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7화(327/350)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영웅 실베스테르. 인류를 지킬 최후의 보루라 불리던 그가 무참히 전사했다.
그의 머리는 깨진 수박과도 같이 사방으로 피육이 튀었고 그 피를 뒤집어쓰게 된 이 중 한 명이 딸인 클레멘스였다.
“아, 아아아……!”
클레멘스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항시 냉정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눈동자는 확장되다 못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검과 지팡이를 들며 바엘에게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도 짙은 패색과 공포가 칠해져 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두 다리의 힘이 자꾸만 빠져 갔다.
“저게… 바엘….”
성벽의 아래에서 상황을 목도한 리암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렸다. 함께 있던 에밀리와 동료들 역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발…. × 됐네 이거….”
아르하는 억지로 입가를 비집어 올리며 마나를 끄집어 올렸다.
바엘이 내뿜는 압력이 워낙 거대하기에 마나로 몸의 형체를 유지하지 않으면 그대로 짜부라질 것만 같다.
아르하는 얼어붙은 동기들에게 말했다.
“뭐 해? 이대로 다들 곱게 뒈지기라도 하려고?”
비아냥거리는 그녀의 말투. 그녀는 일부러 동료들을 자극했다.
“아무리 × 됐어도 마구간 다 타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불을 끄든가 말을 구출하든가 해야지.”
아르하 역시 긴장하기는 매한가지.
그녀는 애써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지팡이를 강하게 쥐었다.
아르하의 의지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언제나 고고할 것 같은 황금의 기사다.
“…녀석이 낸 방어막의 틈이 커지고 있다. 이대로면 복구할 수도 없이 완전히 파괴되겠지.”
최근까지 디피엘리아와 함께하며 신세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아르텔리온.
오셀 왕국의 왕자가 냉철히 현 상황을 짚었다.
“다가오는 적의 군세는 약 100만. 개중에는 추기경 아몬과 대주교 셋이 있지. 녀석들이 성문 앞까지 도착할 때면 이미 방어막이 완전히 깨져 있을 거다.”
“그래서? 저 무지막지한 괴물을 무시하고 잡졸들이나 잡자 이 말이야?”
“…잡졸이라. 하긴, 저 괴물에 비하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군.”
피식 웃음 짓는 아르텔리온.
그는 바엘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의 임무는 중앙 교회를 지켜 내는 것. 그리고 그 중앙 교회에 들어온 침입자 중 가장 주의해야 할 개체는 제로 위험군.”
아르텔리온은 검을 둘러싼 붉은 오러의 세기를 높였다.
동시에 초월에 이른 오러가 붉은 단풍이 되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우리가 맞서지 않으면 누가 저 괴물의 발을 잠시라도 붙잡을 수 있겠는가.”
“킥. 꼴에 왕자라고 폼 잡는 거 보소.”
말은 틱틱대도 아르하는 아르텔리온의 발언이 마음에 들었다.
현재 이곳에 모인 구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의 인재들.
비록 알리시아나 핀과 같은 몇몇 주요 전력이 빠져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하나 용사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다.
원작 이상의 힘.
바르간이 바꾼 전개로 인해 정해져 있던 개개인의 한계를 넘어선 모두가 기세를 다잡았다.
치지직—.
그중 가장 재빨리 움직인 건, 붉은 전류를 터트리는 남자와 공간을 이동한 여자.
그리고 사자와 같이 호방한 웃음을 터트리는 무투가.
‘이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는가….’
아르텔리온과 모두는 그 믿음직스러운 등을 뒤따랐다.
한편, 무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에밀리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며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이기 위해 각오를 다졌다.
언제까지고 모두에게 방해되고 싶지는 않은 에밀리였다.
***
“아버지…. 아버지…….”
클레멘스는 붕괴된 정신을 다잡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믿고 있었던 우상이 사라지자, 전의는 완전히 상실되었고 눈앞의 적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오, 오지 마….”
