 덩어리가 공중에 떠 있다.
『드디어…. 드디어 이 순간이….』
아몬은 그 핏물을 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양손을 크게 벌리며 다시금 이 땅에 강림한 존재를 반겼다.
곧이어 핏물은 한 점으로 응축되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확산되며 결코 열리지 않았던 공간의 틈새를 벌렸다.
그 안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온몸의 털을 비쭉비쭉 세우는 한 존재가 나타났다.
『바엘 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