클레멘스는 뒷걸음질 쳤다.
바엘이 걸음을 옮기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눈에는 그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오지 마… 오지 마…!!”
그토록 용맹하던 여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한낱 겁쟁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는 인간이었다.
『…….』
바엘은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러나 별다른 흥미를 끌진 못했는지 자색의 마나가 깃든 주먹을 뒤로 뺐다.
성벽은 물론 중앙 교회의 건물들을 몇 채는 가볍게 부숴 버릴 수 있는 에너지가 깃든다.
바엘은 클레멘스를 비롯한 용사들과 함께 성벽을 무너뜨릴 심산이다.
콰하아아아앙—!!
곧바로 주먹을 휘두르는 바엘.
거대한 파동을 담은 마나가 형태를 갖추며 모든 걸 씹어 파괴하려 드는데.
즈으응—!
때마침 이동을 마친 에리카. 거대한 워프홀을 형성시키며 바엘의 일격을 삼키기 시작한다.
“끄, 으으으윽…!”
바엘의 일격이 담은 어마어마한 질량 탓에 에리카는 고통을 호소한다.
두 팔을 뻗은 채 워프홀을 유지하려 하는데 핏줄과 더불어 힘줄이 터져 나가는 것만 같다.
“끄아아악!”
그럼에도 버텨 내는 에리카.
제 팔과 발을 얼려 강제로 물러설 수 없게 한다. 지옥 같은 몇 초 끝에 에리카는 바엘의 일격을 간신히 막아 낸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바엘의 후속타가 이어지기 전에 두 명의 용사가 나선다.
쿠웅—!
겁도 없이 바엘의 품으로 파고든 무투가 레온.
바엘의 복부에 정타를 꽂는 데 성공하자 장맛비와 같이 권격을 연잇는다.
‘마치 거대한 산에다 맨주먹을 휘두르는 기분이군! 역시 괴물의 왕이구나!’
레온은 무력감에 의기소침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불이 붙어 더욱 몸을 뜨겁게 했다.
강력한 적.
절대 악.
그것만으로 레온이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쿵쿵쿵쿵쿵—!
단단한 바엘의 몸에 닿을 때마다 갈려 나가는 프로텍터.
오랜 수련을 거듭했음에도 레온은 주먹을 감싸고 있는 오러를 무한정으로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됐다.
더욱 진한 마력으로.
더욱 방대한 힘을 담아서.
이포스와 그레이든이 보였던 주먹보다 더욱 강인하게…!
파지직—.
이어서 성벽 위를 한순간 밝힌 붉은 번개.
바엘의 뒤를 잡은 리암이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그의 목. 하나의 선이 되어 극도로 예리해진 검을 움직인다.
하지만.
『강하군.』
카앙—!
막혀 버린 리암의 검날. 분명 홍전개벽을 사용했음에도 바엘의 목에 아주 작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
레온의 권격도 마찬가지. 아무리 타격을 이어도 고통을 호소하긴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용사들의 성취를 가늠하던 바엘은 천천히 말했다.
그가 뱉는 어구 하나하나에는 짙은 마나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죽음을 미룰 순 없다.』
“커헉!”
리암을 비롯한 용사들이 돌연 피를 토해 냈다. 바엘이 뱉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치명적인 독이 되어 주변 용사들의 몸에 퍼져 나간다.
그 독은 마나와 신체의 움직임이 활발할수록 빠르게 퍼져 나갈 것이며 이들에게 확실한 죽음을 선사할 것이다.
“크훠억!”
바엘. 여신교의 정점인 존재.
그가 피라미드의 정상에 있는 이유는 이포스를 능가하는 신체 때문만이 아니다.
언어에 힘을 깃들게 하는 권능. 창조를 하던 최초의 마법사가 자신의 힘을 본떠 하사한 비상식적인 능력 때문에 그는 세상의 이치를 뒤집을 수 있다.
하물며 필멸자의 생명을 앗아 가는 것쯤이야, 못 해낼 리 없었다.
『저항을 그만두고 죽음을 받…….』
카자자작!
바엘의 몸을 붙잡은 채 타고 올라오는 얼음. 곧바로 이어지는 원소 마법들의 폭격.
붉은 단풍잎들이 그의 주변을 감싸자 아르하의 고유술식이 주변을 막아 버린다.
“닥치고 이거나 먹어!”
에리카, 에를리히, 아르텔리온, 그리고 아르하.
네 명의 기술이 마치 하나가 된 것같이 절묘한 타이밍에 어우러지며 바엘을 가두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그들의 협력은 영원이 지속될 것만 같은 작은 지옥을 만들어 냈다.
우으으으응!
마나의 진동이 거세다.
아르하의 ‘무한의 방’ 안에서 바엘은 끊임없는 고통을 받고 있을 터.
모두는 자세를 유지한 채 기술이 풀리지 않도록 했다. 특히 기술의 몸체가 된 아르하의 고유술식은 더욱 육체에 부담을 주었다.
“마나 빨아먹는 게 미쳤네. 큭…. 이거 페랑기스의 지원이 없었으면 유지 못 했겠는데?”
상대의 마나 저항성이 높은 만큼 많은 양의 마나와 체력이 소모되는 건 당연한 일.
실베스테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용사들은 페랑기스의 대규모 정령 마법을 통해 스펙이 대폭 상승해 있었기에 바엘과 어느 정도 맞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바엘을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으드득—.
균열이 일기 시작하는 아르하의 술식.
주변의 마법사들과 힘을 합산해 보충해 보지만, 버틸 수 없다.
까자자작—!
결국 깨져 버린 고유술식.
그 안에서 나타난 바엘 전신에는 과도에 베인 듯한 자잘한 상처들만이 새겨져 있었다.
바엘.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슈겐하르츠가 퍼트린 힘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구나. 오랜 세대가 이어지면서 발전을 계속했다는 건가.』
아몬의 기억을 읽은 이상, 당연히 마법과 검술의 성장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피부로 직접 체감하는 건 다른 일.
바엘은 과거 형편없게만 보였던 푸른 마나의 힘에 대해 재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 바엘의 시선을 모이게 만드는 한 여성이 있었다.
『…성녀. 성서의 격돌에 의해 발생한 왜곡점.』
바엘은 에밀리를 그렇게 불렀다.
동기들의 뒤를 지탱하고 있는 잿빛 머리의 여인은 이를 꽉 깨문 채 신비한 힘을 나누고 있다.
그녀의 몸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수수께끼의 반짝임.
소위 ‘기적’이라 불리는 힘을 사용하고 있는 에밀리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져 간다.
『시간을 끌어서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모두 죽음에 이를 것이다.』
늦나 빠르나의 차이.
인류는 틀림없는 파멸을 맞이할 것.
그런데도 에밀리는 꿋꿋하게 기적을 이어 갔다. 이에 피를 토하던 용사들의 상태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잠시나마 죽음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 중앙 교회는 무너지고 성제는 죽는다. 이 자리에 있는 너희는 시체가 되거나 붉은 괴물이 되어 세상에 또 다른 죽음을 야기할 것이다.』
바엘이 이미 확정되었다는 듯이 미래를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과 유사하게 이미 원작이 진행된 바 있다.
이미 실력… 개체의 차이는 현명하게 보여 주었다.
끈질기게 중앙 교회를 수호할 게 아니라, 살려 달라 매달리거나 클레멘스와 같이 전의를 상실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가 봐 온 인생이 그랬고.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랬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지랄하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성녀가 담기에는 다소 거친 말. 에밀리는 몸 안에 퍼져 가는 독의 고통을 악으로 참아 내며 눈을 부릅떴다.
그녀, 그리고 바엘에게 검과 지팡이를 내밀고 있는 용사 모두가 같은 뜻인 듯했다.
“…인류 아직 멸망 안 했다고, ×발.”